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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거래는 꼼꼼해야 한다. 봤던 서류도 다시보고 또 보고 그렇게 밤은 깊어만 간다.
 신규거래는 꼼꼼해야 한다. 봤던 서류도 다시보고 또 보고 그렇게 밤은 깊어만 간다.
ⓒ 추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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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중심에서 조금 벗어난 지 15분쯤. 이곳에 도대체 어떻게 사무실이 있을까 싶은 기괴한 곳으로 김 디자이너의 차는 이동하고 있었다. 강 팀장과 나는 뒷자리에서 곧토(곧 토하기 직전)단계다. 김 디자이너는 신이 나서 이미 노래를 4곡째 부르고 있다. 타고난 목청이지만 리듬은 하나도 맞지 않는 저 노래를 들은 지도 어언 5년. 갑자기 상념에 잠기려고 하는 찰나 저기 우리가 그토록 원하던 'Y 인터넷서점'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저기다!"

김 디자이너는 아주 잽싸게 핸들을 우측으로 낚아챘고 차는 기우뚱하면서 옆의 갓길로 기우는가 싶더니 다시 직진 코스에 올랐다. 다음부터는 기필코 직접 차를 몰고 오리라. 

"여긴 창고인데?"

김 디자이너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라고 외치는 내비게이션의 얼굴을 바라본다. 가끔 먹통이 되어 우리를 골탕먹인 전례가 있으므로 내비 대신 우리가 본 방금 그 간판을 믿기로 했다.

"강 팀장, 여기가 신규 거래 담당하는 곳 맞나요? 여는('여기는'의 대구 사투리) 보이('보니'의 대구 사투리) 완전 창곤데? 여기에 우째('어떻게'의 대구 사투리) 신규 거래 사무실이 있단 말이오?"

강 팀장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대표님 여기가 맞습니다. 제가 확인해보겠습니다."

강 팀장이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려는 찰나 나는 차에서 껑충 뛰어내렸다. 대한민국의 전형적 '8282(빨리빨리)'의 홍보 대사랄까? 그래, 나는 엉덩이가 무척이나 가벼운 남자다. 사실 내가 지금 이렇게 급한 이유는 Y 인터넷 서점의 신규 거래 후 여의도에 있는 Y 인터넷 서점 본사를 찾아가 엠디(MD)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K 문고에서는 담당 엠디(MD)분이 워낙 많은 출판사 영업 직원과 미팅이 잡혀 있어 결국 신규 거래 후 대면하지 못했다. 다음을 기약하며 나왔던 터라 Y 인터넷 서점에서는 반드시 엠디(MD)를 만나 뵙고 신뢰를 얻어야 했다.

분당 180단어... "강 팀장, 이거 다 이해하지?"

요리조리 고개를 닭마냥 돌려대고 있으니 Y 인터넷 서점의 직원 한 분이 창고 문을 열고 나온다.

"혹시 대구에서 오신 워드스미스 출판사이신가요?"

이거 정말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일세. '길 잘못 찾아온 거 아냐' 마음속에 자라던 수 없이 많은 의심과 노여움이 사라졌다. 강 팀장이 길을 잘못 알았다면 또 반나절을 잔소리할 심사가 차오르고 있었는데 그 마음이 한 번에 변기물 내려가듯이 경쾌하게 내려가는 느낌이랄까?

Y 인터넷 서점의 신규 거래 장소는 K 문고의 번듯한 사무실과는 사뭇 달랐다. 처음엔 창고 같아 낯설고 어색했는데 이내 사무실 귀퉁이에 자리 잡은 오붓한 의자에 앉아 있으니 아까 빼꼼히 문을 열어 안내해준 직원 분이 서류 뭉치를 들고 오신다. 명함을 서로 건네받아 보니 신규 거래 담당 대리님이다.

혼자 요리조리 '강 팀장이 왜 안 들어오지 하고' 혈압이 중력과는 반대 방향으로 수직 상승하고 있던 찰나 문을 열고 강 팀장이 거구의 몸을 들이밀었다. 이내 내 눈을 마주치고 반가운 얼굴을 하고는 옆자리에 앉아 서류를 꺼냈다.

