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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8일 박근혜 대통령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유라시아 각국 간 물리적 장벽을 허물고 SRX(실크로드 익스프레스)를 실현이 핵심이다. 사실 이 구상은 이미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 내놓은 '동북아 물류허브' 전략과 차이가 없다. 동어반복이다. 차이가 있다면, 노무현 정부는 전략 실현을 위해 남북 철도 및 도로 연결에 적극적이었다는 것이며, 박근혜 정부는 오리무중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대륙진출이라는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희망적 구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기에 공염불로 들린다. 자연스럽게 북한과의 교통로 특히 철도연결 협력이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남북 통일의 관점에서도, 대륙 진출의 관점에서도 북한 철도와의 연결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북한 철도와 관련한 몇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북한 철도의 현주소를 알고자함이다. 고립되지 않기 위해 반드시 연결되어야만 하는 북한철도는 과연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실상은 어떠한지를 독자에게 가볍게 들려주고자 한다.

글은 총 두 편으로 나누어 싣는다. 1편은 북한 철도의 태생과 성장과정, 그리고 현재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2편은 북한 철도의 낙후성, 철도사고, 철도 정책 변화 그리고 향후 우리의 과제에 초점을 맞춘다. - 기자 말

1899년 9월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27km)이 개통되었다.
▲ 경인선 개통식 1899년 9월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27km)이 개통되었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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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막이 떨어져 나갈 듯한 요란한 기적소리와 함께 생전 처음 보는 무쇠 덩어리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귀를 막으며 혼비백산 놀라 자빠진다. 하얀 옷을 입은 그들에게 저 거대한 쇳덩이는 그야말로 '거대한 마귀'였다.

긴 왜도(倭刀)를 옆구리에 찬 일본 순사들이 우왕좌왕하는 그들을 향해 핏대를 세우며 거칠게 소리친다. 그 무시무시한 무쇠 덩어리 안에서 셔터를 눌러대며 현장을 취재하던 푸른 눈의 서양 기자는 차창 밖의 그런 광경을 생경한 듯 쳐다보고 있다. 1899년(광무3) 9월 18일 오전 9시의 일이었다. 노량진(서울)과 제물포를 연결하는 경인선. 한반도에 철도가 놓이고 기차가 들어온 것이다.

분단의 상징이자 역사 단절의 상징이 된 철도

5년 뒤, 1904년. 경성과 부산을 연결하는 경부선이 개통되었고, 경성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경의선이 1906년, 경성과 목포를 연결하는 호남선이 1911년, 경성과 원산을 연결하는 경원선이 1914년에 걸쳐 차례로 건설 되었다. 그렇게 근대 기술의 총아인 철도는 한반도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그러나 한반도에 하나둘 생겨난 철도는 근대의 서막을 주체적으로 열어젖힌 자발적 태동이 아니었다. 일제에 의해 수탈과 군수물자 수송을 목적으로 건설된 한반도의 철도는 태생적으로 부끄러운 시원을 갖고 있다. 더욱이 한반도를 남북으로 관통하던 철도는 분단으로 인해 혈맥이 끊겨버린 온전하지 않은 반신불구로 지금껏 버텨왔으며, 그것은 분단의 상징이자 역사 단절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해방 이후 분단에 의해 각기 다른 정치체제와 경제 조건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터전을 일궈온 남과 북은 교통수단과 물류구조의 형성에 있어서도 다른 양상을 보였다. 남한은 도로 우위·철도 부수의 교통정책 집행을 통해 철도보다는 도로 중심의 교통구조를 형성시켜 나갔으며, 북한은 여객 약 60%(남한 4%), 화물 약 90%(남한 11%) 이상을 철도에 의존 하는 이른바 주철종도(主鐵從道)의 철도 중심의 교통구조를 형성해 나가게 된다.

북한은 1970년대까지 꾸준히 철도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였고 노선의 확장, 철도의 전철화 등 철도발전을 위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북한철도 상태는 그야말로 형편없다. 만신창이다. 선로는 과거 소련과 중국에서 들여온 제품으로 규격이 제각각이며, 그것도 얼기설기 구색만 갖춰놓았고 여기저기 이빨이 빠지고 마모가 심하다. 침목 또한 일부 구간의 콘크리트 침목을 제외하고 아귀가 맞지 않는 통나무를 억지로 끼워 맞췄다. 심지어 그러한 엉성한 통나무 침목조차 없는 구간도 허다하다.

선로와 침목 형편이 말이 아니니, 다져진 자갈은 사치다. 때문에 북한 당국이 발표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철도 사고와 인명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나마 철도 조직과 운영이 철저하게 군사적이어서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한 지도 모르겠다.

6·25 전쟁과 북한의 철도 수송작전

해방 이후 북한의 지도부는 기초생산 시설과 산업기반시설 등의 생산동력을 국가가 소유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8월 10일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가 산업, 체신, 교통운수, 은행 등 주요산업에 대한 국유화 법령을 공포하였다. 그리고 주요 산업시설은 무상몰수로 국유화되었다. 철도도 당시 국유화된 분야 중 하나였다. 국가가 직접 철도를 통제하게 된 것이다. 국가는 몇 년 후 전쟁에서도 국유화 된 철도를 철저하고 요긴하게 전쟁에 이용했다.

