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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학교에서는 '장학'이라는 말 대신 '컨설팅'이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분별하게 용어만 바꾼 건 아닌지 몹시 의문스럽습니다. 굳이 '컨설팅'이라는 외국말을 가져다 써야 하는 것인지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러하더라도 전국의 모든 학교는 컨설팅을 받아야 합니다. 제가 속한 서울형혁신학교 유현초등학교도 지난 13일 컨설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4년간 소속되어 있던 학교에서 받았던 그 어떤 컨설팅보다 의미있고, 재미있고, 흥미로운 컨설팅이었습니다.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어떤 분께, 어떤 내용으로 컨설팅을 받을 것인지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몇몇 분으로 축약되고, 교사들의 의견을 모아서 3년 차 서울형혁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서울강명초등학교의 이야기를 듣자는 쪽으로 결정을 하고 의뢰했습니다. 우리학교가 2년 차이기 때문에 2년 차를 보내면서 3년 차를 준비하자는 취지로 그렇게 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11일 학교 컨설팅을 위한 컨설턴트와 의뢰자 간의 사전협의회가 있었습니다. 담당 교사가 전체 교사에게 컨설팅을 받았으면 하는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달라고 요청을 하고 그 내용에 맞게 사전협의회가 진행되었습니다. 관할 교육청 장학사가 사전협의회에 참석하겠다고 연락을 해놓고 오지 않은 것이 흠이었습니다. 사전협의회를 통해서 컨설팅을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어떤 내용으로 진행되어야 할지 진지하게 논의되었고, 그런 사전 작업의 결실을 오늘 보게 된 것입니다.

컨설팅을 받기 전과 후가 더 중요합니다. 오늘 논의된 내용을 어떻게 학교 교육과정 속에 구체화시킬 것인지, 구체적인 실천 내용들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 '컨설팅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컨설팅을 받기 전과 후가 더 중요합니다. 오늘 논의된 내용을 어떻게 학교 교육과정 속에 구체화시킬 것인지, 구체적인 실천 내용들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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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로 오신 이부영(서울강명초) 선생님은 '컨설팅 몇 시간을 통해 컨설팅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컨설팅 하는 학교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데 짧은 기간 동안 가능하지도 않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게 현실이다, 그리고 여기 유현초등학교의 어려움은 여기 계신 선생님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서로 토론을 하는 식으로 진행하려고 한다'는 것으로 서문을 여셨습니다.

구구절절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학교의 문제는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문제부터 시작해야 그것을 풀어나갈 수 있는 힘도 있습니다. 외부에서 푹 찔러서 이거 이렇게 하라고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다양한 구성원들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서 연령, 담당학년에 따라 작위적으로 모둠구성을 하였고, 그렇게 네다섯 분씩 모여서 모둠토의를 시작했습니다. 그냥 토의를 하라고 하면 어려우니까 요즘 많이 쓰는 기법을 하나 도입했습니다. 접착식 메모지를 활용해서 주제에 맞는 각자의 의견을 다양하게 쓰고, 같은 내용별로 분류를 해보는 방식입니다. 세 가지 논의 주제가 주어졌습니다. 첫째는 우리학교가 혁신학교로서 '잘하고 있는 일' 둘째는 우리학교가 혁신학교로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일', 셋째는 부족한 부분 중 한 주제를 골라서 그렇게 된 이유와 채워나갈 방법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여기저기 활발한 모둠토의가 진행되었습니다. 1시간이라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정도로 선생님들의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5학년, 4학년, 3학년, 1학년, 교과전담교사가 배치된 모둠에서 사회를 보면서 모둠토의를 진행했습니다. 연령대는 40대, 30대, 20대 3명으로 젊은 편이었지만 우리학교 연령 구성이 워낙 그렇습니다. 우리학교가 혁신학교로 잘하고 있는 점에서는 주저함 없이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우리학교가 혁신학교로 부족한 점에서는 학교 시설의 낙후, 돌봄이 필요한 아이에 대한 총체적인 돌봄의 부족, 학부모들의 학력과 성적에 대한 왜곡된 인식, 학교의 교육철학이나 방향에 대한 전체적인 합의 부족 등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내용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모둠별로 이렇게 잘하는 것은 분홍색에 부족한 것은 노랑색에 써서 모아보고, 내용별로 묶어 보았습니다. 한 눈에 우리의 성과와 나아갈 길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 우리학교가 혁신학교로 잘하는 것과 부족한 것 모둠별로 이렇게 잘하는 것은 분홍색에 부족한 것은 노랑색에 써서 모아보고, 내용별로 묶어 보았습니다. 한 눈에 우리의 성과와 나아갈 길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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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9월 중간 발령을 받고 오신 20대 선생님이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혁신학교가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중간발령을 받고 들어왔다. 강원도에서 있다 와서 문화적인 차이도 컸다. 강원도랑 진짜 많이 다르기 서울의 특색도 있고 혁신학교의 특색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걸 잘 모르고 들어와서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학년부장님이 파이팅해 주셔서 열심히 따라 하고 있다. 혁신학교가 어떤 철학을 갖고 어떻게 시작됐고 어떻게 나가야하는 건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신규, 복직하신 선생님들도 다 그런 생각이 들것 같다. 뭔가 소외되고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다. 잘 아시는 분이 나서서 하시는 거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작년 1월과 2월 혁신학교를 처음 시작하면서 논의하고 정리했던 과정에 함께 하지 못했던 부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아, 우리가 이런 부분들을 정말 잘 챙기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바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올해 신규발령을 받은 20대 남자 선생님께도 의견을 물었습니다.

