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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타지마할에서 불가사의한 감정에 휩싸이다.
▲ 제12일 타지마할 불가사의한 타지마할에서 불가사의한 감정에 휩싸이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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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바로 앞에 있는 타지마할 동문에 가니 아직 문이 닫혀 있었다. 바로 곁에 우리와 똑같이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한 한국인 가족이 있었다.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통성명을 했다. 꽁지머리를 뒤로 묶은 범상치 않은 외모를 한 남편과 아내, 그리고 12살짜리 아들이 인도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오전 8시에 게이트가 오픈된다고 하여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도를 꽤 많이 방문했으며, 매년 가족 여행을 떠나는데 이번에는 아쉽게도 딸아이만 여행에 동참하지 못했다고 했다. 만약 시간이 된다면 조용하고 한적한 도시인 자쉬카르를 방문하라고 추천해 주었다. 다음 행선지가 바라나시라고 하니, 이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바라나시에서 멍 때리다 신이 들렸는지 뭔 이유인지 정신줄을 놓은 한국 여자가 있었는데, 고국으로 강제 송환되었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 바라나시에 가면 유독 한국인 중에 정신줄 놓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8시가 지났는데도 게이트가 열리지 않아 확인해 보니, 남문과 서문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남문에서 무려 1인당 750루피(한화 1만 2000원)의 거금을 내고 타지마할에 입장했다. 입장료는 250루피인데 외국인을 대상으로 500루피의 ADA, 즉 '아그라 발전 기금'을 받고 있었다.

인도의 주요 유적지를 방문할 때마다 현지인과 외국인의 입장료 차이가 너무 심했다. 여기 타지마할도 현지인은 몇 십 루피 정도면 입장 가능한데 외국인은 그 수십 배인 750루피를 내야 했다. 어느 정도 외국인에게 더 많은 입장료를 받는 것은 이해하지만, 현지 물가와 비교해 보았을 때 좀 지나친 면이 있었다. 입장권과 함께 작은 생수 한 통, 그리고 타지마할 건물에 들어갈 때 필요한 덧신을 받았다.

짙게 안개가 드리운 타지마할이 희미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 타지마할의 입구에 서다 짙게 안개가 드리운 타지마할이 희미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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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을 통과하고 타지마할로 서서히 다가갔지만 짙은 아침 안개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까이 갈수록 나름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타지마할의 뽀얀 속살이 안개 뒤로 보이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찍었다는 포토존에 가자, 인도 현지인들이 "자신들과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냐?"며 다가왔다. 이거 누가 누구에게 함께 찍자고 해야 하는 것인지. 나는 잠시 타지마할 한복판에 서서 인도인들의 사진 모델이 되어야 했다.

정원을 지나 신발을 벗고 타지마할 대리석단으로 올라가자 위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바로 '환생한 샤 자한 왕'이었다. 인도 영화에서 봄직한 잘 생긴 인도 청년이었는데, 그는 손짓으로 뭐라 뭐라하며 우리에게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그를 기다릴 때까지 나와 장호는 바로 곁에 있는 현지인 가족들의 사진 모델이 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샤 자한이 내려왔을 때 모든 가족이 하나가 되어 사진을 찍었다. 그들의 행복이 나에게 번지며 가슴에 온기가 스며들었다. 모델 역할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타지마할을 보러 맨 위의 단으로 올라갔다.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마냥 뛰고, 눕고, 달리고, 비비고, 만지며 타지마할을 만났다.

우리가 세상은 보는 창은 나와 세상이 만든 인위적인 창이다. 사람을 보면 그 창을 열어야 한다.
▲ 타지마할에서 만난 사람들 우리가 세상은 보는 창은 나와 세상이 만든 인위적인 창이다. 사람을 보면 그 창을 열어야 한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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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 빛의 궁전으로 불리는 타지마할의 원래 이름은 '뭄타즈 마할(뭄타즈의 묘)'이었다. 그 이후 여차여차하다가 타지마할로 바뀌었단다.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 수도인 아그라에 5대 황제 샤 자한이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를 위하여 건설한 무덤이다. 이 엄청난 국가의 대사업, 아니 왕이 부인의 묘라는 사적인 건물을 만드는 데 국가의 존립 자체를 흔들 정도의 엄청난 재정을 쏟아 부어 무려 22년에 걸쳐 완성됐다.

