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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은 1000여 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이다. 87년 창립된 이후 현재까지 사회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왔다. <영화를 읽다>는 장시기 동국대 교수, 정경훈 아주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소영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가 돌아가며 연재하며, 매주 1회 화요일에 게재한다. <편집자주>

영화 <시>, 이창동, 2010
▲ 시 영화 <시>, 이창동, 2010
ⓒ 영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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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대통령 선거 열기가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지지율이 답보상태에 있는 박근혜 후보가 자신의 발목을 잡아온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긴급조치로 인한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을 공동발의했다.

박 후보는 손석희씨의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겠는가"라는 질문에 "그 부분에 대해선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라고 하여 인혁당 사건 희생자 유족과 야당 지지자뿐만 아니라 일부 새누리당 지지자들로부터도 비난을 받았다.

그러자 박 후보는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이 헌법 가치를 훼손했다"며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공식사과했다. 하지만 마지못해 하는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고 비판이 계속되었다.

이번에 박 후보가 공동발의한 <긴급조치피해자 보상 법률안>은 긴급조치에 의해 처벌을 받은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피해자의 생활수준을 고려해 보상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담고 있다. 늦었지만 상처 치유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그런데 8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고 그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던 인혁당 사법살인 사건에 대해 "두 개의 판결"이 있다고 말했던 박 후보를 보며, 이창동 감독의 <시>의 한 대사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성폭행으로 강에 투신한 중학교 여학생의 자살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가해자 학생 부모들이 모여 "이제 위자료 삼천만 원만 넘어가면 모든 것이 다 깨끗하게 마무리됩니다"라고 웃으며 말하자, 가해자 학생의 할머니인 미자가 "이제 이대로 다 끝난 건가요?… 완전히?"라고 의아해한다. 죽음으로 한 생명을 내 몬 고통이 돈에 의한 합리적 담합으로 해결될 수 있는가? <시>는 타자의 고통에 감성이 열릴 때, 우리의 존재가 어떻게 떨리는가를 잘 보여준다.

가해자 학생 할머니 미자의 의아함... "이제 이대로 다 끝난 건가요? 완전히?"
                                 
영화 <시> 한 장면
 영화 <시> 한 장면
ⓒ 이창동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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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주인공 미자는 한강을 끼고 있는 경기도의 어느 지방도시에서 이혼한 딸이 맡긴 손자 종욱과 함께 살아가는 60대 중반 여자다. 그녀는 생활보호대상자이고, 간병 일을 할 만큼 가난하지만 화사한 의상과 꽃장식 모자로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다. 허름한 살림살이에 치매 증상도 갖고 있지만 큰 불평 없이 자족하며 산다.

그녀는 병원에 갔다가 응급실 앞에서 어린 딸의 죽음으로 오열하는 희진의 엄마를 목격한다.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타인의 죽음이지만, 미자는 연민을 느끼고 그녀의 죽음에 대해 슈퍼마켓 주인과 종욱에게 묻지만 이들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집에 오는 길에 미자는 동네 문화센터의 시 강좌 포스터를 보게 된다. 어려서부터 꽃을 좋아하고 이상한 소리를 잘하여 시인 기질이 있다고 말하는 그녀는 시 수업에서 한 달 후에 시 한 편을 써오라는 숙제를 받는다. 그녀는 시상(詩想)을 찾기 위해 무심히 지나쳤던 주변의 것들에 새롭게 관심을 주며 떠오르는 글귀를 수첩에 메모한다. 그러나 미자의 이러한 평화로운 일상은 희진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인이 남학생들의 성폭행이었고, 자신의 분신인 종욱이 범인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깨져버린다.

가해 학생 부모들은 "죽은 여학생은 안 되었지만, 자식의 미래를 망칠 수 없다"며 성폭행 사실을 학교와 경찰의 협조 아래 행동을 통일해서 비밀로 붙이고 위자료를 모아 피해자 엄마에게 전달하여 무마하자고 결의한다. 이들이 합리적 담합을 하는 동안 미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당의 꽃을 보고 메모를 한다.

"개념없는 할머니"인 미자는 위자료 오백만 원을 구하러 동분서주하는 것이 아니라 희진이 다니던 학교에 찾아가 성폭행당한 과학실을 보고, 희진의 위령미사에 가고, 희진이 죽은 장소에 찾아가고, 희진의 사진을 가져와 식탁에 놓아 종욱이 보게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수첩에 자신의 심정을 적는다. 희진의 죽음에 공감하는 윤리적 감성이 미자에게 열려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녀에게 가장 귀중한 손자인 종욱은 자신의 범죄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여전히 친구들과 게임하며 낄낄거린다.

