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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농성은 노동자들이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 땅에서 노동자들은 언제나 맨땅에서 농성을 하거나 아니면 높이높이 올라가야 그나마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고공농성을 한 대학원생이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국대를 졸업한 후 동국대학원에 다니는 최장훈 학생이었다.

이후 새로운 고공농성 소식이 들려왔다. 감신대학교 총여학생회장이 학내 종탑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왜 학생들이 고공농성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지난 9일, 동국대 농성장을 찾았다. 그 곳에서 고공농성 중인 최장훈 학생에게 짧게 인사를 한 뒤 농성장을 지키는 두 친구(김태현 식품공학과 08/ 김용현 영문과 12)와 이야기를 나눴다.

"저거 어때"로 시작한 고공농성

보광스님의 동국대 총장 취임을 축하하는 현수막
 보광스님의 동국대 총장 취임을 축하하는 현수막
ⓒ 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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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본관 바로 옆, 고공농성 중인 조명탑과 농성장이 보인다
 학교 본관 바로 옆, 고공농성 중인 조명탑과 농성장이 보인다
ⓒ 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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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는 작년 12월 새 총장 선출을 위한 선거를 실시했다. 25명의 후보가 나왔고 여기서 총 3명이 최종 후보로 올라갔다. 1위는 김희옥 당시 총장, 2위는 보광스님이었다.

그런데 이후 다른 두 후보자들이 줄줄이 사퇴했고, 보광스님이 총장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계종단의 총장선거 개입 논란이 일었다. 이에 학내구성원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 사태에 대해 항의를 해왔다. 이사장실 점거도 하고 난간에 올라가 항의를 하기도 했지만 이사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총장선거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조명탑을 보며 "저거 어때?"라고 묻는 한 친구의 말에 시작됐다는 지금의 고공농성 투쟁, 함께 싸우는 이들은 그저 농담이라 생각했지만 날이 갈수록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학교와 이사회는 학생들의 점거, 삭발, 단식에도 꿈쩍없었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이제 높은 곳에 올라가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3시 조명탑으로 올랐다. 오르는 이도, 아래에서 지켜보는 이에게도 긴 시간이었다.

"학교가 학생들의 말을 듣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가 뭘까"

사람들의 메시지
 사람들의 메시지
ⓒ 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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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는 그동안 학생 자치 탄압, 학과 구조조정, 영어수업 문제 등으로 인한 교육선택권 박탈 등의 문제를 앓아왔다. 그때마다 학생들은 학교에 문제제기를 했다. 제발 학생들과 소통을 한 후 학교 운영을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매번 느끼는 것은 학교가 학생들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서울에 있던 학과를 일산캠퍼스로 이전한다는 말 한마디에, 학생들은 다음 학기부터 서울이 아닌 일산으로 통학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였다. 학교 최고 결정권자인 총장이 학내 구성원들에 의해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는다는 것. 현재 동국대의 총장 선출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이사회다. 이 이사회는 감사(2인)를 제외한 이사장, 이사가 총 11명, 이 중에서 재직승려가 7인이다.

고공농성 중인 친구에게 밥을 올려주는 모습
 고공농성 중인 친구에게 밥을 올려주는 모습
ⓒ 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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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농성 중인 학생을 위해(?) 학교가 설치한 에어매트
 고공농성 중인 학생을 위해(?) 학교가 설치한 에어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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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을 지키고 끝까지 갈 수밖에 없어요. 여기서 인정해 버리면 선례가 되는 거니까. 앞으로 이런 문제가 생기면 다시 문제제기 하기 더 어려워질 테니까."

보광스님이 총장이 되는 것에 반대했던 이들은 이제 보광스님 퇴진을 위해 싸우고 있다. 이들도 잠시 흔들렸던 때가 있었다. 보광스님이 학교운영을 기업식으로 하지 않겠다고, 영어수업 폐지 등을 이야기 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내 마음을 정리했다. 결국 '눈 가리고 아웅'식일 거란 판단이 들어서였다.

"종단에 의해 (총장이) 된 사람인데, 종단의 말을 들을 가능성이 많다고 봐요. 말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임기인 4년 내내 초지일관 학생들을 위한 총장이 될 수 있을까요? 지금 정부와 교육부는 어떻게 해서든 대학을 바꾸려고 하는데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결국 마지막에 판단하게 되는 것은 우리들의 말이 아니라 종단의 말일 거예요."

다시 기한 없는 싸움이 된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 정말 정직한 답이 왔다.

"원칙을 지키고 끝까지 갈 수밖에 없죠."

6월 즈음 다시 학생들이 힘을 합칠 예정이다. 총회든, 뭐든 결국 학생들의 힘을 다시 뭉쳐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5월 말에는 이 문제가 동국대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여러 학생들이 뭉친다. 결국 고공농성 하는 자가 내려오기 위해선 사다리가 필요하다. 그 사다리는 누가 만들고, 누가 가져다 놓을 것인가.

옳은 것엔 옳다고 그른 것에는 그르다고 말하라는 것을 알려준 것은 이들에게 어떤 스승이었을까. 그들이 15m 위에서 바라보는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희망사다리
 희망사다리
ⓒ 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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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동국대, #고공농성, #총장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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