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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서울 오염 하천의 대명사였던 안양천은 2000년대 지자체,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자연에 가까운 하천으로 달바꿈하게 됐다.
▲ 자연과 가까워진 안양천 1980년대 서울 오염 하천의 대명사였던 안양천은 2000년대 지자체,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자연에 가까운 하천으로 달바꿈하게 됐다.
ⓒ 이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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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 살리기 운동'은 내가 환경운동에 뜻을 두면서 가장 먼저 관심을 갖게 된 분야였다. 결정적 계기가 있었다. 2000년 4월 중랑천 살곶이 다리 부근에서 수만 마리의 잉어가 떼죽음을 당하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지켜봤다. 전날 내린 비로 처리되지 않은 하수가 유입되면서 물속에 산소가 부족한 탓이었다.

수면을 가득 채운 물고기들이 물 위로 주둥이를 내밀고 '뻐금' 거렸다. 마치 '살려 달라'고 외치는 듯했다. 한동안 그때의 잔상이 머릿속에 남아 고통스러웠었다. 그때부터 서울의 하천을 조사했다. 적어도 떼죽음 당하는 없이 없도록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해야만 했다.

그 시절 안양천을 처음 갔었다. 물살이 느려진 곳에는 어김없이 누렇게 썩은 물이 보였다. 안양천은 서울 하천 중 가장 오염이 심한 하천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었다. 경기환경운동연합 안명균 전 사무처장의 기억 속에 1990년대 안양천은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끈적끈적한 것들이 서로 엉켜 붙어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형상'이라 했다.

실지렁이 가득했던 안양천

안양천 수질이 가장 나쁠 때가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BOD) 180ppm이었다. 이는 안양천의 상태가 하수처리장 방류수 수질 기준보다 무려 9배나 높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당시 안양천 곳곳에서는 각종 생활 쓰레기 및 건축 폐기물 등이 버려져 있었다. 심지어 물속에도 폐타이어·냉장고·자전거 등 각종 생활 쓰레기들이 쌓여 있었다.

버려진 쓰레기들은 무단 소각으로 이어졌는데, 비가 오면 독성 강한 소각재가 하천으로 유입되기도 했다. 이러한 물질과 상류지역 공장에서 나온 폐수, 안양천변 주차장 및 도로 등에서 나오는 오염 물질 때문에 안양천은 중금속 오염도 심각했다. 2003년 안양천 어류의 중금속 농도를 측정했더니, 납(Pb) 기준치의 4배가 넘는 8.01ppm이 검출되기도 했다.

2003년 서울환경운동연합의 도심 하천 어류 중금속 분석에 의하면, 안양천 어류에게서 기준치의 4배가 넘는 납이 검출된 바 있다.
▲ 안양천 어류 납기준치 4배 초과 2003년 서울환경운동연합의 도심 하천 어류 중금속 분석에 의하면, 안양천 어류에게서 기준치의 4배가 넘는 납이 검출된 바 있다.
ⓒ 박종학 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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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여름, 큰 비가 온 뒤라 안양천의 물빛이 일시적으로 좋아졌다. 무더위에 지친 아이들은 건너편에서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옆에서는 수질 오염의 지표종인 실지렁들이 물결에 따라 이리저리 일렁이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아이들이 멱 감을 수 있는 하천과는 거리라 멀었던 게 바로 안양천이었다.

안양천이 가시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던 것은 2000년대 중반이었다. 2000년부터 안양천 유역의 시민단체·자치단체 등이 모인 '안양천 살리기 네트워크' 활동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과 경기도의 14개 지자체들은 별도로 안양천수질개선협의회를 구성했다. 국토부에서도 안양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만들기 위한 예산을 배정하면서 안양천 살리기 운동은 탄력을 받았다.

이러한 활동 덕분에 안양천은 변하기 시작했다. 시민단체의 지속적인 감시 활동으로 하천변 쓰레기 투기 및 불법소각이 잦아들었다. 행정기관은 하천변에 주차장이 하나둘 폐쇄되기 시작했다. 안양천으로 하수가 직접 유입되는 것을 차단, 고도 처리한 하수와 지하철에서 나오는 지하수 등을 안양천 유지용수로 사용하면서 수량 증가와 함께 수질도 개선되는 경향을 보였다.

