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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17일 국회에서 양당 원내대표·수석부대표가 참석하는 '4인 회동'을 열어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최종 합의했다. 회동이 끝난 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합의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17일 국회에서 양당 원내대표·수석부대표가 참석하는 '4인 회동'을 열어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최종 합의했다. 회동이 끝난 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기춘 민주통합당 원내대표가 합의문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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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출범 21일 만인 지난 17일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정부조직 개편안에 합의했다. 새누리당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제출한지 47일 만이다. 겉모습만 놓고 보면 민주통합당이 새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은 것은 민주통합당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다. 여타 사안도 있겠지만 박근혜 정부의 조직개편안은 방송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위험성을 알고도 조직 개편에 손을 들어준다면 오히려 그것이 무책임한 일이다. 국민을 향해서 협박하는 대통령에 굴하지 않고 방송 공공성을 사수하려던 민주통합당은 분명 제 책임을 다한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오히려 방송 공공성 보호를 위한 별 다른 성과 없이 손을 들어 버린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정부조직법 왜 문제였나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대표 발의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따르면 '국가 성장동력의 양대 핵심 축인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을 창조경제의 원천으로 활용하여 경제부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정부 조직체계를 재설계'하는 것이 정부 조직 개편 목적이라고 하였다. 즉 방송통신을 '신 성장 산업'의 핵심으로 보고 책임 있는 장관이 방송통신 산업 성장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이 언론 관련 단체나 학계에는 독임제 장관이 방송을 강력히 장악하겠다는 뜻으로 들리는 것은 왜일까? '신산업성장동력'이라는 이름으로 방송 산업화를 추진했던 이명박 정권의 미디어 관련법 날치기 통과, 무리한 종편 도입, 종편의 경제적 실패와 대선 기간 보여 준 정치적 성공(?)의 악몽 때문만은 아니다. 합의제임에도 독임제처럼 운용했던 최시중의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보다 독임제 장관을 둔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에게 방송을 맡기는 것이 더 위험한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방송은 산업 이전에 언론이다. 보도만이 언론 행위가 아니다. 국민의 의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방송의 모든 생산물이 사실상 언론 행위다. 그래서 민주국가에서 독임제 장관이 방송을 관장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산업 성장과 효율성을 앞세워 지상파, 종편, 보도전문 채널의 인허가권을 제외한 여타 방송 인허가권과 방송 정책 전반을 미래부에 넘기려 하였다. 조직개편안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방통위의 주 업무를 방송과 통신에 관한 규제와 이용자 보호로 축소시키고, 합의제 행정위원회 수준으로 격하시키며 예산 편성 권한도 없앤다. 행정위원회이니 법령의 제·개정, 폐지에 관한 권한도 규칙 정도의 제·개정, 폐지 권한으로 축소한다. 방송프로그램, 방송광고 프로그램의 운용·편성·판매·진흥에 관한 업무도 삭제한다. 방송광고정책, 방송통신기금, 방송프로그램 유통의 공정거래 그리고 방송통신 기술 정책 수립도 모조리 미래부로 이관시킨다.'

이에 대해 민주통합당은 이런 조직개편은 '방송법'과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의 목적인 방송의 자유와 독립, 방송의 공적책임, 민주적 여론형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크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방통위는 방송정책과 통신규제를 담당하고 미래부는 순수한 산업진흥과 미래성장엔진 발굴에 주력할 수 있도록 통신진흥 정책을 관장하도록 하자고 했다. 동시에 방통위가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 빠지지 않도록 공영방송의 이사 추천, 사장 선임 등과 관련하여 특별다수제를 도입할 것을 제안하였다.

우리는 과거 방통위가 합의제 기구임에도 합의제 정신을 포기하고 정부 여당 추천 방통위원이 다수인 점을 이용해 모든 것을 일방통행 했던 것을 경험했다. 특별다수제는 이런 사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학계에서 제시한 대안이다. 특별다수제로 일방통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정파적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무리하게 의결을 강행하는 대신 합리성에 근거한 설득과 대화로 심의 의결할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 처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정부조직개편안 처리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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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고집', 그냥 넘어갈 문제였나

하지만 여당에게 '원안 고수' 이상의 여지를 주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고집, 대통령의 위압에 눌려 민의를 반영하는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새누리당 지도부는 정부조직법 개편 협상을 장기화시켰다. 혹자는 말한다. 새로 출범하는 정부니 믿고 따라주고 혹 문제가 있으면 그때 재편하면 되지 않느냐고. 5년 마다 출범하는 새정부가 조직 개편하는 것도 많은 혼란을 감수하고 이루어지는 일인데 임기 중 조직 개편이 쉬운 일일까? 그것도 소수 야당이 주도해서?

