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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가 동생을 업은 채 전차 앞에 서 있다(경기도 행주, 1951. 6. 9.).
 한 소녀가 동생을 업은 채 전차 앞에 서 있다(경기도 행주, 1951. 6. 9.).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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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여행

순희가 미국으로 출국하기 나흘 전날이었다. 준기는 아침 일찍 승용차를 몰고 순희 숙소로 갔다. 준기는 순희에게 드라이브를 하자고 승용차에 태운 뒤 곧장 경부고속도로를 탔다. 그리고는 남쪽으로 가속페달을 밟았다. 연초에 준기가 자동차 면허증을 딴 기념으로 황 병원장과 함께 번갈아 운전하며 부산까지 다녀온 경험이 이렇게 소중할 줄이야.

"어머, 그새 한국에도 고속도로가 생겼네요."
"기럼, 경부에 이어 호남고속도로 개통으로 전국 대부분 지역이 일일생활권에 접어들었디요."
"근데, 지금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간밤에 오늘 드라이브 코스를 잡는데 갑자기 유학산, 낙동강, 구미 일대가 떠오르더만요."
"어머, 미리 말씀하시지. 나 오늘 점심, 저녁 스케줄이 모두 다 잡혀 있는데."
"……."

준기는 그 말을 못들은 척 가속페달을 더욱 힘껏 밟았다. 순희는 더 이상 군말이 없었다. 역시 황 병원장은 여성의 속마음을 읽는 데 도사였다. 준기가 알고 있는 황 병원장의 스캔들만 해도 서너 번은 더 되었다. 한번은 유부녀와 정을 통하다가 그 남편에게 꼬리 잡혀 한때 병원이 꽤 시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남자나 여자나 염복이나 사내 편력이 많은 이는 대체로 팔자가 셌다. 황 병원장의 지금 부인은 세 번째로 자녀들 모두 어머니가 달랐다. 승용차가 수원을 지나자 그제야 고속도로가 한산해졌다. 그러자 준기는 카세트 테이프를 틀었다. 곧 음악이 흘렀다.

"어머, '솔베지송'이 아녜요?"
"아, 네. 이 노래는 노래도, 노랫말도 돟더구만요."
"저도 미국에서 외로울 때는 이따금 즐겨듣던 곡이에요."
"기러세요. 간밤에 순희 누이에게 무슨 노래를 들려줄까 고민하다가 이 노래를 골랏디."
"고마워요. 이 노래에서 멀리 떠난 연인을 기다리는 이는 여성인데…."
"아, 일없습네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데 어디 남성과 여성이 따로 잇갓수?"

추풍령고속도로휴게소(2013. 7. 30.).
 추풍령고속도로휴게소(2013. 7. 30.).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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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령

준기와 순희가 탄 승용차가 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간 지 두 시간 남짓 만에 추풍령에 이르렀다. 준기는 추풍령휴게소에 잠시 머물렀다.

"여기가 우리들이 마지막 헤어진 곳이디요."
"어머, 그새 추풍령이에요. 그때 저는 여기서 서울까지 가는데 꼬박 열흘이 더 걸렸는데."
"기래두 용케 돌아갔구만요."
"지금도 그때 조철만 헌병대장에게 당한 걸 생각하면 자다가도 식은 땀이 나요. 내가 그때 그자를 처치하지 못한 게 후회스럽기도 하구요."
"잘해시우. 만일 기때 거(그) 자를 처티했다믄 두고두고 살인죄로 괴로울 거야요. 인젠 잊어라요."

"알겠습니다. 동생은 역시 생각이 깊은 사람이라 존경스러워요. 하지만 조철만 같은 자들이 이즈음 한국사회에 주류로 행세할 것 아네요. 나치에게 학살당한 유대인들이 그랬대요. 쉽게 잊어버리면 또 그런 일을 당한다고요. 한국사회가 겉으로는 많이 발전한 것 같지만 아직도 사회 내면은 예나 별로 다름이 없어보여요. 특히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비하는 여전하고요. 재미 동포사회까지도 한국사회 지도자들의 차마 입을 담을 수 없는 추문은 파다해요. 이런 걸 바꾸지 못하면 그동안 겉으로 드러난 한국의 발전은 그저 모래 위에 성 쌓기나 다름없지요."
"기럴 테디요."

마침 준기 시야에 추풍령 휴게소 멀리 국도변 외딴집이 들어왔다.

"아마 데기(저기)가 기때 외딴 할머니집일 겁네다."
"그때 우리가 찾아간 그날 밤이 추석이었지요. 그날 밤 할머니가 주신 토란국과 송편을 참 맛있게 먹었지요."
"기때는 춥고 배고플 때라 기랬을 겁네다."
"그 할머니 아직도 살아계실까요?"
"길쎄, 그새 24년이나 디났기에."

"문득 그때 준기 동생이 쌀자루에 두고 간 편지의 한 구절이 떠오르네요."
"메라구?"
"내가 받은 첫 러브레터 겸 고별 편지였잖아요."
"부끄럽습네다. 아직두 기억한 걸 기때 미리 알았더라면 좀 잘 쓸 건데…."
"잘 쓴 편지는 좋은 말을 많이 늘어놓은 게 아니라 진정성이 묻어 있는 거예요. 그 편지에는 준기 동생의 진심이 담겨 있어요. '지금 제가 순희 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은 당신 곁을 떠나는 것입니다. 부디 잘 가십시오' 더 이상 어떻게 잘 써요.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거예요."
"기래요. 감사합네다. 사실 내레 오늘부터 순희 누이가 떠날 때까지 병원에 휴가를 내시오."
"어머, 그러셨어요?"

