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왕의 노래> 책표지
 <왕의 노래> 책표지
ⓒ 일송북

관련사진보기

수많은 역사 인물 중 유독 애잔하게 끌리는 인물이 몇 있다. 정조는 그 중 한 사람. 몇 년도 죽었는지 기억할 정도로 좋아하는 인물이다.

정조는 1800년 6월 28일에 죽었다. 날짜를 또렷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정조의 급작스런 죽음은 110년 후인 1910년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빼앗긴 시작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조의 죽음으로 재위 24년 동안 꿈꾸고 노력했던 그의 개혁에 대한 꿈은 무너지고 만다. '굶어죽는 백성들이 없는 세상'. 그 꿈 말이다. 그렇게 다시 기득권자들의 세상이 되고 만다. 이웃나라 일본마저 세계정세에 민감하게 대처하며 앞을 향하던 그때 조선은 어리석게도 뒷걸음 치고 만다.

다들 그런다. 역사에는 '가정'이 있을 수 없다고. 그러나 나는 정조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해 최대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더불어 그 꿈이 꺾이는 바람에 우리가 빼앗겨야만 했던 것들을 분통해하고, 그 꿈을 꺾어버린 자들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저지른 짓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왕의 노래>(일송북 펴냄)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장엄했던 왕의 행차로 알려진 정조의 화성행차를 앞둔 그 며칠 전부터 화성행차 이틀째까지가 역사적 배경인 소설이다.

정조의 화성행차는 조선을 갉아먹는 수구 세력을 향해 정조가 작정하고 내민 도전장이었다. 당시 수구 세력은 육의전 상인들에게 특혜를 주는 대가로 정치 자금을 받고 있었다. 정조는 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살길을 열어주고자 했던 것이고 말이다.

화성 행차를 통해 민심을 얻은 후 개혁에 박차를 가하려는 것을 눈치 챈 수구세력은 어떻게든 화성 행차를 막고자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당연히 뺏으려는 자와 뺏기지 않으려는 자 사이에 목숨을 건 암투가 벌어진다. 이 소설의 내용이다.

지난해 여름이었던가. 억수 같은 장대비가 달포나 지나도록 그치지 않고 길어져 곳곳에서 재해가 발생했다. 그러자 왕은 자신의 침전에 커다란 전도(지도)를 내걸었다. 침전의 동쪽과 서쪽 벽면에 재해를 입은 각 지역을 상·중·하 세 등급으로 나누어 고을의 이름과 수령의 성명, 세금의 경감과 구휼에 관련된 각각의 조목을 죽 써 놓았다. 그런 다음 한 가지 업무가 처리될 때마다 그 위에 친히 기록해 나갔다. 그러면서 대신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가난한 백성들을 결코 눈물짓게 해서는 아니 되오. 더구나 재해를 구하고 피해를 입은 백성을 돌보는 것은 특히 그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서둘러야 할 것이오. 이것은 백성들의 목숨이 달려있는 사안이므로 잠시라도 머뭇거려서는 아니 되오. "-(<왕의 노래> 중에서)

정조를 소설로 만나는 동안, 특히 위에 인용한 부분을 읽으며 정조였다면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했을까 궁금해졌다. 그 어떤 왕보다 가난한 백성들 가까이에 있었던 왕이었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 더욱 명료하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래는 소설을 쓴 박상하 작가와 전화와 이메일로 나눈 이야기들이다.

"정조는 가난한 백성의 왕이었다"

- 그간 드라마나 많은 책들이 정조를 이야기했다. 작가가 본 정조는?
"둘째라면 서운할 정도로 가난한 백성 편에 선 왕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인간적인 매력도 많은 분이었다. 사료를 모으고 소설을 써나가는 1년 동안 정조와 사랑을 나눈 느낌이 들 정도로 흠벅 빠져들었다. 그의 인간적인 고뇌를 만나면 목 메이곤 했다. 정말 이런 군주가 우리 역사에 있었다니! 감동스러웠다."

