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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회 방송하는 <팟캐스트 윤여준> 중 '윤여준 칼럼' 전문을 <오마이뉴스>에 지상 중계합니다. [편집자말]
국민 대통합을 내걸고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지금까지 9개월 동안 그와는 정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사건과 그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의 은폐 의혹, 그리고 국군 사이버 사령부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 등으로 여야가 극한 대결을 계속해 오는 동안 박 대통령은 거의 침묵으로 일관했다.

국군 사이버사령부 불법 선거개입 의혹 관련 야당 질의가 이어진 1일 국회 국방위의 국방부 종합 국정감사에서 옥도경 국군 사이버사령관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답변하는 옥도경 사이버사령관 국군 사이버사령부 불법 선거개입 의혹 관련 야당 질의가 이어진 1일 국회 국방위의 국방부 종합 국정감사에서 옥도경 국군 사이버사령관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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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정보기관과 군의 대통령 선거개입은 그야말로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이다.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건에 대해서는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분노했던 박 대통령이 정작 국가정보원과 군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매우 무책임한 태도이다.

여야 간의 극한 대결은 드디어 대선 불복과 헌법 불복 시비로까지 번졌다. 그야말로 '불복' 정국이다.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우리 정치는 국민 대통합은커녕 오히려 국민 대분열로 치닫고 있는 양상이다. 이 사태의 중심에 국정 최고 책임자인 박 대통령이 있다. 무엇보다 국정원과 군의 개입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대통령 선거는 박 대통령 자신이 당선된 선거였다. 또 박 대통령에게는 국회와의 견제와 협력을 통해 국정을 원활하게 추진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박 대통령은 아무리 원치 않더라도 지금의 국정 혼란사태의 복판에 서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이 사태가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태도로 일관하면서 이를 여야 간의 정쟁으로 몰아가려는 모습을 보여 왔다. 나쁘게 말하면 일종의 꼼수 정치로서 국민의 지지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그동안 현 정권에 우호적인 논조를 펴오던 <조선일보>가 지난 26일 자 강천석 주필의 칼럼을 통해 현재 상황을 IMF 때보다 더 심각한 위기라고 진단하고 있어서 관심을 끌었다.

IMF 사태는 경제중심의 단일 위기였다면 지금은 정치 논란이 경제, 복지문제와 얽히고 거기에 안보, 외교, 사회적 이슈들이 얹혀 굴러가며 몸집을 불리는 복합 위기라는 것이다. 이 칼럼은 또 새 정부 출범 이후 이 나라 정치는 매듭 하나 제대로 푼 게 없다면서 새 매듭을 만드는 바보 정치에 골몰해 왔다고 비판하고 있다.

지금의 한국 정치를 바보 정치라고 이름 지었다. 매우 예리하고 정확한 진단이다. 이러한 복합 위기를 과연 '바보 정치'로 극복할 수 있겠는가? 안 될 것이다. 그러면 왜 박 대통령은 국정의 파행을 방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언론에서는 정쟁만 일삼는 여의도 정치로부터 초연한 입장에서 경제, 외교(세일즈)만 챙기는 민생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안보와 경제 챙기는 지도자 부각...  과거 권위주의 시절부터 자주 썼던 수법

사실 이런 방법은 과거 권위주의 시절부터 청와대가 자주 썼던 수법이다. 야당의 비판을 여당의 대응을 통해서 정쟁화함으로써 정치인들은 늘 싸움만 한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주는 반면에 대통령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안보와 경제를 챙기는 훌륭한 지도자라는 모습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의 눈가림이 성공한 사례가 별로 없다는 것을 우리 정치사가 증명해준다.

박 대통령이 경제와 민생을 챙기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정치를 외면하거나 무시한 채 경제와 민생을 살리고 외교적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금 국회에는 100여 건이 넘는 경제 활성화 법안이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국회에서 이들 법안이 제때에 통과되지 않으면 정부의 경제 활성화 대책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여야 간의 극단적 대치 상황 속에서 경제 활성화 법안이 국회에서 제때 통과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이유가 오로지 야당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국정의 궁극적 책임은 대통령이 짊어지는 것이다.

