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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부 지역의 한 인권 단체에서 일해온 한 여직원이 같은 단체 상급자로부터 지속적인 성희롱을 당했다며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직원이 같은 인권단체 상급자를 인권 침해 건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A씨. 그는 시민 인권상담과 노동조합을 돕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다. 두 단체의 상급자이자 실무책임자 중 한 사람이다. 고용노동부와 해당 자치단체가 용역사업을 맡길 만큼 노동 인권 분야에서 인정도 받고 있다. 하지만 함께 일해 온 직장 내 여직원들은 그의 언행이 노동 인권과는 거리가 멀다고 증언하고 있다.

30대 후반의 B씨. 그는 A씨와 지난 6월 말까지 5개월(6월은 유급휴가)을 간사로 일했다. 그는 지금 "A씨로 인해 사직했다"고 말한다. 그는 "또 다른 여성들이 피해를 막아야겠다"며 A씨를 성희롱 등 사례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B씨는 지난 2월 취업정보사이트를 보고 이 단체에 지원했다. 주된 업무는 초기상담을 통해 A씨의 노동 인권상담을 뒷받침하는 일이었다.

"몇 명하고 자봤어요?"

세계 여성의 날을 닷새 앞둔 지난 3월 3일 오후 서울 보신각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성희롱 근절 등 여성 노동자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직장 내 성희롱 아웃! 세계 여성의 날을 닷새 앞둔 지난 3월 3일 오후 서울 보신각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성희롱 근절 등 여성 노동자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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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직장 생활은 A씨의 성희롱으로 시작했다. B씨는 입사 후 지난 3월 10일경까지 10여 차례에 걸쳐 성희롱 또는 성추행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우선 B씨가 말하는 A씨의 주요 언행을 지난 2월부터 시간대별로 간추려 보았다.

"남편하고 일주일에 두 번 관계할 거 한 번만 하면서 과제 하세요." (출근 둘째 날, 노동법 등을 필사하도록 과제를 내준 후 열심히 하라며 한 말)

"간사님은 내 오피스 와이프예요." (사무실에서) - 2월 3일

"결혼 전에 몇 명 사귀어 봤어요? 몇 살 때 처음 자봤어요? 몇 명하고 자봤어요?" (출장 가는 길 차 안에서) - 2월 4일

"아~ 한 번만 안아줄래요?" (총무 여직원이 그만둔다고 말하고 나가자 힘들다며 센터 안에서 팔을 벌리며) - 2월 5일

"내 손이 다가가면 얼른 빼야지 어디 아줌마 주제에 총각이랑 손을 스치고 그래?" (마우스 잡고 있는 B씨의 손을 갖다 대면서) - 2월 9일

"어디 아파요?. 여자한테 좋은 체위는 후배위에요. 앞으로 남편하고 후배위하세요" (피곤하면 방광염이 온다고 하자 한 말) - 2월 10일

B씨는 A씨의 잇단 성희롱 발언에 당황했다. 처음에는 그가 미혼이라 잘 몰라 그러는 것으로 이해하려 했다. 그래서 "그런 말은 상대방에게 실례"라고 일러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의 낯부끄럽게 하는 언행은 계속됐다.

"야! 야!" 하면서 손가락으로 가슴을 찌름. "지금 뭐하시는 거냐"며 화를 내자 그제야 "미안"하고 말함. (충맘 모 시청 중앙계단에서)

"간통죄도 폐지됐다는데, 간사 같은 동생이나 하나 키워볼까?" (출장 다녀오는 길에 차 안에서) - 2월 26일

"이혼도 해보고 간통도 해봐야지…. 그동안 뭐 하고 산 거야?" (법원에 재판 참관하러 갔다가) - 3월 3일

그때마다 모멸감을 느꼈지만, 직장 상사라 참고 좋게 좋게 넘어가려고 애썼다.

"자!" 입술을 톡톡 두드림 ('주말 잘 지내셨냐'는 인사에 '와서 뽀뽀하라'는 몸짓을 함) - 3월 9일

오히려 갈수록 심해지자 B씨는 지난 3월 10일 단호하게 말했다. "명백한 성희롱이며 기분이 매우 나쁘다"며, "이런 일이 더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전달했다. "증거를 기록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그러자 A씨는 카톡 문자를 통해 "미안, 재발방지"라고 답했다.

성희롱 항의하자 "어떻게 빠져나오는지 보기 위해서"

B씨는 사무실 내 다른 여직원들에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렸다. 이때부터 A씨는 B씨에게 더는 성희롱 발언은 하지 않았다. 대신 궤변으로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이랑 어울리지 마." (교섭위원 워크숍 후 식사자리에서 정규직 조직부장에게) - 3월 13일

"난 간사님을 조련한 거예요. 심리 상담에 그런 거 있어요. 최악의 궁지로 몰아넣고 어떻게 빠져나오는지 보는…." (성희롱 사실을 노조위원장에게 밝히고 나자 그간의 괴롭힘이 조련이었다고 말함) - 3월 23일

다른 직원들에게 사실이 알려지자 A씨는, B씨는 물론 모든 여직원들에게 사과했다.

A씨는 "B씨가 적시한 것이 상당 부분 앞 뒤가 거두절미된 데다 오해에서 비롯된 게 많다"면서 "하지만 여성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제되지 않은 말을 해 온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에도 내부 모든 직원들에게 '그렇게 느꼈다면 다 인정한다'고 공개적으로 사과했다"며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도 했다"고 말했다.  

