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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이 이야기는 지난 24일 오후 7시 30분 압구정 현대백화점 공영주차장에서 시작된다. 서울과 경기도권에 사는 여러 사람들이 모인다. 그리고 밀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탄다. 어색한 분위기와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버스 안은 고요하다. 겨우 인원을 확인하고 버스는 밀양으로 달려간다. 서로가 서로를 안다고 해봐야 함께 온 친구들 또는 동료들, 나처럼 혼자서 온 사람들도 몇 명 보인다. 그리고 어색함을 달래고자 달리는 버스 안에서 간단한 자기소개와 참여 작가가 준비해온 노래가 한 곡 흘러나온다. 이렇게 모인 우리들은 특별한 목적성을 갖고 있지는 못했다. 다만 주말을 이용해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될 수 있진 않을까 해서 무작정 모인 사람들이다.

연대, 연대란 무엇인가. 우선 사전적인 의미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적여 본다.

①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함께 책임을 짐. ②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표준국어대사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위키백과를 살펴봤다.

'연대 또는 사회적 연대는 사회적 관계의 일종으로 사회나 집단에서 보이는 통합 또는 통합의 종류나 정도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연대는 사회주의적 이념에서 등장한다.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기층 민중 간의 타협을 유도하거나 이들의 단결을 통해 힘을 얻기 위한 관계.'

나는 이 정의에서 마지막 부분, '서로 다른 기층 민중 간의 타협을 유도하거나 이들의 단결을 통해 힘을 얻기 위한 관계'라는 대목에 집중한다. 우리와 그들과의 관계는 정확히 '기층 민중'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떨어져 있지만 분리돼 있다고만 할 수 없는 관계, 민주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묶인 그런 관계.

밀양송전탑을 두고 8년 동안 지속된 이 싸움은 처음부터 불균형한 싸움이다. 강정이 그랬고, 역사 속의 모든 사건이 그랬다. 왜 똑같은 국민임에도 국민의 편에 설 수 없나. 정부나 커다란 회사는 그들의 정책을 밀고 나가려면 어떻게든 자본과 인력을 투입해 밀어붙일 수 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무슨 힘이 있는가, 단지 그들의 몸뚱이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강제진행을 막는 것뿐. 자신들이 평생을 살아온 터전, 고향 땅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같은 국민임에도 편협한 시각으로 그들을 단순히 '반정부주의자'로 몰아가는 것은 가장 불행한 시각이다. 그들은 오로지 60년 이상을 살아온 자신의 집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며,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세상과, 사람보다 자본을 항상 우선시해 돌아가는 세상사에 맞서 싸우는 것뿐이다. 어떻게 아주 평범한 노인들이 갑자기 섭씨 30도가 넘는 더운 날씨에도 젊은 용역들과 몸싸움이라도 피하지 않는 불굴의 투쟁자가 됐을까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새벽 3시경 주민들이 농성하고 있는 108, 109구간으로 이동중에 해가 밝아오고 있다.
▲ 밀양에서 새벽 산행 새벽 3시경 주민들이 농성하고 있는 108, 109구간으로 이동중에 해가 밝아오고 있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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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희망버스는 6시간을 달려 밀양시에 있는 작은 마을, 보란마을과 보라마을에 도착했다. 그곳은 우리들이 아주 잠시 머물 곳이다. 우리는 짐을 잠시 풀고 버스 안에서 쌓인 피곤을 풀었다. 버스에 탄 이들 모두 직장인이기에 피곤한 몸을 그대로 눕혔더니 곧바로 잠이 든다.

그리고 25일 오전 3시, 우리는 짐을 챙기고 산행을 시작했다.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다리가 풀린다. 얼굴이 붉다. 험한 산길을 위태롭게 올라 온 지 1시간가량 지났을 무렵, 저 멀리 해가 산맥 넘어로 밝아온다. 그리고 우리는 해당지역 송전탑 108구간과 109구간에 도착했다.

만남

첫 만남은 어색함도 두려움도 없는 반가움의 연속이었다. '어디서 왔냐'는 농성 할머니들의 물음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모두 나이가 지긋이 들어 보이는 할머니들, 여든이 다 돼 보이는 할머니들도 보인다. 모두가 이토록 높은 산을, 젊은 우리들도 겨우겨우 오른 산을 매일같이 오르고 계신 건가? 추운 산 속에서 포크레인 밑에 돗자리를 깔고 잠을 청하고 계신 건가? 이런 생각을 하면 나의 그동안의 편안함에 순간 죄인이 돼 버린다. 나는 이런 이들의 평온을 깨트리며 편안하게 수도권에서 아무 생각 없이 전기를 쓰고 있었던가.

