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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가격이 15억 원인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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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월세 대출 상품이 출시됐다. 월세 세입자를 대상으로 서울보증보험의 보증을 통해 최대 5000만 원까지 월세 비용을 대출해준다고 한다. 월세를 못 내서 쫓겨나는 가정들을 생각하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집을 사는 것도 아니고 월세 비용을 내기 위해서 대출을 이용해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을 생각하면 마냥 반길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이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앞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한다.

지금의 가계는 월세가 아니더라도 이미 일상생활 속에서 신용을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다. 생활비는 신용카드와 마이너스통장, 비상금은 약관대출, 집 살 때는 주택담보대출, 학교 갈 땐 학자금 대출, 차 살 때는 할부금융을 이용한다. 주거비, 식비, 교통비, 통신비, 교육비 등 가계부에 기록되는 각종 계정 항목 중에 신용과 연결되지 않는 항목이 거의 없다. 2000년대 이후 신용 사용이 확산되면서 일상생활의 금융화가 진행된 결과다. 생활의 각 영역이 모두 대출과 연결된 결과 가계부채 규모는 이미 1000조 원을 넘어섰다.

IMF 이후 내수 활성화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소득공제와 영수증 복권까지 해주면서 신용카드 사용을 장려했다. 이후 경기가 살아나면서 주택가격 상승기에는 모기지론을 출시해서 돈이 없는 사람도 집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카드사태라는 아픔을 한 차례 겪었고 최근에는 하우스푸어와 경매가 급증하고 있으며 가계부채 위험에 대한 경고는 계속 되고 있다.

결국 가계부채 1000조 원의 현실은 금융당국이 지속적으로 대출을 확대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시 말해 신용카드 장려책을 펼치지 않았으면, 정부에서 나서서 모기지론을 확대하지 않았으면, 적절히 금융회사들의 대출을 규제해왔다면, 우리는 가계부채 때문에 결제일을 두려워하거나 연체되서 채권추심에 시달리다 월급통장까지 압류당하는 일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일상의 금융화로 많은 가정이 가계부채의 함정에 빠진 것을 생각하면 당장의 월세를 대출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역시 함정일 수밖에 없다. 월세도 내지 못하는 사람이 5000만 원의 대출을 일으킨다면 연체 없이 잘 상환할 수 있을까? 더구나 좀 더 저렴한 집으로 가려던 사람마저 월세 대출이 된다는 이유로 더 비싼 월세를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게 될 확률도 크다. 저렴한 금리로 돈을 빌려준다는 이유로 집을 샀다가 하우스푸어가 대량으로 양산된 것처럼 전·월세 대출의 증가는 렌트푸어를 대량으로 양산할 소지가 크다.

복지의 부족을 대출로 해결하면 가격은 계속 오른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복지로 풀어야 할 문제를 자꾸 대출로 풀고 있다는 점이다. 학자금이 비싸다고 하니 정부는 학자금 대출을 늘려준다. 서민들이 어렵다고 하면 미소금융이나 햇살론 등의 서민들을 위한 대출상품을 내놓는다. 부동산 가격이 비싸다고 하면 주택담보대출을 늘려준다. 전세 가격이 한창 오를 때는 전세대출을 늘리더니 이제는 급기야 월세까지 대출로 내라고 한다.

금감원은 보도자료에서 월세대출 상품 개발 배경을 임대차계약 유형이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되고 있어 월세자금이 부족한 서민층이 보다 쉽고 싸게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과 전·월세 가격의 상승과 월세 가구의 증가 원인을 해결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국토해양부의 주거실태 조사 자료에 따르면 임차가구들의 임대료 부담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렌트푸어도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소득 대비 임대료가 30%를 초과하는 렌트푸어는 2010년 190만 가구에서 2012년 238만3520가구로 48만 가구가 증가했다. 이에 따라 가정의 임대료 부담은 높아져 전국의 중위 전세가격은 2010년 6000만 원이었으나 2012년 9500만 원으로 불과 2년 사이에 50% 이상 급등했다. 그 결과 2010년 말에 14조 원이었던 전세자금대출은 2012년 5월까지 22조5000억 원으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급등하는 전·월세 가격을 그대로 둔 채 전·월세 대출만 늘리면 전·월세 가격은 계속해서 오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시장의 수요는 결국 사람들이 가진 구매력 수준에서 정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돈이 없으면 수요가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무작정 오를 수는 없다. 대출이 늘어나면 결국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전세자금에 대출로 받은 돈이 더해지기 때문에 대출의 증가는 전세에 대한 구매력의 증가로 이어지고 이것이 전세가 상승의 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결국 정부의 대출 위주의 정책이 주택가격도 올리고 전·월세 가격까지도 올려놓고 있는 것이다.

소득은 한정되어 있는데 가격이 오를 때마다 문제 해결을 대출로 하다보니 가정의 빚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빚이 늘어날수록 대출상환비용으로 인해 가처분 소득은 줄어든다. 돈 써야 할 곳은 정해져 있는데 가처분 소득이 줄어드니 부족한 돈은 다시 빚을 낼 수밖에 없다. 빚이 계속 늘어날수록 상환 가능성은 점점 줄어든다.