외교는 내치의 연장이다. 어떤 외교 정책도 국회와 국민의 동의 없이는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미국은 한·미·일 3자 동맹을 강화해서 중국을 포위하려고 하고 있다. 이것이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회귀정책의 알맹이이고 최근 미국의 국무·국방장관이 동경에서 일본의 집단 자위권 행사를 공식적으로 지지한 배경이다. 만일 한국이 미·일의 대중 포위 정책에 앞장서는 경우 중국은 어떤 형태로든 외교적, 경제적 보복을 하려 들 것이 분명하다. 우리의 안보, 경제면에서의 대 중국 의존도로 봐서 이것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국은 한마디로 제국이다. 제국주의는 갔으나 제국은 있다(NIBE-Not Imperialism But Empire). 제국은 자신들의 국익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힘이 약한 나라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국제 정치의 오랜 법칙이다.

그러면 한국 외교는 앞으로 미·일과 중국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것이 현명한가? 이러한 외교적 도전과 난관을 헤쳐나가려면 외교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이것은 야당의 협력 없이 가능한 일이 아니다. 외교정책은 초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원론적 주장에 대해서 헌법 불복을 내세우는 야당이 순순히 응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과거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2000년 6·15 선언 후 민족문제는 초당적 과제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당시 극심한 여야 대결 구도 속에서 야당인 한나라당의 협력을 얻는 데 실패했다.

결국, 심각한 남남갈등을 불러와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던 일을 지금도 기억한다. 국민 대분열을 가져온 바보정치로는 박 대통령이 중시하는 안보도, 경제도, 민생도, 외교도 그 어느 것도 성취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이것은 따지고 보면 박 대통령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국회를 경시하고 야당을 무시하는 민주국가의 운영원리를 크게 벗어난 박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방식이 가져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국민 대분열 가져온 바보정치, 박 대통령 통치방식이 가져온 결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일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열린 '2013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일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열린 '2013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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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국민에게 약속했던 대로 국민 대통합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 국민 대통합의 정치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국회와 여야 정당을 존중하고 국민과의 원활한 소통을 통해 국민 의사를 수렴하고 통합하는 민주적 국정 운영이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 정치과정이다. '민주주의는 과정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반대자까지 포용하는 탕평인사가 통합정치의 핵심이다.

최근 단행된 일련의 PK중심 인사는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약속했던 대 탕평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이런 식으로 인사를 하면 박 대통령이 평소 그토록 강조하는 원칙과 신뢰는 무너지기 쉽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이자 정치적 스승인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꼭 배워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탕평인사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63년 제 5대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인 윤보선씨에게 약 15만 여 표 차이로 가까스로 이겼다. 자연히 정권의 정통성이 크게 흔들리게 됐다. 일종의 정치적 위기를 맞은 셈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정치적 위기를 탕평인사로 돌파했다. 당시 자신의 가장 강력한 반대자라고 할 수 있는 동아일보사의 최두선 사장을 국무총리에 임명한 것이었다. 정말 사람들의 의표를 찌른 아주 극적인 인사였다. 지금으로 치면 박근혜 대통령이 한겨레신문사 사장을 국무총리에 기용한 격이다. 이 탕평인사의 효과는 매우 컸다.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방탄인사라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대통령 선거 직후에 조성된 정치적 위기 상황을 잘 극복해낼 수 있었다.

윤여준 <팟캐스트 윤여준> 진행자.
 윤여준 <팟캐스트 윤여준> 진행자.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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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링컨 대통령도 탕평인사의 유명한 사례를 남겼다. 대통령 당선된 후 첫 내각을 구성할 때, 자신의 반대파 인사들을 국무장관, 재무장관 같은 요직에 임명했다. 사람들이 이것을 두고 '팀 오브 라이벌즈(Team of Rivals)' 라고 했다. 경쟁자들로 구성된 팀이라는 뜻이다. 이 '팀 오브 라이벌즈'는 탕평인사의 모범적인 사례로 지금도 자주 거론된다. 링컨은 이런 탕평인사를 통해서 국민통합의 정치를 일궈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일 전남 순천에서 열린 전국새마을지도자 대회에서 미래지향적인 시민의식 개혁을 강조했다. 옳은 말이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시민의식을 미래지향적으로 바꿔야 한다는데 동의하지 않을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시민 의식을 개혁하자면 박 대통령 자신의 의식부터 먼저 미래지향적으로 바꿈으로써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박 대통령께 간곡히 부탁드린다. 이제부터라도 제발 국민 대분열의 '바보정치'에서 벗어나 국민 대통합의 민주정치를 펼쳐주십사고.

덧붙이는 글 | 윤여준 기자는 전 환경부 장관이며, <팟캐스트 윤여준> 진행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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