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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까만 산이냐구~! 구름전망대에 올라 기껏 단풍구경하고 왔는데 까만 산을 그려놨다.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대로 그리지 않고 생각나는대로 그린다. 눈으로만 보지 않고 마음으로만 본다. 열 살이 지나면 눈에 보이는대로만 그리려고 하고, 그러다 보면 스스로 그림에 자신이 없어진다. 똑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다.
▲ 전망대 옥상에 올라가서 나무들과 산을 봤다. 근데 왜 까만 산이냐구~! 구름전망대에 올라 기껏 단풍구경하고 왔는데 까만 산을 그려놨다.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대로 그리지 않고 생각나는대로 그린다. 눈으로만 보지 않고 마음으로만 본다. 열 살이 지나면 눈에 보이는대로만 그리려고 하고, 그러다 보면 스스로 그림에 자신이 없어진다. 똑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다.
ⓒ 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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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이 지났다는 것을 알리려고 하는 것인지 비와 함께 겨울이 성큼성큼 다가왔습니다. 찬 바람이 많이 불어 체감온도는 더 내려갔던 지난 화요일, 마지막 가는 가을을 잘 보내주려고 아이들과 함께 북한산이 올랐습니다.

우리 학교는 북한산 화계사 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서 언제든, 맘만 먹으면 아이들과 계곡까지 있는 숲에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화요일이면 생태공부를 도와주시는 나무 선생님, 무당벌레 선생님과 함께 모둠 지어 어김없이, 비가 오는 날에도 숲에 들어갑니다.

이번 주에는 북한산 둘레길에 있는 구름전망대까지 짤막한 등산을 하기로 했습니다. 늦가을이니 마지막 단풍을 보고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고, 또 겨울이 오는 숲의 모습을 담아보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5월, 더운 봄날에도 구름전망대에 올라 신록의 물결을 함께 보며 감탄을 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겨울이라니 조금 서운하기도 합니다.

너도 나도 나뭇잎을 모으며 산을 오른다. 앞만 보고 가지 않고 옆도 보고 뒤도 보고 위에도 올려다본다.
▲ 나뭇잎 5장씩 주워보세요. 너도 나도 나뭇잎을 모으며 산을 오른다. 앞만 보고 가지 않고 옆도 보고 뒤도 보고 위에도 올려다본다.
ⓒ 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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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 두 개씩 주머니에 넣고, 겉옷을 단단히 입고 출발합니다. 가는 골목길, 나무를 다시 살펴봅니다. 대추나무, 감나무, 앵두나무, 은행나무…. 지난 번에는 나무에 달려있던 잎들이 모두 길바닥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어른들은 '앞을 똑바로 보고 걸어' 하지만 생태 선생님들은 '걸어가면서 마음에 드는 나뭇잎 5장씩 주워봐'라고 하십니다.

아이들이 주운 나뭇잎은 그대로 공부거리가 됩니다. 같은 나무의 잎끼리 모아보기도 하고, 비슷한 크기끼리 모아보기도 하고, 비슷한 색깔끼리 모아보기도 하고, 무얼 닮았는지 상상해보기도 하고, 벌레가 가장 많이 먹은 잎을 찾아보기도 합니다. 이건 그대로 1학년 슬기로운생활 공부입니다.

평소에 듣지 못했던 작은 소리까지 들립니다. 이 새소리, 저 새소리 서로 다르다는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여름의 숲과 가을의 숲이 다르다는 것도 마음으로, 바람으로 느낍니다.
▲ 평상에 누워 고요히 눈을 감고 숲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평소에 듣지 못했던 작은 소리까지 들립니다. 이 새소리, 저 새소리 서로 다르다는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여름의 숲과 가을의 숲이 다르다는 것도 마음으로, 바람으로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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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길, 평상을 만나 잠시 누워보기도 합니다. 깊은 봄날에 누웠을 때 보았던 하늘과 이런 늦가을에 누웠을 때 보이는 하늘이 달라 보입니다. 나뭇가지들이 추워보이기도 하고 예쁘게 보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귀 기울여보기도 합니다. 봄날보다 가을날 귀 기울이는 깊이가 더 깊어졌습니다. 그만큼 아이들이 자랐습니다.

