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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 가족을 모두 데리고 출발한다. 어머님이 병원을 퇴원한 후 한달에 한번쯤 다니던 시골집을 이번엔 두달만에 간다. 오랜만에 가족을 데리고. 시골에 가서 할일이 있다. 요즘 사월 하순이라 쑥들이 먹기에 전성기를 이루고 있으니 쑥을 뜯어 절편을 만들어 먹어 볼까 한다.  아련한 추억이 있어서다.

"민주 아빠. 시골 어머님한테 가서 뭘 할거야."
"음 . 요즘 쑥들이 제철이잖아. 쑥뜯어 절편을 만들어 볼려고."
"절편 . 왠 뜬금없이 절편이야."
"갑자기 녹색의 절편이 먹고 싶어지네. 뭐 . 특별한 이윤없고 쑥이 건강에 좋잖아."
"그래. 민주랑 나랑 셋이서 쑥뜯으며 힐링좀 해봐야 겠네. 좋지."
"민주는 시험기간이 얼마 안남았는데도 시골가자고 하니 잘 따라오네.  아주 예쁜딸이야."

이렇게 대화를 나누며 의정부에서 부여까지 새벽에 출발하여 오전 9시쯤에 도착했다. 아. 역시 고향 시골은 참 좋다. 태어나 20여년을 보낸 곳이니 눈에 보이는 마을 뒷산 ,앞에 두줄기 제방 , 넓은벌 그리고 묵묵히 고향을 지키는 초목들이 나의 가슴에 애뜻함과 따뜻함으로 다가 온다. 마을 입구에 드어서니 옆의 밭에서 일하는 낯익은 아저씨 , 아줌마가 보인다.  

"창기 아버님 아니세요."
"오 강이구나.  어머님 보러 왔어."
"예."
"어디살아."
"의정부요."
"그럼 아침 일찍 출발했겠네."
"예. 창기는 요즘 뭐하세요."
"그냥 그렇게 살고 있지뭐."
"그럼 수고하세요. 그만 갈게요."
"그래."

20년 전쯤에 고향을 떠나 대전으로 이사가 살았는데 땅은 이곳 시골에 있어, 주말마다 내려와 밭농사를 짓는다고 어머님이 창기아버지에 대하여 말하는 소리를 예전에 들은 기억이 있다. 만나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반갑긴 하군.

무공해 청정지역에서 뜯은 잘자란 쑥이다.
▲ 무공해 쑥 무공해 청정지역에서 뜯은 잘자란 쑥이다.
ⓒ 한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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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해 커피한잔 하고. 좀 쉬고 있으니 아줌마 둘이 시골집 쪽으로 온다.

"강이야. 나 눈군지 알아."
"아. 세관이 어머님 이시죠. 요즘 세관이랑은 소식 주고받고 있어요. "
"그럼 나는."
"아.아. 혹시 효숙이 어머님."
"아냐. 형만이 엄마야."
"예. 저쪽 양지편 사셨던 형요."
"그래."
"강이야 반갑다. 전도도 하고 너가 있는거 보고 왔어. 너의 엄마는 교회에서 자주 본다."  

하면서 세관이 엄마가 나에게 허그를 한다. 연세가 상당히 되셨을 텐데 생각보다 엄청 젊어 보이고 쇼킹한 것은 신세대들이나 좀 하는 허그를 70대쯤 되보이는 친구 엄마가 하니 몸만 아니라 생각도 젊으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세관이는  같은 마을에 살고 함께 초등학교 중학교를 보낸 친구로  잘 알았지만, 30년 전쯤 옆마을로 이사를 가 본 적이 없다가 세관이 어머니를 처음 보는 것 같다.  두달만에 와선지 , 봄이어서 인지 산과 들에 생기가 넘치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표정도 사랑과 활기가 넘치는 구나.

쑥을 뜯으러왔으니 쑥을 뜯으려고 딸과 마누라를 찾으니 아침에 새벽같이 출발한다고 졸린지 모두 방으로 들어가 자고 있다. 그럼 혼자라도 가야지.

쑥을 뜯으러 어디로 갈까 하다가 예전엔 뒷마을 양지편으로 갔는데 그쪽은 가는 길목에 벌키우는 양봉장이 있어 가기 무섭고 예전에 소띠끼러 자주 가던 작은 신작로로 가위와 개사료포대를 들고 나선다. 얼마전까지는 칼로 쑥을 뜯었는데 마누라가 말하길, 교회다니는 아줌마가 그러는데 쑥은 가위로 뜯어야 깨끗하고 빨리 뜯는다고 나에게 말한 것이 생각난다. 그래서 고기구워먹을때 고기 자르는 가위를 쑥을 뜯는데 사용해 보니 말그대로 깨끗이 잘 뜯긴다.

