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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 삼산도서관 시인학교 수강생들이 박경리 기념관 기행을 마치고 기념촬영
▲ 박경리 기념관 앞에서 순천시 삼산도서관 시인학교 수강생들이 박경리 기념관 기행을 마치고 기념촬영
ⓒ 염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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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에 잠긴 세상을 햇살과 바람이 드나들듯
한 줄기 햇살 되어, 한 가닥 바람 되어
하늘로 솟구쳐 오르다 땅으로 곤두박질하며
풍선처럼 부푼 가슴 내려 앉히는 그네를 타듯
다시금 울렁울렁 설레는 마음으로
한국의 나폴리 통영으로 간다

5월 들어서부터 온 세상이 진초록 물에 잠겨 있다. 어린 아이들의 환한 웃음처럼 산들바람에 일렁이는 녹음을 보면 살아있음에 새삼 감사하다. 살아있음도, 마음 맞는 이들과의 살풋한 대화도, 편안한 삶을 주는 자연도, 이를 위해 애써주는 사람들도...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는 게 없는 5월.

이른 봄에 다녀왔어야 할 2015 순천삼산도서관 시인학교 문학 기행이 다소 늦어져 지난 16일 통영으로 목적지가 정해졌다. 통영은 가족 여행, 지인 모임 여행, 문학 기행 등 여러 번 다녀온 곳이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곳이다.

맨 처음 가족 여행으로 간 통영에서 접한 해저 동굴과 옛 상업 지역의 발달사를 통해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보았다면 지인들과 함께 한 두 번째 통영 여행은 소매물도와 통영중앙시장, 통영 한려수도 케이블카 전망대에서 다도해를 관망하는 여행이라 앞선 여행과는 사뭇 다른 통영 그대로의 바다와 섬을 마음에 품고 온 여행이었다.

세 번째로 방문한 문학 기행 통영은 문학가, 화가, 음악가들의 고향으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많이 줬다는 것을 알게 된 여행이었다. 하여 네 번째 찾은 통영은 어떤 선물을 안겨줄지 기대에 부풀었다.

4번째로 찾은 통영, 설레는 기행길 시작

동피랑 벽화마을 벽화
▲ 오월 바람을 타는 소녀 동피랑 벽화마을 벽화
ⓒ 염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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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아침 8시 30분, 순천 삼산도서관 입구에 집결하여 통영으로 향하였다. 오월의 여왕답게 온 세상이 유록에 잠겨 있었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가로수 잎들은 초록 물결로 일렁이고 차창으로 스쳐가는 몽글몽글 어우러진 산야와 달리 운전대 위에 설치된 TV 영상에서는 황폐화된 사막을 맨발로 다니는 영상을 보여주고 있어 가슴이 먹먹하였다.

편백숲이 유명한 미륵산 남쪽에 있는 미래사를 지나자 통영은 여전히 동양의 나폴리, 한국의 시드니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이런 통영을 고향으로 둔 박경리 선생이 소설가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10시 30분 무렵 애당초 계획하던 일정과 달리 먼저 방문하고자 했던 청마문학관이 아닌 박경리 기념관을 먼저 찾았다. 그 이유는 청마문학관 방문객이 많아 시간을 바꿔 방문하게 된 것이었다.

견학기행을 하기 전 전시관 입구에서 기념촬영-한 가운데 지도교수인 허형만 시인
▲ 박경리 기념관 입구에서 견학기행을 하기 전 전시관 입구에서 기념촬영-한 가운데 지도교수인 허형만 시인
ⓒ 염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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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시 산양읍 산양 중앙로 173번지에 있는 박경리 기념관은 2011년 건축 대상을 받았던 건물인 만큼 붉은 벽에 오돌톨한 것들이 나열된 이색적인 건물이라는 것이 한 눈에 들어 왔다. 더구나 정면에 입구가 없고 왼편으로 돌아들어간 아담한 정원 쪽에 전시관 입구가 있었다. 이후 기념관 뒤 박경리 묘소를 향해 지어진 건물임을 알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대부분 기념관은 관람하러 오는 이들을 위한 입구이지만 박경리 기념관은 작고하신 박경리 선생의 묘소를 향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여 통영을 배경으로 <김약국의 딸>들을 통해 한 가정의 몰락하는 과정을 그려내 작가적 분수령을 이뤘으며, 29년이란 긴 세월 집필로 4대에 걸친 인물들을 통해 민중의 삶과 한을 새로이 부각했던 대하소설 <토지>로 유명한 박경리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경리 선생의 젊은 날의 모습
▲ 박경리 선생의 사진 박경리 선생의 젊은 날의 모습
ⓒ 염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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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경남 통영군 명정리에서 박수영씨 장녀로 출생한 박경리는 1955년 8월 등신불 작가인 김동리에 의해 현대문학에 단편 <계산>이 추천됐고, 이어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되어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했으며 본명이 박금이라는 것, 김약국의 딸은 들은 이야기를 배경으로 삼아 쓴 소설이란 것 등 해설가의 해설을 들으며 기념관을 돌았다.

1층 전시실에는 선생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 나오는 마을을 복원한 모형이 가운데 놓여 있었고 <토지> 친필 원고, 여권, 편지 등 유품이 전시되어 박경리 선생의 오랜 필력을 전하고 있었다. 자료실에는 선생의 작품과 관련 논문이 진열돼 통영 문학의 한 맥을 세우신 분임을 절감할 수 있었다.

