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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 들녘에서 보았던 당산나무에도 어떤 전설이 담겨 있을 겁니다
 증평 들녘에서 보았던 당산나무에도 어떤 전설이 담겨 있을 겁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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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고 있는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 보면 대개의 경우 자치단체에 소속돼 있는 자연부락과 유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을 이름과 유래를 보면 전설이나 설화처럼 까마득한 이야기도 있고, 사연처럼 애틋한 내용을 담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필자가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고향마을 이름은 '사오랑'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같은 '사오랑'을 쓰는 한자와 유래는 제각각입니다. 현재 마을에 세워져 있는 마을 유래비에는 舍五郞(사오랑)이라고 쓰여 있고, '랑자가 들어가는 벼슬을 한 다섯 형제가 살던 동네여서 마을 이름이 사오랑'이 됐다고 그 유래를 적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2013년) 군에서 발간한 군지에는 '史五郞(사오랑)'으로 돼 있으며 '史씨 성을 가진 이가 오랑이라는 벼슬을 한데서 유래'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1896년 이후에 발간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지도서>에는 '沙吾郞(사오랑)'으로 돼 있습니다.

같은 악기라도 누군가가 잘 불면 듣기 좋은 소리가 되지만, 누군가가 잘못 불면 소음이 됩니다.
 같은 악기라도 누군가가 잘 불면 듣기 좋은 소리가 되지만, 누군가가 잘못 불면 소음이 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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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보다 훨씬 앞서 발간된 <충청도읍지(1801년 발간 추정, 서울대규장각 소장)>와 <선산임씨족보(1766년(영조4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왕실도서관 자료각 소장)>에는 각각 '沙五郞(사오랑)'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같은 '사오랑'인데 한자 표기는 물론 유래조차 제각각이니 혼란스럽습니다. 이런 결과는 마을에서 공부 좀 했다는 얼치기 학자들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마을 이름을 한자로 써야 하는 순간에 봉착했을 때, 체면 때문에 차마 모른다는 말을 하지 못해 우선 생각나는 한자로 표기를 하고 이에 맞춰 말장난을 하듯 유래를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문헌들이 발행된 연도순으로 본다면 당연 '沙五郞(사오랑)'이 맞습니다. 게다가 '沙五郞(사오랑)'으로 기록하고 있는 문헌들은 요즘처럼 쉽게 얻을 수 있는 어떤 인쇄물이 아닙니다. 글자 하나하나를 붓으로 쓰고, 한 글자 한 글자를 목판에 새겨서 찍어낸 목판 인쇄물이며, '충청도'라는 기관과 '선산임씨'라는 한 문중에서 후세에 전하기 위해 의중을 모으고 신중을 가해 기록한 글자(이름)들이니 결코 오자일리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청주권과 증평 지역에 흐르고 있는 역사와 전설, 설화처럼 전해지는 유래 모음

<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글 연규상, 그림 강호생, 사진 송봉화/샘터/2014. 4. 25/1만 5000원)
<들길, 이야기 따라 걷다>(글 오미경, 그림 손부남, 사진 정광의/샘터/2014. 4. 25/1만 5000원)
<물길, 세종대왕 꿈을 담다>(글 연지민, 그림 손순옥, 사진 문상욱/샘터/2014. 4. 25/1만 5000원)
 <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글 연규상, 그림 강호생, 사진 송봉화/샘터/2014. 4. 25/1만 5000원) <들길, 이야기 따라 걷다>(글 오미경, 그림 손부남, 사진 정광의/샘터/2014. 4. 25/1만 5000원) <물길, 세종대왕 꿈을 담다>(글 연지민, 그림 손순옥, 사진 문상욱/샘터/2014. 4. 25/1만 5000원)
ⓒ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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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권으로 출간된 <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글 연규상, 그림 강호생, 사진 송봉화/샘터), <들길, 이야기 따라 걷다>(글 오미경, 그림 손부남, 사진 정광의/샘터), <물길, 세종대왕 꿈을 담다>(글 연지민, 그림 손순옥, 사진 문상욱/샘터)는 청주시문화재단 기획으로 청주와 증평 일대에 은연중 똬리를 틀고 있는 역사와 설화, 전설처럼 전해지는 마을 유래 등을 발굴하고 정리해 이야기 보따리처럼 꾸린 내용들입니다.

세 권의 책은 각각 '숲길'과 '들길' 그리고 '물길'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지만 공통주제로 '이야기로 만나는 세종대왕 100리'를 꼭짓점으로 해 출발합니다.

<물길, 세종대왕 꿈을 담다>, 세종대왕이 123일나 머물렀던 초정 그리고 운보

<물길, 세종대왕 꿈을 담다>(글 연지민, 그림 손순옥, 사진 문상욱/ 샘터)는 세종대왕이 2회에 걸쳐 123일 동안이나 머물며 초정약수로 치료를 하던 초청과 세종대왕의 어진을 그린 운보 김기창 화백이 여생을 보냈던 운보박물관 등을 글로 설명하고 그림과 사진으로 보여주며 풀어내고 있습니다.

초정인근에 있는 운보박문관
 초정인근에 있는 운보박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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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 김기창 화백이 여생을 보낸 초정 운보 박물관
 운보 김기창 화백이 여생을 보낸 초정 운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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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123일씩이나 초정에 머물렀던 건 초정약수의 효험 때문입니다. 서울에서 자란 김기창 화백이 초정 인근으로 내려와 노후 여생을 보낸 이유도 그렇습니다. 누구나 한 장 정도는 소지하고 있을 세종대왕 초상, 만 원짜리 지폐에 나오는 세종대왕이 바로 김기창 화백이 그린 것입니다.

