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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계곡에서 김밥을 먹었다.
 시원한 계곡에서 김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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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을 맞이하여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와서 쉬고 있는데 엄마가 물어봤다.

"외할머니 산소 보러 갈래?"

살아 계실 때 우리 형제에게 달걀 프라이를 맛있게 해주시던 외할머니가 떠올라서였을까, 가겠다고 곧바로 대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것 아닌가?

"고모~ 지하가 벌초하러 같이 간대요."

아뿔싸! 그제서야 깨달았다. 산소를 단순히 보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를 바보라고 자책하고 있는데 이어지는 엄마의 충격 발언.

"산에 올라가야 하니까 옷 챙겨라. 30분 넘게 올라갈 거야. 너 옷 없으니까 등산복 하나 사자."

외할머니 산소 보러가자는 소리에 응했을 뿐인데...

외할머니를 왜 그렇게나 높은 곳에 모셔두었을까? 내일은 좀 힘들겠구나 생각했다.

그날 저녁, 엄마와 나는 막내 외할머니 댁에 도착했다. 내일 벌초하러 가는 분들은 나와 엄마를 제외하면 모두 외할아버지 형제분들이었다. 외할아버지 육남매 중에서 무려 네 분이 가신다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일이 있어서 못 가시지만 둘째 작은 외할아버지, 셋째 작은 외할아버지, 둘째 작은 외할머니, 막내 외할머니가 가신다고 했다.

비록 나는 외손이지만 특별 케이스로 참여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친가 쪽 벌초라고 해도 내가 참여한 기억이 거의 없었다. 특히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이후에는 전혀 없었다. 내가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어른들께서 배려를 해주셔서 그동안 나는 벌초를 가지 않고 아빠의 형제들만 다녀오셨던 것이다.

셋째 작은 외할아버지가 낫으로 길을 내고 있다.
 셋째 작은 외할아버지가 낫으로 길을 내고 있다.
ⓒ 송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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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확 부끄러워졌다. 조금만 옛날이었어도 내 나이의 젊은이라면 벌초를 주도하거나, 그게 아니면 이미 많이 경험해서 익숙한 것이 정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이 참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내일 정말 열심히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 날 아침, 둘째 작은 외할머니 댁에 모여 준비물을 챙겼다. 벌초하기 전에 아침으로 먹을 김밥, 물, 곡괭이, 낫, 예초기, 장갑, 팔토시, 모자, 막걸리 등 챙길 것이 생각보다 훨씬 많고 세세했다. '내가 이만큼이나 모르고 있었구나, 지금까지 정말 무관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준비가 끝나고 차로 이동해서 어느 산 아래에 도착했다. 잠깐 계곡에 앉아 김밥을 먹고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길을 걷는데 갑자기 셋째 작은 외할아버지께서 산길이 아닌 곳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산소에 가기 위한 샛길인 셈이다. 남들이 언뜻 보기에는 산길이 아닌 곳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둘째 작은 외할아버지와 셋째 작은 외할아버지가 앞장서서 낫으로 길을 만들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작은 외할아버지 두 분은 낫질을 하면서 진행하느라 아주 힘드실 텐데 그래도 계속해서 뒤에 있는 우리에게 신경을 써주셨다.

팔토시·모자까지 단단히 무장했지만 벌레와 생채기는 속수무책

올라가는 내내 가시가 있는 식물과 각종 벌레들 때문에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었다. 팔토시에 모자, 그리고 긴바지로 단단히 무장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쓰러진 나무 아래로 허리를 굽혀서 지나가기도 하고 이끼가 잔뜩 있는 바위를 잘못 밟아서 미끄러질 뻔하기도 했다. 속에서 부글부글 불평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분을 전환해보고자 궁금한 것들을 엄마에게 물어봤다.

나 : "엄마, 예전에 길을 만들어놨는디 왜 지금 다시 길을 만들믄서 가야 된대요?"
엄마 : "원래는 길이 있었제. 근디 작년에 태풍이 와가지고 나무들이 쓰러져부러서 길이 다 없어져부렀어."

벌레와의 사투에서 얻은 영광의 상처
 벌레와의 사투에서 얻은 영광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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묏자리를 찾아가는 것부터 힘든데 벌초까지 하고 나면 정말 힘들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우리가 이렇게 험한 길로 묏자리를 찾아가는 이 과정이 곧 정성을 드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벌초에 무관심했던 나에게 시련을 주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발걸음이 즐거워졌다.

나 : "그런데 왜 이렇게 높은 곳에 자리를 정했대요?"
엄마 : "너희 증조 외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여기가 명당이라고, 여기다가 묻어달라고 하셨댄다."

나 : "어? 지금 외할머니 산소에 가는 거 아니었어요? 증조 외할아버지라니?"
엄마 : "뭔소리여. 느그 외할머니는 여기 안 계셔야. 여기는 증조 외할아버지 계신 곳이여."

이럴수가… 엄마에게 속았다.

드디어 산소가 있는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은 산이라는 울타리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과연 명당이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햇볕은 따사로웠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시원했다. 우리는 금세 벌초를 마치고 잠시 쉬었다가 차례를 지냈다.

차례를 지내고 음복을 하는데 살얼음 막걸리와 사과가 그렇게 달 수 없었다. 살면서 먹어본 것들 중 으뜸이었다. 후손들이 산에 올라서 벌초하고 성묘하는데 고생했다고 증조 외할아버지께서 주시는 선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모두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기 전에 둘째 작은 외할아버지가 장난스럽게 하신 말씀이 걸작이었다. 우리는 모두 즐겁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따, 내년에는 못 오것다잉."

힘들었지만 끝까지 즐겁고 유쾌할 수 있었던 성묘였다. 내년에도 즐겁게 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벌초를 하고 있다.
 벌초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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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성묘, #벌초, #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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