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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스페셜 <부모 vs 학부모>
 SBS 스페셜 <부모 vs 학부모>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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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5일, SBS스페셜에서는 <부모 vs 학부모>라는 제목으로 교육의 주체인 학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총 3부작으로 구성된 이 다큐멘터리는 개인 블로그와 인터넷 카페를 통해 입소문이 더해지면서 많은 호응을 받았습니다.

이 다큐멘터리의 여파로 학부모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곳도 생겼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2014 학부모가 뽑은 교육 브랜드 대상'에서 '2014 바른교육상'을 수상하는 것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상을 받으며 지금까지도 계속 그 영향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드디어 이 다큐멘터리가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이야기를 정리하고, 그 외 다 담지 못한 이야기까지 담은 책입니다. 올해 9월 30일에 출간된 이 책을 저도 얼마 전에 구입했습니다. 근무하는 곳에서의 필요성 때문이기도 했고, 또 개인적인 궁금증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궁금증이라는 것은, 바로 다큐멘터리 초반에 나온 사건에 대한 것었습니다. 2011년, 그 사건이 터졌을 때 저는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가 사건에 대한 기사가 계속 보도되면서 저는 사건 속의 소년에게 깊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을 움직였던 기사는 2011년 11월 28일에 <미디어스>의 한 칼럼이었습니다. '고3학생 모친 살해사건에 담긴 나와 당신의 합리적 폭력'이라는 제목의 그 칼럼은, 고3학생이 어머니를 죽이고 안방에 방치한 채 수능을 보러 갔다는, 당시 사건의 핵심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머니의 욕망과 아들의 욕망을 세세하게 짚어가며 쓴 그 기사를 읽고 저는 그 아들이나 저나 별로 다름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그 아들이, 범행 발각 직전에 말한 한마디때문이었습니다.

'아빠, 무슨 일이 있어도 나 안 버릴 거지?'

죽은 엄마를 방치한 채 여자 친구를 사귀고, 친구를 집에 불러 라면을 끓여 먹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 그 소년의 진짜 마음이, 그 한마디에 다 들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버림받을까 봐 학대를 당하면서도 어머니께 저항하지 못했고, 참다 못해 어머니를 살해하고도 또 다른 이들에게 버림받을까 봐 차마 범행 사실을 자백하지 못하고 8개월간 마음 속에 죄를 숨긴 채 살았던 그 소년의 외로움이, 그 순간 저의 마음에 뜨거운 물처럼 끼쳐 왔습니다.

소년을 다시 만난 것은 2014년 1월이었습니다

제 삶도 돌아보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우등생으로, 속 썩이지 않는 딸로 자라왔지만 제 마음속에는 늘 버림 받음에 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1등을 하지 못하면, 잘하지 못하면, 남들 마음에 들지 못하면 버림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저를 당시의 고등학교 교사의 자리로까지 이끌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사가 된 그때에도 저는 여전히 버림 받을까 두려워하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동료 교사들에게, 그리고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께.

깊은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그런 교육 환경이 그토록 싫었으면서, 여전히 그런 교육 환경을 바꾸지 못하고 반복 재생하고 있는 자리에 있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등급으로 학생들을 나누고, 시험 성적으로 상처받는 학생들에게 그래도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격려하면서 저 또한 학생들을 버림 받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교육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개인적인 어려움 때문에 그전에도 사직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그 기사로 말미암아 사직 결심을 더 굳혔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소년이 형을 받고 잘 살기를, 죗값을 치르고 나서 새사람이 되어 행복하게 살기를 기도했습니다.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2월, 저는 학교를 사직했습니다.

소년을 다시 만난 것은 2014년 1월이었습니다. 잊힌 줄 알았던 그는 청년이 되어 다큐멘터리의 도입부에 등장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편지로 담담하게 전해 주었습니다. 그의 고민과 고통, 외로움이 글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져 오는 것 같아서 내레이터가 편지를 읽는 내내 저는 먹먹한 가슴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다큐를 담은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당장 책을 구입했습니다.