운보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많은 의견과 요청을 들어주기에는 근거가 너무 없고 역사적 기록화라는 점에서 존경 받는 인물로 이상화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논란이 됐던 초상화는 이후 성군의 이미지가 잘 드러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 <물길, 세종대왕 꿈을 담다> 83쪽

우리가 세종대왕 모습으로 알고 있는 모습이, 실제로는 김기창 화백이 이상적 인물로 그린 이미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초정과 운보박물관 외에도 구라산 일대에 자리하고 있는 전설과 설화 등을 마을 유래에 꿰어 두루 들려주고 있습니다.

<들길, 이야기 따라 걷다>, 읽다보면 어느새 듣고 있는 듯한 느낌드는 구어체

<들길, 이야기 따라 걷다>(글 오미경, 그림 손부남, 사진 정광의/샘터)는 증평 들녘 일대에 서려있는 전설과 설화, 유래 등을 옛날이야기를 해주듯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맘 때를 전후해 찾아가면 증평 들녘에서 들을 수 있는 들노래, 증평 지역에서 전해지고 있는 민요들을 상쇠가 두드리는 꽹과리소리만큼이나 생생하게 연상시켜 줍니다.  

요즘도 이맘때를 전후해 증평엘 찾아가면 농부들이 논매기를 하며 부르는 들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요즘도 이맘때를 전후해 증평엘 찾아가면 농부들이 논매기를 하며 부르는 들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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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어체로 쓰여 있어 읽다 보면 어느새 듣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어려서 할머니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거나, 초등학교를 다닐 때 옛날이야기를 해주던 선생님이 계셨다면 그 분위기가 떠오를 만큼 분위기 생생한 구어체입니다. 듣고 있는 느낌으로 읽다 보면 어느새 김득신도 알게 되고 김치의 운명이 바뀌게 된 이유도 알 수 있습니다.   

1년여 전,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전문 포털 리얼히스토리에서 회원 3015명을 대상으로 일 주일 간 '가장 존경하는 조선시대 왕'을 묻는 질문에서 '광해군'이 일등으로 꼽힌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책에서는 광해군을 학정을 일삼은 패륜 군주로 묘사하고 있어 조금은 혼돈을 가져다 줍니다.

요즘도 이맘때를 전후해 증평엘 찾아가면 농부들이 논매기를 하며 부르는 들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게 농부들이 부르는 들노래였을 겁니다. 하지만 경제구조가 바뀌고 농사일 또한 대부분이 기계화된 요즘에는 일부러 시간을 내 연습하고 또 연습해가며 계승해가고 있다는 게 솔직한 설명이 될 것입니다.    

<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 상당산성길 걸으며 되새기는 세종대왕 100리길

<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글 연규상, 그림 강호생, 사진 송봉화/샘터)는 상당산성과 그 주변에 주저리주저리 얽혀 있는 전설과 설화 그리고 유래 등을 나란히 걸으며 들려주듯이 세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옥천지역에서는 할머니부터 며느리까지 3대 과부에게 솥뚜껑을 씌워놓고 둘러서서 필사적으로 물을 끼얹었습니다. 곡성,, 옥구, 장성 지방에서는 동네 부인들이 인근 동산에 올라가 일제히 오줌을 누었습니다. 신성한 제단이 더럽혀지면 천신이 분함을 참지 못하고 곧바로 비를 내려 더러워진 성소를 깨끗이 씻어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 <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 140쪽

이것은 곧, 백성을 다스리는 목민관의 허물이거늘, 재앙을 직접 목민관에게 내리지 않고, 가뭄을 내려 떠돌아다니는 백성들을 굶어 죽게 하신다면, 이것이 어찌 길흉화복을 관장하시는 신께서 차마 하실 일이겠습니까?
- <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 143쪽

<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은 상당산성과 그 주변에 주저리주저리 얽혀있는 전설과 설화 그리고 유래 등을 나란히 걸으며 들려주듯이 세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은 상당산성과 그 주변에 주저리주저리 얽혀있는 전설과 설화 그리고 유래 등을 나란히 걸으며 들려주듯이 세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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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지도자들은 하늘이 하는 일조차 자신의 탓으로 돌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지도력 하에서 벌어지는 일조차 남 탓으로 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 작금의 상황과 너무도 대조적어서 더더욱 아쉬울 뿐입니다.

각각의 책들마다 그림과 사진을 함께 싣고 있어 시각적인 자료 또한 아주 넉넉합니다. 청주시문화재단 기획으로 청주와 증평 지역에 전해지고 있는 역사와 설화 그리고 전설과 유래 등을 발굴해 체계적으로 정리해 엮은 내용이기에 읽을거리로는 물론 지역 문화를 잘 간추려 정리한 커다란 결과라 생각됩니다.

그냥 읽을거리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 청주와 증평지역에 흐르고 있는 역사, 설화 와 유래를 알고 싶어 하는 누군가로부터 얼치기 기록이라는 평을 듣지 않는 이야기 속 역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글 연규상, 그림 강호생, 사진 송봉화/샘터/2014. 4. 25/1만 5000원)
<들길, 이야기 따라 걷다>(글 오미경, 그림 손부남, 사진 정광의/샘터/2014. 4. 25/1만 5000원)
<물길, 세종대왕 꿈을 담다>(글 연지민, 그림 손순옥, 사진 문상욱/샘터/2014. 4. 25/1만 5000원)



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 - 상당산성권

연규상 글, 강호생 그림, 송봉화 사진, 샘터사(2014)


태그:#숲길, 오래된 미래를 품다, #들길, 이야기 따라 걷다, #물길, 세종대왕 꿈을 담다, #샘터, #청주시 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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