당국은 모든 철도의 일반화물 수송을 제한하고 군수품 수송만 하도록 전환했다. 그리고 폭격에 대비해 주간 열차 운행을 금지하고 야간운행을 원칙으로 정했다. 또한 각 철도 지구별로 지구수송지휘부를 구성하여 즉각적인 조치를 자체적으로 취하도록 했다. 아울러 임시급수조와 열차검사조를 54개소에 파견해 전시철도복구연대와 전시철도복구지휘국을 신설해 파괴된 철도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도록 했다. 이후 임시 의정부철도분국과 개성철도분국을 조직하여 경원선과 경의선을 단절구간 복구에 주력하였고, 1950년 7월 17일 '남반부해방지역임시철도관리국'을 조직하여 이남지역 철도수송전반을 총괄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북한 철도의 군사적 성격이 형성되어 갔다. 1950년 9월 군사위원회 회의를 통해 결정 35호인 '전시철도운수사업강화대책에 대하여'를 채택했다. 이후 전시철도복구지휘국을 정규군대체제로 조직하여 예하에 300여 명으로 조직된 철도공작대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각 보선구(현재의 철길대)에 이동수리대와 이동수리대를 통합하여 두 개의 공무공작대를 구성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조직된 단위에는 군대와 동일한 규율을 적용하였으며, 그 해 11월 1일부터 철도군사복무증을 교부하기도 하였다. 용의주도하고 주도면밀한 대응이었다. 이렇게 갖춰진 조직과 운영으로 낙동강 전선이 형성되고 UN군의 인천상륙 전까지 이남지역 물자와 인력 수급을 보장하였다. 휴전 이후인 1956년, 철도사령부는 군 조직으로서의 임무를 완료하고 조직과 일꾼을 민간조직인 건설대로 이관됐다. 하지만 당시 조직되고 형성된 철도분야의 군사적 조직형태와 규율, 운영원리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군사적 성격을 띠고 있는 북한의 철도

북한 철도운영은 군대식 규율과 조직명, 직함도 군대식으로 표기하고 있다.
▲ 화물 수송중인 북한열차 북한 철도운영은 군대식 규율과 조직명, 직함도 군대식으로 표기하고 있다.
ⓒ 김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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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북한 철도성은 15개 처, 1개의 선로국, 2개 수리공장, 5개 지방철도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철도역은 크게 기술역, 집중화물역, 간이역, 신호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기술역'이란 기관차, 화차, 객차의 수리 및 보수를 담당하는 역이며 '집중화물역'은 화물에 대한 하역장비를 설치 대단위 화물처리를 담당하는 역을 말한다. 현재 북한에는 80여개의 집중화물역이 있으며, 지하자원과 임산자원 수송수요가 많은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에 밀집해 있다.

철도관리국은 평양, 라선, 청진, 함흥, 개천의 5개소가 있으며, 각 철도관리국 산하마다 별도의 분국을 두고 있다. 개천철도국은 신의주, 정주, 강계 분국을, 함흥철도국은 단천, 신북청, 고원 및 원산 분국을, 평양철도국에는 북청, 남포, 신성주, 평성 및 순천 분국을, 청진철도국에는 백암, 고무산, 남양, 두만강, 혜산 분국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철도성은 자체적으로 철도건설 조직인 '철길건설대'를 산하에 두고 있으며, 비공식적으로 청년동맹의 청년돌격대, 탄광 및 협동농장 노동자, 교직원 및 학생이 동원되어 건설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전 인민적 운동,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18차 전원회의, 정무원 결정 제51호, 제52호).

철도성 산하의 철길건설대는 각 철도총국(북부, 동부, 서부)별로 건설대가 조직되어 있으며, 세부적으로는 레일, 침목교체, 노반의 자갈 교체, 곡선구간 직선화공사 등의 작업을 맡고 있는 청년기계화기동중대가 있고, 전철화 공사를 전담하고 있는 '전기철도건설연대', '철다리(철교)건설연대'와 '차굴(터널)건설연대'도 별도로 조직되어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철도 건설에서 큰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이른바 '청년돌격대'는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청년동맹)' 산하 조직으로 청년근로자의 경제, 건설분야의 노동력 투입을 위해 결성된 조직이다. '청년돌격대'는 다양한 성격과 형태로 구분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또 다양한 분야에 동원되고 있다. 대표적인 돌격대로는 '속도전청년돌격대'가 있는데 그동안 1500km 이상의 철도 부설공사 및 전철화공사에 참여한 바 있다.

청년돌격대 역시 준군사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어, 지휘부, 여단(연대), 대대, 중대 등의 군대식으로 편성되고 전 대원에게 군계급 부여되고 있다. 현재 2만개 이상의 청년돌격대가 조직되어 있으며 총 대원수는 180만 명 수준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밖에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인민군 예하 조직들도 철도관련 노동에 동원되는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북한 철도는 군사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전쟁 당시 군사조직으로 운영되었던 철도사령부가 건설대로 이관되었다가 1970년에 철도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다시 복원되어 예하에 4개 철도관리국을 관할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북한군대의 철도건설 투입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경의선·동해선 연결 관련 남북협력사업에서 북한당국은 군사분계선과 민통선 지역 등 접경지역의 공사를 군에서 실시하도록 한바 있다.

덧붙이는 글 | 김선철 기자는 북한학을 전공하였으며, 현재 한국교통연구원에서 북한교통, 남북교통협력 관련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태그:#북한 철도, #북한, #유라시아니셔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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