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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에서 열린 국제 관광 박람회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에서 열린 국제 관광 박람회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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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장님 여기 와이파이 터져요."

지난 5일, 15명의 강원도 호수문화권 시군 담당 공무원들은 3박 4일 일정으로 말레이시아로 떠났다. 국제관광전 참여를 위해서다. 호수문화권이란 소양호와 춘천호 인근 강원도 6개 시군의 관광사업에 대해 공동으로 홍보해 나가는 광역시스템이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에서 개최된 '마타페어(Matta fire) 국제 관광박람회'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행사로 꼽힌다. 매년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등 20여 개국에서 참여한다. 3일간 열리는 행사장엔 1300여 개의 홍보부스가 만들어지고 10만여 명의 여행사 관계자 및 관광객들로 성황을 이룬다.

지난 6일.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자 각 시군 담당자들은 자신이 속한 지자체 관광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남이섬과 닭갈비, 국토정중앙 문화, 빙어축제 등. 화천군을 대표해 참가한 우리 일행은 2012년 'CNN'에서 7대 불가사의로 선정한 '얼음나라 화천 산천어축제'를 알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저녁식사를 위해 이동 중인 버스 안. 이진희씨(화천군청 관광정책과)는 내게 '와이파이가 터진다'는 말을 내게 건넨다. "행사장 풍경, 홍보용 사진 등을 SNS를 이용해 알리면 어떻겠냐"는 눈치다. 전화요금 부담 완화를 위해 출발 전 공항에서 로밍 서비스를 신청했기 때문에 와이파이 가능 존(Zone)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산천어축제장 내에 와이파이 사용 존(zone)을 만들어 보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음날 아침, 식당에서 만난 이진희 주무관이 묻는다. 우리가 외국에 왔을 때 와이파이에 연연했던 것처럼 산천어축제를 찾은 수많은 외국 관광객들도 같은 입장일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말이다. 많은 관광객들이 축제장을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주자. 그러면 더욱 폭넓은 축제홍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그럴 수 있겠다. 많은 예산을 들여 영문 관광안내서를 만드는 것보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를 이용한 홍보가 신빙성이나 신속성 면에서 효과적일 수 있겠다.

길거리 식당, 그것도 그 나라의 문화다

길거리 음식점. 이것 또한 그 지역 문화다
 길거리 음식점. 이것 또한 그 지역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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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는 아주 마음에 든다."

뷔페 형식으로 마련된 아침 호텔식. 전날 저녁 '쿠알라룸프 삥땅 잘란알로' 도로변에 마련된 식당에서 먹은 저녁식사가 떠올랐다. 6차선 도로 주변에 늘어선 식당들은 경쟁적으로 도로에 의자와 탁자를 깔았다. 일시에 수천 명은 앉을 수 있는 구조다. 탁자 사이로 차량이 다닌다는 것도 이색적이다.

길거리 식당에는 미세먼지가 많을 듯하다. 차량 매연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도 하루 수만 명의 관광객들이 그곳을 찾는단다. "비위생적이다"는 내 말에 진희씨는 "외국에서 그 나라 문화를 알려면 (한국식당을 찾을 것이 아니라) 현지 식을 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었다.

중식으로 주문한 나시고랭이란 음식. 우리의 볶음밥과 비슷했다.
 중식으로 주문한 나시고랭이란 음식. 우리의 볶음밥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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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을 위해 찾은 행사장 2층 복도에 위치한 식당. 메뉴판을 보고 우리나라의 볶음밥과 비슷하게 생긴 음식을 주문했다. 차이가 있다면 삶은 돼지고기 몇 조각 얹어 놓았다는 것. 밑반찬도 없다. 딸랑 밥 한 접시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뭔가 허전하다. 물이 없다. 주위를 돌아보니 모두 밥만 먹는다. 물은 인근 가게에서 별도로 사 마셔야 한단다. 불평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면 또 옆에 앉은 진희씨는'현지 문화의 이해부족' 어쩌고 하겠지.

