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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건너편 덕수궁 대한문 앞, 지난 4월 8일부터 225일간 매일 미사가 열렸습니다. 2009년 6월, 쌍용자동차에서 정리해고된 후 4년이 넘게 거리 투쟁 중인 해고자들을 위한 미사였지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전국에서, 그것도 자발적으로 모여 7개월 넘게 미사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225일간의 미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짚어봅니다. [편집자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아래 사제단) 주관으로 지난 4월초부터 225일 간 열린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과 이 땅의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미사'에서는 매일 강론(설교)이 열렸다. 때로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위로하며, 때로는 정부와 자본에 대해 비판한 사제들은 강론 내용을 사제단의 공식 블로그(링크)에 사진과 함께 올렸다.

#1. "돈이나 권력보다도 인간이 먼저임을 알려준 쌍용차 노동자들"
(4월 8일, 첫 번째 미사에서 나승구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신부)

서울 중구청 직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강제철거한 뒤 화단을 조성하고 있다.
이날 서울 중구청은 오전 6시경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1년 가까이 농성을 벌여온 쌍용자동차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기습철거했다.
▲ 서울 중구청, 쌍용차 분향소 철거 뒤 화단 조성 서울 중구청 직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강제철거한 뒤 화단을 조성하고 있다. 이날 서울 중구청은 오전 6시경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1년 가까이 농성을 벌여온 쌍용자동차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기습철거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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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를 위한 미사에 참여 중인 신부들의 모습.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를 위한 미사에 참여 중인 신부들의 모습.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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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쌍용차 분향소가 참혹하게 깨지고 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랐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열심히 힘을 키우면 저 무지막지한 공권력에 대항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더라도 기도는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열심히 마음을 다해서 기도를 하면 하느님의 뜻이 이곳에서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누가 우리를 이 자리에 손님으로 부른 것이 아니라, 사제단과 노동자들 서로가 서로를 불렀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이 자리를 지켜왔던 쌍용차 노동자들,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약한 사람들은 늘 그냥 그렇게 당하는 것이 세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법이나 돈, 권력보다도 인간이 먼저임을 알려주심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앞으로 이 고마움이 우리 모두의 삶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 "용서해주십시오, 말로만 정의를 찾는 척해서…."
(4월 23일, 비 오는 날 의정부교구 청소년국 김승범 신부)

우산을 쓰고 대한문 앞 미사에 참여하고 있는 수녀들의 모습.
 우산을 쓰고 대한문 앞 미사에 참여하고 있는 수녀들의 모습.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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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라고는 하지만 차츰 세상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저를 봅니다. 그러면서 여기 계신 쌍용차 형제·자매님들과 재능교육, 콜트콜텍 해고자 등 아파하는 분들에게 미안함을 느꼈습니다. 이제껏 제가 '하고 싶은 일'엔 충실했을지 몰라도 생명을 살리는, '해야 하는 일'에는 침묵했던 저를 바라보며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말로만 정의를 찾는 척해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고 다짐했지만 생명이 짓밟히는 진짜 가난한 자리엔 가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동안 관심 있는 척하면서 정작 그 필요한 자리에 참여하는 건 귀찮아하고 외면했습니다. 종종 대한문 앞을 지나면서도 용기가 없어서 마음으로만 응원한다고, 다가가지도 않고 짧은 눈길만 드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용서해주십시오. 이제라도 함께 하겠습니다. 작은 용기로 여러분 주위에서 작은 힘이라도 되겠습니다. 거창한 가르침이 아니라 예수의 따스함으로, 사랑으로 곁에 있겠습니다. 오늘 내리는 이 비를 같이 맞으며 버텨보겠습니다.

#3. "교회가 사회 문제에 무감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 그게 우리의 사명"
(6월 10일, 중구청이 대한문 분향소 강제 철거한 날, 의정부교구 화정동성당 김승연 신부)

대한문 미사에서 강론을 하고 있는 의정부교구 화정동성당 김승연 신부.
 대한문 미사에서 강론을 하고 있는 의정부교구 화정동성당 김승연 신부.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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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1월 서품을 받은 새 신부입니다. 저는 신학생 시절 어째서 교회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해본 적이 있습니다. 답은 간단했습니다. 그 까닭은 바로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당 문을 닫아걸고 신자들끼리만 그 안에서 행복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문을 열고 나가 세상의 아픔과 함께하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아픔과 함께하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게 바로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에 온 정신이 빠져 있으면 아무리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고통받아도 그들을 볼 수가 없습니다. 자기 이익만을 좇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윤리와 인권마저도 이익이란 이름 앞에서 무시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대한 악이 만연한 현실 앞에서 우리의 힘은 보잘것없어 보입니다. 쌍용차 사태 희생자들과 이 땅의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투쟁 역시 언제까지 계속돼야 할지, 우리의 작은 몸부림이 사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사실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비록 미약하게만 보여도 서로 연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4. "고통받는 국민을 제쳐두고 어떻게 행복을 말할 수 있는가"
(7월 2일, 작은형제회 관구장 기경호 신부)

…우리는 이제 쌍용자동차의 대량 해고 사태의 본질을 알고 있습니다. 상하이자동차가 고급 기술을 빼내가고 정부는 채권단의 문제를 빨리 해결하기 위해 바로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을 희생 제물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전례 없는 이 대량 해고 사태는 바로 사람을 자본의 밑에 두는, 그래서 사람을 도구화하고 수단화해 기업의 이익만을 앞세운다는 사실입니다.

경찰에 둘러싸여 미사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 수녀들의 모습.
 경찰에 둘러싸여 미사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 수녀들의 모습.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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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쌍용자동차 사태를 기업과 노동자들의 갈등 정도로만 여기며 방관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대선공약에서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했으면서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습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권력입니까? 고통받는 국민을 제쳐두고 어떻게 행복을 말할 수 있습니까. 사회적 약자, 또 약자가 아니었던 이들을 약자로 만들어버린 그 책임은 누가 질 수 있겠습니까.

정부는 경찰력을 동원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탄압할 것이 아니라, 겸허히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제라도 국정조사를 실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투쟁 속에서 신음하는 해고노동자들을 기억하면서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5. "오늘도 변함없이 대한문에서 꿈을 꿉니다"
(11월 5일,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서영섭 신부)

인간의 존엄한 가치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위해서, 모든 사람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꿈을 꾸는 사람이 잡혀가는 세상입니다. 지금은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외치면 붙잡아 가는 세상, 생명들이 서식하는 아름다운 구럼비를 지키고자 강정의 평화를 외쳐도 주민들을 잡아가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은 결코 희망찬 세상이 아닙니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쫓겨난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다시 돌아가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무시당하지 않고 존중받는 세상입니다. 최근 우리가 겪고 있는 시련들은 어쩌면 희망을 찾기 위한, 꿈이 이루어지기 위한 밑거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미련스럽다고 해도 희망의 거름이 되기 위해 우리는 계속 꿈을 꿀 겁니다.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을 위해 225일간 열린 '사람아 희망이 되어라' 미사에서 한 아이가 웃고 있다.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을 위해 225일간 열린 '사람아 희망이 되어라' 미사에서 한 아이가 웃고 있다.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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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변함없이 대한문에서 꿈을 꿉니다. 눈 앞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는 지금 이 순간, 대한문은 얼핏 고립된 섬처럼 보이지만 실은 오히려 세상에 희망을 전하기 위해 경계선을 허물고 있는 '희망의 섬'입니다.


태그:#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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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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