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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6일 국무회의 당시 발언하는 박근혜 대통령
 지난 5월 26일 국무회의 당시 발언하는 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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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비효율'의 대명사다. 성과가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는다. 인력과 예산을 투입한 만큼 똑같은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교육만큼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분야는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경제적 효율성을 앞세울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합리성에 밀려 사라지게 될,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들 때문이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부르는 이유일 것이다.

최근 박근혜 정부는 교육을 백년지계는커녕 '일년지계'쯤으로 보는 듯 일련의 조치들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는 교육 문제를 경제성의 논리로 풀어가려는 '철학'이 깔려 있는 게 아닐까.

박근혜 정부 일련의 교육 정책... 지방교육 고사시키기?

정부는 내년부터 각 지방교육청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의무지출경비로 편성하도록 시행령 개정 방침을 정했다. 지난 5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2015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였다. 열악한 지방교육재정 상태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의무적으로 편성하려면 지방채를 발행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지방교육청의 재정 상태가 악화한다.

지방교육채(지방채)는 시·도교육청이 발행하는 채권이다. 전국 17개 지방교육청이 발행한 지방채는 올해 10조 원대에 육박한다. 이자만 1000억 원대에 이르는 막대한 규모다. 전체 재정에서 지방채가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2014년 8.7퍼센트에서 2015년 15~16퍼센트로 급증했다.

5월 29일에는 교육부가 '지방교육재정 분석 및 진단 규정' 개정안을 행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재정건전성, 재정효율성, 지방교육재정 현황 등 3개 분야 지표와 항목을 중심으로 지방교육재정 운영 성과를 평가해 우수 교육청에 차등적인 재정지원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의 교육청 의무지출경비 편성 정책과 지방교육재정 분석 및 진단 규정 개정안 추진은 동궤에 있다. 모두 지방교육재정의 효율화를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는 정부 시책이다. 여기에는 '증세 없는 복지'라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기 위한 '꼼수'가 숨어 있다. 늘어나는 복지수요에 맞춰 예산 확보가 어려워지자 재정 효율성을 명분으로 '돈줄'을 쥐고 뒤흔드는 꼴이다.

지방교육재정 문제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부금)을 어떻게 정하고 배분할 것인가다. 우리나라 학생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국세와 연동되는 교부금은 전체 규모가 커지는 세수에 비례하여 늘어나고 있다. 재정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논리를 중심으로 교부금 산정 시 학생 수 기준 비중을 높이겠다는 정부 주장이 터 잡고 있는 지점이다.

교육 문제는 기본적으로 교육 논리를 중심으로 풀어가는 것이 옳다. 정부 입장은 '경제 논리'다. 언뜻 학생 수 감소 추세를 고려하여 교부금 배분 방식을 조정하겠다는 관점은 합리적이고 타당해 보인다. 실제로도 그럴까.

우리나라 교육지표는 문제가 많다. 학급 당 학생 수나 교사 1인당 학생 수, 공교육비의 정부부담 비중 등 교육 여건과 관련된 결과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

학급당 학생 수는 초등학교 25.2명, 중학교 33.4명으로 오이시디 평균보다 훨씬 높았다. 중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는 일본(32.7명)을 제치고 조사 대상국 중 1위로 나타났다. 교사 1인당 학생 수 또한 초등학교 18.4명(OECD 평균 15.3명), 중학교 18.1명(OECD 평균 13.5명) 등으로 조사되었다. 국민총생산(GDP) 대비 정부·민간부담 공교육비의 상대적 비중도 오이시디는 8 대 2로 정부 비중이 아주 높지만 우리나라는 6 대 4 정도에 그치고 있다.

오이시디 평균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교부금 규모를 늘려 교육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육 전문가들은 교부금 비율을 국세의 20.27퍼센트에서 25.27퍼센트로 높일 것을 주장한다. 정부는 한결 같이 경제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교부금 배분 기준에서 학생 수 비중을 확대하고 교원정원을 감축하겠다는 계획 등이 경제 논리의 대표적인 예시다.

현행 교부금 배분 기준은 학교 수 50퍼센트, 학급 수 14퍼센트, 학생 수 36퍼센트를 원칙으로 한다. 여기에서 학교 수 비중을 낮추는 대신 학생 수 비중을 최대 50퍼센트까지 상향 조정하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학생 수 감소 현상이 심한 소규모 농·산·어촌 학교가 많은 지역의 교부금이 낮아질 것이다. 가뜩이나 열악한 재정 상황에서 지방교육 황폐화가 가속될 게 뻔하다.

불안한 지방교육재정... 교육자치 훼손시킨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이청연 인천시교육감이 지난 4월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전적으로 책임질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수도권 교육감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 문제 책임져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이청연 인천시교육감이 지난 4월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누리과정 예산을 전적으로 책임질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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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9일 교육부가 학생 수에 따른 지역별 교원 감축 지침을 각 시·도교육청에 내린 것도 마찬가지다. 학생 수 감소를 기준으로 교원 정원 규모를 정하게 되면 농·산·어촌 지역 비중이 큰 교육청들이 타격을 입게 된다. 지방교육청들이 교원 정원 감축을 소규모학교 통폐합을 위한 준비 차원에서 바라보는 이유다.

정부 교부금과 지방세 전입금 등으로 구성되는 교육청 예산의 대부분은 인건비 같은 경직성 경비로 쓰인다. 지방교육청들이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재량 예산 비중은 10퍼센트 내외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의무지출경비로 강제하고 지방교육재정 운영 성과를 바탕으로 차등적인 재정지원 정책을 펼치게 되면 지방교육재정이 더욱 불안해진다. 이는 결과적으로 교육자치 훼손으로 이어진다.

교육자치는 시대 조류이자 세계적인 추세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2014년 12월 8일,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가 '교육자치·지방자치의 연계·통합안'을 발표했다. 지난 1월 26일에는 박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학생 수 감소에 따른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손질을 언급했다. 이후 지방재정법이 개정되고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이어지더니 마침내 직선제 폐지 법안이 발의됐다.

그 일련의 조치들은 지방행정과 지방교육을 통합하고 지방교육을 중앙정부에 종속시킬 가능성이 높다. 교육의 자주성·전문성과 지방교육의 특수성을 살림으로써 지방교육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지방행정자치는 지방교육자치와 별개다. 정부는 지방행정과 지방교육의 통합 기조를 놓지 않고 있다. 시·도지사가 교육감을 임명하는 직선제 폐지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지방교육 '고사'는 시간문제다. 헌법 제31조 4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또한 보장받기 힘들다. 교육 문제를 경제 논리로 풀어가는 정부의 교육철학은 대체 무엇인가. 헌법마저 무시하는 듯한 정부의 저의가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은균 시민기자의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지방교육자치, #어린이집 누리과정, #박근혜 정부, #직선제교육감제 폐지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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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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