큰신작로는 포장되어 있지만 차들이 많이 다녀 깨끗하지 못할 것 같아 이왕이면 깨끗하고 무공해 쑥을 찾아 다리 건너 작은 신작로로  간다. 여지저기 쑥을 찾아 작은 신작로 길을 헤메보니 옹기종기 쑥들만 모여있는 곳이 있고 억세풀과 같이 생존경쟁하는 쑥들도 있다. 뚝길 양옆으로 모두 불에 탄 흔적이 보이는데 아마 벌레 잡으려고 겨울에 억새풀을 태웠나보다. 쑥과 억새 그리고 독사풀이라고 알고 있는 괴상한 모양의 풀 등이 공평하게 풀태워진 뚝에서 서로 빨리 크려고 생존경쟁을 하고 있다.

뚝길 위에는 포장이 안되어 있기에 큰신작로와는 다르게 풀이 자라는데 쑥이건 잡초건 억새건 모두가 아주 조그많다. 뚝길 옆에 있는  쑥이나 억새에 비해 열배 정도 작아 보인다. 아마 뚝길옆은 겨울에 붙태웠기 때문에 불탄 재를 영양분으로 하여 쑥들이 엄청 크게 자란 것이다.

비록 같이 불탄 재를 밑거름 삼아 자랐지만 어떤 곳의 쑥은 통통하고 키도 큰 쑥무더기가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의 쑥은 삐쩍 마르고 키만 엄청크게 자란 쑥무더기도 있고 어떤 쑥들은 난쟁이인지 뚝길위의 쑥같이 조그맣다. 환경이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리라.

우리 인간의 세상도 이와 같지 않은가.  어떤이는 잘난 집안에 태어나 평생 호의호식하고 어떤이는 운동에 재주가 있고 어떤이는 별짓 다해도 가난에 허덕이고. 이것이 어찌 개인의 능력만  탓할 일인가.  인간 세상이 평등해져야  하는 이유이다.

한포대 쑥을 뜯어 가져오니 어머님과 딸, 마누라 모두 놀란다.

"쑥 뜯는 재주 좋네. 민주아빠."
"재주는 무슨.  재수지. 요즘 백날 찾아 봐야 이런 쑥은 구경하기 힘들 거야. 운좋게 잡초태운 곳을 발견해 잘 자란 쑥을 뜯어왔지 . 열심히 다듬어."
"예써. 나도 다듬기라도 잘해야 쑥떡먹을 자격있지. 민주야 다듬자."

그러면서 어머니, 마누라, 민주 열심히 담소하며 다듬는다. 다 다듬고 가마솥에 쑥을 데치고 행구고 , 잘 불린 쌀과 함께 마정리에 있는 떡방앗간으로 간다. 떡하는 거 보고 싶다는 딸과 어머님과 함께 .

떡방앗간에 이르자 아련한 옛추억이 되살아 난다. 30년이 넘었으리라. 초등시절 어느 찬바람 치던 겨울이.

"강이야 방앗간 가서 고추좀 빻아 오너라."
"예."

어머니 심부름으로 강이는 잘말린 고추를 한포대 들고 마정리 방앗간에 간다. 방앗간에 도착하니 뽀얀 떡찌는 스팀김이 방앗간안에 자욱하고 떡빼는 아저씨와 아줌마는 내일 잔치에 먹을 거라며 떡찌는 떡집 주인과 정담을 나누고 있다 .

고추가루 빻으러온 강이는 배고프던 참이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찜통에 눈이간다.

떡집 주인은 강이에게 떡 다 빼고 고추 빻아 줄테니 좀 기다리라 하고는 떡찌던 찜통을 떡빼는 기계에 붇는다.

떡기계에선 먹음직스런 넓적한 녹색의 쑥떡, 절편이 줄줄줄 나오고 주인은 싹둑싹둑 잘라낸다.

강이는 침을 꼴각꼴각 삼키며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줄줄줄 흘러나오는 절편을 보고있다.

나오는 떡을 싹뚝싹뚝 자르던 떡집 주인은 맛보라며 떡주인 아저씨 아줌마에게 건낸다. 떡주인은 맛있게 떡을 먹더니 떡집 주인에게 더 달라고 하고는 떡을받아 ,자신이 먹지않고 떡빼는 광경을 보고있던 강이에게 먹어보라며 준다.

강이는 아저씨의 사려깊음과 따뜻한 마음에 감동하며 김이 솔솔나는 맛있는 절편을 먹는다. 그 맛도 아저씨의 따뜻한 마음 만큼이나 감동적이다.

사십대 중반의 강이가 아직도 잊지 못하는 기억이 생생한 어릴적 떡방앗간의 추억이다. 봄꽃 만발한 사월 하순. 쑥을 보면 생각나는 떡방앗간의 추억이 있어 오늘 고향 마을의 떡방앗간에 간다. 어머니와 딸을 데리고.

무공해 쑥으로 만든 쑥떡을 자르고 있다.
▲ 쑥떡 절편 자르는 중 무공해 쑥으로 만든 쑥떡을 자르고 있다.
ⓒ 한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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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절편, #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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