하천변에는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가 만들어졌고, 체육시설 및 공원 등 시민들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안양천 상류 학의천 등에서는 생태하천으로 변화가 테스트됐고, 안양천 본류 구간에도 일부 적용됐다. 안양천의 변화를 실감케 하는 것은 생물종의 변화였다. 버들치·참게·숭어 등과 함께 물총새·원앙 등의 새들도 안양천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안양천 변화의 시작

주변의 우거진 풀숲은 이들이 산란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준다.
▲ 안양천 희빰검둥오리 주변의 우거진 풀숲은 이들이 산란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준다.
ⓒ 이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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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안양천에서 가장 많이 눈에 뛰는 새는 흰빰검둥오리다. 지난 6월 27일 SBS <물은 생명이다> 촬영을 위해 안양천을 찾았을 때 이를 확인했다. 어린 흰뺨검둥오리도 볼 수 있었는데, 이를 두고 동행한 안양시청 환경보전과 이명복 팀장은 "안양이 고향인 새들"이라고 설명한다. 하천변에 우거진 풀들은 새들이 휴식 및 산란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안양시 관내 공단을 관통하는 안양천은 10여 년 콘크리트로 도배된 삭막한 곳이었다. 현재는 곳곳에서 제법 굵은 버드나무가 우거져 그늘을 만들고 있다. 평일 오전 시간임에도 자전거 라이딩과 산책을 즐기는 이들을 빈번하게 만난다. 이러한 변화는 안양천이 도심 속 하천으로서 시민들에게 자리를 잡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버드나무는 자연 하천의 상징성을 갖는다.
▲ 안양천 버드나무 버드나무는 자연 하천의 상징성을 갖는다.
ⓒ 이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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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에는 안양시의 노력이 있었다. 안양시는 '안양천 관리팀'이란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전국에서 특정 하천을 전담하는 부서를 두는 지자체는 별로 없을 듯하다. 그 덕분에 안양천의 버드나무를 지킬 수 있었다. 치수를 중요시 하는 이들에게 버드나무는 홍수 시 물의 흐름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논리를 맞서서 안양천의 생태성을 위해 버드나무를 지켜냈던 이들이 '안양천 관리팀'이다.

안양시는 지역의 시민단체들과 함께 문제가 될 수 있는 지역에 대한 상시 감시활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그 덕분에 지난 3월에는 폐수배출 업소를 적발하기도 했다. 또한 15곳에서 수질과 안양천 생태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피라미 등과 함께 밀어·모래무지 등 2등급 수질에 서식하는 어류들이 발견되고 있다는 게 안양시 안양천 관리팀 최현수 주무관의 설명이다.

안양시 만안구에 위치한 '안양천 생태 이야기관'은 안양천의 과거, 현재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루게 설계된 이곳은 2012년 11월 개관한 이래 하루 150명의 학생 및 시민들이 찾는다고 한다. 최현수 주무관에 따르면 이용객들은 안양시민은 물론 군포시, 의왕시 등 주변 도시에서도 찾고 있다.

안양천 협력 체계 미흡, 앞으로 비전 불투명

안양천 중·상류 구간의 변화는 육안으로 봐도 대단했다. 도심 속 생태 하천으로서의 실현 가능성도 높아 보이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라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안양천을 생태하천으로 만들기 위한 지자체간의 협력 체계가 미흡하다 보니, 생태하천에 반하는 사업도 시행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안양천이다.

지난해 경기도 군포시는 7년 전 생태하천 사업이 진행돼 회복된 하천 구간을 또다시 생태하천으로 조성하겠다며 30억 원의 예산을 들여 하천을 파헤친 일이 있었다. 올해 들어서는 군포시 당정동 애자교 부근 하천변에 불필요한 하상 도로를 만들어 비판을 자초했다. "주변에 도로 확장 및 신설되는 도로가 있는 만큼 하상도로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라는 것이 안명균 경기녹색당 운영위원장의 지적이다.

의왕시의 경우 안양천의 발원지인 백운호수 부근을 치수를 목적으로 하천을 콘크리트로 도배했다. 안양천 서울구간의 경우는 과거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생태성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안양천 생태하천 복원이라는 유역의 합의에 금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본의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교감을 강조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살아 있는 생명들의 모습을 인위적인 방식이 아닌 생명 그대로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게 하는 전략 때문이었다.

안양천과 같은 하천은 도심에서 생명과 교감할 수 있는 훌륭한 공간이다. 따라서 하천의 생태성을 높이는 것이 주민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안양천 살리기는 앞으로도 계속 돼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blog.naver.com/ecocinema)에도 올립니다.



태그:#안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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