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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이션에는 자식 키운 '뿌듯함'이 담겨 있습니다.
 카네이션에는 자식 키운 '뿌듯함'이 담겨 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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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로 대학에 입학한 2009년 이후로 어버이날을 맞아 카네이션을 준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내 나이를 가르키는 앞 자리 숫자가 '3'으로 바뀐 지 다섯 달이 지난 8일, 몇 년 만에 카네이션 준비를 걸렀다.

짧은 회사 생활과 대학 졸업을 뒤로하고 지난해부터 준비하기 시작한 로스쿨 입시, 사법고시 폐지에 대해 '갑론을박' 중인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게 '변호사 되기 편해졌다'면서 '나도 한번 변호사 해보자'고 시작한 일이 2년째에 접어들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공부해 보자며 집을 나와 대학생 때도 해보지 않은 자취를 시작했다. 이런 고리타분한 이유로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두 분께 드릴 카네이션은 마음에서만 꽃폈다.

애써 어버이날은 2015년에만 오는 것이 아니고 2016년에도 2017년에도 찾아올 것이라고 자위하고 꽃 한 송이보다 책상에서의 1시간이 더 큰 효도라는 결론에 도달해보지만, 양심이 던지는 반론 제기, '2015년의 그날은 두 번 다시 없지 않느냐'는 말에 할 말이 없다.

아버지께서 장난감을 많이 사주셨던 이유는...

어릴 적 많은 기억들 중 아버지를 향한 기억을 대표하는 일화가 하나 있다. 유치원에 다닐 시절,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던 아버지는 해외로, 지방으로, 잦은 출장을 다녔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쩌면 눈에 넣어서라도 함께 있고 싶었을 아들에게 아버지는 수많은 장난감을 사주셨다.

같은 아파트 층에 살던 또래 아이들은 나를 부러워했고, 내 장난감을 구경하고 싶어 우리집에 놀러오고 싶어했다. 어린 나는 그 아이들을 배척하면서 우쭐댔고,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면서 아버지를 타박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버지는 내게 '풍요로움'으로 당신의 미안함을 감추고 싶었으리라.

7남매 중 첫째부터 막내까지 딸만 세상에 낳으셨던 할머니께서 여섯 번째로 얻은 자식이자 첫 아들이 큰아버지셨고, 그중 마지막으로 얻은 아들이 아버지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 모두 옛날 어른들이셨으니 사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부모가 무엇인지 느낄 무렵 막내아들을 얻으셨다. 쏟아졌을 사랑은 상상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릴 수 있다.

또한 당시에 가발공장을 하던 할아버지는 당시 부의 상징인 텔레비젼을 동네에서 두 번째로 아들들에게 선물할 수 있는 '부자 아빠'였고, 내 아버지의 성장배경에 풍요로움을 더하셨다.

17세기를 살았던 영국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이 남긴 말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 "귀족은 귀족의 교육으로서 귀하게 되고, 천민은 천민의 교육으로서 천민으로 산다"라는 것이 바로 그것. 이 말에서 나는 '사람이 태어나 세상의 이치를 배우는 데 당연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배우는 것'이라는 메세지를 읽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어릴 적부터 넘치는 사랑 속에서 자라온 아버지가 내게 두터운 내리사랑을 전해주셨던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 때문인지 아버지와 나는 어려서부터 세상 그 어떤 '부자(父子)'들보다 더 가깝게 지냈다.

'참는 것'에 익숙하신 어머니

아버지와 아들의 빈틈없는 사이 때문인지 내가 철들기 전 어머니와 나는 다소 서먹했다. 누군가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는 지금 돌이켜 보면 어머니는 사랑을 표현하는 데 어색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지금도 사랑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붙임성 있는 여성은 아니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고 그렇지 않을 때면 못내 섭섭함을 감추려 애쓰다 사사로운 일에 '뚜껑' 열리시곤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와는 사뭇 다른 시간을 보내며 자라온 것으로 알고 있다. 4남매 중 둘째이자 장녀로 태어난 어머니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아버지를 뒀고, 젊은 나이에 병을 앓게 된 어머니를 뒀다. 남녀 사이에 귀천이 공공연했고 장자와 장녀에게 더 큰 책임이 당연시 되던 시절이었기에 어머니는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눈치를 살펴야 했다. 어두운 집안 분위기 속에서 공허한 웃음으로 사춘기를 보냈다.