산에 오르다 다람쥐굴을 만났습니다. 돼지코처럼 구멍이 두 개 난 굴을 찾으라니 아이들이 다람쥐를 만난양 신이 나서 찾아봅니다. 빠알간 팥배나무 열매가 떨어진 것을 보고 하늘 위를 올려다보니 저 높은 곳에서 팥배나무 열매는 일광욕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열매들이 모두 산새들의 겨울양식이 된다는 걸 배웁니다.

두 개의 구멍으로 들락날락, 하늘을 보는 들창코가 아니고 아래를 향하도록 구멍이 나있는 다람쥐집.
▲ 돼지코처럼 생긴 다람쥐굴을 찾아보세요. 두 개의 구멍으로 들락날락, 하늘을 보는 들창코가 아니고 아래를 향하도록 구멍이 나있는 다람쥐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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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어가는 곳, 앉자마자 끝말잇기를 하며 놀자고 합니다. 시간이 부족하니 한 바퀴만 돌자하고 시작합니다. 이제 스스로 어떤 놀이를 할지 생각하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이제 이 마지막 계단들만 넘으면 구름전망대입니다.

얼마 오르지 않았어도 서울의 전경이 그대로 들어와서 구름전망대라는 이름이 붙은 곳을 오릅니다. 회색 투성이 아파트촌과 도시를 보고, 반대로 돌아서 울긋불긋한 북한산의 육중한 몸을 봅니다. 아이들은 '아름답다'고 합니다. 저는 그런 표현을 하는 아이들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주워온 나뭇잎 한 장으로 동물 배지를 만듭니다. 잎맥을 따라 자르고 꽃아 넣어 눈알을 붙여주면 여러 동물이 탄생합니다. 그걸 옷에 붙이고 좋아합니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주머니 속에 넣어온 감귤을 꺼내 먹습니다. 꿀맛입니다. 노래도 부릅니다.

제법 자랐습니다. 안내도를 보며 봉우리를 가늠해보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설명을 해주기도 합니다.
▲ 구름전망대에서 서울이라는 회색도시를 보는 아이들 제법 자랐습니다. 안내도를 보며 봉우리를 가늠해보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설명을 해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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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는 회색의 행렬입니다.
▲ 서울, 육중한 도시 끝도 없는 회색의 행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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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저 하늘이 파랗게 점점 깊어가면 마음 내 마음도 파랗게 어느 새 물들어요.
가을이 깊어져 갈수록 정말 아름다워. 내가 뭐든 될 수 있다면 가을이 될 거예요.

뒤돌아서면 보이는 북한산 자락은 아름다웠습니다. 아이들은 탄성을 지를 줄도 알았습니다.
▲ 뒤돌아서면 보이는 산 뒤돌아서면 보이는 북한산 자락은 아름다웠습니다. 아이들은 탄성을 지를 줄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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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햇살 넉넉히 받으며 먹는 귤은 꿀맛입니다.
▲ 귤도 까먹고, 노래도 부르고 가을햇살 넉넉히 받으며 먹는 귤은 꿀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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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주는 선물입니다.
▲ 나뭇잎 인형도 만들고 가을이 주는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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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길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 어렵습니다. 그래도 지난 봄날 내려갔을 때 우물쭈물 어쩔 줄 몰라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져 있습니다. 그만큼 자랐습니다. 오르던 길을 그대로 내려가지만 오르는 길과 같지는 않습니다.

다음날 아침, 단풍 구경 다녀왔던 것을 '즐거운 공부' 공책에 그림으로 그리거나 글로 씁니다. 한 아이가 전망대에 올라서 회색 도시가 아니라 산을 바라보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산이 모두 까맣습니다.

"00야, 산이 모두 까맸어?"
"네~! 녹색이랑 빨간색이랑 노랑색이랑 갈색이랑 모두 섞여 있었잖아요. 그거 섞으면 까만 색이에요."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갑니다.

빨간잎, 노랑잎, 초록잎을 섞어그리는 걸 주저하면 이렇게 그리게 됩니다. 이것도 아름답습니다.
▲ 꺼먼 산만 있는 게 아니라 무지개산도 있습니다. 빨간잎, 노랑잎, 초록잎을 섞어그리는 걸 주저하면 이렇게 그리게 됩니다. 이것도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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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국 방방곡곡에서 펼쳐지고 있는 참교육 실천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가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참교육실천 기사쓰기투쟁, 여덟번째 기사입니다.



태그:#서울형혁신학교, #서울유현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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