또 하루 평균 2만 명의 인력과 라자스탄 지역의 광산에서 캔 흰 대리석을 옮기는 데 1000마리나 되는 코끼리가 동원됐다고 한다. 심지어 왕비의 묘지를 건설하는 공사 기간이 길어지면서 인부들이 거주할 수 있는 '타지간즈'라는 신도시까지 새로 건설해야만 했다.

타지마할을 설계하고 완성하기 위해 이스탄불과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와 페르시아 출신의 장인 등 세계적으로 이름난 건축가와 기술자들까지 데리고 왔다. 건축광이었던 샤 자한의 열망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알 수 있는 증거들이다. 망자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승화시키고 자신의 시대에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건축물을 만들고자 했던 샤 자한, 타지마할은 그렇게 건설되었다.    

세상은 시각이 아니라, 바람결을 느끼는 촉각과 흔들리는 나무소리,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등 오감으로 만나야 한다.
▲ 타지마할 세상은 시각이 아니라, 바람결을 느끼는 촉각과 흔들리는 나무소리,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등 오감으로 만나야 한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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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을 보기 전에 이런저런 정보들을 구했다.

중앙에 있는 일직선의 연못은 양옆의 나무가 비추어 초록빛을 띠고 있으며, 우유 빛깔의 대리석으로 된 타지마할과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백색 대리석 벽돌로 정교히 쌓아 올린 양파 모양의 중앙 돔을 네 개의 작은 돔이 정대칭으로 둘러싸고 있으며, 역시 네 개의 원형 미나레트(첨탑)가 건물의 네 방향에 솟아 있다.

타지마할의 위대함은 동서남북 어디에서 보아도 모습이 똑같은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데 있다. 본당 양쪽에는 붉은 사암으로 만든 모스크와 집회당이 대칭을 이루며 세워져 있다. 건물 대리석을 그물 모양으로 조각한 이중 장치를 통해 햇빛이 돔 내부에 이르도록 설계되어 있고, 그곳에 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의 묘관을 안치해 두었다. 묘관은 나란히 남북으로 안치되어 있고, 이슬람교의 묘지 구조에 따라 얼굴이 서쪽 메카 방향으로 향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현재 1층의 무덤은 상징적인 가묘(假墓)일 뿐이고, 실제 무덤은 지하층의 똑같은 위치에 놓여 있다.

차디찬 바닥에 누우니 순백의 타지마할에서 온갖 사연들이 들려왔다.
▲ 순백의 타지마할 차디찬 바닥에 누우니 순백의 타지마할에서 온갖 사연들이 들려왔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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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줄기의 눈물이 흐르는 타지마할

나는 타지마할이라는 건물의 웅장함과 정교함이 아니라 안개에 싸인 우윳빛 타지마할에서 뭄타즈에 대한 샤 자한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열다섯 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은 비련의 왕비, 뭄타즈! 왕비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녀를 위한 사자(死者)의 궁전을 지어준 샤 자한.

하지만 그는 결국 왕위 다툼을 벌이던 자식에게 쫓겨 아그라 성으로 유폐되었고, 타지마할의 완성도 보지 못한 채 아그라성에 감금되어 죽는 날까지 먼발치로 타지마할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숙명에 처해졌다. 타지마할에는 이렇게 부부의 애틋함과 아픔이 깃든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랑하는 님과의 이별과 그리움에 관한 러브 스토리!

하지만 이런 대규모 건축물을 보면 불현듯 떠오르는 불편함이 있다. 뭄타즈의 무덤은 샤 자한이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 살았던 민초들이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샤 자한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 누군가에게는 아버지를 죽이고, 아들을 죽이는 죽음의 건물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아내를 위해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부역에 시달리는 남편과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저 수많은 대리석을 나르고 쌓고 만든 것은 누구였을까? 그 민초들의 피폐한 삶이 하얀 대리석 뒤에 그림자로 비춰졌다.

타지마할에는 두 줄기의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가 담긴 건물을 어떤 현학적인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겠는가? 그저 나도 따라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관광객의 눈물이 어찌 샤 자한과 타지마할을 건설한 민초들의 눈물과 비교될 수 있겠냐마는 나의 눈물 또한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으로서? 자식에게 버림당하기 싫은 아비로서?