20세기 미국의 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대표적인 저서 <역사의 종언> 서론에서 헤겔의 말을 인용했다. "인간의 본성은 인정받고 싶음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어떤 인간도 인정받고 싶지 않은 인간은 없다". 당시의 어머니도 딸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하지만 '인정받음'을 생각할 수 없었던 환경 속에서 내 어머니는 '참는 것'에 익숙해진 어른이 됐고, 20대 중반에 나를 낳으셨다.

어렸을 적 말이 안 통한다고 생각했던 어머니를 이 나이, 그러니까 내 어머니가 나를 낳았던 나이보다 몇 년을 더 산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마음 속에 따듯함을 나누는 방법을 몰랐던 한 소녀를 볼보게 된다.

부모님이 날 기르셨던 서른 살... 그 나이가 됐다

두 분이 결혼해 나를 낳고 길렀을 나이 서른 살. 나도 그 서른 살이 됐다.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에는 서른 살이 되면 그 자체로 어른스러워지리라 막연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철이 없고,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두 분 또한 서른 즈음일 당시엔 여전히 젊고 혈기왕성하고 어른이 되는 게 뭔지 잘 모르시지 않았을까.

얼마 전까지 유명강사로 TV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곤 했던 김미경씨가 인터뷰했던 내용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사람은 결혼하면서부터 성장하는 거다. 그 전까지 부모님께서 주시는 틀을 준비하고 결혼 후 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니 준비된 사람과 결혼하려고 헛된 노력하지 말고 결혼 이후부터 함께 성장할 사람을 찾아라".

나의 부모님도 그렇게 성장하고 또 성장해서 어린 시절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던 아버지의 모습과 칭얼대도 지치지 않고 날 안아주고 밖에 나가 일을 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됐으리라.

나는 어린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또한 귀엽다고 느껴도 표현하는 게 쑥쓰러워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외면하는 그런 무뚝뚝이였다. 그러던 내가 나도 모르게 친구가 보내준 조카의 동영상을 보며 흐뭇해하고 피자 사줄테니 한번만 보자고 친구를 조르고 있다. 아버지는 아이가 귀여울 때가 오면 장가갈 때 되는 것이라 하셨다. 하지만 여전히 난 사회적으로 준비된 것이 없는 학생이자 백수다.

가수 김광석씨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가 들릴 때면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는 나에게 "서른 눈 깜빡 몇 번하면 어느새 찾아온다 그 때 후회하는 어른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나는 지금 후회하며 또 후회하지 않으며 모순된 시간으로 서른을 채우고 있다. 때때로 이 길이 나의 길일까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더 좋아하는 일을 해야하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에 빠질 때면 부모님 생각에 내 가슴을 주먹으로 후려친다.

하루쯤은 누가 욕한다 해도... 사랑합니다

부모님께서는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살지 않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해야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좋아도 참아야 할 것과 싫어도 해내야 할 것을 구분하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난 아직 충분한 어른이 아니다. 언제쯤 내 부모에게 어른이 된 모습을 보이고 내 손으로 만든 행복을 그 분의 손에 쥐어줄 수 있을까.

어떤 서른 살은 결혼을 하고 직장에 다니고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서른 살은 여전히 미래를 준비하고 내가 무엇이 될까하는 고민을 하기도 할 것이다. 이런 서른도 저런 서른에게도 5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 어버이날을 맞아 SNS에 부모님께 감사함을 표현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자 '이럴 때면 부모님 생각하는 척을 한다'며 질타하는 댓글을 봤다. 효도란 매일 매일 해야 하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 그 댓글의 메시지라면,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은 소중한 것을 망각하고 사는 동물이다. 스스로 돌아보라는 의미에서 5월 8일을 기념하는 것 아닐까. 스스로 부모님을 많이 생각하고 사는 아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할 척도는 없다. 부모의 아들로서 그 아들답게 살고 물려받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테다. 그럼에도 오늘 하루쯤은 누가 욕한다 해도 평소에 꺼내지 못 하는 닭살 돋는 말을 '글'에 담아보고 싶은 나는 '서른 살 아들'이다.


태그:#어버이날, #효도, #청춘과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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