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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서울 을지로의 한 시중은행에 내걸린 전세자금대출 광고판.
 지난 8월 서울 을지로의 한 시중은행에 내걸린 전세자금대출 광고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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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8월까지 <에듀머니>는 서울 시민 가계빚 실태조사를 위해 시민 903명에게 설문을 실시했다. 서울시민 중 '빚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했다. 조사 결과 가장 심각한 대목은, 소득이나 직업과 상관없이 다중 채무자가 10명 중 6명이라는 결과이다. 저소득층의 빚은 예상대로 심각했는데, 이미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생계형 연체자'로 전락하는 상황도 드러났다.

조사 대상자 중 60%에 가까운 58.7%가 다중 채무 보유자였다. 다중 채무 보유란 세 군데 이상의 금융기관에 빚이 있다는 뜻이다. 세 군데 이상의 금융기관에 실제 대출 계약은 4개, 5개 혹은 그 이상 일 수도 있다. 가령 카드사에 빚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라도 금융사는 하나이지만 빚은 여러개인 경우가 많다.

가계빚 실태조사 결과... '끔찍'

보통 카드사들이 소비자들에게 카드론 등의 대출을 해줄 때 300만 원씩 쪼개서 대출해주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혹은 현대카드, 신한카드 등 카드사 종류 별로 여러 개의 대출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흔하다. 따라서 금융기관 수만 따져 다중 채무자라 구분해도 실제 채무자들의 상태는 더 나쁠 수도 있다.

채무자들의 적지 않은 수는 대출계약서와 통장을 들여다 보지 않고 자신이 어디에 얼마를 빚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의 빚 규모를 모른다니, 그것이 말이 되느냐라고 물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빚은 악마와 같아서 하나 둘 늘어날 때마다 사람의 혼을 빼놓는 경향이 있다.

이아무개씨의 사례를 통해 빚의 무서움을 들여다 보자. 어느날 이모씨 부부에게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이직을 하고, 때마침 셋째를 낳게 돼 집이 좁게 느껴지는 지극히 평범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그 평범한 일들은 초저금리의 공짜로(?) 보이는 빚의 마력에 빨려 들어가게 하고, 기어이 극단적인 불행을 껴안게 만들었다.

이씨 부부는 살고 있던 집을 팔고 새집으로 이사 가기 위해 2008년 초 평수 넓은 아파트를 프리미엄까지 얹어주고 분양 받았다. 주택 가격 상승 차익에 대한 기대 혹은 욕심은 없었다. 가족 수가 많은 게 집을 넓힌 이유다. 새 아파트 입주 전까지 살고 있는 집을 팔 수가 없었다. 당장 팔면 입주 전까지 전세를 살아야 하는데, 전세 구하기가 만만치 않기에 매각을 조금 미뤘을 뿐이다.

당시 주택 거래는 전혀 문제 없어 보였다. 언론에서도 연일 '부동산 불패'를 이야기했고, 이명박 새 대통령은 부동산 관련 무거운 세금도 완화해 주는 분위기였다. 그 탓에 부동산 시장에는 언제나 온풍만 불 줄 알았다. 중개업소에서도 더 오를 것이 뻔한데 지금 팔면 손해라며 입주 전까지 버티라고 권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졌다. 불안했지만 생각보다 위기가 빨리 지나갔다. 새 집 중도금을 열심히 빚으로 해결하다 2010년 새 아파트에 입주할 할 날이 다가왔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살고 있는 집이 팔리지 않았다. 잔금까지 치르고 빚이 3억9000만 원이 생겼다. 의도치 않은 2주택자가 되었다. 아파트 한 개를 월세로 주고, 세를 받아 이자 일부를 해결하고 있지만 부족하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옮겨 수입이 줄었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통장을 발급받고 보험 약관대출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자 비용은 점점 늘어나고 신용카드 결제일과 담보 대출 결제일마다 식은 땀이 났다. 결국 카드 결제금액이 벅차기 시작하고, 은행에서 친절하게 권하는 리볼빙 결제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결제금 부담은 줄었지만 카드 한도가 점점 바닥이 났다. 카드 한두 개를 더 만들었다. 다시 결제금이 부족해지고 연체하는 카드가 한두 개 발생했다.

