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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안성중앙도서관엔 수요일마다 학교 수학교과과정 중 '연산'을 배우고, '집합'을 배우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초등학생이거나 중학생이 아니다. 바로 현직 엄마들이다. 그들은 도서관에서 '엄마의 수학 바다'를 배운다. 이 수상한(?) 과정의 강사 허경옥씨를 지난 4일, 안성 쌍용아파트 공원에서 만났다.

"남 아이 가르치느라 내 아이 못 가르치는 일은 없다"

대학교 시절 과외부터 학원 등 거의 30년을 사교육에 몸담았다는 그녀는 세 아들의 엄마다. 자녀가 돌이 지나면서 충북 광혜원에서 학원을 시작했다. 시골도시에서 학원이 잘 되다보니 자신의 아이들은 '어느 학원장 아들'이라고 자연스레 소문이 났다. 이때도 자녀들에게 "엄마가 학원장이니 내가 공부를 잘해야지, 너희들이 학원장 아들이라고 공부를 잘할 필요는 없어"라며 부담을 주지 않았다.

더 재밌는 사실은 학원의 프로그램이 그녀의 자녀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 것. 그녀의 자녀가 지금 논술과목을 공부해야할 필요가 있다면 자신의 학원에선 '논술강사를 섭외하고, 커리큘럼을 논술 위주로 만들고, 논술 반을 개설하는' 식이었다. 자녀들이 커가는 수준에 따라 학원의 스타일도 변했다는 거다.

"그렇게 했더니 학원이 더 잘 되었다. 내 자녀를 가르치는 맘으로 교육과정이 돌아가니, 내 아이들의 또래엄마들이 많은 혜택을 본 거 같다"며 그 때를 회상하는 경옥씨. 이런 그녀에겐 "남의 자녀를 가르치느라 정작 내 자녀는 소홀히 했다"는 식의 후회가 자리 잡을 곳은 애당초 없었던 듯하다.

안성중앙도서관서 매주 수요일마다 '엄마들의 수학바다'를 강의하는 강사 허경옥씨가 엄마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모두 "엄마가 변해야 아이가 변한다"는 그녀의 30년 사교육 노하우였다.
▲ 허경옥씨 안성중앙도서관서 매주 수요일마다 '엄마들의 수학바다'를 강의하는 강사 허경옥씨가 엄마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모두 "엄마가 변해야 아이가 변한다"는 그녀의 30년 사교육 노하우였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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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자녀들이 영어연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자, 식구들 모두가 필리핀으로 가서 5년 살다가 왔다. 광혜원에서 안성에 이사 온 것도 모두 자녀의 진학 때문이었다. '현대판 맹모삼천지교'가 따로 없다. 덕분에 세 아들은 잘 자라줬다.

"자기 학년 학습을 소화하는 학생은 10%도 안돼"

"엄마들이 당장 자신의 아이의 성적 올리기에 급급하다"는 말로 입을 여는 경옥씨. "중요한 건 성적이 아니라 학습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점수가 곧 실력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그렇게 되려면 풀이과정을 답습하는 식이 아니라 원리를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문제 해결능력이 생긴다"는 그녀만의 30년 학습노하우를 밝힌다.

"사실 학교에선 교사 1인이 반 전원의 학습능력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엄마들이 자신의 자녀의 학습능력을 감당해야 효과적"이라고 역설하는 그녀. 사교육 전문가로서 "학원이 감당해야한다"는 말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엄마의 몫"이라고 말하는 데는 그녀의 경험이 한몫했으리라.

"엄마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자녀에게 '배웠는데 왜 몰라, 어제 했었는데 오늘은 왜 못해, 옆집 아이는 잘하는데 넌 왜 못해'라는 말"이라며 "대부분의 엄마들이 자신의 자녀를 잘 모르고 있다"고 대한민국 엄마들을 일깨웠다.

"현재 아이가 4학년이니까 4학년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도 아이를 모르는 데서 오는 엄마의 선입견"이라며 "사실 아이들 중 자기학년의 공부를 완전히 소화해 내는 아이들은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고 일러준다. "그건 아이들을 과정중심이 아닌 결과중심으로 교육해서 그렇다"는 말을 덧붙인다.

"엄마가 변해야 아이가 변한다"는 그 이유 들어보니.......

"엄마들이 배우지 않으면 아이들을 모른다고 몰아세우기 마련이다."며 "아이들이 성적이 오르지 않는 건 단순히 공부를 못해서가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아이와 심도 있게 대화하고 원인을 찾아 진단을 잘해야 올바른 처방이 나온다"는 그녀는 "정서적 불안, 기초학습부족, 자존감 결여 등 다양한 이유를 찾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마다 그 특성대로 맞춰 지도해야하는데, 대부분 엄마들이 자기의 아이를 잘 안다고 착각하고 산다"며 아쉬움을 표시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진단해주면 엄마들 중 90%가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사실 엄마가 그걸 인정하는 순간 아이의 변화가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그녀는 힘주어 말한다.

"결국 아이의 공부도 성적에 초점을 맞출게 아니라 아이가 행복한 데 맞춰야 한다"는 그녀는
"학습을 잘하면 반드시 행복한 건 아니지만, 학습이 안 되면 행복한 아이도 드물다."고 말한다.

"'학과 공부는 좀 못해도 난 체육은 잘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아이라면 아무 문제없다. 학습능력이 좋아야하는 건 아이의 자존감 문제다. 학습능력이 좋아야 아이의 자존감이 올라가고, 그래야 가정이 행복해진다"라고 그녀는 재차 강조한다.

사실 "엄마가 변해야 아이들도 변한다"는 건 자신의 경험에서 나오는 고백이었다. 왜냐고? 그녀 또한 "내가 젊은 엄마였을 땐, 아이들을 가르치며 못한다고 닦달하고를 화를 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에게 화낼 일이 없더라. 지금은 아이들을 이해하고 편안하게 대하니 아이들도 진심으로 나를 따르더라"는 거다.

"굳이 도서관에서 무료로 부모강의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내가 묻자 "모두 아이들 때문"이란다. "엄마들이 자신의 자녀라고 함부로 대하면 막 화가 난다"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그녀에겐 이미 '남의 아이, 내 아이'를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음을 본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세상 무엇보다 행복하다"는 그녀는 이미 '이 시대의 교사'가 아닐까. 그녀가 어렸을 때 꾼 '교사의 꿈'대로.


태그:#사교육, #엄마, #학습, #허경옥,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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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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