친절한 신규 거래 담당자님께서는 경기도 말투와 서울 말투가 섞여 부대찌개와 같은 구수한 느낌의 말투로 우리에게 거래에 관한 설명을 시작했다. K 문고의 신규 거래 담당을 하셨던 아무개 과장님과 비슷한 속도의 분당 180단어 정도 되는 듯했다. 한 문단을 끝낼 때까지 쉼표가 없었다. 나는 그 말을 처음에는 따라가려 애쓰다가 이내 고개만 끄덕이는 고양이 인형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유통, 물류를 전적으로 준비한 강 팀장에게 "이거 다 이해하지?"라는 눈빛을 쐈다.

강 팀장은 강한 확신의 눈빛 댓글을 단다.

"대표님 여기 도장만 찍으마('찍으면'의 대구 사투리) 됩니다."

신규 거래 계약서, 인감 증명서, 워드스미스 통장 사본, 사업자 등록증 등 각종 서류를 제출하고 Y 인터넷 서점의 거래 규율이 적힌 종이를 받아들고 고개를 드니 직원 분께서 지긋한 눈빛으로 모든 게 어설픈 강 팀장과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혹시 오늘 MD분 만나러 가세요?"

시계는 오후 2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네, 오늘 여의도에 MD분을 만나러 가려고 합니다."

"아, 그래요? 그럼 거기 본사에 보통 오후 4시쯤되면 미팅이 끝나니 조금 서두르셔야 할듯해요. 제가 전화해서 자기 계발 분야 MD분께 워드스미스 출판사에서 간다고 이야기를 해둘 테니 어서 출발하세요. 혹시 위치는 아시나요?"

나는 강 팀장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강 팀장은 자신 있게 말한다.

"내비에 찍어서 가마('가면'의 대구 사투리) 됩니다."

갑자기 Y 인터넷 서점의 신규 담당 거래 직원분은 명함사이즈의 메모지와 볼펜을 꺼내 내비보다 100배 빠른 속도로 안내를 시작했다.

"국회의사당서 지나서 신호등이 있고~"

약 3분에 걸쳐 본사 위치를 반복적으로 상세히 설명해주셨다. 정말 감동이었다. 따뜻한 음성으로 이토록 배려해준 Y 인터넷 서점의 모습은 출판 시장에 도전장을 내고 수많은 경쟁 도서와 경쟁사의 등장에 옆구리가 벌써 터지고 있던 우리에겐 천사와 같은 푸근함이었다.

Y 인터넷 서점에서 왠지 우리 책이 가장 잘 팔릴 것 같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예감은 현재까지 그렇다). 인사를 다시 땅에 닿을듯이 하고 서둘러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 디자이너의 차에 올라탔다. 김 디자이너는 다시 질주 본능을 뽐내며 여의도 본사에 45분 만에 도착했고 나는 책과 보도 자료를 차에서 꺼내자마자 미팅룸이 위치한 5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예쁘게 꾸며진 본사 미팅룸.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초현대식의 사무실이 유리 너머로 보였다. K문고 본사 사무실과 다름없었다.

"멋지다. 아~"

갑자기 머리 한편 스믈스믈 올라오는 가난한 흥부집같은 우리의 사무실. 잊자 잊어. 왼편의 복도를 따라가자 미팅룸이 있었다. 그곳에는 아까 4시간 전 K 문고 파주 본사에서 본 검은색 바바리 코트를 입은 서울말을 쓰는 한 사내가 가죽 가방을 만지작거리며 앉아 있었다.

'아니, 저분은 아까 K 문고 본사에서 봤던 그 분 아닌가?'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앉은 그는 차분히 미팅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꺼내 든 책을 보니 온갖 베스트셀러를 대량 생산해내는 알아주는 대형 출판사에서 온듯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번듯하게 앉아 있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프로다움'을 느꼈다.

