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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30일 오후, 평화박물관 스페이스99 앞에서 건물에 걸려 있는 걸개그림 '강정을 지켜내자'를 찍었다. 이 그림은 파견미술가 팀의 공동 작품이다.
▲ 스페이스99에 걸린 걸개 그림 2013년 6월 30일 오후, 평화박물관 스페이스99 앞에서 건물에 걸려 있는 걸개그림 '강정을 지켜내자'를 찍었다. 이 그림은 파견미술가 팀의 공동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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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안국역 1번 출구로 나와 조계사와 템플스테이가 있는 큰길로 쭉 걸어가다 보면 동양화물품을 파는 상가 사이로 작은 벽화골목이 나타난다. 벽화들이 풍기는 오라(aura)가 남다르다.

유신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벽화들을 지나면 구멍가게와 같은 전시공간이 나온다. 전시공간치고는 천장이 매우 낮다. 얼핏 답답하다 느낄 수도 있는 공간. 하지만 이 공간에 들어온다면 공간이 갖고 있는 답답함은 잊어버리고 전시내용에 온 마음과 정신이 사로잡혀 버린다. 이곳은 매번 크고 작은 논란의 전시를 해오고 있는 평화박물관이다(평화박물관은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사죄운동으로 출발했다, '고통·기억·연대'를 지향하며, 우리 사회에 평화감수성과 평화문화 확산을 위한 활동을 벌여 왔다).

2012년 11월 21일 오후 2시, '유신의 초상' 전시에서 홍성담 작가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 많은 인파가 몰렸다.
▲ 홍성담 작품 '골든타임-닥터 최인혁, 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경례를 하다' 2012년 11월 21일 오후 2시, '유신의 초상' 전시에서 홍성담 작가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 많은 인파가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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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지난 2012년 11월 전시 '유신의 초상'에서 박근혜(현 대통령)의 모습이 담긴 홍성담의 <골든타임 - 닥터 최인혁, 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경례를 하다>의 유채화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유신의 초상'이라는 당시 전시는 권종환·김성룡·박영균·선무·양은주·이윤엽·황세준·홍성담 작가가 유신 40년을 기념해 공동 기획한 전시다).

이 그림이 당시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 비방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법적인 문제로 번졌다. 하지만, "박근혜씨가 독재자의 딸이다 뭐다 하는 평가와 별도로 이상스러운 박 후보의 처녀성, 몰지각한 여성의 신비주의 가면을 벗겨내고 싶었다"는 홍성담의 작품의 의도에 따라 검찰은 홍 화백의 그림이 특정한 사실을 적시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안에 대한 의견을 표출한 것이기 때문에 공직선거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에서 '강정'을 만날 수 있다

'제주해전' 전시포스터
 '제주해전' 전시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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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이곳에서 '강정예술행동 아카이브전 - 제주해전(濟州海戰)'이라는 이름으로 강정에서 몸담고 예술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온 작가들의 작품 전시가 열리고 있다(전시는 7월 26일까지).

이번 전시의 기획자인 고길천 작가는 "아카이브전인 만큼 최대한 많은 작가들을 모으기 위해서 힘썼으나 숨어있는 많은 작가들을 찾아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전시가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강정의 문제는 한때 국민들 사이에서 가장 큰 관심사로 불타올랐지만, 지금은 많이 사그라진 상태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곳에서 해군기지 건설 반대를 외치며 싸우고 있는 평화활동가와 주민들, 예술가들에게 응원의 힘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이 무관심이라고 하지 않던가.

또한 아무리 먹고사는 문제가 우리들의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한들, 그것 때문에 삶의 기본적인 가치를 지키기 힘들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지속적으로 그들에게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인간됨을 지키기 위해 가장 마지막 전선에서 싸우며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진실된 사람들이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통해서 우리가 지킬 수 없는 한 가닥의 가치를 지켜갈 수 있다 고 얘기하고 싶다.

비장한 희망 그리고 평화

2013년 6월 30일 전시중인 평화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풍경.
▲ 평화박물관 골목길 현수막 2013년 6월 30일 전시중인 평화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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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전', 전시 제목부터 무척 비장하다. 이는 강정 앞바다에서 이뤄지는 예술가들의 활동들이 저항을 담고 있기 때문이며, 실제 그곳이 전쟁기지가 될 수 있다는 현실적인 두려움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전시장에는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넘어서 강정 일대에 설치했거나, 그렸거나, 만들었거나 하는 그 모든 것에 대한 사진 기록이 주되게 전시돼 있다. 고길천 작가가 7년여간 제주를 오가며 기록한 사진이 90% 가량을 이룬다. 그는 강정에 남긴 숱한 저항과 참여의 흔적들을 기록하면서 강정에서의 평화운동이 쉽게 꺼지지 않게끔 지켜냈다(고길천 작가는 지난 2011년 6월에도 강정마을회관에서 '동행Ⅱ' 전시를 기획해 작업들을 보여줬다).

