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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인공화단 경비'를 서는 등 경찰들의 만행이 계속되는 쌍용차 대한문 앞 분향소에서 그림을 그리느라 한동안 찾아가지 못했던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농성장을 30일, 오랜만에 찾았습니다.

박영호 사장이 팔아넘기고 간, 노동자들의 삶터였던 그 곳에는 어느새 가스충전소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자본의 무자비함과 신속함을 본 것 같아 가슴이 저렸습니다. 그 맞은편에는 2372일째(30일 기준) 눈비바람을 맞으며 투쟁하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농성장이 있습니다.

2372일간 길거리에서 투쟁을 하고 있는 콜트콜텍기타 노동자들. 사장이 버리다시피하고 간 공장안 천막에서 싸우다가 올초에 쫓겨난 뒤 그 맞은편에 천막을 치고 계속 투쟁중입니다.
 2372일간 길거리에서 투쟁을 하고 있는 콜트콜텍기타 노동자들. 사장이 버리다시피하고 간 공장안 천막에서 싸우다가 올초에 쫓겨난 뒤 그 맞은편에 천막을 치고 계속 투쟁중입니다.
ⓒ 이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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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매주 화요일마다 하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야단법석 문화제'가 있는 날입니다. 마침 한 대안학교 학생들이 2박 3일 동안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을 응원하러 와서 제법 시끌벅적 했습니다.

10여명의 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왔는데 그 가운데 캐리커처를 잘 그리는 학생이 있다고 하더군요. 갑자기 저와 그 친구의 '캐리커처 배틀'이 시작됐습니다. 처음에는 농담으로 가볍게 웃고 넘겼는데, 모두들 '배틀' 분위기로 몰아가면서 도저히 피할 수 없게 되었지요. 저는 이겨도 본전, 지면 대망신인데 말이죠.
거리투쟁 2372일차 되는 날. 대안학교 학생들이 연대 응원 방문을 했습니다. 오기 전에 자료를 찾아 공부까지 했다는 학생들이 후텁지근한 날씨에도 거리선전전을 마치고 저녁을 먹고 있습니다.
 거리투쟁 2372일차 되는 날. 대안학교 학생들이 연대 응원 방문을 했습니다. 오기 전에 자료를 찾아 공부까지 했다는 학생들이 후텁지근한 날씨에도 거리선전전을 마치고 저녁을 먹고 있습니다.
ⓒ 이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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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주위에서 환호와 이상한 야유, 압박이 계속돼 저도 펜을 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승패를 가를 간단한 룰들을 정했습니다. 우선 모델 세 명을 정해서 첫 번째 배틀은  각각 30초에 그리기, 두 번째 배틀은 5분에 그리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평가는 모두가 함께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선택을 받은 이를 승자로 결정하기로 하기로 했습니다. 이때부터 분위기가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의 분위기 밀려서 대안학교 학생과 제가 '캐리커처배틀'을 하고 있습니다.
 주변의 분위기 밀려서 대안학교 학생과 제가 '캐리커처배틀'을 하고 있습니다.
ⓒ 이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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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이 고등학생을 응원하는 일방적인(?) 분위기여서 그런지, 긴장이 됐고 등줄기에 땀이 흐를 지경이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한 번쯤은 그려 준 분들이 많아서 이런 상황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게다가 대안고등학교 학생은 전문가용 수채물감이 담긴 팔레트를 꺼내더군요. 저는 어린이용 12색 색연필을 꺼내서 들었습니다. 이렇게 분위기와 도구에서 제가 일찌감치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30초 캐리커처가 시작됐는데,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과 연대 온 분들의 환호와 응원이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합니다.

학생에게는 "정말 잘 그린다!", "대단하다!"라는 응원이, 제게는 "쌤, 떨고 있는 거 같아~", "긴장풀어요~"라는 약올리는 응원 아닌 응원을 해줬습니다. '그래요, 좋아요, 해보자구요~' 저는 스스로 응원하며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야단법석 문화제' 직전 펼쳐진 대안학교 고등학생과의 30초 '캐리커처 배틀' 결과.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야단법석 문화제' 직전 펼쳐진 대안학교 고등학생과의 30초 '캐리커처 배틀' 결과.
ⓒ 이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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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이 학생과 제가 그린 30초 캐리커처입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어떤가요? 누가 더 잘 그렸나요? 아, 모델 분들의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모델 분들이 사진 찍히기를 강력히 거부해서 올리지 못했습니다. 경력 30년의 저와 고등학생의 솜씨이니 그것을 감안해서 보셔야겠지요.