여름밖에 없는 나라에서 겨울옷을 파는 사람들

여름밖에 없는 나라에서 겨울옷을 판매하는 코너다. 연일 장사진을 이루었다.
 여름밖에 없는 나라에서 겨울옷을 판매하는 코너다. 연일 장사진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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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2일째, 전체 분위기 파악을 위해 행사장을 돌았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몰려든 관광객. 말레이시아 현지인을 비롯해 인근 싱가폴, 인도네시아, 태국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다수인 듯 보였다.

각 국가의 코너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홍보를 할까. 최대 규모의 부스를 차린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차려 입은 사람들이 예의를 갖춰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옆에 홍보코너를 마련한 대만은 자체 공연을 열면서 관광객들의 이목을 잡는다.

일본인 홍보 전시관
 일본인 홍보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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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별 운영 방법도 다양하다. 부스 앞에까지 나와 홍보물을 흔들며 나눠주는 모습은 난장판을 방불케 한다. 고객은 세워두고 편안히 앉은 자세로 홍보하는 또 다른 나라 코너는 다소 고압적인 분위기가 풍긴다. 과거 우리나라 관공서를 연상케 했다.

이에 비해 고객들을 의자에 앉히고 자신들은 선 자세로 설명하는 일본인들. 탁자를 가운데 두고 고객과 눈높이를 맞추어 가며 상담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은 말레이시아 관광회사 직원들이다. 이런 대규모 행사에 익숙해서일까. 고객과의 친밀감을 강조했다.

winter time. 겨울옷을 파는 코너다. 코너 이름이 아닌 브랜드 명이란다. 겨울이 없는 나라에서 겨울옷을 판다? 흥미롭다는 생각에 '화천 산천어축제'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한국 관계자냐고 되묻는다. 축제 담당자라고 말하자 종업원은 "과거엔 일본 삿포르 눈꽃 축제 때문에 호황을 누렸는데, 요즘엔 한국 스키장과 산천어축제 때문에 매출이 크게 신장되었다"며 반긴다.

홍보기법. 홍보물에 연필을 끼웠더니, 삽시간에 바닥이 났단다.
 홍보기법. 홍보물에 연필을 끼웠더니, 삽시간에 바닥이 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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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물이 다 떨어져 가는데요."
"뭔 소리야. 아침에 많았었잖아."

3000부나 되는 홍보물이 이틀만에 다 떨어졌단다. 어제까지만 해도 남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었는데, 2일만에 바닥이 났다. "어떻게 했기에?"라고 묻는 내게 진희씨는 문의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홍보물을 가져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에 호수문화권 주최 측에서 준비한 볼펜을 홍보물에 끼워주자 삽시간에 동이 났단다. 공무원 경력 1년 남짓한 막내직원의 지혜에 새삼 놀랐다.

"이 관광 홍보물 어떻게 생각하세요?"
"종이의 질이 좀 떨어진다. 내용은 뭐 그게 그거 아닌가..."

옆 일본 부스에서 가져온 홍보물을 보면서 진희씨가 내게 한 질문이다. 나는 관심 없다는 투로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다'는 식의 무성의한 대답을 했다.

"자 보세요. 우리가 가져온 건 금년 1월 축제 때 만든 영문 팸플릿이잖아요. 당연히 신선도가 떨어지죠. 근데 일본사람들이 만든 것 보세요. 순전히 이곳 관광객들을 위해 만들었죠?"