미자는 종욱이 희진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죄책감을 갖기를 바라지만, 철부지 종욱은 가해자의 부모들만큼이나 자기 보호의 세계에만 머문다. 죄책감에 지친 미자가 밤늦게 자는 종욱을 깨우며 "왜 그랬어, 왜 그랬어"라고 절규하지만, 종욱은 이불 속에 몸을 숨길 뿐이다. 가해자 학부모들, 종욱뿐만 아니라 희진의 어머니도 이익 추구의 합리적 담합에 참여한다. 그녀도 위자료를 받으며 자기 딸의 성폭행 피해 사실을 비밀로 하는데 동참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유족이 담합하여 "이제 모든 것이 다 깨끗하게 마무리"되는 순간에 "이제 이대로 다 끝난 건가요?… 완전히?"라고 묻는 미자는 '자신의 귀한 손자' 종욱을 경찰에 신고한다. 희진의 고통을 엄마조차도 망각해가는 현실에서 미자는 자살하는 희진이 되어 <아네스의 노래>라는 시를 쓰고, 그녀가 죽은 곳에서 투신한다. 타자의 고통에 반응하는 미자의 윤리 감성이 <아네스의 노래>라는 예술 작품을 낳은 것이다.

<시>는 합리적 이익 추구의 세계와 그 너머 보이지 않는 감성의 세계를 대립적으로 보여준다. 가해학생 부모들, 학교당국, 경찰, 종욱, 희진의 엄마로 대표되는 세계는 상처 받은 자의 고통을 공감하기보다는 고통이 몰고 올 회오리를 차단하기 위해 자기보호의 연대를 이루며 가짜 책임지기로 트라우마를 덮는다. 하지만 트라우마의 진정한 치유는 공감하는 감성에서 시작한다.

프랑스 현대윤리학의 거장인 레비나스는 윤리는 자아, 동일성, 합리성, 계산, 재현, 일자 존재론 이전에 타자에게 열려있는 감성이며 타자의 고통에 열린 주체는 자신의 이익과 안전을 버리고 타자에게 무조건적으로 책임을 지는 주체이다. 희곡 <안티고네>에 대해 정신분석철학자 라깡도 '크레온왕의 금지명령을 어기면 죽음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자기 오빠의 시신에 애도하여 죽게 되는 안티고네의 행위는 윤리적 행위이며 윤리는 즐거움을 증대하고 고통을 줄이려는 현실원칙을 넘어선다'고 말한다. 

베트남 전쟁 때 미군에 의해 조정되는 월남정부의 불교탄압과 전쟁에 저항하여 소신공양함으로써 미국의 젊은이들이 대규모 반전시위를 하게 만들고 결국 미군을 철수하게 한 베트남 스님 틱광덕의 행위는 테러, 구금, 감금, 살인에 의한 고통을 깊이 공감하여 자신을 버린 윤리적 실천이었다. 틱광덕 같은 위인은 아니지만 미자가 희진과 함께하는 것 또한 감성이 열린 사람의 윤리적 실천이다. 

성폭행 피해자 희진 고통에 공감하며 자살한 미자... 그 고통 눈에 밟혔기 때문

영화 <시> 한 장면.
 영화 <시> 한 장면.
ⓒ 이창동 영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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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미자의 윤리 감성은 시 짓기로 대표되는 예술 감성과 하나가 된다. 칸트에 따르면, 예술을 낳는 상상력은 오성의 개념과 이성의 이념으로부터 자유롭게 움직이는 인간의 능력인데, 상상력이 기존의 개념과 관습과 재현을 넘어갈 때 심미적 감성이 활짝 열린다.

미자는 시상을 찾아 무심하게 지나쳤던 일상의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고 느끼려 하는 과정에서 길에 떨어진 살구를 베어물다가 "살구는 스스로 땅에 몸을 던진다/ 깨어지고 밟힌다/ 다음 생을 위해"라는 시상을 메모하고 "내가 평생을 살아도 살구에 대해 그런 거 처음 알았네"라며 즐거워한다.

무용한 것으로 여기며 수없이 지나쳤던 살구에게서 새로운 것을 찾는 감성이 예술감성이요 상상력이라면, 그녀가 희진의 고통에 공감하며 몸을 던지는 것은 그녀의 고통이 눈에 밟혔기 때문인데 이것은 윤리감성이다. 이렇게 미자에게서 보듯이 예술감성은 윤리감성과 통한다.

그녀가 처음으로 쓴 시작품 <아네스의 노래>은 그녀의 진실한 윤리 감성과 고민의 산물이다. 아마도 영화<시>는 세상의 그늘진 곳에 대해 열린 감성을 지닌 이창동 감독의 윤리적 고민의 예술적 산물일 것이다. 우리가 과거의 아픔을 단순히 보상의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고통과 아픔을 진심으로 함께하는 공감을 가질 때 우리사회는 미자의 시처럼 따듯하고 아름답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정경훈 기자는 아주대 교수입니다. 이 칼럼은 <민교협> 홈페이지에도 함께 올라갑니다.



태그:#민교협, #영화를 읽다, #정경훈, #영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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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는 1000여 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다. 1987년 창립된 이후 현재까지 사회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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