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기사 수정 : 18일 오후 4시 20분]

학비노조가 뭉쳐 출정식을 하는날. 교육청 꼭대기 층은 우리가 출정식이 다 끝나도록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 울산시 교육청 앞 2013년 단체협상 출정식 학비노조가 뭉쳐 출정식을 하는날. 교육청 꼭대기 층은 우리가 출정식이 다 끝나도록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변 주무관님 오늘 우리랑 같이 교육청 가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습니다. 울산시 교육청은 동구에서 가려면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 타야 하는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버스 오는 시간까지 더하면 많이 늦어버릴 게 뻔했습니다.

17일(수) 오후 2시에 드디어 울산도 교육청과 학교비정규직 노조(이하 학비노조)와의 단체협상이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강원도와 같이 진보 교육감이 있는 교육청엔 학비노조와 이미 몇 개월 전에 단체협약을 맺고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향상시켰다고 합니다. 울산 같은 보수 교육감이 있는 교육청은 아직 한 군데도 단체협약을 맺은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17일 제헌절에는 학비노조와 울산시 교육청이 첫 상견례가 있었다네요. 그래서 학교비정규직 노조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출정식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학교 일용직인 저는 얼마 전 학교비정규직 노조에 가입했습니다. 우리 학교에도 많은 비정규직이 있습니다. 식당에도 비정규직, 돌봄 교사도 비정규직, 담임도, 교사도 비정규직이 많습니다. 학교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직종 수가 많았고 이해관계가 달라 한 노조에서 함께 못하고 여성노조, 공공운수노조, 학교비정규직노조 이렇게 3개 단체가 연합해 함께 교육청과 단체협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각자 직군의 차이 때문에 하나 된 노조로는 이해관계를 모두 해소하기엔 버거운 것같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학교비정규직 노조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17일 출정식에 가보니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3곳 노조에 모두 분포되어 조합원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나니 소속 노조는 다르지만 반가웠습니다. 저는 식당 노조원과 함께 승합차를 빌려 타고 교육청으로 향했습니다. 버스로 가는 것과는 달리 신속하게 교육청 앞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학비노조가 조합원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공공운수노조, 여성노조 순으로 조합원이 분포되어 있었습니다. 우린 10분 전에 도착하였습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에서 방송시설을 가져와 출정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 6시가 되어 차량 방송시설도 준비되고 울산에 있는 학교비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이 거의 모인 게 확인되자 출정식이 진행되었습니다.

대표단은 모두 2013년 단체협약을 울산시 교육청이랑 꼭 맺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 3개 노조 연대회의 대표단 대표단은 모두 2013년 단체협약을 울산시 교육청이랑 꼭 맺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울산 학교비정규직 2013 단체교섭 승리를 위한 출정식'

현수막에 그런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사회는 학비노조 울산지부 사무국장이 맡아 했습니다. 제가 학비노조에 가입하고 싶다고 전화를 했을 때 사무국장이 와서 가입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동안 지켜보니 참으로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모이면 꼭 먼저 하는 게 있죠? 예, 바로 구호 연습입니다. 오늘 구호를 한번 연습해볼까요? 나눠드린 종이 아래쪽에 구호가 있습니다. 보시고 같이 따라하면 됩니다. '학교비정규직 똘똘뭉쳐 단체교섭 승리하자', '김복만 교육감은 단체교섭 성실히 임하라', '학비노동자 총단결로 단체교섭 승리하자'. 뒤에 공통으로 하는 구호는 '단체교섭 승리 투쟁, 결사 투쟁'으로 하겠습니다."

출정식에 모인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와 구호 연습을 하고서 집회는 시작되었습니다. 개회식을 하고 민중의례, 내외빈소개, 여는발언, 연대사, 노래공연(전교조 울산지부 노래패), 단체교섭 진행상황설명, 지부장 결의발언과 교섭위원 소개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학비노조 위원장이 결의 발언을 했습니다.

