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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들도 다 커다란 스마트폰을 쓰던데..."

부모님은 자식들이 장성해 시간 여유가 생기자 노래교실이며, 등산이며 요기조기 '노는' 활동을 시작하셨다. 모임이 잦아져 종종 외출하시는데 엄마 손에 들려 있는 오래된 구형 휴대폰이 마음에 걸렸다. 아빠는 작년에 바꿔드렸는데 엄마도 사드린다고 하면 한사코 손을 저어대니... 내 마음대로 스마트폰으로 바꾸어 드렸다. 엄마는 바쁜 시간에 쓸데 없이 돈 낭비라 타박하셨지만 부랴부랴 안경을 찾아 쓰신다.

"엄마, 전화를 걸 때는 수화기 모양을 눌러"하니 "내가 해볼래" 한다. 휴대폰을 개통하느라 늦은 저녁을 먹으며 밥상 앞에 있는 엄마의 모습을 나와 아빠는 영화 감상이라도 하듯이 재미지게 구경했다.

"경희를 하고 싶은데... 'ㄱ' 다음에 어찌 해야 하니?" "엄마, 모음은…"하고 젓가락 든 손을 엄마 쪽으로 내미니 아빠가 나를 잡는다. "여보, 혼자 해봐. 네 엄마, 알려주지 않아도 곧잘 한다." 역시나 엄마는 채 1분도 안 되어 "어마, 이렇게 하는구나" 하며 웃는다.

엄마 아빠, 둥가 둥가 아기가 되었네

나이가 들면 부모가 자식 속을 썩인다고 했다. 엄마 아빠가 환갑이 넘어가니 이제는 부모님이 내 손을 타게 됐다.

아빠는 팥이 들어간 달콤한 빵을 좋아하시는데 가끔 팥이 없어 야채 고로케라도 사들고 가면 "나는 야채는 싫던데..."하고 살짝 토라지신다. "아빠 다음에는 꼭 팥 들어 있는 빵 사올게"하며 달래면 금세 좋아진다.

또 가끔 아빠가 모임에 나가면 엄마는 혼자서 라면을 드시는데 그럴 때마다 몸에 안 좋은 라면을 먹는다고 나에게 '혼쭐'이 나기도 한다. 자식 키우는 마음과 같겠냐마는 나는 부모님이 요즘 들어 부쩍 귀여워지고 부족한 건 없으신가, 탈나지는 않으셨나 하고 살피게 된다.

엄마 아빠가 그랬듯이 이제는 제가 키워드릴게요

엄마의 첫 문자, 액정 안에 엄마가 있는 것 같다.
 엄마의 첫 문자, 액정 안에 엄마가 있는 것 같다.
ⓒ 조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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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첫 카카오톡 대화,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아는 우리 엄마는 천재!
 엄마와 첫 카카오톡 대화,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아는 우리 엄마는 천재!
ⓒ 조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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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바꾸어 드리고 다음날 시험을 보러 간 나에게 엄마가 첫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받고 얼마나 기쁘던지 함박 웃다가 눈물이 찔끔 나왔다. 자음과 모음을 꾹꾹 눌러가며 틀리면 다시 지우고 또 다시 지우고 스마트폰 선배인 아빠의 도움을 받아가며 보냈을 문자를 보며 액정을 한참 만져보았다. 내가 처음 말을 배워 입을 뗐을 때 지금의 나처럼 부모님도 기뻤을까?

어렸을 때 할머니는 곧잘 그런 말씀을 하셨다.

"자식은 부모의 살을 떼어 먹고 큰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만큼 힘들고 고되게 자식을 키운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살을 떼어 줘도 모를 만큼의 사랑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 엄마 아빠가 내 손을 아주 아주 많이 탔으면 좋겠다. 점점 좋아지는 세상 더 좋은 보여드리고 더 좋은 걸 먹여 드리고 싶다.

그렇게 한들 살을 떼어낼 만큼의 부모가 키운 사랑만 하겠냐만은... 엄마 아빠가 나를 앞서 보내고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시간을 나와 함께 보내시길 바란다. 좋은 길 나쁜 길 이제는 내가 먼저 가보고 가려드릴 테니 내가 앞선 길 즐겁게만 걸어 오시길 바란다.

"엄마 아빠. 엄마 아빠가 그랬듯이 이제는 제가 키워드릴게요."


태그:#엄마, #아빠, #부모님, #사랑,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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