타지마할 건물 속에는 뭄타즈의 가묘(假墓)가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궁궐에 비해 그녀의 묘는 가묘라 할지라도 매우 초라했다. 그녀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일 뿐이었다. 식어 버린 묘 위에는 불완전하고 유약한 인간의 운명만이 새겨 있을 뿐이었다. 죽음 앞에서는 샤 자한의 아내라는 지위도, 권세도 물거품처럼 모두 사라지고 유한한 운명에 발가벗겨진 '나약한 인간'의 몸뚱이만 있었다.

순백 타지마할과의 헤어짐은 쉽지 않았다. 발을 돌릴라 하면 다시 고개는 타지마할로 향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헤어짐은 그리움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마지막으로 살아가는 유한한 인간의 삶에 그리움과 망각은 신의 축복일 것이다. 소중한 기억은 심연의 추억 상자에 밀봉한 채 그리울 때마다 열어볼 것이고, 슬프고 아픈 기억은 망각의 늪에 밀어 넣을 것이다.

우리의 의식은 그리움과 망각의 저울질을 끊임없이 행한다. 아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처럼 우리의 의식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 취할 것과 버릴 것을 적절하게 분배해 주고 있다. 만약 기억과 망각의 저울질이 고장 나 버리면 우린 집착, 조울, 분리, 혼란의 정신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타지마할은 이제 내 가슴의 추억 상자에 담겼다. 의식은 타지마할이 망각의 늪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제어할 것이다.

현재 타지마할은 내부 돔에 둥지를 튼 비둘기와 환경오염으로 부식되고 있으며, 관광객이 내뿜는 이산화탄소와 낙서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몇 년 전 에베레스트 산에 방문했을 때에는 더 이상 만년설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으며, 타지마할을 방문한 지금은 지속적인 환경오염으로 타지마할이 훼손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만들었고 누군가는 파괴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던가?

영화 <매트릭스> 1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이곳에 있는 동안 깨닫게 된 사실이 있어. 너희들 인간 종족을 분류하다가 영감을 얻었지. 너희는 포유류가 아니었어. 지구상의 모든 포유류들은 본능적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데 인간들은 안 그래. 한 지역에서 번식을 하고 모든 자연자원을 소모해 버리지. 너희들의 유일한 생존방식은 또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거야. 이 지구에는 그와 똑같은 방식을 따르는 유기체가 하나 더 있어. 그게 뭔지 아나? 바로 '바이러스'야. 인간이란 존재는 질병이야. 지구의 암이지."

작은 창으로 아내를 그리워했을 샤 자한

인도 아이들이 쏟아져 나와 맘껏 축제를 즐겼다.
▲ 축제의 거리 인도 아이들이 쏟아져 나와 맘껏 축제를 즐겼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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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30분쯤, 타지마할을 나와 어제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던 트리트(treat) 식당으로 향했다. 때마침 거리에는 무슬림 축제 행렬이 지나가고 있었다. 식당 옥상에 올라 낙타, 말, 차, 녹색깃발을 든 사람들의 행렬을 보았다. 가게 주인들이 아이들에게 작은 과자를 나누어주었고, 2층 집에서는 행렬을 향해 과자를 던져주었다. 아이들은 과자를 하나라도 더 받으려 분주하게 몰려다녔고, 과자를 차지하지 못한 아이들은 아버지가 대신 과자를 얻어와 건네주었다.

어제 먹었던 불고기 덮밥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동양인 커플이 식당에 들어왔다. 한국인이냐고 물으니, 남자는 중국인이고 여자는 홍콩 사람이었다. 음식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몇 년 전 방문했다는 서울 이야기, 바라나시에서 먹은 라씨 이야기, 한국 가수와 노래, 영화, 드라마, 영화배우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내가 스마트폰으로 아들과 삼겹살 먹는 사진을 보여주니, 나와 아들이 붕어빵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한국 음식 중에 삼겹살이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홍콩 여자는 대학생 정도로 보였는데,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진실한 겸손과 배려심이 담겨 있었다. 배낭여행을 하며 만나는 사람 대부분은 서로를 편견 없는 눈으로 바라보고 순결한 만남의 가치를 느끼게 해 주었다. 이 또한 여행에서 발견하는 인간의 존엄한 가치에 대한 되새김일 것이다.

