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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

이번에 백두산 등정은 4번째인데 가장 화창하고 선명한 천지를 볼 수 있었다. 1980년대 통일을 염원하면서 '한라에서 백두까지' 구호를 외쳤다. 초겨울 청명한 날씨 속에서 천지를 볼 수 있음은 백두산 천지에서 지리산 천왕봉까지 끊긴 산줄기가 힘차게 뻗어나가는 백두대간 줄기가 되어 물리적·정신적으로 곧 이어지리라는 징조로 본다.

조선족 안내원이 어제까지만 해도 11월에 천지를 본다는 것은 눈보라나 맹추위 때문에 쉽지 않다고 하여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왠일인가?

어느 때보다 맑고 아름다우면서 장엄한 천지 모습을 본 회원들은 온 몸에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이 전율은 회원들이 천지에서 통일이 이미 다 된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였지만, 통일에 대한 강렬한 염원과 실천의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 또한 사실이다.

필자가 백두산 천지를 4번째로 맞이하였는데 가장 청명한 날씨였다. 11월 에 이런 날씨가 드물단다. 남북이 하나됨을 위한 좋은 징조라는 생각이 들다.
▲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 필자가 백두산 천지를 4번째로 맞이하였는데 가장 청명한 날씨였다. 11월 에 이런 날씨가 드물단다. 남북이 하나됨을 위한 좋은 징조라는 생각이 들다.
ⓒ 신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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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를 오르는 길 양옆에 잔설이 있기는 하지만 하늘은 그지없이 청명하다.
▲ 백두산 천지 오르는 길 천지를 오르는 길 양옆에 잔설이 있기는 하지만 하늘은 그지없이 청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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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천지는 우리 민족의 조종산이자 성산이라 불린다. 지금부터 약 100만 년 전에 화산 작용으로 땅속 깊은 곳에서 용암이 솟아 나와 이루어졌다.

 평화통일아카데미 회원들이 통일을 염원하면서  천지에 서다.
▲ 백두산 천지에서 통일아카데미 회원들 평화통일아카데미 회원들이 통일을 염원하면서 천지에 서다.
ⓒ 신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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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 서서 전교조 통일위원회 소속 선생님들이 통일에 대한 의지를 드높이다.
▲ 백두산 천지에 선 전교조 통일위원회원들 천지에 서서 전교조 통일위원회 소속 선생님들이 통일에 대한 의지를 드높이다.
ⓒ 신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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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에는 수많은 신화와 전설이 서려 있다. 그중 삼지연 부근에 단군이 처음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터전을 잡았던 신시(神市) 즉 천평(천리천평(千里千坪))이 있다고 한다. '하늘처럼 높은 곳에 있는 광활한 땅'이라는 뜻을 지닌 천리천평이 육당 최남선의 <백두산근참기1>)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백두산에서부터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은 한국의 기본 산줄기로서 모든 산들이 여기서 뻗어내렸다 하여 예로부터 백두산을 민족의 성산으로 숭배하였다.

이번 연변 항일 자주 독립 투쟁 답사를 함깨 한 2조 모둠원들이다.
▲ 백두산 천지 앞에서 2조 모둠원들 이번 연변 항일 자주 독립 투쟁 답사를 함깨 한 2조 모둠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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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학교 회원들이 조국이 하나됨을 기원하다.
▲ 백두산 천지앞에서 615학교 회원들 615학교 회원들이 조국이 하나됨을 기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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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조선족자치주에 사는 우리 동포들에게서 수집하여 발간한 전설고사집 속에 백두산에 관한 전설로 <백두산의 목동과 선녀>·<백두산의 사냥군과 호랑이>·<오늘날 왜 호랑이가 보기드문가?>·<백두산의 화마> 등이 있다.

이중에서도 <백두산의 목동과 선녀>는 우리 민족의 발상과 재미있게 연관을 시켰으며, 우리 민족이 백두산을 마치 신앙처럼 숭상하고 좋아하는 이유를 잘 말해주고 있다. 백두산은 단군의 개국신화 외에도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탄생설화와 관계가 있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뿐 아니라, 북방의 여러 민족의 발상설화도 얽혀 있다. 청나라에서는 자기들의 조상인 애친각라(愛親覺羅)의 발상지라 하여 숭상하여, 1677년에는 대신 각라식목눌(覺羅式穆訥)을 파견하여 백두산을 탐사하였으며, 1684년에는 장백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민족이 수난을 당하던 때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닿도록….'이라고 가사를 지은 것은 단순히 조국의 영원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우리의 민족혼을 잃지 말자고 피를 토하듯 외친 것이다.

백두산은 일찍이 그 명칭이 '불함(不咸)' 곧 신(神)의 산으로 일컬어온 것처럼 한결같이 우리 민족 누구에게나 신성시되어있는 점이 세계당나라 때 편찬된 <괄지지(括地志)>에는 백두산의 조수초목(鳥獸草木)은 모두 백색이라고 기록할 만큼 상서로운 산으로 추앙하였다. 또한 예로부터 백두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산에 오르기 전에 반드시 목욕재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백두산 신령께 제사를 지냈다. 어떤 산과도 다른 점이다.

금강대협곡(장백산대협곡)은 계곡 길이 약 15㎞, 골의 깊이가 70~100m,넓이는 100~200m경사가 급하며 V자 형상의 협곡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협곡의 물은 천지에서 발원, 중국쪽 송화강을 이룬다.

금강대협곡은 백두산이 화산폭발을 일으킬 때 용암이 흐르던 자리가 오랜세월 풍화에 씻겨 이루어진 것이다. 협곡의 크기는 평균120m이며 깊이는 평균80m이고 길이는 10km나 된다.
▲ 금강대협곡 금강대협곡은 백두산이 화산폭발을 일으킬 때 용암이 흐르던 자리가 오랜세월 풍화에 씻겨 이루어진 것이다. 협곡의 크기는 평균120m이며 깊이는 평균80m이고 길이는 10km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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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
▲ 금강대협곡 칼바위 칼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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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모양을 하고 있다.
▲ 금강대협곡 낙타바위 낙타모양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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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에서 연변 숙소까지 비교적 긴 시간 동안 버스로 이동하였다. 이동하면서 통일 관련 노래를 모둠별로 돌아가면서 부르다. 회원 한 명이 부르면 나머지 모둠원이 합창하는 방식으로 하다. 저녁에는 북측 식당에서 우리 음식으로 맛있게 먹으면서 북측 접대원들의 아름답고 멋있는 공연을 관람하다. 사진도 몇 장정도 찍었다.

북측 식당에서 평화통일 아카데미 회원들이 북측 공연단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북측 식당 북측 식당에서 평화통일 아카데미 회원들이 북측 공연단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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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호텔 로비에서 모둠별로 1명씩 소감을 발표하였다. 그런 다음 회원들 거의 모두가 인근 노래방에 가서 단결의 밤을 보내다. 나는 몸 상태가 여의치 않아서 얼마간 있다가 귀가하였다, 그런데  5분 정도 거리인데 인적이 드문 것이 아니라 아예 없어서 안내원이 혼자 행동하지 말라는 말이 실감나다.


태그:#백두산천지, #금강대협곡, #칼바위, #북측안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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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에 몸담으면서 교사.교육활동은 현장단위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에서도 변혁이 되어야만 참교육에 이른다고 봅니다.그래서 짧은 소견을 대중적인 전자공간을 담보하고 있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전달하고 합니다. 저서로 [자본론노트],[청소년을위한백두선생경제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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