또 이번 정부조직법 개편의 기본 관점은 산업화 논리로 방송시장을 확대재생산하겠다는 것인데 미래부의 정책으로 사적 자본이 유입된 후 공공성이 붕괴됐단 이유로 자본의 퇴출을 결정하는 것이 쉬운 일일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어울린다. 따라서 첫발부터가 매우 중요하다.

사실 이번 방통위와 미래부 관련 정부조직법 개편은 방송에 대한 올바른 인식 아래 방송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어야 했다. 방송은 정신적 내용을 생산하는 것이며, 정신적 생산물은 창의성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정부의 일방적이고 강압적 정책 또는 산업의 단기 승부를 요구하는 환경에서는 성장할 수 없다.

또 방송은 민주주의적 소통 매체이기도 하다. 다양한 정신적 가치가 소통해야 하며 이는 최대한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환경을 요구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방송 관련 정책 기구를 합의제 위원회로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방송 정책은 또 경쟁력 높은 생산물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는 있지만 경쟁력이 낮은 프로그램도 유통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산업 논리만을 앞세우는 부처가 방송 정책권을 가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현 정부는 프로그램을 실어 나르는 수단 즉 플랫폼을 기준으로 지상파, 케이블 TV, IPTV 등으로 구분하거나 시청자의 시청 비용 부담에 따라 유·무료 시장을 나누어 지상파와 종편 등 일부 방송의 인허가권을 제외한 방송정책권을 미래부로 넘기고자 했다. 협상 장기화의 실질적인 원인인 것이다.

그런데 정부 출범을 막고 있다는 새누리당의 공격과 일부 언론의 왜곡된 보도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민주통합당 지도부는 사실상 거의 정부 원안대로 합의를 해주고 말았다. 방송 공공성 강화는커녕 '공공성 지키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합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방통위는 합의제 중앙행정기관으로서 법적 지위를 가지고 소관 업무에 관한 법령 제·개정권(법률제출권과 행정입법권)을 갖는다. 방송통신기금은 미래부와 방통위가 공동 관장한다. IPTV와 종합유선방송(SO), 위성TV 등 뉴미디어 관련 사항은 미래부로 이관한다. 단 IPTV의 직접사용채널과 보도채널을 운영 가능하도록 하는 법 개정은 19대 국회에서는 하지 않고, SO, 위성TV 의 허가·재허가 그리고 이와 관련한 법령의 재·개정은 방통위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한다.

방송용 주파수는 방통위가 관리하고, 주파수 조정은 국무총리 산하에 주파수심의위원회를 통해 결정한다. 선거 관련 토론·보도의 공정성 확보 및 SO 채널배정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관련법은 소관 상임위에서 논의해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 SO와 PP의 공정한 시장점유를 위한 장치 마련,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방송의 보도·제작·편성의 자율성 보장 등의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3월 임시국회에서 여야 동수의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은 민주통합당이 맡으며, 그 특위의 활동시한은 6개월로 한다. 단, 특위 활동 결과 법률 제·개정 사항이 있을 경우 특위활동 종료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소관 상임위에서 법제화하기로 한다.'

얼핏 보기에 애초 일방통행식 정부 제안에 비해 민주통합당이 많은 것을 양보 받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방송 공공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심은 비껴가거나 미루어 놨을 뿐이다.

이번 합의는 우려한 대로 뉴미디어, 유료 방송 시장의 정책권은 모조리 미래부로 넘어 가고 말았다. 방송 시장이 산업적 논리가 압도하는 시장으로 변모하고 말 것이다. 과연 유무료 시장이 독립적일 수 있을까? 다른 부처가 독자적으로 정책을 시행해도 혼란이나 갈등이 없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여야의 정부조직법 협상이 타결된 후 열린 첫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여야의 정부조직법 협상이 타결된 후 열린 첫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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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에게는 지상파나 케이블 TV나 IPTV나 그냥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송 그 자체일 뿐이다. 따라서 시청자가 받는 영향은 동일하고, 지상파로부터 IPTV에 이르기까지 플랫폼이 다양하더라도 모두 동일 시장 내의 경쟁자에 불과하다. 방송시장은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보면 단일하고, 한 플랫폼에 대한 정책이 다른 플랫폼의 시장에 직접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상호적인 관계에 있다. 바로 방송시장의 단일성과 상호영향성이다. 방송정책을 분리할 수 없는 까닭이다.