아그라성에 오르면 아그라가 시원스레 조망할 수 있다.
▲ 아그라성 아그라성에 오르면 아그라가 시원스레 조망할 수 있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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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 자한은 이렇게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워했을까?
▲ 아그라성에 유페된 샤 자한 샤 자한은 이렇게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워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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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아그라 마지막 일정으로 샤 자한이 유폐돼 여생을 눈물로 보냈던 아그라 성을 방문했다. 우리도 샤 자한이 되어 성벽에 휑하니 뚫려 있는 구멍을 통해 타지마할을 보았다. 그도 이렇게 보았을 것이다. 저 멀리 우윳빛 피부를 그립게 만드는 사랑하는 당신, 뭄타즈의 묘가 보였다.

"뭄타즈, 나의 사랑하는 아내여! 편히 쉬고 있지요? 저는 매일매일 당신만을 바라보며 우리 다시 만날 날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 있는 곳이 어디든 당신을 추억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곳은 천국이랍니다." 

이제 아그라에서의 모든 일정을 끝났다. 우린 숙소 근처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길거리 음식 기행을 하였다. 소바, 속빈 과자에 라씨와 감자를 으깨 만든 음식, 땅콩, 인절미처럼 생긴 다양한 맛의 떡 등. 그동안 인도 향신료와 궁합이 잘 맞지 않아 고생하던 병오형이 특히 길거리 음식을 즐겼다. 형은 역시 길거리 체질인가 보다.

동문 앞 의자에 앉아 길거리 음식을 먹는데, 한 무리의 시끄러운 한국인 단체 여행객을 만났다. '어디 좋은 곳을 찾아가는 거겠지?'라는 기대를 품고 몰래 그들의 뒤를 밟았다. 그들을 따라 도착한 곳은 타지마할을 옆에서 볼 수 있는 강가였다. 석양에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타지마할의 모습이 아그라의 마지막 낭만을 불러 일으켰다.

단체 배낭 여행은 도시 이동 교통편과 숙소만을 함께 공유하며, 나머지 일정은 각자 개별 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아그라에 함께 도착해 아침부터 개별여행을 하고 약속된 시간에 이곳으로 모여 가이드로부터 타지마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가이드가 설명하는 근처로 은밀히 접근해 도둑 강의를 들었다. 인도 배낭여행을 하며 진한 아쉬움들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안타까운 것이 방문하는 유적지에 대한 정보를 전적으로 가이드북에만 의지해서 얻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보다 양질의 정보로 가득 찬 심안(心眼)으로 인도를 보았다면 좀 더 알찬 여행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밤 11시 20분 카주라호 행 열차를 예약했기에 6시에 쉴라 호텔로 돌아와 치킨 커리, 치즈 치킨, 갈릭 난, 마살라, 맥주 등 타지마할의 마지막 현지식 만찬을 즐겼다. 빈 의자 하나를 남겨 놓았으니, 그 자리의 주인공은 샤 자한이었다. 그는 자리가 파할 때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아직도 아그라성에 연금되어 있는 것인가? 아그라에서의 숙박비가 1000루피였는데, 그날 우리의 만찬이 1200루피였으니 가난한 배낭 여행자에겐 분에 넘치는 식사였다.

기차는 역시 1시간 연착이 된 후에야 플랫폼에 도착하였다.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플랫폼의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사랑을 속삭이는 미국인 여행 커플, 일본인 노부부와 그들을 안내하는 가이드, 혼자 여행을 즐기는 싱가포르계 아시아인 등 각각의 모습에서 욕망의 빈곤과 행복의 풍요를 느꼈다.

시선을 레일로 돌리니 엄청난 쥐떼가 보였다. 기차에서 레일로 떨어진 음식 쓰레기와 인분 위에서 배를 채우고 있었다. 살이 포동포동 오른 인도 쥐들! 이곳이 그대들의 천국이로구나. 띠링띠링, 어탠션 플리스~ 인도 기차역에 오면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안내음! 언젠가는 이곳이, 이 소리가 그리워지겠지?

○ 편집ㅣ박순옥 기자

덧붙이는 글 | 본 글은 중고등학교 현직 교사 세 명이 2014년 1월, 한 달간 인도를 여행한 기록입니다. 델리에서 자이살메르, 우다이뿌르, 조드뿌르, 아그라, 바라나시, 맥그로드 간지 등 인도 중북부를 방문했습니다. 단순히 '관광'이 아니라 '사색과 반추, 철학'이 있는 '여행'에 관한 것입니다.



태그:#인도, #타지마할, #샤자한, #뭄타즈, #아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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