메뉴 건너뛰기

close

온 국민이 영어회화에 쫄고 있다. 미군정기를 거치면서였을까?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영어능력은 그 내용(토익토플 점수? 실제 영어의사소통능력?)이 무엇이 되었든간에 우리에게 최고의 스펙이다.

MB정부는 온 국민의 약점을 잘도 잡았다. "'오렌지'라고 하시나요? 그럼 당신은 콩글리쉬, '어륀지'라고 하는 당신은 잉글리쉬!"로 대비되는 '어륀지' 영어 신조어도 낳았다. 그렇게 쏟아져 나온 MB표 실용영어 교육 정책은 '온 국민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영어회화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신념을 온 국민에게 일반화시켰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영어회화를 온 국민이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이 말! 잠깐만 생각해봐도 말도 안 되는 억지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이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영어회화를 할 수 있도록' 이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영어를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강력한 의문을 품어야 한다. 영어회화의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기 때문이다. 자발적 의지적 노력 없이 졸업만 해도 외국어를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MB 영어몰입교육의 사생아, 영전강

10월 26일 올라온 교과부의 시행령 개정안 공고. 비정규직으로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가? 비정규직은 폐지되어야 한다. 2년에서 4년, 4년에서 8년으로 연장하는 것은 결국 비정규직 영구화의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 영전강 4년 확대 등의 시행령 개정 공고 10월 26일 올라온 교과부의 시행령 개정안 공고. 비정규직으로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가? 비정규직은 폐지되어야 한다. 2년에서 4년, 4년에서 8년으로 연장하는 것은 결국 비정규직 영구화의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 한희정

관련사진보기


2008년 영어과 교육과정 개정은 MB표 초등영어 '삽질' 정책의 신호탄이었다. 초등 1~2학년 영어교육 확대에 대해 국민적 저항이 크자 초등학교 3~6학년 영어 수업 시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한다.

다른 교과 수업 시수를 줄일 수는 없으니까 영어 수업 시수를 늘리면서 나타나는 수업 부담을 경감해주겠다는 명목으로 '영전강(아래 영어회화 전담강사)'을 끼워넣었다. 즉, 늘어난 시수를 영전강이 부담하도록 해서 교사들의 수업시수를 줄여주겠다는 꼼수였다. 영어'교육'이 아닌 일자리 창출 정책이라는 둔갑술을 쓴 교사 수업 부담 경감 방안이었다.

이 영전강 제도가 오늘 다시 문제가 되는 이유는 지난달 26일 발표된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의 보도자료와 시행령 개정 때문이다. 교과부는 최대 4년까지 근무하도록 했던 영전강 제도를 심사를 거쳐 4년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하려고 하려고 의견서를 받고 있다.

영전강 제도가 시행된 지 벌써 3년이다. 전국적으로 6000명의 비정규직이 일시에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언론의 호들갑을 잠시 내려놓고 찬찬히 살펴보자. 영전강이 지닌 문제점 10가지를 짚어 봤다.

1. 교육적 고려 없이 비민주적, 졸속적으로 도입된 제도

초등영어시수확대를 골자로 한 2008개정영어교육과정 추진 자체가 비민주적이었다. 교사들의 수업 부담을 경감시키겠다는 애초의 취지에 맞으려면 정규직 교원 채용을 늘리면 됐다. 그런데 새로운 비정규직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실용 영어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 영전강을 각 학교에 파견해 실용영어교육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이 제도는 추진 과정 자체뿐만 아니라 현장에 안착하는 과정도 졸속적이었다.

처음(2009년)에는 각 시도교육청에서 선발해 학교에 배치하다가 이직률이 높고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자 개별 학교에서 직접 선발하고 계약하는 것으로 전환했다. 결국 제도는 졸속적으로 정부가 만들어 놓고 책임은 개별 학교장이 지고, 이들을 뽑고 관리하는 실무는 각 학교 영어교육담당교사가 하는 실정이다.

2. '영전강'만 특별 대우, 다른 비정규직은 나몰라라

영전강은 똑같은 강사지만 다른 강사와는 달리 단독으로 수업할 수 있고, 학생 평가권도 갖는 특혜를 받는 강사다. 그럼에도 교과부는 영전강의 급여가 낮아서 우수 인력을 모집하는 데 한계가 있어 처우 및 신분 보장을 강화해야 한다며 시행령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결국 우수한 인력을 모집하려면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영어회화 전문강사'라는 이름이 주는 허울을 벗어내고 정규직 교사를 더 뽑아서 이들의 질을 관리하면 된다.

3. 영전강 4년 추가 연장은 학교 비정규직 철폐가 아닌 확대영구화 정책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2년 이상 임용한 경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영전강은 최대 4년까지 근무할 수 있다는 임용 기간 예외 규정을 명시했다. 이에 더해 필요에 따라 4년을 추가해서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이런 비정규직을 더 확대하고 영구화하겠다는 것이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에 의해 좌우된다. 이 제도를 추진한 교과부도 인정하듯이 처우나 신분 보장이 안 되면 우수한 인력을 모집할 수 없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서울의 영전강 교사 자격증 보유율이다.

안민석 의원실 국정감사 자료집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서울교육청 영전강의 교사자격증 소유자 비율은 96.6%로 전국 최고였다. 그러나 정진후 의원실의 국정감사 자료집에 따르면 2012년 72.8%로 줄었다.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인력풀을 갖고 있는 서울시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결국 비정규직에 대한 신분 불안 등의 문제로 우수한 인력들이 빠져 나간 것으로 볼 수 있다.

4. 초등교육의 통합성과 초등교사의 전문성 무시

초등교육은 어린이의 성장과 발달의 특성을 고려한 교과통합적인 접근을 토대로 한다. 따라서 초등교사는 교대 교육과정을 통해 영어뿐 아니라 국어, 수학, 과학, 체육, 음악, 미술, 사회, 실과, 도덕에 이르기까지 전 교과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익히고, 임용과정을 통해서 전 교과의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 수업 실연 능력 등을 평가받는다.

특히 영어 교과에 대해서는 모든 초등교사가 임용과정에서 영어 면접과 영어 수업능력 실연 등을 평가받는다. 영어 교육이 시행된 이후 임용되어 발령을 받은 초등교사들은 누구나 영어수업을 할 수 있다. 초등교사는 다양한 학년을 담임하게 되고, 다양한 교과목을 가르치면서 담임 중심의 통합적 교육, 학급공동체 구성을 통한 전인적 교육에 대한 관점들을 익히게 된다.

한 교과목만을 가르치는 영어교과전담교사가 있긴 하지만 이들 역시 모두 담임교사의 경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을 영어능력만으로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으며, 담임교사로 아이들과 부대끼며 소통하고 성장한다. 그러나 영어회화능력만을 강조하는 영전강제도는 이런 초등교육의 통합적 특성과 초등교사의 전문성과 역사성을 무시하는 제도다.

영어회화능력이 우수하다고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를 잘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생들의 발달 특성을 이해하고 이에 맞는 교수학습방법을 다양한 교과를 통해 공부한 초등교사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MB 영어몰입교육의 사생아, '영전강'이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 ② 편이 이어집니다.



태그:#영어회화전문강사, #영어몰입교육, #영전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