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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전날>이라는 동시가 있다. 들떠서 잠이 안 오고, 설레서 가방을 다시 싸고, 비가 올까 걱정돼 일기예보를 확인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처럼 소풍이 내키지 않는 학생도 있다. 사람이 많은 게 싫고, 소음이 싫고, 단체로 뭔가를 동시에 해야 한다는 것도 싫어서 잠이 안 오고, 불안하고, 어떻게든 소풍에 가지 않을 수 있는 핑계를 생각한다. 정작 가면 별 저항 없이 어울리긴 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경기도 안성시 미양면에 있는 유기동물보호소인 '평강공주 보호소'의 아이들이 그랬을 것이다. 지난 22일, 갑자기 보호소에 나타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왁자하게 떠들며 아이들을 차에 태워 어디론가 데려간다. 아이들은 '날 또 버리려는 거야?'라는 표정으로 극렬하게 반항하거나 숨는다. 하지만 아이들이 바깥 잔디밭에 닿는 순간, '아, 이런 천국이 있었구나'라는 표정으로 돌아다닌다.

최악의 상황은 '안락사'... 끔찍하다

평강공주 보호소에 있는 강아지들(사진은 지난 2013년에 찍은 것임을 밝힙니다).
 평강공주 보호소에 있는 강아지들(사진은 지난 2013년에 찍은 것임을 밝힙니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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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가을이의 친정인 평강공주 보호소는 현재 매우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시설 계약 기간이 만료돼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한 것. 지원금 한 푼 없이 유기동물 보호소를 운영하는 것은 빚에 얽매여 사는 것과 다를 게 없다. 400여 마리의 식구를 하루 동안 먹이고, 배설물을 치우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비용이 든다. 수도·전기·가스·시설물 보수·병원비 영수증에는 모두 '독촉' 두 글자가 선명하다.

시설 전세 보증금을 포함한 적은 돈으로나마 이사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알아봤지만, 더한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대식구가 이동하고 견사를 다시 짓는 데에만 수천만 원이 들고, 이 또한 계약이 끝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악순환이다.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평강공주 보호소에는 대부·대모 형식으로 지속적인 후원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또 생각날 때마다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현재 보호소 부지를 매입하기 위한 4억5000만 원은 무슨 수로 마련해야 하는지 눈앞이 캄캄하다. 최악의 상황은 집도 절도 구하지 못할 경우 이 아이들이 안락사에 처해진다는 것이다. 끔찍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지막일 수도 있는 소풍

'소풍' 홍보 SNS 웹자보
 '소풍' 홍보 SNS 웹자보
ⓒ 평강공주보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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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평강공주 보호소를 위해 돈을 빌려줄까. 누가 평강공주 보호소를 위해 대출금을 받아줄까. 누가 이곳을 위해 땅을 사줄까. 지난 4월의 바자회와 릴레이 후원금 요청으로 약간의 자금을 모았고, 6월을 맞아 '소풍'을 기획했다. 어쩌면 평강공주 보호소 아이들에게는 마지막 나들이가 될지 모른다.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 행복한 기억을 남겨 주자는 의도로 기획됐다.

'소풍' 홍보는 더디고 힘들었다. 소풍 날짜(6월 22일) 일 주일 전까지 20명 남짓의 신청자가 있었을 뿐이었다. 공간이 허락하는 한 많은 아이들이 바람을 쐬면 좋을 텐데. 몇몇 회원들의 수고로 SNS의 덕을 봤다. 어느 날, 평강공주 보호소 인터넷 카페 방문객이 600명을 넘었다. 카페 운영진들은 등업(카페 이용자의 등급을 올리는 것) 신청을 수락하는 데에만 날밤을 꼬박 새워야 했고, 회원 수는 1600명을 돌파했다. 그리고 소풍 신청 댓글은 400여 개가 달렸다. 카페 운영진은 안전 문제를 고려해 신청을 서둘러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난 22일 일요일 오전 10시 평강공주 보호소. 봉사자들은 벌써 분주히 일하고 있다. 소풍에 못 가는 아이들을 위해 먼저 물과 밥을 넉넉히 챙겨 준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름표를 만들고 준비물을 꼼꼼히 살핀다. 강아지용 물그릇과 구급상자, 손님용 음료수, 행사 준비물 등이 트럭에 실려 먼저 출발한다.

운이 좋으면 털을 깎고 발톱 손질을 받을 수 있다. 목욕을 거의 못한 상태라 속살이 지저분하긴하지만.
▲ 출장 미용중 운이 좋으면 털을 깎고 발톱 손질을 받을 수 있다. 목욕을 거의 못한 상태라 속살이 지저분하긴하지만.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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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대중교통이나 카풀을 이용한 손님들이 한아름 입장한다. 고등학생들도 있고 자녀가 이미 장성한 어른도 있다. 지정된 짝꿍 강아지를 인계 받고 조심스럽게 인사를 나누며 주의사항을 듣는다. 개를 좋아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특히 유기견은 경계가 심해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이날따라 설사를 하는 등 상태가 안 좋은 아이 대신 다른 아이를 찾기도 한다.