또한 선생의 음성과 모습을 볼 수 있는 영상실도 있었으며 기념관 야외에는 생전에 화려한 것을 멀리했던 선생의 인생관과 문학 정신을 이어 검소하고 간결하게 채소밭과 정원이 조성돼 있어 각진 기념관을 부드럽게 융화해줬다. 그리고 박경리 선생의 묘소로 이어진 길은 오월의 녹음이 짙게 내려 묘소로 가는 길을 편안하게 하다. 묘소에는 앞서 다녀간 이의 마음이 담긴 꽃다발이 놓여 있고 간간히 새소리가 고적함을 깨우고 있었다.

오후 12시 무렵, 박경리 기념관을 나와 여객 터미널 식당에 들려 싱싱한 회와 해물찜으로 점심을 먹었는데 항구 도시니 만큼 낙지, 가리비, 게, 홍합, 개조개 등 여러 해물이 어우러져 마치 통영 바닷 바람인양 속을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이 났다. 특히 졸깃한 회와 양배추를 넣어 무쳐온 멸치회는 비리지도 않으면서 초장이 아닌 고추 가루를 뿌려 담백한 맛이 좋았다.

점심을 먹고 통영의 대표적인 어시장인 중앙시장 뒤쪽에 있는 동피랑 벽화마을로 향했다. 중앙 시장 입구에는 꿀빵과 해산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꿀빵 시식을 할 수 있어 먹어보니 꿀빵도 점차 변화하는 것인지 소다 내음과 다소 퍽퍽하던 옛 꿀빵과 사뭇 달랐다. 부드러우면서도 속 앙금이 팥 외에 고구마, 완두, 유자 등 다양하게 속이 들어 있어 옛 꿀빵의 정서가 조금 사라지긴 했지만 입맛엔 딱 맞았다.

동쪽 벼랑이란 뜻처럼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언덕길에 시멘트 블럭으로 지어진 집들이 이어져 소박한 삶을 전했다. 그 삶의 풍경인양 벽마다 천사의 날개, 자전거, 그네 타는 아이, 아이를 품은 어머니, 할머니의 구수한 통영 사투리 등 다양한 그림이 오는 이의 눈을 잡고 철거되지 않고 이어가는 그들의 삶을 오롯이 전하고 있었다.

오후 2시 30분쯤까지 동피랑 벽화마을 견학을 마친 일행은 다시 차에 올라 통영시 망일 1길 82번지에 위치한 청마문학관으로 향했다. 오후 3시 10분에 도착한 청마문학관은 별 특징이 없이 아담하게 지어진 문학관이었다.

아담한 청마문학관
▲ 청마문학관 아담한 청마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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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선 해설가는 청마문학관은 인간 유치환을 심도 깊게 접근하기 위한 청마의 생애' 편과 시대별 작품 경향과 대표 작품을 감상을 통해 청마 문학의 이해를 돕게 하는 '청마의 작품 세계' 편, 청마의 각종 유물과 관련 서적 전시를 통해 생전의 숨결과 채취를 입체적으로 느끼며 고결했던 삶과 치열했던 문학 정신을 총체적으로 표명할 수 있도록 청마의 삶을 조명하는 '청마의 발자취' 편으로 꾸며져 있다는 것을 전했다. 이어 끝으로 이영도와의 지고지순한 정신적 사랑을 간단하게 전했다.

청마문학관 견학에 앞서 김명선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 견학전 해설사의 설명을 듣는 수강생들 청마문학관 견학에 앞서 김명선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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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테 안경을 꾹 눌러쓴 젊은 청년 유치환의 흉상이 반기는 청마 문학관은 새처럼 자유로운 청마 유치환의 허무를 내밀하게 드러내고 있어 가슴이 아릿했다. 일제 침탈의 잔학성으로 가세가 기울어 시 '정적'이 발표된 다음 해 평양까지 올라가 사진관을 열어보기도 하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와 화신연쇄점에 근무하는 등 가난과 고난의 연속에서도 타오르는 시심이 낳은 '깃발', 허위와 위선에 물들지 않은 근원적 생명과 순수성으로서의 자아의 의미인 '생명의 서', 우주와의 교감과 생명에의 열애와 애련에서의 초탈로 공허함이 느껴지는 '소리개', 시조 시인 이영도와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행복' 등에서 청마 유치환의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었다.

네 번째 통영 방문인 2015년 순천시인학교 봄 문학 기행은 격동기의 문인들의 삶과 문학으로 재조명해주는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기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마문학관을 나와 순천으로 돌아가는 내내 통영 바람을 흔드는 유록의 바람이 일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날 어쩌란 말이냐

-유치환 <그리움>

유치환의 시에 단골 격으로 등장하는 허무, 불안정의 대명사로 늘 그를 흔드는 대상이었던 바람이 잔잔한 바다를 밀어 파도로 몰려오고 있어 마음속으로 청마 유치환의 '그리움'을 되뇌었다.

일본의 압제를 피해 만주로 간 청마 유치환의 삶을 전하는 사진
▲ 만주로 간 청마 일본의 압제를 피해 만주로 간 청마 유치환의 삶을 전하는 사진
ⓒ 염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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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순천투데이도 게재



태그:#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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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두 자녀를 둔 주부로 지방 신문 객원기자로 활동하다 남편 퇴임 후 땅끝 해남으로 귀촌해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로 교육, 의료, 맛집 탐방' 여행기사를 쓰고 있었는데월간 '시' 로 등단이후 첫 시집 '밥은 묵었냐 몸은 괜찮냐'를 내고 대밭 바람 소리와 그 속에 둥지를 둔 새 소리를 들으며 텃밭을 일구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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