한 피난민이 5일 분 양곡을 배급받은 뒤 자루를 묶고 있다(1951. 5.).
 한 피난민이 5일 분 양곡을 배급받은 뒤 자루를 묶고 있다(1951. 5.).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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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준기와 순희는 추풍령을 출발하여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달리자 곧 직지사역이 나오고 이어 김천이 나왔다. 거기서부터는 모든 지명과 지형지물이 두 사람 기억에 아물거렸다. 

"우리가 그때 잠시 묵었던 상여집이 어디쯤일까요?"
"아마, 데기쯤일 겁네다."

준기는 직지사로 가는 언덕을 가리켰다.

"아직도 그때를 자세하게 기억하시네요?"
"기땐 절박한 순간들이었기에 마음속에 깊이 새게졌을(새겨졌을) 겝네다."
"나도 여기에 오니까 그때의 기억이 어제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그때 참 춥고 배고팠지요."
"기럼요. 지금 생각해도 아주 오싹합네다."
"나도 간혹 그때 생각이 들면 끔찍하다가도, 상여 집에서 준기 동생 품에 안긴 생각을 하면 아주 포근했어요."
"기랬던 가요."

준기는 과거를 모두 다 잊은 척 대꾸했다.

"오른편 도시가 어디입니까?"
"김천입네다."
"그때 김천 들머리 한 학교에 인민군 임시야전보충대가 있었지요. 나는 용산교육대에서 사흘간 교육을 마치고 바로 여기로 왔어요."
"나두 신병 교육을 마치고 바로 이곳으로 왔디요. 아마 요기서 보이는 데기 오른펜 산 아래 데(저) 학교일 겝니다."

순희는 추억어린 눈길로 준기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조금 더 달리자 김천시가지가 나왔다.

"아마 저기 산 아래 어느 집일 거예요. 그때 우리들이 탈출하면서 빈집에 들어가 막 밥을 지어 주먹밥을 만들었지요. 그런데 담 밖에서 수상한 사람이 넘나보자 그만 놀라 밥도 먹지 못한 채 봇짐에 싸가지고 도망쳤지요."

준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피난민의 임시 거처인 움막(1950. 8. 11.).
 피난민의 임시 거처인 움막(1950. 8. 11.).
ⓒ NARA,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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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어디까지 가실 거예요?"
"경주 불국사를 목표로 가고 있습네다."
"거긴 너무 멀지 않아요."
"내레 여태 가보디 못한 곳이라…."
"나도 가보진 못했어요."
"길이 돟기에(좋기에) 아마 요기서 한 시간 남짓 더 달리믄 도착할 거야요."

그들이 탄 승용차가 김천을 지난 지 10여 분만에 구미라는 표지판이 나왔다.

"벌써 구미야요."
"어머, 구미! 오른 편에 우뚝 솟은 저 산이 금오산이지요?"
"맞습네다."
"그때보다는 산이 한결 푸릅니다."
"기렇구 말구요. 그때는 사람들이 땔감으로 산의 나무를 벌목한 탓으로 벌거숭이 민둥산이었디요."
"저 금오산을 다시 보다니 정말 반갑네요. 사실 우리에게는 경주 불국사보다 구미 금오산이 더 의미 있는 곳이지요. 그 무렵 임은동 야전병원에서 복무할 때 저녁놀이 물들면 금오산이 참 아름다웠지요. 그리고 금오산아홉산골짜기에서 숨어지냈던 산골생활도 잊을 수가 없고요.."

"기럼, 이렇게 합시다. 언젠가 신문을 보니까 금오산이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관광호텔두 들어섰답네다. 등산로에는 케이블카도 놓았다고 하더만요.이번은 요기서 쉬어갑세다."
"그래요. 경주 불국사는 다음에 가요."
"기러디요."

준기는 휘파람을 불며 구미 나들목을 빠져나온 뒤 도로표지판을 따라 금오산 쪽으로 달렸다. 온통 논이고 과수원이었던 광평 신평 등 낙동강 구미평야 일대가 공장지대로, 시가지로 한창 바뀌고 있었다.

"바로 이 들판 어디메쯤이 과수원이었을 거예요. 도망병인 우리를 장 상사가 여기로 몰고 와 살려줬지요. 그 뒤 내 이빨로 동생의 포승줄을 풀어주고 도망갈 때 저 산을 바라보고 갔지요."
"아두 그때를 자세하게 기억하십네다."

그랬다. 장 상사는 권총을 빼들고 그들을 과수원 한가운데로 몰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 바보 같은 쌍노무간나들, 도망을 갔으문 전투가 끝날 때까지 깊은 산속에 들어가 겨울잠을 자는 곰터럼 숨어 지낼 것이디 뒈지려구 환장했디. 어디메서 빨빨거리다 요기로 잽혀 와? 병신새끼들!"

그리고 그는 두 사람에게 오조준하여 권총을 발사한 뒤 확인도 않고 그대로 사라졌다.

"그때 장 상사님이 분명 우리를 살려줬어요. 심성이 아주 깊은 분이었어요."
"나두 기렇게 생각합네다." 

해질 녘의 금오산
 해질 녘의 금오산
ⓒ 구미시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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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여기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필자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것들과 답사 길에 직접 촬영하거나 수집한 것입니다. 본문과 사진이미지가 다를 경우 한국전쟁의 한 자료사진으로 봐주십시오.



태그:#어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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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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