농성중인 주민들의 굳어진 어깨를 풀어주고 있다.
▲ 안마 농성중인 주민들의 굳어진 어깨를 풀어주고 있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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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생하고 있는 할머니들의 돗자리로 들어가 그들의 피곤한 어깨와 무릎·발·손을 풀어준다.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갖고 온 빵과 바나나를 나눠 먹는다. 그런 이들의 모습을 보면 설날이나 추석이면 볼 수 있던 손자·손녀와 할아버지·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할머니들이 불러주신 농성가에 대한 답가로 작가가 직접 편곡한 '밀양 아리랑'을 불러주고 있다.
▲ 밀양 아리랑 할머니들이 불러주신 농성가에 대한 답가로 작가가 직접 편곡한 '밀양 아리랑'을 불러주고 있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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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줄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만큼은 핏줄보다 더 진한 연대인 것이다. 밀양 할머니는 우리들이 이곳까지 온 것에 화답하기 위해 농성장에서 부르는 노래를 불러준다. 다른 날은 모르겠지만 그날만큼은 할머니들의 목소리에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 그에 대한 답가로 우리는 직접 노랫말을 개사한 <밀양 아리랑>을 불렀다. 모두들 박수를 치면서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 무렵 멀리 노란색 안전복을 입은 한전 직원들이 모두 올라와 있었다. 그렇게 노래를 부르고 우리는 얼른 그곳에서 나와야만 했다. 더 이상 그곳에 있으면 갈등을 부추길 뿐, 긴장감만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전 직원들의 말을 듣고 우리는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경계 지역 밖으로 나간다.

헤어짐

헤어질 때가 되어 주민들과 포옹하고 있다
▲ 포옹 헤어질 때가 되어 주민들과 포옹하고 있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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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만남은 너무나 짧았다. 함께할 수 없음에 모두들 안타까워 할 뿐이다. 멀리 경계를 쳐둔 지역 바깥에서 뙤약볕에 우산과 모자로 버티고 있는 할머니들을 봐야만 했다. 그날만큼은 전경들이 없었다. 전경들의 방패는 주인 없이 구석에 겹겹이 쌓여 있을 뿐이었다. 한전 직원들 또한 할머니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그들 사이에 쌓여왔던 감정들을 조금씩 풀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들은 주민들이 대치하고 있는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기도 했지만, 절대로 그들을 단순히 욕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님을 그들이 알아줬으면 한다. 우리들은 단지 시대에 잊혀져가는 가치를 부여잡기 위해서 이곳에 왔을 뿐이고, 주민들과 대치하고 있는 한전 직원들과 용역·전경들 또한 이 시대의 희생양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을 알아 달라.

만남이 있으면 곧 헤어짐이 있다고 했던가. 각자가 돌아가야 할 시간은 금방 찾아왔다. 우리는 할머니들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다시 공사 지역으로 들어선다. 우리들의 움직임이 몇몇 한전 직원들의 날카롭게 선 신경을 건드렸겠지만, 그들은 묵묵히 참아줬다.

헤어질 때가 되어 주민들과 포옹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
▲ 포옹 헤어질 때가 되어 주민들과 포옹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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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크레인 밑에서 묵묵히 앉아 계시던 할머니, 우리들은 이제 돌아간다고 하니 와줘서 너무 고맙다고 한다. 포옹을 하자 눈가에 눈물을 훔치신다.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8년 동안의 기나긴 싸움 속에서 이처럼 외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준 적이 없었던 것일까. 그들의 눈물에 우리들 또한 눈물을 훔친다.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그곳에 계신 할머니들과 한마디의 말도 나누지 못했던 나, 그들의 만남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셔터만을 누르고 있던 나도 울컥 눈물이 올라온다. 별일 아닌데 왜 눈물이 날까.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기억하기 어렵다. 그것은 그 순간에 함께 있지 못했다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던 눈물이었기 때문에.

탈핵 희망버스 이야기를 마치며

8년 동안 이어진 주민들과 한전의 싸움 때문에 한 할아버지는 분신자살을 시도하며 생을 달리하셨다. 그리고 16명의 할머니·할아버지가 병원에 후송됐다. 이래야만 하는 이유가 겨우 돈 몇 푼 벌기 위함이라면 큰일이다. 정책상으로 반드시 이곳에 송전탑이 세워졌어야 한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살펴봐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겨우 보상금 몇 푼 쥐어주면서 주변 지역 농사는 물론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만들려고 했던가. 또한 송전탑 강행을 위해서 이웃 마을과 금전적으로 이간질함 또한 이해할 수 없는 행위다. 제2의 강정마을을 만들려고 했던 일들이다. 그들을 단순한 희생양으로 취급했다는 것이 명백하기에 그들은 그렇게 화를 내고 반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민들이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것도 아니지 않던가?

그에 대한 대안으로 송전 지하매설도 이야기되고 있다. 이러한 대안이 정말 가능한지 아닌지는 객관적인 전문가협의체를 구성해 판단해야 할 문제다. 그때까지 더 이상의 공사 강행도 있어서는 안될 일이며, 돈 몇 푼 아끼려는 손익 계산을 해서도 안될 일이다.

지금도 이 지역은 한전과 주민들이 대치 중이며 희망버스가 가있던 때보다 상황은 더 악화됐다고 한다. 전문가 협의체를 얼른 마련해 한전이 주민들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길 바랄 뿐이다.


태그:#밀양 송전탑, #한국전력공사, #밀양, #송전탑, #탈핵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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