간혹 "우리 개 누가 데려갔어?"라는 소리가 들린다. 옆 조에서 실수로 개를 잘못 데려간 것이다. 어렵사리 사람과 강아지는 준비가 됐어도 얻어타고 이동해야 할 차가 없어 한참을 기다리기도 한다. 운영진도, 회원도, 강아지도 출발 전부터 진이 빠진다.

"황태채 한 번 뜯어봐"... 꿈결 같은 시간

평생 세 번쯤 밟아본 잔디밭에서 실컷 놀다 잠시 잠을 청한다. 신발은 베고, 의자에 기대어.
▲ 놀다 지친 팔랑이와 롱이 평생 세 번쯤 밟아본 잔디밭에서 실컷 놀다 잠시 잠을 청한다. 신발은 베고, 의자에 기대어.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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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 안성시 삼죽면에 있는 강아지 놀이터에 도착한다. 자동차 여행이 처음이라 멀미를 한 녀석, 처음 보는 사람이 만진다고 눈물범벅이 된 녀석, 곁에 앉은 이가 마음에 안 든다고 짖어대는 녀석들….

강아지 놀이터의 그늘은 한정돼 있고 강아지들은 어서 목을 축이고 싶다. 긴장한 탓인지 응가를 두세 번 누고, 일일 엄마를 이리저리 잡아끈다. 인간과 개가 우왕좌왕하는 장면을 보고 있던 지인이 묻는다.

"개를 위한 소풍, 맞아?"
"조금만 기다려봐. 곧 좋아질 거야."

다시 한 시간 정도 지난 뒤 15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안정을 찾는다. 돗자리에 앉아 간식을 나눠 먹고, 얼굴을 맞대고, 사진도 찍는다.

"밀키야, 육포 한 봉지를 다 먹으려는 거야?"
"롱이도 황태채 한 번 뜯어봐."

햇볕을 피해 의자 아래에서 모델 노릇을 하는 반달이
▲ 초상화 그리는 중 햇볕을 피해 의자 아래에서 모델 노릇을 하는 반달이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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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이웃과 안부를 나눈다. 회원들은 일일 딸내미의 애교에 웃음이 터진다.

"반달이가 무릎에서 안 내려와요."
"행심이가 아빠만 쫓아다녀요."

주문한 김밥이 도착하고 후식으로 과일과 과자도 먹는다. 삼행시 짓기, 초상화 그리기 등의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공놀이, 달리기도 한다. 강아지에게 초록색 잔디만큼 잘 어울리는 배경이 있을까. 부비고, 뒹굴고, 활짝 웃는 모습이 눈물겹다. 그동안 파리 꼬이는 좁은 견사에서 얼마나 갑갑했니, 얘들아. 이렇게 시간이 멈춘다면 참 좋겠다, 그치? 더워도, 낯설어도, 꿈결 같은 시간이다.

유예기간 1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털옷을 입은 강아지들은 6월의 햇살이 버겁다.
▲ 물, 물을 달라! 털옷을 입은 강아지들은 6월의 햇살이 버겁다.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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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니?" "응, 더워." "미용 받을까?" "아니, 무서워."
▲ 대화중 "덥니?" "응, 더워." "미용 받을까?" "아니, 무서워."
ⓒ 박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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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공주 보호소 소장님의 감사 인사도 빠지지 않았다. 22일까지 모금된 액수로 땅주인에게 보증금 격으로 납입하고 1년 유예를 얻었다는 내용이다. '1년'이란 유예 기간에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지만,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다. 회원들은 손뼉을 치며 기쁨을 나눈다.

오후 4시. 슬슬 돌아갈 정리를 한다. 쓰레기를 수거하고 자유롭게 풀어놨던 강아지들의 목줄을 다시 채운다. 조장은 명단을 확인하고 놓고 가는 짐이 없나 빠짐없이 살핀다. 주차된 차들이 차례대로 나가느라 오랜 시간이 걸린다. 보호소에 도착해 모든 강아지들이 잘 돌아왔나 확인한다. 남은 간식은 보호소 안에서 기다려준 강아지들의 몫이다. 회원들과 강아지들은 다음에 또 만나자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눈다.

카페 회원 1600명이 1만 원씩 보내준다면 1억6000만 원이 모인다. 달콤하지만 비현실적인 생각이다. 평강공주 보호소에서 실제 활동하는 회원은 200명 남짓이다. 활발하게 참여하는 일부 회원을 제외하고는 호기심에 온 사람, 왔다가 금세 잊는 사람, 미성년자들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희망을 놔버릴 수는 없다. 길에서 죽어가던 생명을 살린 사람들이니 유기동물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이 공간을 지킬 수 있는 능력도 사람에게 있다고 본다. 작고 약한 것들이 보호받는 세상, 우리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덧붙이는 글 | 평강공주 보호소와 관련한 정보는 http://cafe.daum.net/VUDRKDRHDWN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태그:#평강공주유기견보호소, #부지마련기금모금, #다음카페, #1년유예, #유기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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