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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비름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그러나 나의 텃밭에서는 쇠비름은 잡초일 뿐이다.
▲ 쇠비름 쇠비름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그러나 나의 텃밭에서는 쇠비름은 잡초일 뿐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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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첫날, 아침부터 뙤약볕이 내리쬔다.

비가 온 뒤에는 땅이 고슬해서 잡초를 뽑기가 수월하지만, 이렇게 메마른 땅에 뙤약볕까지 내리쬐는 날은 잡초뽑기가 몇 배는 힘들다. 그래도 천천히라도 뽑아야만 한다.

어머니는 김을 맬때마다 늘 말씀하시곤 했다.

"야야, 잡초는 뿌리째 뽑아야 한다. 일 쉽게 하려고 대충 위만 잘라놓으면 금방 자란다. 그리고 말이야, 보이지 않아도 잡초를 뽑아내는만큼 채소는 더 실하게 자라는 거야."

올해 텃밭은 영 시원치가 않다.

고구마순을 심고 가뭄이 이어져 제대로 싹을 틔우지 못했고, 줄기가 타죽은 것들도 많다. 소위 고구마 땜방도 했지만 그리 잘 되지 않은 듯하다.

게다가 고구마순 대신 잡초만 무성하니, 누가 봐도 한 마디씩 싫은 소리를 안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다.

"농사를 지려면 짓고 말려면 말지 저게 뭐여, 저게 밭이여!"

이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아 뙤약볕임에도 고구마 밭으로 나간 것이다.

괭이밥, 예쁘고 고운 꽃이지만, 텃밭에서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 괭이밥 괭이밥, 예쁘고 고운 꽃이지만, 텃밭에서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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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두럭에서 가장 실하게 자라는 놈은 쇠비름이다.
아직은 한낮의 더위가 아니라 꽃을 활짝 피우고 있지만, 정오가 되기 전에 꽃을 닫을 것이다. 다육식물이라 가뭄에도 여간 잘 자라는 것이 아니다.

쇠비름도 시골에서나 쉽게 볼 수 있지,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풀이다. 여느 풀이 그렇지 않겠는가?

서너 해 전에 시골에 다녀오신 어머니가 쇠비름을 뿌리까지 한 줌 뜯어 오셨다. 뭐에 쓰시려는가 물었더니만, 어찌어찌하면 관절에 좋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화분에 심어 키워야겠다고 하신다. 소위 믿거나 말거나 민간요법이다.

그러나 역시 잡초의 근성을 가진 풀이라 그런지 화분에서는 실하게 자라지 못했고, 다른 채소를 심어 먹어야겠기에 이내 뽑혀져 버렸다. 그런데 그 쇠비름이 고구마밭에 지천이고, 줄기가 얼마나 잘 자랐는지 나무 젓가락 굵기다.

'좀 뜯어다 드려볼까?'

그런 마음도 잠시 땅이 딱딱해서 풀이 잘 뽑히지 않고, 비 온뒤 잡초를 뽑는 것과 비교하면 거의 너다섯배는 힘든 것 같다. 그냥, 잡초나 열심히 뽑을 수밖에 없다.

석류풀에 등에가 찾아왔다. 석류풀인들 텃밭에서는 잡초취급을 당한다.
▲ 석류풀 석류풀에 등에가 찾아왔다. 석류풀인들 텃밭에서는 잡초취급을 당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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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의 종류를 세어본다.

사진으로 다 담지는 못했지만(사진을 찍을 힘도 없고, 겨를도 없어서), 바랭이 종류가 다양하고, 까마중, 여우구슬, 개망초, 사초, 강아지풀, 중대가리풀 등 잡초 천국이다.

애써 심은 것은 저렇게 초라한데 가꾸지도 않은 잡초들을 이리도 무성하다니....마치, 우리가 사는 세상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다.

괭이밥은 뽑혀도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다.
이미 씨앗들을 잘 맺고 있어서 그들을 뽑는 순간 씨앗이 우수수 텃밭에 떨어진다. 그냥 둘 수 밖에 없다.

땀이 비오듯 내린다.
오이와 가지를 따 먹어가며 갈증을 달래며 잠시 밭둑에 앉아 쉰다.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아, 시원해!' 소리가 절로난다.
이 산들바람의 느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말로 다하지 못해도 땀흘려본 사람은 작은 산들바람도 얼마나 시원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나의 텃밭에서 잡초로 분류된 것들은 이 가뭄에도 산들바람을 쐬면서 싱싱함을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밭둑외풀이 뙤약볕에도 싱싱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 밭둑외풀 밭둑외풀이 뙤약볕에도 싱싱하게 꽃을 피우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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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반찬은 밭에서 딴 가지, 고추, 토종 오이와 막된장이다.

고추는 온 몸을 자극하면서도 적당히 맛나게 맵고, 지인에게 씨앗을 얻어 심은 토종오이는 꼭지부분의 씁쓰름한 맛이 일품이며, 보랏빛 가지는 부드러운 식감이 그만이다. 얼음물에 찬밥을 말아 후루룩 마시다 시피 두 그릇이나 비웠다.

뙤약볕에서 훅 달아올랐던 몸이 시원해 진다.
밥을 먹고나니 꾀가 생겨 아내에게 "이렇게 뙤약볕이면 밭일은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는 절대로 안하는 거야. 더위 먹을 수가 있어"하며, 나무 그늘로 들어간다.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그 산들바람의 시원함을 느낄 자격이 있는 듯하여 뿌듯하다.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누어 한 숨 자도 게으른 놈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것 같다. 그 뙤약볕에 가장 예의바른 행동 중 하나가 '시원한 나무그늘 아래서 산들바람을 쐬며 낮잠을 자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가 한 삼십 분 정도 까막득 잠이 들었다.

이런 행복을 아주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그 행복을 저당잡히면서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다. 그래서 아예 놓아버리니 돈으로는 살 수 없는 행복을 피부로 느낀다. 그저 샐러리맨 생활을 하면서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며 억지로 땀을 흘릴 때에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노동, 육체노동 뒤의 산들바람이 주는 느낌, 땀 흘려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참 시원한데, 뭐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7월의 첫날,

고구마 밭은 초라하지만, 뙤약볕에서 땀을 흘리며 땀방울보다도 많은 행복을 주웠다.


태그:#텃밭, #쇠비름, #밭둑외풀, #석류풀, #괭이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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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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