많은 가정의 소득이 과거에 비해서 불안정한 것을 감안하면 대출 리스크는 과거에 비해서 훨씬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부족한 자금을 대출해줘서 당장의 문제는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출확대 정책은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가격 급등 시기에 대출이 아니라 적절한 규제와 복지, 그리고 소득확대 정책이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부동산 중개업소 앞 광고 전단을 바로보고 있는 시민
 부동산 중개업소 앞 광고 전단을 바로보고 있는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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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선진국에서는 임대료 상한제나 인상률 상한제, 공정임대료 제도 등을 통해서 임대료를 규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은 공공임대주택은 임대료 상한제를 적용하고 민간주택에는 물가지수 상승률과 연동하여 인상률 상한제를 적용하고 있다. 영국은 임대료 조정관이나 임대료 조정위원회가 등록된 임차권에 대하여 소매물가지수의 상승률을 기초로 결정한 공정임대료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는 임대료를 인상할 경우 임대차 계약에서 임대료의 증가율이 전국 건축비지수 상승률의 80%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임대차 계약기간에 있어서도 임차인이 임대차 종료의 의사표시를 하지 않는 한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계약의 종료를 세입자가 결정하기 때문에 계약 종료에 대한 의사표시를 하지 않으면 계약은 자동갱신되도록 하고 있다. 물론 임대인에게 방어방법을 주기 위해서 갱신거절권을 주고 있는데, 이때는 정당한 갱신거절의 사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외국의 경우 전세가 없고 월세만 있다고 하는데 그만큼 월세 임차인에 대한 안정장치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경우 임대인의 갱신거절 사유에 아무런 제한이 없고 인상률에 대한 제한이 없어 임대인의 일방적인 의사표시만으로 임대차 계약이 종료되고 임차인은 아무런 이의제기도 할 수 없어 임차인 보호에 미흡하다. '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고자 했지만 임대료 규제가 도입되면 임대주택의 공급이 감소되고 주택의 유지보수수준을 저해시킨다는 이유로 2011년부터 국회에 계류 중이다. 국회에서 '안 되는 이유'들을 찾는 사이 임대료는 계속 급등하고 있고 주거의 질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주거복지의 일환인 임대주택 보급율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한참 뒤처진다. 2010년 기준으로 전체임대주택 수는 139만 호로 전체 주택의 약 8% 정도이다. 공공임대주택은 85만 호로 전체주택의 5%에도 못 미친다. 자가보유율이 60% 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결국 전체 가구의 30% 이상이 지속적으로 전월세난에 시달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특히 소득 하위 20% 가구(약 340만 가구)의 평균 소득이 120만 원인 것을 감안하면 이들은 민간시장에서 지금의 주거비용을 감당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유럽 국가 대부분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전체 주택의 약 20% 수준이다. 유럽의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 영국(2006년) 17.9% ▲ 독일(2000년) 20% ▲ 프랑스(2005년) 28.6% ▲ 스웨덴(2003년) 28.8% 등으로 우리나라보다도 한참 앞서 있다. 공공임대주택이 많이 보급되어 있으니 임차인 입장에서는 민간주택과 공공주택을 비교해서 선택할 수 있다. 또한 공공주택 보급율이 높으니 주택 시장에서 공공주택의 영향력이 커서 이를 통해 부동산 전체의 가격 안정을 유도할 수 있다.

전·월세 대출이 아닌 주거복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렌트푸어 대책마저도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를 통해 해결한다고 한다.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판단은 뒤로하더라도 이 역시 임대인이 임차인을 위해서 대출을 받아줘야 하는 제도이다. 임차인 보호 대책을 세우거나 임대주택을 늘리지 않고 대출만 계속 늘리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서도 드러났듯이 정부는 대출을 늘리고 세금을 감면해줘서라도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 시켜놓겠다고 한다. 그리고 정부가 이야기하는 부동산 시장 정상화는 부동산 가격의 하락을 막는 것이다.

사람들이 돈이 없는데 내수를 살린다는 이유로 신용카드를 무분별하게 발급한 결과 카드대란이 생겼다. 대학등록금이 올라갈 때 대학등록금 규제를 하지 않고 대학생들에게 학자금 대출을 늘린 결과 많은 학생들이 취업전선에 뛰어들기도 전부터 신용불량 상태가 됐으며, 주택가격이 계속 오를 때 주택 가격 규제를 하지 않고 대출을 늘린 결과가 지금의 하우스푸어로 나타나고 있다.

월세도 내지 못해 대출을 이용해야 하는 사람들이 월세 대출을 받아서 정상적으로 상환할 확률은 높지 않다. 갚지도 못할 것을 친절하게 가져다 쓰라고 해놓고 나중에 갚지 못하면 못 갚을 걸 왜 빌려갔냐고 타박한다. 누구도 렌트푸어와 신용불량자를 양산하는 대출의 원인제공자나 대출을 해준 금융회사를 탓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전·월세 가격이 급등한 것을 가계에 대출을 늘려주는 것은 것은 사회적 비용을 가계에 전가하는 것이다. 비용 전가로 인해 가계의 소득과 자산이 금융회사와 부동산임대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흘러들어가는 부의 역재분배가 일어나 양극화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전·월세 가격 급등은 한 개인이 아닌 사회적인 문제이며 이는 사회적인 방식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인심 쓰듯이 약간 낮은 금리로 대출해주면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벌어서 갚아야 할 대출, 안 해줘도 좋다. 임대차보호법의 개정과 임대주택의 확대부터 시행되어야 한다. 대출 없이도 안정된 주거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 권리다.


태그:#월세대출, #전세자금대출, #주거복지, #임대주택, #목돈 안 드는 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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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돈에 관해 올바른 시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모두가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행복을 소비하는 사람이 되는 그날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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