결국 미래부가 주도하는 소위 방송 산업화 논리에 공공성을 담보해야 하는 지상파의 운명이 좌우될 처지에 놓였다. 민주통합당은 보도를 중심으로 공정성을 확보하면 된다는 협소한 시각에 빠진 우를 범하고 말았다.

그나마 공정성, 공공성을 위해 차후 논의를 열어 놓은 것이 성과라면 성과일 텐데 이게 과연 가능할까? 성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 굴뚝같지만 우려가 더 큰 것이 사실이다. 합의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공정성을 강화할 수 있는 안이 4월과 10월경에는 가시화될 것이지만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새누리당의 진정성과 민주통합당의 정치력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미발위)를 경험한 이상 이 논의 구조가 그리 미덥지 않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의 태업과 왜곡으로 미발위는 미디어 관련법 날치기 통과로 귀결되었다. 지금 문제의 종편이 탄생한 계기다. 이명박 정부에게 1차적 책임이 있지만 제대로 막지 못한 민주당에게도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다. 이번 정부조직법 개편에서도 방송 산업화가 가져올 폐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정치력의 한계를 보인 민주통합당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SO, 위성 TV 허가·재허가에 대한 방통위의 동의권은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아마도 방통위가 잘 알 것이다. 시민사회단체가 종편 사업자 선정에 많은 의혹을 제기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왜냐면 방통위가 주도한 심사과정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래부가 주도한 심사에 참여하지 못한 방통위가 심사결과표를 받는다고 제대로 동의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공정한 공영방송, 어떻게 가능할까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플랫폼 사업자들이 부담스러워 하고 채널 편성에서 뺐으면 하는 공익채널이 있다. 채널을 사용하고 싶어 하는 사업자들이 적던 시절에는 별 문제가 아니었지만 이제 수익이 발생하는 채널을 갖고 싶은 플랫폼 사업자로서는 이들이 계륵이다. 그런데 이 부분도 미래부 소관으로 넘어 갔다. 이번 합의에서 공공, 공익, 공정을 위해 확실하게 얻은 성과가 무엇일까?

이제 특단의 계기가 없는 한 정부조직법은 절차에 따라 합의대로 진행될 것이다. 부족한 합의안이나마 그것이 실효성이 있으려면 반드시 확보했어야 할 전제조건이 있었다. 방통위의 개혁안이다. 사실 독임제 장관보다 합의제 행정기구가 더 민주적일 잠재가능성이 있어 그렇지 현재 방통위를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번 합의를 그대로 수용한다 하더라도 방통위가 합의제 정신에 따라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장치들을 만들어야 한다. 국회 중심의 방통위원 선임 방식을 통해 대통령의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 공영방송 이사·사장 선임 등을 포함한 주요 결정사항에 대한 방통위의 특별다수제를 도입해 일방통행을 막아야 한다. 방통위 상임위원들이 실질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실무 지원 체계를 제공해야 한다. 즉 방통위를 명실상부한 합의제 행정기구로 만들어야 했다.

이번 정부조직법 개편 결과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미래부가 주관하는 산업 정책의 최대 수혜자로서 플랫폼을 중심으로 방송 사업을 장악할 방송통신 거대 공룡 기업들이다. 이미 종합유선방송의 강자인 CJ 그룹, IPTV의 KT, 방송 플랫폼 시장 진출을 노리는 단말기 사업자 삼성전자 등등이 방송을 장악하면 시장에서 지상파의 공공성은 보호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양질의 프로그램으로 방송의 질적 향상을 선도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공영방송이 아니라 소수의 약자를 위해 최소 품질의 기본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취약 방송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4월 임시국회와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 운영 과정에 방통위 개혁, 방통위 동의권의 실질화, 거대 공룡 기업의 플랫폼 시장 장악 저지, 공영방송을 중심으로 지상파 보호 장치 등과 관련한 제대로 된 논의와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당의 정치력이 발휘될 필요가 있다. 더불어 학계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진지한 고민과 대안 제시도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글을 쓴 김서중 기자는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입니다.



태그:#방송통신, #미래창조과학부, #방통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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