막내직원 이진희씨는 홍보 중 관광객들로부터 기념사진 제의도 많이 받았다. 자신이 동남아에서 먹히는 얼굴이기 때문이란다.
 막내직원 이진희씨는 홍보 중 관광객들로부터 기념사진 제의도 많이 받았다. 자신이 동남아에서 먹히는 얼굴이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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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니 그렇다. 우리 일행이 가져온 다수의 관광홍보물들은 '우리는 이런 게 있다'는 식의 자랑 일색인데, 일본의 경우는 달랐다. 쿠알라룸푸를 기준으로 일본 나리타공항까지 몇 시간 걸리고 그곳에서 버스를 이용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등 6일간의 관광 일정을 사진과 함께 소개해 놓았다.

팸플릿 또한 코팅지가 아닌 일반 용지를 사용했다. 내용이 중요하지 종이의 질이 뭐가 중요하느냐는 것이 진희씨의 말이다. 25년이 넘는 경력의 공무원이 이제 1년 남짓한 막내직원에게 제대로 한방 먹었다. 

later, '레이따'로 발음해도 통합니다

"저것 좀 보세요. 어쩜 저렇게 썼을까."

무엇을 본 걸까. 진희씨는 밖을 가리키며 깔깔대며 웃는다.

"경찰을 Police라고 쓰는 게 맞잖아요. 근데 polis라고 썼잖아. 안 웃겨요?"

하긴 그랬다. 전날 본 택시에도 'teksi'라고 쓰여 있었고, 식당 간판도 'restaurant'가 아닌 'restoran'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우리 안내를 맡은 한국관광공사 직원에게 물었다.

"말레이시아는 언어는 있는데 문자가 없었던 국가입니다. 1941년 말레이시아를 정복한 영국은 통치가 필요했겠죠. 원래 있던 말레이시아 말에 알파벳을 붙이다 보니 저런 현상이 나타난 겁니다."

스펠링 하나라도 틀리면 큰일 난 것처럼 따지는 우리다. 왠지 polis(폴리스), teksi(택시), restoran(레스토랑)이라고 쓰여진 투박한 글귀에 정감이 갔다.

레스토랑이라 표기한 간판이 흥미롭다
 레스토랑이라 표기한 간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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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말레이시아 관광객 유치를 위해 현지 메이저급 여행사 관계자를 화천으로 초청한 적이 있었다. 술과 어울린 만찬자리. 귀엽게 생긴 여행자 여직원에게 화천 전통 막걸리를 권했더니 "레이따" 그런다. 무슨 말인지 몰라 다시 한번 술잔을 건넸다. 또 "레이따"라는 말을 한다.

"이따가 받는다고 하잖니..."

아 '~ later!' 옆에 있던 정갑철 화천군수는 그 말을 어떻게 쉽게 이해했을까.

동남아 특히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영어를 잘한다. 상점 종업원들도 거리낌 없이 영어를 쓴다. 그런데 그들의 영어는 촌스러울 정도로 투박하다. 물을 마시고 싶어 '워러~ㄹ'이라고 하면 못 알아 듣는다. 그냥 '워터'라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 발음을 한다. 그런데도 그곳을 방문한 미국이나 영국 등 영어권 사람들이 불편함을 못 느낀단다.

우리는 어떤가. 최대한 혀를 굴려 연음을 구사해야 영어를 잘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외국인들은 한국관광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불편하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투박한 영어지만 세계인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나라. 원어민을 닮아야 한다고 어설프게 혀를 굴려 말하지만 전달력이 부족한 나라. 어느 것이 옳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 이곳에 화천의 겨울을 팔자.
▲ 쿠알라룸푸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 이곳에 화천의 겨울을 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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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 여기에 없는 우리의 가을과 겨울을 팔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3일간의 관광홍보를 모두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번 관광전에서의 소감을 묻는 내게 진희씨는 '겨울을 팔자'는 말을 한다. 맞는 말이다. 산, 호수 등은 동남아 일대엔 지천이다. 계절적 차이를 보이는 가을 풍경 한 폭과 한겨울의 얼음낚시가 이들에게 최고의 상품일 수 있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화천군청 관광기획 담당입니다.



태그:#화천, #쿠알라룸푸, #말레이시아, #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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