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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수석부위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은 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농성장으로 간다. 분위기 담당이랄까. 그의 말에 힘입어 농성장의 무거운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이영주 수석부위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은 별다른 일정이 없으면 농성장으로 간다. 분위기 담당이랄까. 그의 말에 힘입어 농성장의 무거운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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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싸움은 결국 사람의 문제입니다."

법원으로부터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 판결을 받은 다음날인 6월 20일 오후 서대문에 있는 전교조 사무실을 방문했다. 여러 언론사 기자들과 전교조 언론 담당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카메라가 곳곳에 서 있어 피해 가야 할 정도였다.

이영주 전교조 수석부위원장과 위원장실에서 1시간 남짓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수석부위원장은 전날 늦은 밤까지 지도부 회의를 했는지 피곤한 모습이었다. 나는 '투쟁' 이야기를 들을 줄 알았는데, 이 수석부위원장은 의외로 '사람' 이야기를 했다. 세월호 참사가 나던 날 몰렸던 외신기자들 역시 "세월호는 모든 사람의 일이니 당연히 취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항상 '사람'이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않으려 하지만 생활하다 보면 우리는 인간적일 때보다 비인간적일 때가 많다. 외국 기자의 '사람' 얘기를 듣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화가 난 학생처럼 선생님께 대드는 심정으로 법외노조 사태와 사람들 눈에 비치는 전교조의 모습에 관해서 질문을 던졌다. 때로는 비정하게 몰아세우기도 했고, 가혹할 정도로 높은 도덕성과 지성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수석부위원장은 담담히 답변했다.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허심탄회하게 인정했다. 내 감정이 누그러지는 걸 느꼈다. 그는 결코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지만 나는 배운 기분이었다.

다음은 이 수석부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청소년들도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한다"

- 노동부에 이어 법원으로부터도 법외노조라는 판결을 받았다.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 예측을 하고 있어서 충격적이진 않았다. 해직 교사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전교조 규약에 대해서는 이미 의미 있는 판결을 받았다."

- 의미 있는 판결을 받았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작년 9월 고용노동부로부터 최초로 규약 개정과 해직자 배제를 요구받고 나서 전교조는 총투표를 실시했다. 투표율은 80.96%였고 이 가운데 거부한다 68.59%, 수용한다 28.09%였다. 우리는 전교조의 강령과 규약에 따라 일하다가 해직 통보를 받은 분들을 끌어안기로 했다. 가시밭길이 예상됐지만 이 일로 전교조는 창설 이래 국민들로부터 가장 큰 지지를 받았다. 전교조를 비난하던 분들까지도 애정을 표시했다. 전교조 조합원들은 '이게 힐링이구나' 하며 서로 놀랐다. 우리가 하는 일이 정부나 몇몇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험악한 일은 아니다. 그들은 우리를 부끄럽지 않게 하다가 해직이 되었고, 우리는 그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고 싶었다."

- 정부의 전교조 규약 개정 명령은 단순히 규약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번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 사건은 전교조의 문제만이 아니다. 똑같은 일이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하 '전공노')에도 있었다. 똑같이 해직자에 대한 규약을 문제 삼았다. 이에 전공노는 정부의 시정명령을 수용해 규약을 개정했지만 정부는 해직자가 실제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집요하게 파헤쳐 노조설립을 취소했고 법원도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것이 이번 싸움에 임하는 정권의 자세다.  우리가 정권의 요구를 수용하면 9명의 희생에 머무르지 않고 노동계 전체가 희생될 위험이 있다. 이런 위기의식이 배경에 깔려 있다.

- 선생님들은 공무원이기 때문에 조합원 자격 박탈을 국가에서 정하나?
"전교조는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일체의 징계는 전교조의 자체 규정과 조합원으로 구성된 징계위원회가 정한다. 학교 선생님들은 전교조 가입 시 강령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강령에 동의하는 선생님만 가입한다. 실제로 전교조에서 자격 박탈이 논의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 전교조로부터 징계가 결정된 사람들은 무슨 기준으로 처분을 받았나?
"전교조 강령과 규약에 의거한다."

- 그렇다면 정부에서 규약을 개정하라는 시정명령은 내정간섭을 한 것인가?
그 당시 집회에서 청소년들이 들고 있던 피켓이 생각난다. "동아리 가입은 동아리가 알아서 해요"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정부가 한 규약 개정 명령은 단순히 규약의 문제가 아니다. 한마디로 정부의 말을 잘 듣는 '어용노조' 외에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노동조합의 정신까지 개정하라는 정부의 무리한 요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해직교사 본인들이 탈퇴해 부담을 안 주고 싶다고 말했다"

- 정부로부터 배제하라는 명령을 받은 해직교사는 9명이 전부인가?
"현재 전교조에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는 해직 교사는 총 23명이다. 9명은 어떤 기준으로 정해졌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애초에 정부는 규약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보수단체가 전교조 홈페이지에 접속해 규약을 다운로드받고 제보를 한 것이다. 법적인 빌미를 발견한 정부가 호재를 만난 것이다."