이런 와중에도 담보 대출은 차압이나 경매가 무서워 연체를 못한다. 집은 여전히 팔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때마침 카드사에서는 이 부부에게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카드론으로 천천히 나눠 갚으라며 권한다. 카드론을 받았다.

이자 1% 대출은 과연 괜찮을까요?

20% 넘는 고금리 제2금융권 대출만 5개 생겼다. 상담을 할 때는 빚이 10개로 불어나 있었다. 부채를 파악하는 데에만 꼬박 1시간 가까이 걸렸다. 금리는 담보 대출과 마이너스 대출을 제외하고 모두 20%가 넘는다. 상담 이후 고금리 대출을 없애고 가계 소비 지출을 상상 이상으로 줄이지 않았다면 캐피탈과 저축은행, 대부업 등으로 빚은 더욱 늘어났을 것이다. 늘어날 때마다 그 대출의 형태는 더욱 지독한 것으로 하나둘 쌓인다. 결국 기존 빚을 갚기 위해 더 높은 금리 대출로 빚 돌려막기라는 감옥에 갇히는 것이다.

은행에서 상담 중인 소비자들.
 은행에서 상담 중인 소비자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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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세 군데 이상의 금융기관에 빚이 있다면,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면서 빚 돌려막기를 할 가능성이 크다. 모 대부업체 광고처럼 가끔 급하고 귀찮아서 지하철이 아닌 택시 타는 것과 같은 사치가 아니다. 39%의 빚을 편리함 때문에 잠시 이용할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채무자들은 이미 대부업 대출만큼 편리하면서 금리가 높은 '잔인한 대출'을 잔뜩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대로 채무자 10명 중 6명이 세 군데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렸고, 제2금융권을 이용한다고 밝힌 사람도 전체 대상자 중 55.7%였다. 그리고 그 중 77%가 다중 채무자였다. 또한 대부업 대출 이용자의 약 70%가 다중 채무자였다. 따라서 택시 타듯 고금리 대출을 쓰고 빨리 갚는 광고 속 철없는 행동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 대부업 대출은 다른 여러 빚 때문에 숨막히듯 생활하다 추심에 대한 공포 탓에 어쩔 수 없이 이용하는 빚 돌려막기, 빚의 먹이사슬 맨 마지막에 있는 최악의 포식자일 뿐이다.

10명 중 6명이 세 군데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다중 채무자로 전락하고, 빚의 먹이사슬에 삶을 빼앗겼을지 모를 상황임에도 정부는 여전히 한가하다. 금리 1%라는 미끼로 국민에게 다시 한 번 빚내서 집을 사라고 호도한다. 물론 위 사례의 이씨에게는 정부의 이런 대책은 반가울지 모른다. 당장 집을 팔 수 있는 호재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의 대책으로 또다른 이아무개씨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미 상위 소득자 10명 중 7명 이상이 빚을 갖고 있고, 이번 조사 결과 담보 대출자들조차 10명 중 8명이 담보 대출 외 신용대출을 추가로 갖고 있는 게 드러났다. 빚이 없는 나머지 3명이 무리한 빚을 내서 집을 산 후 바로 빚 돌려막기의 대열에 합류하거나, 이미 빚이 있는 사람들이 추가로 빚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정부의 대책은 '폭탄돌리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전세 대출을 끼고 있는 세입자들이 1% 금리, 세금 면제 등 정부의 빚 마케팅에 마음이 흔들리는 모양이다. 현 정부는 기어코 빚으로 가계 경제가 무너지는 걸 지켜볼 작정인가보다.


태그:#러시앤캐시 광고, #1%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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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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