"별 생각없이 살아서 잘 모르겠지만 교과전담 교사실에서 선배 선생님들이 많이 말씀해주셔서 그냥 그런 거 많이 듣고 그런 걸 통해서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선배님들이나 남교사 모임 같은 공식적인 것보다 비공식적인 유대관계를 통해 많이 알아가고 있다."

"집단지성이라고, 서로의 이야기 속에 답이 있다고 공식적인 교사다모임이나 동학년회의만큼 중요한 것이 비공식적인 모임들이다. 지난해, 혁신학교 1년차였을 때는 교과전담교사로만 8년을 있다가 담임을 맡게 되고, 생전 처음해보는 학년부장까지 하면서 살얼음을 걷는 심정으로 일더미에서 지냈기 때문에, 교사소모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동학년 모임 이외의 소모임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여유가 생겨서 '비고츠키 수다모임'을 만들어서 함께 하자고 선생님들께 쪽지도 보내고 했는데 많은 분들이 함께 하시지는 않았다. 다른 선생님도 배움의공동체 수업 연구를 같이 하자고 제안하시기도 했다. 지금도 그 모임을 하고 있지만 그럴 때는 '내가 헛다리를 짚고 있나, 경력이 많지 않은 교사들과 내가 고민하는 내용이 너무 다른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저는 저 나름의 고민을 이렇게 피력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학교에 초임발령을 받아 경력 4년차 선생님은 이런 얘기를 하셨습니다.

웃으며 긍정해주고, 심각하게 지적하고, 잠시 자기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모두 그렇게 서로의 생각을 듣고 나누며 우리의 문제를 보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나누게 되었습니다.
▲ 모둠토의를 하는 1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졌습니다. 웃으며 긍정해주고, 심각하게 지적하고, 잠시 자기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모두 그렇게 서로의 생각을 듣고 나누며 우리의 문제를 보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나누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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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에 발령받은 첫 학교인데 혁신학교가 아니었다가 혁신학교가 되니까 그 차이가 피부가 느껴진다. 그 전에는 교사들이 회의를 할 때 다른 일반 회사의 회의 분위기와 무척 비교가 되었다. 경직되어 있고 유연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있을 때 얘기를 꺼내는 게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경력이 있으신 분도 의견을 나누는 게 어렵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그건 우리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교직사회의 문제점인 거 같아서 안타깝기도 하고 어렵기도 했다. 비공식적인 유대관계가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들이 다 개인사가 있고 그런 관계를 맺기가 어렵고 시간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젊은 사람들부터 그런 기회를 갖으면서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2년 전에 젊은 처녀총각교사모임에서 우리학교 한 선생님께 학급운영 연수를 받은 적도 있다. 그런 자리를 만들어서 터놓고 얘기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 선배교사들이 제안하기보다는 후배들이 '어떤 면에서 도와주세요, 어떤 도움이 필요해요' 이렇게 요청하면 좋겠다."

"다른 학교에 있다가 3년 전에 여기에 왔을 때 너무나 경직된 분위기가 너무 힘들었다. 일자로 배열된 직원종례 분위기에다 교장선생님 바로 앞이 내 자리로 지정되어 있어서 힘들었다. 일도 하시는 분만 열심히 하고 소수에게 집중되는 것을 보고 잘못 왔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혁신학교가 되고 나서 많이 발전되고 좋아지는 것을 본다. 그래서 나는 혁신학교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혁신학교를 잘 모르지만 동학년 선생님들을 통해서 자주 학년 모임을 하면서 소모임처럼 많은 얘기를 했다. 전체적인 자리에서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궁금증이 많이 해결되는 일이 많았다. 혁신학교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얘기를 한다 안한다를 떠나서 나는 긍정적이다."

교사 다모임 시간에 거의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서로 터놓고 이야기를 하니 답이 보이고 오해가 풀리기도 한다. 그렇게 모둠 토의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렸다. 모둠별로 논의했던 내용을 간단히 공유하고,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에 대해 이부영 선생님의 살아있는 경험담을 들었다.

어느샌가 슬쩍 들어와서 뒤에 서서 컨설팅 현장을 지켜보던 담당 장학사는 자리를 뜨고 우리는 내년에는 더 잘해보자, 이 컨설팅을 바탕으로 올해 교육과정 평가회에서는 좀 더 대안적인 내용을 구체화시켜보자는 마음을 모았다. 그래서일까? 컨설팅 자리를 떠나는 선생님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다.

덧붙이는 글 | 참교육실천과 교육혁신의 과정을 공유하고 싶어서 올리는 기사입니다.



태그:#서울형혁신학교, #서울유현초등학교, #학교컨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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