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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자들이 5년 만에 처음으로 '즐거운 설날' 기분을 맞고 있다. 창원 대림자동차공업(주)에 다니다 2009년 11월 정리해고됐던 12명의 해고자들이 그 주인공. 이들은 설날을 앞두고 '해고무효확인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해 '복직'이라는 희망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부산고등법원 창원재판부 제2민사부(재판장 김상환 부장판사)는 지난 24일 이경수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대림자동차지회장을 포함한 12명의 해고자들이 사측을 상대로 냈던 소송에서 "해고는 무효"라는 판결을 냈다.

"이번 설날은 떳떳하게 설 수 있게 됐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대림자동차지회 해고자들은 창원공단 내 대림자동차 정문 옆에서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해고자 복직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해고 무효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해고자들은 농성장 앞에서 모여 구호를 위치며 의지를 다짐하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대림자동차지회 해고자들은 창원공단 내 대림자동차 정문 옆에서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해고자 복직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해고 무효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해고자들은 농성장 앞에서 모여 구호를 위치며 의지를 다짐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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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자들은 경남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냈던 '부당해고 구제신청'에서 모두 졌고, '해고무효소송'의 1심 재판부인 창원지방법원에서도 졌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이 잘못됐다며 뒤엎는 선고를 내렸다.

해고자들은 29일 기준으로 해고 1519일을 맞았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창원 대림차 공장 옆에 컨테이너와 비닐을 설치해 놓고 농성하고 있는데, 29일까지 244일째 농성을 이어갔다.

항소심 승소 판결 뒤 이들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농성장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졌다. 농성장 주변에는 통합진보당·정의당·노동당 경남도당과 민주노총 경남본부·금속노조 경남지부 등에서 내건 '복직 촉구' 펼침막이 내걸려 있었다. 농성장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설날을 앞두고 해고자들은 마산 진동공원묘원에 묻혀 있는 옛 동지를 찾았다. 대림차노조 간부였던 고 김윤수(1999년 사망)씨 무덤으로, 고인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996년 해고·속된 뒤 풀려나와 지내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경수 지회장은 "설날을 앞두고 있는 데다가 옛 동지를 찾아서 결의도 다질 겸해서 참배했다"고 밝혔다.

해고자들은 그동안 힘든 생활을 해왔다. 대부분 가정의 자녀들이 학생으로 돈이 많이 들어갈 시기였다. 이들은 생계비 마련을 위해 다른 사업장에서 잠시 일하거나 막노동을 하기도 했다.

어떻게 지냈느냐는 물음에 한 해고자는 "밥은 먹고 살았다"며 다소 여유 있게 대답하기도 했다. 그는 "그동안 노동위원회와 1심에서 모두 졌는데, 항소심에서 해고가 잘못됐다는 판결이 나와 다행"이라며 "이번 판결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가족들도 기뻐했다. 다른 해고자는 "무엇보다 가족들이 더 좋아한다"며 "그동안 농성하면서 어렵게 지내왔는데, 해고 무효 판결이 난 뒤부터 가족들의 분위기도 달라졌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안심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대법원에 상고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해고자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대법원에 상고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또 법정 싸움을 해야 한다"며 "하루빨리 복직됐으면 하는 바람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해고자는 "대법원까지 가면 회사가 또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르겠다,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을까 우려가 되기도 한다"며 "그러나 복직의 희망이 생겨 이번 설날은 모처럼 가족과 친인척들한테도 떳떳하게 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대림자동차지회 해고자들은 창원공단 내 대림자동차 정문 옆에서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해고자 복직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대림자동차지회 해고자들은 창원공단 내 대림자동차 정문 옆에서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해고자 복직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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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수 지회장은 "회사는 아직 대법원 상고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는데, 설날 연휴 뒤 회사에 공문을 보내 복직 여부에 대한 입장을 물을 것"이라며 "회사가 법원에서 해고무효라고 한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룹 본사가 있는 서울에 가서 상경투쟁을 하는 등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륜자동차(오토바이)와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대림차는 회사 경영 위기라는 이유로 2009년 193명을 해고, 10명을 무급휴직 처리했다. 금속노조 지회 전·현직 간부 47명이 정리해고·무급휴직됐는데, 이들 중 19명은 복직했고 16명은 명예퇴직했다. 이중 12명은 해고무효 투쟁을 계속해왔다.

항소심 법원 판단은?... "선정 기준 객관성 결여"

항소심 법원이 대림차의 노동자 대량해고가 무효라고 한 이유는 사측의 해고 대상자 선정 기준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부산고등법원 창원재판부 제2민사부는 선고 뒤에 낸 판결문을 통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해고는 무효가 아니다"고 했던 1심 판결을 취소한 항소심 재판부는 "정리해고는 비록 사측에게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고, 사측이 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과 성실한 협의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해고 대상자의 선정 기준이 합리적이거나 공정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라면서 "그러므로, 정리해고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무효"라고 밝혔다.

근로기준법에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요건'으로 '경영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사용자가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 '사용자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해고 기준과 그 대상자 선정' '노조나 근로자 대표한테 50일 전 통보와 성실한 협의'를 하도록 규정해놨다.

법원은 대림차 정리해고의 경우, '긴박한 경영상 필요'와 '해고 회피 노력'에 대해서는 사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법원은 '해고 대상사 선정 기준'에 대해서는 사측의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사측의 해고자 선정기준을 보면 '근로자 보호'와 '기업이익' 측면을 40대 60으로 반영했고, 근로자 보호측면은 재취업가능성(20점), 부양가족수(15점), 결혼 여부(5점), 기업이익 측면은 인사고과(40점), 근태(10점), 징계(5점), 포상(5점) 등이다.

이 가운데 법원은 기업이익 측면의 인사고과 항목에 대한 평가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인사고과 점수는 상대평가 방식인데 "사원들의 3년간 인사고과 점수 평균을 1등부터 순서대로 서열화한 뒤 개인별 등위가 전체 순위에서 차지하는 비율에 인사고과 배점(40점)을 곱하는" 것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대림자동차지회 해고자들은 창원공단 내 대림자동차 정문 옆에서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해고자 복직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대림자동차지회 해고자들은 창원공단 내 대림자동차 정문 옆에서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해고자 복직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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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해고대상자 선정기준 합계 100점 중 인사고과 항목이 전체 기준의 40% 정도 반영돼야 하는 것을 넘어서고, 상대평가 내지 순위에 따라 서열화된 점수로 사실상 인사고과 항목에 의해 해고대상자가 결정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이어 "정리해고 대상자를 정함에 있어 근로자 보호와 기억이익 측면 4대 6 비율로 반영해 적용하겠다는 대원에서 벗어나 기업 이익측면만을 사실상 반영하는 셈이어서 객관적 합리성과 사회적 상당성을 결여한 기준"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측이 해고 대상자를 통보할 때 근거가 된 '순위표'의 해고대상자 선정기준은 합리적이거나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고, 인사고과 점수의 산정 자체의 객관성과 공정성도 충분히 담보돼 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태그:#대림자동차, #부산고등법원, #해고무효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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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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