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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세월호침몰사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이 16일 경기도 안산에서 국회를 향한 도보 행진에서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함께 동참하며 응원을 하고 있다.
▲ 도보행진 동참하는 수 많은 인파 세월호침몰사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이 16일 경기도 안산에서 국회를 향한 도보 행진에서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함께 동참하며 응원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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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가족들과 함께 있었다. 서너 달을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지내던 네 식구가 오랜만에 휴가를 내고 한 자리에 모인 참이었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던 4월 16일 낮 12시께, 우리 가족은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오붓하게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휴대폰에 뜬 '세월호 탄 학생 200여명 대부분 구조'란 속보를 보며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꼭 석 달이 지난 7월 16일 낮 12시께. 나는 1박 2일 도보행진에 나선 안산 단원고 학생들과 함께 걸었다.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생존한' 2학년 학생 75명 중 43명이, "왜 친구들이 억울하게 죽었는지 진실을 밝혀 달라"며 길을 나섰다.

15일 경기 안산 단원고에서 출발한 이들은 22시간 만에 여의도 국회에 도착해 숨진 친구들의 부모님(유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관련기사: 22시간 만에 국회 도착, 눈물바다... 학생들, 편지 20통 유족들에게 전달)

오른 발 깁스하고도 함께 걷겠다는 학생... 부모들 "이렇게 밝게 웃는 건 처음"

세월호침몰사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이 16일 경기도 안산에서 국회를 향한 도보 행진을 하고 있다.
▲ '다리 아프지만 포기 안해!' 세월호침몰사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이 16일 경기도 안산에서 국회를 향한 도보 행진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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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걸으며 본 학생들의 표정은 밝았다. '김빛나라', '유예은', '김해화'... 인형이 달린 아기자기한 가방에는 숨진 친구들의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얼마 전 복숭아뼈를 다친 한 학생은 오른 발에 깁스를 하고서도 "저 괜찮아요"라며 함께 걸었다. 걷는 내내 수다와 웃음이 끊이지 않는, 여느 고등학생과 같은 모습이었다. 세월호 사고를 겪은 것만 빼면.

눈물을 보인 건 되레 응원을 나온 시민들이었다. 학생들이 걷는 길목마다 삼삼오오 모여 "얘들아 힘내", "너희가 희망이다" 등을 외치던 인근 주민들. 특히 응원을 나온 시민 중 40~50대 여성들은 열에 아홉 눈물을 보였다. 40대 초반 이안소영씨는 "살아 돌아온 것만도 고마운데, 친구 부모님을 위로하기 위해 국회까지 걸어간다니 그 마음이 너무 예쁘다"며 눈물을 훔쳤다.

세월호침몰사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이 16일 경기도 안산에서 국회를 향한 도보 행진에서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응원을 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눈물 흘리는 시민 '얘들아 미안하다' 세월호침몰사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이 16일 경기도 안산에서 국회를 향한 도보 행진에서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응원을 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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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살아 나와서 좋냐, 친구를 어떻게 배신하냐'는 등의 말을 들으며 죄책감에 시달렸다"는 생존 학생들. 이들이 직접 행진을 하겠다고 나서자 일부 학부모들은 걱정하며 반대했지만, 걷는 모습을 지켜본 뒤엔 달라졌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이렇게 밝게 웃는 건 사고 후 처음"이라며 "걸으면서 아이들도 치유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동원 생존학생 학부모 대표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는 "어젯밤(15일) 아이들에게 '속이 후련하냐'고 물으니 '좋아요'라고 대답하더라"며 "이렇게 해야만 (생존 학생들) 치유가 가능하다는 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한숨을 내쉬며 아이들을 걱정하던 그는 행진 때만큼은 누구보다 무서운 '아빠'로 변했다. "거기 카메라, 애들이 걸려 넘어지면 책임 질 거예요?"라 화를 내며 취재진의 근접 촬영을 막아서곤 했다. 

특별법 놓고 힘겨루기 하는 정치권... 유족들 "왜 죽었는지도 모른다" 눈물

세월호침몰사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이 도보행진으로 국회를 방문한 16일 오후 국회 앞 정문에서 단식 농성 중이던 유가족 학부모를 만나 포옹을 하고 있다.
▲ 생존 학생 안아 주는 세월호유가족 세월호침몰사고 생존 단원고 학생들이 도보행진으로 국회를 방문한 16일 오후 국회 앞 정문에서 단식 농성 중이던 유가족 학부모를 만나 포옹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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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딸이랑 가장 친한 '절친' 아이가 내일 걸어온다고 해서요. 그 애가 제 딸을 가장 마지막으로 본 애거든요. (침몰 전에) 우리 딸과 인사하고서 그 애는 갑판으로, 우리 애는 선실로 들어갔대요. 그 때 우리 딸도 갑판으로만 나왔으면, 어쩌면…."

생존 학생들을 응원하러 안산에 온 정영미(2-9 고 이보미 양 어머니)씨는 "딸 친구들이 이렇게 걸어 와준다는 게 너무 고맙고 기특하다"고 말했다. "끝까지 잘 해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그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생존 학생들을 꼭 껴안아줬다.

16일 오후 학생들이 도착한 국회 정문 앞, 응원을 나온 시민 100여명과 경찰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곳 뒤편에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단원고 희생 학생 어머니들이 있었다. 숨진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새긴 티셔츠를 입고, ▲ 특위에 강력한 수사·기소권 부여 ▲ 최대 3년의 활동기간 등을 주장하며 국회 앞에서 단식 중인 유족들이었다(관련기사: 세월호 가족의 국회 노숙 이유, 진실 알면 놀란다 ).

사고 후 많은 이들이 '미안하다, 잊지 않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안전사회'를 주창하던 박근혜 대통령 또한 지난 5월 19일, 대국민담화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제게 있다"고 말했다.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던 박 대통령은, 세월호 특별법이 표류하고 있는 지금 보이지 않는다.

5월 19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도중 의로운 희생자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눈물 흘리는 박근혜 대통령 5월 19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도중 의로운 희생자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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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 후 꼬박 석 달이 지난 7월 16일.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은 곡기를 끊은 채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요구하며 국회 본관 앞에 노숙 중이다. 세월호 사고에서 살아난 학생들은 "친구들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세요"라며 약 35km를 걸었다. 아들냄새가 그리워 아들 옷을 입고 다니는 고 최성호 군의 아버지는 "내 새끼가 왜 죽었는지도 모르는 힘없는 아빠"라며 울부짖었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던 정치인들은, '최종 책임은 제게 있다'며 함께 울던 여성 대통령은 당최 어디에 있을까.

300여 명이 한꺼번에 숨진 세월호 사고 후 100일이 다 돼가는 지금. 기사를 작성하던 6시 40분께,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 '담판'을 벌인다던 여야 지도부가 수사권 부여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담판에 실패했다는 속보가 떴다. 유족들은, 생존학생들은, 국민들은 여전히 세월호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건만, 정치인들은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모양이다.   


태그:#생존학생 도보 행진, #세월호 특별법, #유가족 단식농성, #세월호 침몰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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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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