듣기론 이 학생은 학교에서도 무슨 경제활동수업 시간을 이용해 친구들 얼굴을 그려줘서 돈도 제법 벌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선들의 느낌이 제법 능숙하지요? 물론 30초라는 시간의 압박을 겪어보지 못한지라 미처 마무리되지 못한 그림도 있지만 좀 더 연습하고 단련하면 금방 극복할 것으로 보입니다. 전 고등학교 시절에 저 정도로 그리지 못했지요.

이제 본격적인 캐리커처 배틀, 3인에 대한 각각 5분 캐리커처입니다. 그런데 모델 가운데 제가 서 너 번은 그려드린 콜트콜텍 기타노동자가 있어서 주변에서 이의제기가 들어왔습니다. 학생이 불리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제게는 정한 시간 5분에서 시간을 빼야된다는 항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1분을 빼고 그리겠다고 했더니 그 정도로는 안 된다고 해서 결국 저는 그 모델은 왼손으로 그리겠다고 선언하고 '캐리커처 배틀'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저는 조금 가볍게 노는 기분으로 그렸지만 학생의 솜씨가 만만치 않아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지요.

대안학교 학생과 '레알로망 현장 캐리커처' 작가인 제가 벌인 본격 '배틀'을 벌인 5분 캐리커처 작품들. 제가 그린 모델이 자기를 못생기게 그렸다고 점수를 주지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대안학교 학생과 '레알로망 현장 캐리커처' 작가인 제가 벌인 본격 '배틀'을 벌인 5분 캐리커처 작품들. 제가 그린 모델이 자기를 못생기게 그렸다고 점수를 주지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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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둥~ 어떻습니까? 독자분들이 보기에 왼쪽이 제 그림이고 오른쪽이 학생의 그림입니다. 고등학생이 그린 솜씨치고 상당히 분위기가 있고 안정적인 느낌이지요? 이런 분위기가 전해졌는지 주변에서는 학생의 승리를 미리 점치는 응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제가 그린 두 번째 그림의 모델 분께서 너무 장난스럽게 그렸다고 제 그림에 점수를 줄 수 없다는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이거 참 모델 사진을 올릴 수도 없으니 꼼짝 없이 제가 밀리게 생겼습니다. 게다가 제가 그린 마지막 그림은 왼손으로 그린 것입니다.

그때 마침 저를 응원하는 이들이 나왔습니다. 대안학교 학생 한 명이 그 자리에서 제게 캐리커처를 그려달라고 요청을 한 것입니다. 저는 이때다 싶어 "승패는 결정났다, 나는 바로 원고청탁이 들어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한목소리로 나를 봐준 학생들의 배려를 모르냐고 오히려 핀잔을 주더군요. 그러더니 나를 봐준다면서 최종적으로 '현장크로키 배틀'을 해서 승부를 내겠다고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모델 한 분이 포즈를 취했습니다.
제 시야에서는 모델의 일부가 나무에 가려 잘 안 보였는데 말입니다. 허어~