초라한 내 모습... 하지만

그저 그런 계약이 아닌 사람과 사람사이의 모든 일에는 진심이 전해져야 한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신규거래시 드릴 책의 간략한 소래를 담은 한장짜리 엽서에 편지를 쓰고있습니다.
 그저 그런 계약이 아닌 사람과 사람사이의 모든 일에는 진심이 전해져야 한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신규거래시 드릴 책의 간략한 소래를 담은 한장짜리 엽서에 편지를 쓰고있습니다.
ⓒ 추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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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비친 나를 보니 기름은커녕 진기가 다 빠진듯한 푸석한 피부와 가늘어져 푹 내려앉은 머리, 퀭한 눈이 도드라져 있었다. 곶감이 너무 익어 내려앉은 느낌의 촉감을 안다면 아마 내 두개골의 피로도가 느껴지리라. 구색을 갖춰 입은 세미 정장의 남방은 온갖 주름이 잡혔고 청바지는 살찐 허벅지 때문에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비즈니스 패션... 나 왜 이러고 왔을까? 자괴감이 밀물처럼 몰려든다.

순간 주변의 모든 상황이 슬로우 화면처럼 내 앞에 펼쳐졌다. 미팅룸 곳곳에서 엠디(MD)와 출판사 직원이 미팅을 하고 있었는데 나만 빼고 모두가 프로 같아 보였다. 소외감이 들었고 내심 걱정스런 마음이 들었다. 뒤에서 갑자기 누가 헥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강 팀장이었다.

"대표님, 책 두 권 들고 올라왔습니다. 차에 두고 가셨더라구요. 이거 줘야 엠디(MD)분이 책을 읽고 우리 책을 엠디(MD)의 추천 서적으로 홈페이지 메인에 떡하니 '책 걸이'를 해줄 거 아닙니까. 젤 중요한 거를 빼두고 가마('가면'의 대구 사투리) 우짭니까?"

강 팀장의 대구 사투리를 들으니 단번에 정신이 든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기죽을 순 없지. 

'그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보자.'

파란색 옷을 입은 MD분과 차기 MD트레이닝을 받는 분으로 다른 한 여성 분이 앉아 있었다. 이름을 보니 내가 만나야 할 그 MD분이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축지법을 써서 순식간에 MD님 앞으로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보다 매끄럽게 나아갔다.

"안녕하세요. 워드스~"

미처 뒤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표준어를 쓰는 출판사 직원을 못봤다.

"아~ 서 과장님, 그거 저번에 한 거 있잖아요~"

내 말은 고등어 목 쳐지듯 날아가고 사막에 홀로 선 낙타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MD분이 나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물음표(?)를 얼굴에 띄운다.

"아, 죄송합니다. 먼저 말씀 나누셔요. 제가 다른 분이 계신 걸 못 봤습니다."

누가 A형 아니랄까 봐 시무룩해진 나는 뒤쪽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는 당나귀 귀를 하고 다른 출판사에서는 어떻게 자신의 책을 홍보하는지 염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프로였다.

책에 대한 정보도 명확하게 한 문단, 두 문단으로 소개할 준비를 이미 마쳤고, MD에게 올 때 이미 수차례 언론에 보도된 미디어 자료 또한 준비한 상태였다. 반면 나는 '열심히 할 테니 이 책 한 번 읽어보시고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같은 3류 프레젠테이션을 할 계획이었는데 번지 수를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고른 모양새였다. 엠디(MD)옆에 이미 쌓인 많은 책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그랬다. 모든 미팅에서는 그 미팅을 지원 사격할 데이터가 완벽해야 했다. 누구 하나 열정 없이 죽을 각오로 뛰어들지 않는 이가 없었다. 열심히 준비한다고 했지만, 제대로 된 데이터가 없었다. MD에게 어필해야 할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껴지자 돌아가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느낌이 왔다. 쥐구멍이라도 숨어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 또한 배움이었다.

약 10분쯤 기다렸을까? 먼저 온 출판사의 직원 분과의 대화가 끝났다. 나는 두 분의 MD 앞에 앉았다. 그리고 약 10분간 나의 우리의 책 프리젠테이션이 시작됐다. 한숨을 몰아쉰다. 시작해볼까?


태그:#엠디미팅, #홍보, #출간, #출판,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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