호기심 갖고 정독한 책, 그런데 이해가 안 됐던 건

<부모 vs 학부모> 겉그림
 <부모 vs 학부모> 겉그림
ⓒ 예담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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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초반부터 제가 관심 있게 봤던, 사건의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통해 보는 사건은 더 가슴이 아프고 생생했습니다. 촉망받는 우등생이 존속 살해범이 되기까지의 그 사정들은 알면서도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챕터가 끝난 후에는 다큐멘터리 담당PD의 에피소드가 나와 있는데, 첫 번째 챕터 뒤에는 바로 그 청년을 직접 만난 이야기가 나와 있었습니다.

에피소드에서는 제작진이 먼저 그의 아버지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다고 설득하고, 그의 아버지를 따라 교도소에서 그를 만나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편지를 받게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교도소에서 보았던 그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실제 모습이 어떨지 매우 궁금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주목해서 읽었습니다.

많지 않은 나이에 엄청난 일을 겪었음에도 눈빛은 차분했고 표정은 담담했다. 크고 명민해 보이는 눈동자,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배려와 절제된 어조, 평정심을 지키고 있는 모습에서는 아버지의 뒤늦은 노력이 읽혀졌고, 정제되고 조심스런 몸가짐에서는 좋았던 시절 어머니의 가르침이 느껴졌다. 잘 배우고 자란 것 같아 보이는 이 청년이 평생 안고 가야 할 고통의 무게가 안타까웠다.

이미 아버지를 통해 제작진이 같이 면회 올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짧게 취지를 전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어떻게 제가 감히... 그게 어떤 도움이 될까요?"라는 아들의 반문에 아버지가 거들었다. 어머니 모습을 고통스럽더라도 이젠 제대로 바라보자는 권유였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더 이상 말을 건네기는 어려웠다.
(책 <부모 vs 학부모> 46페이지, PD's episode 중)

청년의 모습은, 존속 살해범이라기보다는 평범한 모범생의 이미지에 더 가까워 보였습니다. 청년을 봤을 때 제작진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저도 생생히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또한 청년이 이 면회를 별로 편안해하지 않는 것에 저는 또 한 번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고개를 숙인 그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그만이 알 수 있겠지만, 그 순간 오갔을 마음의 고통이 어떠했을지는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청년의 편지 내용 중 한 부분 때문이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날의 끔찍함이 저를 휘감습니다. '이 손으로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했구나'하는 자괴감이 저를 먹어치울 때면 구토가 나올 것만 같고 그냥 두 손을 잘라내고만 싶기도 합니다.(책 <부모vs학부모> 23페이지, 편지 내용 중)

꼭 그래야만 했을까

이것은 단순히 죄책감이 깊은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전형적인 증상이기도 합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최근 세월호 사고 때문에 널리 알려지기도 한 정신병의 한 증상입니다. 견딜 수 없는 큰 외상을 겪고 난 후 그 스트레스가 계속 나타나는 증상으로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고통스러운 병입니다.

이 증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해리 반응으로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그 사건 자체가 생각이 나지 않거나, 그 느낌이 떠올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마치 그때 그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생생하게 그 감각 하나하나를 느끼는 것입니다. 청년이 겪는 장애는 이 중에 후자에 해당합니다. 문제는 이 증상이 시시때때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예고 없이 찾아드는 고통스러운 증상 때문에 극심한 경우에는 자살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단순히 아픈 과거를 회상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고통을, 청년은 안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청년에게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책에서 제작진은 그런 청년에게 아픈 과거를 끄집어내는 편지를 요구한 사실을 미안해했고, 또 최선을 다해 편지를 보내준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과연 그랬어야만 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비록 그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려는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어쩌면 그는 이후에도 이와 같은 요구에 계속 시달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언론에서, 교육계에서, 그의 이야기를 계속 필요로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계속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으로 낙인 찍힌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하더라도 저는 그것이 한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고 낙인을 찍는 것이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지난 일은 어쩔 수 없더라도 앞으로라도 그런 일들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부모 학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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