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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에서 맞이한 해돋이, 어둠을 불살라 먹고 여명의 아침이 시작되다.
▲ 해돋이 두물머리에서 맞이한 해돋이, 어둠을 불살라 먹고 여명의 아침이 시작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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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아니더라도 여명의 아침을 맞이하고 싶었다. 4대강 사업과 연계되어 두물머리주변은 옛 정취가 사라져 버렸다. 얼마 전 옛 정취를 추억하며 찾았다가 개발로 변해버린 두물머리를 보고는 다시는 찾지 않겠다 했는데, 오늘 아침에 그곳에 섯다.

바다가 너무 먼 탓이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강이기 때문이다.

두물머리의 어부, 허가를 받은 이들만 작업을 할 수 있다.
▲ 어부 두물머리의 어부, 허가를 받은 이들만 작업을 할 수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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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서서 오늘이 며칠인가 생각해 보니 6월 10일이다. 대학 4학년이었던 1987년, 그해 6월의 대지도 뜨거웠다. 그러나 대지의 뜨거운 열기보다도 더 뜨거운 것이 있었다. 그것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었다.

그때는 이렇게 강에 서는 것도 사치였다. 그것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었지만, 민주주의를 쟁취하겠다는 의지가 가장 강력하게 작동하던 시절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변절자도 생겼고, 결국에는 미완의 혁명이었지만 6월 항쟁은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강물위에 아침햇살이 물들고, 강물엔 사연이 담긴 것만 같은 페트병이 하나 떠있다.
▲ 빛과 물결 강물위에 아침햇살이 물들고, 강물엔 사연이 담긴 것만 같은 페트병이 하나 떠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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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저 페트병 속에 편지가 들어있을지도 모르겠다. 그해 등사기로 민 유인물처럼 말이다. 저마다 그 해에는 투사가 아닌 사람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권력의 명령을 따르는 처지에 있는 이들도 거리로 뛰쳐나온 이들을 암묵적으로 지지했으며, 몇몇 못난 이들만이 명령보다 더 독하게 자기의 임무를 담당할 뿐이었다.

정체모를 백골단이 제일 무서웠다. 벗들의 목숨을 앗아간 최루탄과 지랄탄도 무서웠다. 온 몸으로 외치건만, 이 역사가 요지부동할까 무서웠다. 그렇게 이어지던 6월 하순, 노태우가 6월 29일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일 것을 선언했다. 위장이라고도 했지만, 그렇게 6월의 열기는 6·29 선언으로 시들해져버렸다.

물결에 부서지는 빛
▲ 빛과 물결 물결에 부서지는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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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더 다그쳤어야하는데 하는 후회는 무의미하다. 여전히 학살의 주범들과 후손들은 이 땅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으며, 거의 범죄집단의 수괴와 같은 이들이 뻔뻔스럽게 이 나라를 쥐락펴락했다. 그리하여도 국민들은 무력하게도 그들의 속임수에 넘어가 자기들끼리 분열의 분열을 거듭했다.

종북, 좌빨... 이런 말들이 성행하고 진짜로 그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몰아붙인다. 실체도 없는 그런 말들을 내뱉어 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위협적인 세력들은 급성장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이지만, 이 땅에 괴물들이 등장했다. 남북한의 갈등보다 남한 내의 이념갈등은 앞으로 우리 사회의 근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각자, 지고의 선이라고 굳게 믿고 있으므로.

아침을 맞이하는 거미와 그를 붙잡은 이슬
▲ 거미와 이슬 아침을 맞이하는 거미와 그를 붙잡은 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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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로 옛 정취를 다 잃어버린 두물머리에서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가? 6월 10일 이기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의 현실이 그때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묻어버리자. 마음 속 깊이 묻고 살자. 청년의 시절, 부모 세대가 6·25를 들먹이며 빨갱이 어쩌구 할 때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가?

이제 1987년의 의미가 퇴색된 마당에, 아니, 그 정신이 이어지지 못하고 계승되지 못한 마당에 그냥 마음에 묻어두자. 이제 1980년 5월도,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 1987년도 그와 그리 먼 세월이 아니니 역시 먼 옛날의 이야기다.

쇠뜨기에 맺힌 이슬방울들이 아침햇살에 빛난다.
▲ 이슬 쇠뜨기에 맺힌 이슬방울들이 아침햇살에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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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빛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끝내 변절하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 어간에 우리와 이별한 사람들, 문익환, 김근태... 나에겐 그 정도가 빛나는 이들로 기억이 된다. 그때의 주역이었지만, 여전히 자신들은 6월 항쟁의 주역이라지만 대부분은 변절자로 기억이 된다. 오로지 그때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웠을 뿐이다.

오히려 두려워 시위대에 합류하지도 못하고 먼발치에서 함께했던 이들, 그들만이 어쩌면 그때의 순수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풀마다 이슬을 잔뜩 이고 아침을 맞이한다.
▲ 이슬 풀마다 이슬을 잔뜩 이고 아침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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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우러진 이슬, 그들의 빛남이 신비롭다.
▲ 이슬 빛과 어우러진 이슬, 그들의 빛남이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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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이 내렸다. 풀섶에 이슬이 충만하다. 그래, 빛나는 것이 어찌 저 이슬 뿐이겠는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도 누군들 알아주지 않고 봐주지 않아도 여전히 이슬보다 더 아름답게 빛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

변절자들만 바라보면서 마음을 다치고, 스스로 분노함으로 흔들리는 삶을 살아갈 것이 아니라 여전히 빛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 살았던 이들을 바라보면서 내 길을 가는 것이 나를 다독거리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아름다워서 짧은 그들의 삶
▲ 이슬 아름다워서 짧은 그들의 삶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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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똥풀이 이슬에 젖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애기똥풀 애기똥풀이 이슬에 젖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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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에 빛나는 것이 어디 이슬뿐이랴! 그보다도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을 터이다. 여전히, 순수한 열정과 명확한 통찰력으로 시대를 꿰뚫어보고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이 있어 아직도 이 세상은 이 정도라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런가?

모두가 다 썩어버리지도 않았다는 사실, 아침마다 이슬이 빛나고 있는 곳이 어딘가에는 있듯이,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어딘가에는 있다는 믿음까지 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 먼저 나부터 반듯하게 서자. 그럴때 이미 반듯하게 서서 이슬보다도 더 아름답게 빛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보일 것이다.

그들의 연대는 작은 이슬방울이 모여 물방울이 되고, 실개천이 되고 강물이 되어 바다가 되는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오늘 아침(6월 10일) 이른 아침에 두물머리에서 담은 사진들입니다.



태그:#두물머리, #이슬, #물결,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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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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