"어렵게 마련된 단체교섭이 다른 지역보다 늦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지역보다 좋은 결과로 단체협약을 맺을 것 입니다. 우리의 사용자는 교육감입니다. 내용 불합리한 것 우리 실정에 맞게 고쳐야 할 것 입니다. 함께 하나로 뭉쳐서 투쟁해나간다면 우리는 반드시 교육청과 단체협약 체결식을 앞당길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저도 학교 조리사로 19년째 일했습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조합 위원장을 맡고서 3년째 휴직 중입니다. 예전 같으면 가차없이 부당해고 당했을 건데 노조의 힘이 커지니까 3년을 휴직해도 저는 잘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동자에겐 노동조합이 참 좋은 곳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전국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3만 조합원이 모인 노동조합으로 만들었습니다.

지난 2012년에 울산에 많이 왔습니다. 그땐 조합원이 몇 명 되지 않아 걱정도 많이 했고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울산도 이제 1천여 명이 넘어선 큰 노조로 힘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노조 간부는 서울 교육부 앞에서 47일째 노숙농성 중입니다. 호봉제와 교육공무직 쟁취를 위해 우리는 교육부 장관과 청와대에 계신 대통령을 상대로 투쟁해나가겠습니다. 울산에서도 단체협상 잘 해서 꼭 전국에 모범이 되는 단체협약을 쟁취합시다."

연두색 조끼를 입은 노동자는 공공운수노조 학교 비정규직 조합원 입니다.
▲ 단체교섭승리 연두색 조끼를 입은 노동자는 공공운수노조 학교 비정규직 조합원 입니다.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학비노조 단체협상 실무 담당이 나와서 그동안 있었던 단체교섭 상황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오후 2시 3개 노조와 교육청이 역사적인 단체협상 첫 상견례를 했습니다. 2년을 요구해왔고 2개월을 준비해 만든 자리였지만 단 10분 만에 끝났습니다. 다음주부터 우리는 본격 단체협상에 돌입합니다. 매주 목요일 협상 자리가 마련될 것입니다. 실무교섭은 2주에 1회 열리고, 본교섭은 2개월에 한 차례씩 진행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3개 노조 요구안을 교육청에 냈습니다. 노조는 사무실 제공과 노조활동 보장하라고 요구했지만 '사무실 제공할 수 없다, 노조활동 개별이 알아서 해라'고 했습니다.

김복만 교육감은 이런저런 이유 내세워 들어주지 않을 확률이 높아 보입니다. 앞에서 웃고 있지만 뒤에서 우릴 힘들게 하는게 현 교육감의 본모습입니다. 조합원의 단결과 투쟁만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적용된 단체협약을 쟁취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상견례 들어갔다가 느낀 것은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단결, 투쟁한다면 안 될 게 있습니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지금 그 말이 우리에게 딱 들어맞는 명언인 거 같습니다. 우리가 뭉치면 못할 거 없습니다. 절실한 만큼 얻어집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 열기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거 같습니다. 지난 6월 1일 학비노조 간부 3명이 삭발한 데 이어 22일 전국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결의대회에선 경기, 서울, 인천, 충남, 충북 학비노조 지부장 5명이 더 삭발항의를 강행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지극히 당연한 호봉제를 요구하는데 여성이 삭발까지 해야 하는 이 사회를 우리가 바꿔내자"며 "삭발 아닌 그 어떤 투쟁도 각오했다"고 결심을 다지기도 했습니다.

울산은 이제서야 단체협약 협상을 시작했지만 전국 학비노조는 지금 호봉제 도입, 정액급식비, 명절휴가비, 상여금지급, 맞춤형 복지포인트 이렇게 5대 요구안을 내걸고 서울 교육청 앞에서 핵심 간부들이 삭발과 단식,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삭발식과 단식, 노숙농성을 지켜보면서 중년 여성으로서 수치감을 감내하면서까지 농성을 해야만 하는 작금의 현실이 화도 나고 안쓰럽기도 합니다.

"우리가 유령입니까?"

집회에서 울먹이며 말했던 어느 노조간부의 말이 생각납니다. 

3개 조직 조끼 색이 모두 달랐습니다. 연한 분홍 조끼를 입은 조합원은 여성노조 소속 학교 비정규직 조합원 이었습니다.
▲ 비정규직 차별철폐! 3개 조직 조끼 색이 모두 달랐습니다. 연한 분홍 조끼를 입은 조합원은 여성노조 소속 학교 비정규직 조합원 이었습니다.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태그:#울산시 교육청, #학비노조, #비정규직, #단체협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간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노동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청소노동자도 노동귀족으로 사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