이영주 수석부위원장
 이영주 수석부위원장
ⓒ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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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명은 어떤 이유로 해직이 되었나?
"전교조의 강령에 의해 활동을 하다가 해직된 교사들은 특별한 업무를 맡은 것이 아니다. 전교조의 일반 업무를 맡았을 뿐이었다. 전교조의 일상적 업무를 건드린 것은 전교조 자체를 부정하는 정권의 의도를 보여주는 게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2008년 서울시교육감 선거를 처음 치렀을 때 선거에 대해서 아는 조합원이 거의 없었다. 선관위에 일일이 유권해석을 받고 가능하다는 범위의 선거운동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 일을 담당했던 조합원은 해직되었다. 선관위가 잘못 판단한 죄를 전교조 조합원이 받은 셈이다. 그리고 비리사학 투쟁을 하시던 조합원이 여럿 해직되었다. 비리사학의 문제는 전교조가 꾸준히 해오던 일이다. 야당 시절 사학법 개정을 반대하며 촛불시위까지 벌였던 현 정권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 해직교사들은 심적 부담이 클 것 같다.
"해직 교사들은 오랫동안 전교조 활동을 해오며 단련된 활동가들로 조합원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 정도로 심약하시진 않다. 하지만 지난해 2월, 일부 해고 조합원들은 '본인들이 탈퇴해 조직에 부담을 안 주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간적인 고뇌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많은 분들이 해직교사를 안타까워하시지만 그 착잡함이 본인만 할까."

- 23명의 해직교사 중에서 9명만 배제하라고 명령했다면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 아닌가?
"그건 큰 의미가 없다. 선정 기준이 모호하다는 게 가장 곤혹스럽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한 명도 못 구했지만, 우리는 한 명도 버리지 않겠다"

- 9명의 조합원은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이들을 끌어안는 것은 전교조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나?
"그 분들이 있었기에 전교조가 있었다. 전교조의 강령에는 우리 조합원들의 신념이 담겨 있다. 신념에 맞게 행동한 조합원들은 우리가 책임 있게 지켜야 한다. 그래야 엄정한 정국 속에서도 전국의 조합원들이 신념을 갖고 활동할 수 있다."

- 신념을 가지고 활동을 하다가 불이익을 당하면 전교조가 뒷감당을 한다는 말인가?
"전교조 강령에 맞는 활동을 하다가 해직을 당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조합원은 전교조가 보호를 해주고 있다. 임금과 소송비 등 일련의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이것은 전교조가 조합원의 신념을 지켜주는 길이다."

"학교 일이 끝나면 전교조 일이 시작된다"

- 전교조는 학교 선생님의 노동조합라는 점이 특색인 것 같다. 전교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많은 분들이 학교 업무가 끝나면 전교조 일을 한다. 전임자의 임금보전이 안 되기 때문에 전임자를 많이 둘 수 없다. 당연히 노동강도가 셀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말해서 전교조 일을 하는 교사의 삶은 전교조가 아닌 교사의 삶에 비해서 정말 열악하다."

- 교사는 천직이라고 하는데, 전교조는 뭐라고 해야 할지 막막해진다. 전교조 선생님의 가족은 외롭겠다.
"전교조 조합원들에게 가족 이야기는 입 안의 가시와 같다. 그만큼 많이 미안해 한다. 어느날 집에서 쉬고 있을 때 아이들 간식을 챙겨주던 남편이 아이들에게 '엄마가 솔직히 해주는 게 없잖아!'라고 농을 걸었다. 그런데 아이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대꾸했다. '그 대신 엄마는 우리나라의 교육 발전을 위해 애쓰시잖아요.' 만감에 휩싸였다. 너무 어른처럼 얘기하는 게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 전교조 선생님으로서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선생님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자기검열을 많이 하는 편인 것 같다. 내가 외친 구호와 교실에서의 생활이 반대되지 않는지 생활 전반을 되돌아본다. 어떤 경우는 강박관념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는 지행합일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한다. 나의 일상생활이 전교조의 이미지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학부모로부터 '선생님을 통해서 전교조를 알게 되었어요.'라는 인사를 받을 때는 한편 기쁘고 한편 어깨가 무거워진다."

- '전교조 사람'으로서 인간적으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이번 사건을 진행하면서 전국의 1000여개 시민단체가 전교조를 지키기 위해서 연대를 해주셨고 40여 명의 변호사 법률지원단이 꾸려졌다. 과분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은 것은 전교조가 잘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윤과 계산이 만연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람'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내린 힘든 선택을 응원하는 목소리라고 생각한다. 교사에 대한 사회적 믿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수많은 학생과 시민이 희생되었지만 그 중에는 교사 12명도 포함돼 있다. 세월호에 탑승한 교사는 14명이었다. 때로는 시민사회가 우리 전교조에게 가혹할 정도로 높은 도덕적 기준과 정신적 수준을 요구한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사랑'과 '신뢰'의 마음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 재판 며칠 전 농성장에서 '이번 재판을 계기로 많은 선생님들이 전교조에 대해서 다시 많은 생각을 했다'고 말했는데 어떤 생각들이 있었는지 소개를 해달라.
"보수정치인들과 재벌, 족벌언론이 오랫동안 국민들을 세뇌시킨 시각이 있다. 국민들은 스스로 노동자이면서 노동을 천시하고, 전교조 선생님 개인은 훌륭하다고 보면서 전교조 조직은 나쁘다는 편견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런 왜곡과 조장을 이겨내지 못했다. 세뇌되고 왜곡된 이미지를 진실된 인식으로 바꿔나가는 실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수석부위원장은 급히 인사를 하고 다음 인터뷰 장소로 이동했다. 그는 마치 수도자처럼 경건하고 엄격해서 경외감이 들었지만, 저변에 깔린 '인간적 온기'가 풍겼다. 나는 수첩에 적어 놓은 말 중에서 '사람'이라는 말들에 시선이 갔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와 재판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 뜨거운 응원과 지지는 결국 '사람'이라는 두 글자를 표현할 뿐이다. 사람으로서 살고, 사람으로서 일어서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시대이기 때문에 탄압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싸움판 한가운데에서 서 있기가 어지러웠다.


태그:#전교조, #이영주, #법외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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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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