- 그간 정조가 주인공인 대부분의 책들이 '권력 싸움'과 연관지어서만 말했던 반면, <왕의 노래>는 권력 싸움의 실질적인 이유인 '밥그릇 싸움'에 초점을 맞춰서 인상깊다. 소설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정조의 '통공 정책', 좀 낯설다.
"원하면 누구나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조선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으면서 상업을 일부에게만 허용했다. 한성 종루거리의 3천여 육의전의 시전(상점 또는 상단) 상인들에게만 장사를 허용했다. 일종의 특혜를 준 셈이다. 백성들은 끊임없이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고, 왕조는 그때마다 통치 이념을 내세워 번번이 묵살했다. 때문에 땅 한 평 없는 백성들은 소작농이 되거나 노비가 되거나 굶어죽는 일이 허다했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미처 이루지 못한 채 스러져간 꿈, 농토마저 없는 가난한 백성들에게 장사라도 마음 놓고 할 수 있게 해 자신의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리라. 국초 이래 시행되어온 지엄한 국법이라 할지라도, 마땅히 바꾸어(육의전에게 주어진 특혜) 금난전권을 폐지시키고 말리라. 종루 육의전과 노론 사이의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내어 가련한 민생을 구하고, 육의전 상인들의 이윤을 보존해 주리라'라고 소설 속 정조는 말한다. 이에 노론은 정조의 통공정책을 저지하고자 화성행차를 어떻게든 막으려고 한다. 이 7일 동안의 궁중 암투기를 통해 '정경유착의 폐단과 군주의 올바른 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 싶었다."

저자 박상하.
 저자 박상하.
ⓒ 박상하

관련사진보기


- 개혁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음에도 기득권자들에게 꺾인 정조와 지금 우리의 정치상황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가려면 광화문을 지나야만 한다. 왜 우리는 여전히 거리에서 싸워야만 하는가. 어느 날 언제부턴가 거의 매일 만나는 시위행렬을 보며 재위 전부터 죽는 날까지 늘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자했던 군주 정조가 생각났다. 이런저런 사료를 찾아내어 나열해 놓고, 소설의 얼개를 구상할 때까지만 해도 전혀 몰랐었다.

한데 소설을 써나가면서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정치적 구조와 갈등, 그와 너무도 흡사해 소름이 돋았다. 사실 모든 역사소설은 정치적이다. 내 소설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이 정조라는 인물보다 정조가 어떻게든지 백성들에게 주고 싶어 했던 기득권자의 특혜, 그로 인한 폐단에 주목해 책을 읽었으면 한다. 역사소설은 그럴 때 비로소 유효하다고 본다."

- 김진탁의 최후, 매우 통쾌하고 인상 깊었다. 실존 인물인가? 실제로 소설 속 징벌과 같은 일이 일어났는가? 허구라면, 그의 죽음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소설 속 인물들은 정조가 44살이던 그 해 실제로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김진탁만 가공인물이다. 33살로 당시 정조에게 중요한 존재였던 정약용과 동갑내기인 김진탁을 넣음으로써 소설의 긴장을 더하고 싶었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인과응보를 말하고 싶었다. 부처 주요 인사로 발탁된 인물이 과거에 한 일 때문에 종종 논란이 일곤 한다. 모름지기 정치에 뜻이 있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떳떳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끄러운 과거가 있으면 정치에 뜻을 두지 않는 사회적 인식과 풍조가 필요하다. 정계에 있는 동안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축적한 재산이나 그릇된 행적이 언젠가 자신을 무너뜨리는 무기가 된다는 것도 말하고 싶었다."

- 왕은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존재로 알고 있다. 제목 이야기를 듣고 싶다. 정조가 부르고 싶었던 노래는?
"그렇다. 왕은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존재다. 정조가 진실로 바랐던 것은 굶어죽는 백성들이 없는 세상이었다. 그 세상은 정조의 노래였다. 소설을 구상할 무렵 숙명여대 정병헌 교수와 저녁을 먹으면서 정조가 원하고 노력했던 세상에 대해 많은 얘길 나누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제목 <왕의 노래>가 정해졌다. 왕의 노래는 우리 모두가 바라고 도달하고자 하는 어떤 역사적 꿈이라고나 할까. 그런 상징으로 정해진 것이다."