일방적인 응원에 밀려난 제게 마지막 기회! 최종 승부를 내기 위해 벌인 현장 크로키 배틀. 다행히 초보자에게는 어려운 앉은 포즈라 내심 승리를 예상했으나...
 일방적인 응원에 밀려난 제게 마지막 기회! 최종 승부를 내기 위해 벌인 현장 크로키 배틀. 다행히 초보자에게는 어려운 앉은 포즈라 내심 승리를 예상했으나...
ⓒ 이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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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모델 분이 앉은 포즈를 취했습니다. 왜냐하면 서 있는 포즈보다는 앉아 있는 포즈가 초보자들에게는 그리기가 어렵거든요. 그래서 제가 모델에게 일어나서 포즈를 취하라고 했지만 그런 내용을 모르는 모델은 5분 동안 서 있는 것이 힘드니 앉아 있겠다고 하더군요. 저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배틀'을 시작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대안학교 학생이 다리쪽을 종이 안에 다 그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종이가 모자랐던 것이지요. 학생은 급히 종이 두 장을 이어서 그렸지만 이것으로 승패는 결정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주위에서는 제가 상대적으로 긴 종이를 썼기 때문에 반칙이라는 항의가 쏟아졌고 결국 최종 승패를 가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대안학교 학생들의 춤과 노래가 콜트콜텍기타노동자들의 투쟁농성장에 울려퍼졌습니다. 노래와 춤을 선사한 학생들이 문화제를 마치고 재정사업으로 벌이고 있는 팔찌만들기를 하고 있습니다.
 대안학교 학생들의 춤과 노래가 콜트콜텍기타노동자들의 투쟁농성장에 울려퍼졌습니다. 노래와 춤을 선사한 학생들이 문화제를 마치고 재정사업으로 벌이고 있는 팔찌만들기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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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졸지에 만들어진 '캐리커처 배틀'이 야단법석 문화제가 시작되기도 전에 끝나고 대안학교 학생들의 노래와 춤 공연으로 본격적인 문화제가 시작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젊은이들의 밝고 경쾌한 율동과 노래소리가 2372일째 거리에서 투쟁중인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 농성장에 울려퍼졌습니다.

문화제가 끝나고 학생들은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을 돕기 위한 재정사업의 하나로 시작한 팔찌 만들기 작업을 했습니다. 저는 그 학생들이 너무 예뻐서 한 명 한 명 불러낸 뒤 레알로망 캐리커처를 그렸습니다.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야단법석 문화제에 연대하여 함께 하는 학생들을 그렸습니다. 아, 그 중에 평소 연대해 오신 분들도 깍두기로 끼셨네요.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야단법석 문화제에 연대하여 함께 하는 학생들을 그렸습니다. 아, 그 중에 평소 연대해 오신 분들도 깍두기로 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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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 학생들은 문화제를 마친 뒤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이 얼마 전부터 시작한 팔찌 재정사업을 도왔습니다. 팔찌마다 'No Cort' 글자가 들어가 있네요.
 대안학교 학생들은 문화제를 마친 뒤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이 얼마 전부터 시작한 팔찌 재정사업을 도왔습니다. 팔찌마다 'No Cort' 글자가 들어가 있네요.
ⓒ 이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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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싼 임금을 찾아서 야반도주하듯 외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며 하루아침에 노동자들의 삶을 내팽개친 사장은 돈을 몇 푼 더 벌 수 있을지 몰라도 이런 감동의 시간을 결코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의 억울한 삶이 정상으로 돌아와 정당한 대접을 받을 때까지 수많은 뮤지션들과 문화예술인들 그리고 젊은 청년들이 끝까지 연대해서 싸울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은 7월 30일 기준 농성한 지 2372일을 넘겼습니다. 이들은 매주 화요일엔 야단법석 문화제(부평 갈산동 투쟁농성장)를, 매주 금요일엔 인천 부평과 서울 홍대 차없는 거리 등에서 유랑문화제를, 그리고 매월 마지막 수요일엔 홍대클럽 빵에서 '기타노동자와 함께하는 수요문화제'를 하며 즐겁고 힘차게 투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그동안 많은 분들의 연대와 후원 속에 싸워오면서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은 직접 재배해서 만든 고추장, 된장 등과 이제는 제법 명물이 된 'NO Cort' 티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뜨거운 연대와 희망의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관련 문의는 장석천 사무장(010-8810-8340)에게 연락하시면 안내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태그:#콜트, #콜텍, #기타, #노동자, #캐리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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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작은책에 이동슈의 삼삼한 삶 연재중. 정신장애인 당사자 인터넷신문 '마인드포스트'에 만평 연재중. 레알로망캐리커처(찐멋인물풍자화),현장크로키. 캐릭터,만화만평,만화교육 중. *문화노동경제에 관심. 또한 현장속 살아있는 창작활동을 위해 '부르면 달려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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