전시는 골목에서부터 시작한다. 유신의 초상이 그려진 벽화 반대편으로 강정평화를 외치는 허름한 현수막들이 걸려있다. 이는 홍성담 작가와 그 외 활동가들이 함께 만들어 현장에 걸었던 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현수막과 벽화가 채워진 골목을 지나 전시장 안으로 들어오면 강정 앞바다의 명주빛 옥색깔과 구럼비 바위를 잠시나마 상상하게 된다. 두 개의 벽면은 사진아카이브 자료로 채워져 있고, 'ㄷ'자 모양의 테이블에는 그동안의 예술 활동들을 볼 수 있는 파일들이 펼쳐져 있다.

입구 정면 기둥에는 세 개의 비디오 단 채널이 돌아간다. 두 개의 채널에는 현장의 모습이 자막(영어·한글)과 함께 흘러나온다. 나머지 한 채널에서는 놈 촘스키(MIT 명예교수)의 인터뷰 영상이 나온다.

'관심'만 있으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전시회

'들풀' 작가의 인형들과 파견미술가 팀의 '구럼비의 신' 가면, 홍보람 작가의 구럼비 바위를 탁본한 작품이 걸려 있다.
▲ 구럼비의 신과 인형, 탁본, 그림 '들풀' 작가의 인형들과 파견미술가 팀의 '구럼비의 신' 가면, 홍보람 작가의 구럼비 바위를 탁본한 작품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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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오른편 공간에는 파견 미술가팀의 작품, '구럼비의 신'이 걸려 있다. 강정마을회관에도 전시됐던 작품이다. 작품 속에 큰 가면이 걸려 있는데 이는 '신생대의 얼굴, 구럼비의 큰 바위를 떠서 만들어진 것'으로 '우리가 상실한 신의 얼굴'이었다. 작품 설명에는 '푸른 하늘에 가 닿는 저 얼굴은 1만8000여 제주신의 어머니일 테다, 한민족의 세상을 창조한 여신 마고할망, 선문대할망의 얼굴이 저것'이라고 적혀있다. 그 주변으로는 '들풀'(작가의 호) 작가의 작은 인형(이는 작가가 강정 활동가들의 개성을 하나하나 살려 손수 제작한 작품들)이 있다. 또 홍보람 작가의 구럼비 바위를 탁본한 작품들이 부족한 공간을 가득 채워주고 있다.

작은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플래카드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의 응원의 글귀
▲ 강정에 설치돼 있던 플래카드 작은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플래카드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의 응원의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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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전시장 가장 구석에 위치한 공간에는 현장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과 응원이 담겨 있는 플래카드 등이 걸려 있다. 이 공간에서 현장을 찾은 이들의 응원 메시지를 읽어볼 수 있다.

나는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기자 준비와 작가 활동을 겸하고 있다. 이런 나의 짧은 경험과 시각으로 보자면 제도권에서 보이는 국내의 현대미술은 그것이 예술로서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지 맥락을 읽기가 굉장히 힘든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제주해전'은 그 맥락과 내용을 이해하는 데 별다른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의 예술 행동주의의 미학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강정을 보니 4·3이 떠오른다
강정을 이야기하면 4·3사건이 떠오른다. 왜일까. 4·3은 한국전쟁을 거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상싸움, 세계권력 싸움(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미국과 소련의 권력 싸움)에 휘말려 3만의 주민 학살을 낳았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두 사건은 공통점이 있다. 순박하게 살아온 제주도민들이 외부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했다는 점이 첫째요, 정치적 영향으로 소수가 피해받고 있다는 점이 둘째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령으로 간주해온 태평양 지역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가 분명히 있다"는 놈 촘스키 MIT 명예교수의 주장처럼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한국의 안보문제뿐만 아니라 범세계적 권력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반도와 그와 얽힌 지역 내에 군사적 긴장과 핵전쟁의 위험을 증가시킬 것이다. 평화 활동가들은 제주도가 세계 정치의 힘 싸움에 휩쓸릴 위험에 처해 있다고 주장한다.

외부의 권력과 힘 싸움으로 인해 한 마을의 평화는 깨졌다. 정치란 본래 인간다움, 더욱 살기 좋은 세상, 평화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데 반대로 이를 깨트리고 전쟁의 가능성을 낳고, 학살이란 과거의 아픔을 떠올리게 했다. 역설적이다. 이를 보듬고 헤아려야 할 정부가 아직도 제주 해군기지 건설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가지 못하고 있음은 안타깝다.

최근 <뉴스타파>의 보도에 따르면 4·3사건을 왜곡하고 있는 영광장교연합회에 국민의 세검이 지원되고 있다고 한다. 아직도 3만의 희생자들의 가족들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도 말이다.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지속적으로 과오를 덮고자 하면서 어떻게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겠는가. 과거 정부와 군부의 정당성을 살리기 위해 현 정부가 힘을 쏟을 게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쏟길 바란다.



태그:#평화박물관, #스페이스99, #제주해전, #강정마을, #강정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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