- 정조는 사도세자의 죽음 이후부터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목숨을 위협받는 긴장 속에서 살았다. 여러 번 암살 위기에 처한 것으로 안다. 왜 하필 화성행차인가?
"정조 재위 24년 중 그 시점이 정치개혁의 정점이자 곧 분수령이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왕조 5백 년 가운데 가장 장엄하다는 화성 행차를 소설로 담고 싶다는 열망도 컸다(기자 주: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는 당시 사람이 되어 화성 행차를 보는 듯한 자세하고 생생한 표현이다)."
     
- 역사엔 가정이 있을 수 없다지만, 만일 정조 때 '세월호'와 같은 재난이 있었다고 한다면 정조는 과연 어떻게 했을까?
"정조 연간에 큰 홍수가 났다. 정조는 대신들에게 '백성이 배가 고프면 나 또한 배가 고프오. 백성이 배가 부르면 나 또한 배가 부르오. 가난한 백성들을 결코 눈물짓게 해서는 아니 되오. 재해를 구하고 피해를 입은 백성을 돌보는 것은 특히 그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서둘러야 할 것이오. 이것은 백성들의 목숨이 달려있는 사안이므로 잠시라도 머뭇거려서는 아니 되오'라며 긴급한 대책을 요구했고, 일처리에 따라 매일 체크를 해나가며 신경을 썼다는 기록이 보인다. 한마디로 대신들에게 지시하고 보고만 받는 군왕이 아니었다. 미뤄 짐작컨대 그 누구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처와 구조를 했을 것이다."

- 역사 소설인 만큼 기본적인 진실의 뼈대에 어느 정도의 허구는 필요할 터, 그런데 허구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흥미롭다. 그간 여러 권의 역사소설을 쓰셨는데 역사적 사실 혹은 알려야 할 진실이 우선인가 소설의 재미가 우선인가?

"역사소설은 사실 그대로의 기록이어야 한다. 술이부작(述而不作: 기록하되 지어내서 쓰지 않는다)이어야 마땅하다. 그에 따라 썼다. 목소리 하나에도 허투루 내뱉은 게 없다. 을묘년 화성 행차를 제외하고 그 나머지를 상상력으로 메워나간 작업은 힘겨웠다. 힘겨운 작업이었다. 소설의 재미를 앞세워 역사적 사실과 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그래야만 역사소설이 유효하다고 본다."

- 그동안 많은 작품을 쓴 것으로 안다. 혹시 계획하는 작품은?
"올 겨울엔 좀 시끌벅적한 소설을 써볼 계획이다. 제목도 <육의전, 상인들의 반란>으로 이미 정했다. 지금 출판사를 찾고 있다. 지난해 장편소설 <박승직 상점>으로 구한말 상업 풍경을 촘촘히 그려내고자 했다. 올해에는  <왕의 노래>에서 누구나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조의 조선말 통공정책을 그렸다. 통공정책은 정조의 독살로 좌절되고 만다. 결국 참다 못한 민초들이 일제히 일어나게 된다. <육의전, 상인들의 반란> 내용이다. 이 작품으로 민초들의 먹고 사는 문제, 선말 상업 풍경의 3부작을 완결 지을 계획이다."

작가 박상하는?
1995년 허균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 2000년에는 문예진흥원 소설부문 창작지원금을 받았다.장편소설 <명성황후를 찾아서>,<은어>,<진주城 전쟁기>,<나를 성웅이라 부르라 1.2권><박승직상점 1.2권> 등을 썼고, <한국인의 기질>,<경성 상계>,<조선의 3원3재>,<밤에 잠들기 전에 읽는 명상고전>,<한국 탄생의 비밀>, <한국 기업 성장 100년사> 등 30여권의 책을 썼다.

덧붙이는 글 | <왕의 노래> 박상하 (지은이) | 일송북 | 2014-05-12 | 12,800원



왕의 노래 - 정조의 역사 읽기, 정조의 속살 읽기, 정조의 모두 읽기

박상하 지음, 생각출판사(2017)


태그:#정조, #통공정책, #금난정권, #화성행차, #박상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