B씨도 사과를 받아들였다. 일은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B씨는 "A씨가 이때부터 자신의 인격을 무시하는 말을 일삼고, 해오던 업무에서 배제하고 쓰레기 청소 등 단순 업무만 시키는 방식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난 당신들하고 합의하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간사님은 50만 원짜리 아르바이트생만도 못해요." (A씨에게 직원들에 대한 부당함을 열거하자) - 4월 21일

"난 저 사람들하고 소통하고 싶은 생각 전혀 없습니다." (노조 운영위원회 중 기타 안건으로 상근직 지회 설립한다고 하자) - 4월 23일

"간사가 있어서 일이 안 돼. 간사만 없으면 일이 팽팽 돌아가는데…. 차라리 그냥 안 나오면 안 돼?" (잡무만 맡기면서) - 5월 11일

B씨는 결국 지난 5월 말, 일을 그만뒀다. 그는 "상담일은 재미있었지만 A씨로 인해 더는 일을 할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같은 시기 B씨와 일했던 여직원도 당시를 떠올렸다.

"B씨가 성희롱 발언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은 뒤부터 A씨가 갑자기 B씨를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했어요. B씨에게 동조한 다른 직원도 비인간적으로 대했어요. 민망할 만큼." 

A씨 "오해에서 비롯... 모든 직원에게 사과했다"

이에 대해 A씨는 "가해자 입장에서 함께 일을 하면 안 될 것 같아 배려 차원에서 상담일에서 배제하고 다른 일을 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멸시하는 듯 말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후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시 B씨의 감정이 매우 날카로워 상담업무보다는 다른 일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B씨가 사직을 한 데 대해서도 "그만 쉬고 싶다고 해 본인의 의사에 따라 사직 처리했고, 오히려 한 달간 유급 휴직처리까지 해 줬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한 직원은 "B씨는 사람 관계도 원만하고 인격적이어서 누가 봐도 상담업무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B씨도 "A씨가 비인격적으로 대하고 그만 두기를 종용해 퇴사한 것"이라며 "내가 첫 피해자가 아니고, 지금까지 여러 여직원이 인격 무시와 성희롱 언행을 당해 그만뒀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그는 거듭 "적어도 인권을 말하거나 공인으로 활동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A씨와 일했던 또 다른 여직원을 만났다.

"심각했어요. 언젠가는 터질 줄 알았어요. 그동안 많은 여직원이 인격적 무시와 성희롱을 당했지만, 인사관리를 A씨가 직접 하니 뭐라 못한 거죠."

A씨는 취재 말미에 "어찌됐든 책임을 통감하고, 인권 단체 업무를 당장 그만 두겠다"며 "단체에서도 이번 일을 계기로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와 대전충남인권연대에서는 B씨의 인권침해 진정 건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종 치면 개처럼 뛰어와라"
인권단체 상급자 A씨의 어긋난 노동관

A씨가 직장 내 여직원들을 부를 때 사용하던 종
 A씨가 직장 내 여직원들을 부를 때 사용하던 종
ⓒ 제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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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 땡! 땡! 종이 울렸다. A씨 앞으로 한 여직원이 달려갔다. 한참 후 또 종이 울렸다. '땡! "이번엔 한 번이다. 또 다른 여직원이 A 씨에게 달려갔다. 사람을 부르는 종소리였다.

충남의 한 비정규직노조 사무실을 사실상 이끌고 있는 A씨. 그는 같은 사무실 내 여직원들을 종을 쳐 호출했다. 종을 치는 횟수로 필요한 사람을 구분했다. 사무실 내 남직원도 있었지만, 종을 이용한 호출은 여직원에게만 해당됐다. 또 늦을 때마다 "종을 치면 개처럼 뛰어오라"는 말로 심하게 다그쳤다.

한 여직원이 반발했다. 왜 호칭을 부르지 않고 종을 치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오히려 A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익명을 요구한 전 여직원 C씨는 "A씨에게 '기분이 나쁘다'고 따지자 '난 안 바뀔 거니 못 버티겠으면 나가라, 일할 사람은 많다'고 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3월 중순 쯤. 한 여직원이 몰래 종을 숨겼다. 종을 치지 말라는 항의의 뜻이었다. 그러자 A씨는 비품관리 여직원을 불러 "비품 관리 똑바로 못 한다"고 호통을 쳤다. 그나마 몇 번의 항의가 있었던 뒤로 종 치는 횟수가 좀 줄어들었다.

A씨는 여직원들의 항의에도 사무실은 물론, 같은 사무실 내 공용화장실에서도 담배를 피웠다.

이에 대해 A씨는 "사무실 내 인터폰이 없어 종을 쳐 부르기는 했지만 일종의 해프닝이었다"며 "그나마 직원들이 기분이 나쁘다고 해 바로 중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개처럼 뛰어오라'는 말도 다른 말끝에 장난처럼 웃으며 한 얘기"라고 해명했다.   

C씨는 지난 5월 말 퇴사한 동료 여직원이 A씨를 상습 성희롱 등으로 국가인권위와 지역 인권단체에 진정을 제기한 일도 알고 있었다.

"성희롱은 물론 여직원에 대한 비인격적 대우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진짜 문제 많다. A씨가 법을 아니까 이리저리 말을 바꾼다. 고용노동부 직원들과도 친해 지역에서는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다. 따끔한 처벌로 더는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인권, #시민인권, #성희롱, #인권침해, #시민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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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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