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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67회 제헌절이다. 한마디로 헌법을 만든 날. 그렇지만 헌법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헌법의 문구와 너무 먼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사실 이날의 중요성이 별로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헌법을 제대로 읽어본 이들은 최소한 두 번 깜짝 놀란다.

헌법을 찾아보기란 쉽다. 검색사이트 어디든 헌법을 찾아볼 수도 있고, 법제처( http://www.moleg.go.kr/ ) 등을 통해 쉽게 검색할 수 있다.
▲ 헌법 헌법을 찾아보기란 쉽다. 검색사이트 어디든 헌법을 찾아볼 수도 있고, 법제처( http://www.moleg.go.kr/ ) 등을 통해 쉽게 검색할 수 있다.
ⓒ 주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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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우리나라 헌법이 이토록 멋진 말들, 올바른 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제1조의 제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만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조항 두 가지만 인용해보겠다.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제119조 ②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서유럽의 헌법도 아니고, 사회주의 정당의 강령도 아니다. 엄연히 88년에 제정된 우리나라 헌법의 문구이다. 행복 추구는 하나의 권리이고 따라서 국가에 적극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고 헌법 조항에 버젓이 규정되어 있다. 당신은 행복한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많은 장애물이 있나? 그렇다면 그건 국가에게 당당히 요구할 사항이다.

다음으로 제119조 조항은 오늘날 상황에 보면 더욱 놀랍다. 균형발전은 국가의 의무사항이며 대기업이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을 남용한다면 국가는 이를 방지할 의무가 있으며 경제민주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국가가 나서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경제민주화, 복지, 사회적경제 논의는 최근이 아닌 88년부터 우리나라 헌법에 규정된 부분이었던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엄연히 나와있는 헌법상 권리와 의무이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 생소한가. 헌법 제10조에 나와있는 국민이 추구할 권리이다.
▲ 헌법상의 국민의 권리와 의무 엄연히 나와있는 헌법상 권리와 의무이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 생소한가. 헌법 제10조에 나와있는 국민이 추구할 권리이다.
ⓒ 주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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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두 번째 놀라는 이유는 이러한 문구와 현실의 간극 때문이다. 우리나라 헌법 대부분의 문구는 헌법재판소라는 함수에 들어가서 해석결과가 나오면 대부분 이렇게 해석된다. 구체적 권리가 아닌 "추상적 권리". 국가의 재정상황, 여러 여건에 맞춰서 해석되기 나름이라는 거다. 한마디로 88년 헌법 참 훌륭하다, 알긴 아는데 그건 그냥 번지르르한 말이고 실제로는 우리나라 주권 누가 갖고 있지? 우리나라에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 누구지? 우리나라 시장에서 지배와 경제력 남용해도 어떻게 하지? 경제 민주화 위해서 우리나라 어떻게 하지? 너도 알고 나도 안다. 이하 자세한 설명은 생력한다.

프로메테우스가 아무리 불을 가져다 준줄 뭐하겠는가? 이미 불은 잊혀졌고, 숨겨져있는데... 헌법을 누구보다도 수호해야 할 헌법재판소마저 추상적인 선언을 내리고 있다. 사실 헌법을 수호하라고 만들어 놓았지만 우리 헌재도 눈치보는 기관이야라고 얘기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최근 <어셈블리>라는 드라마에서는 아예 사법부에 사과를 요구하더라. '니네들도 힘이 없는 거 다 안다, 하지만 그렇다면 사과라도 해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사과는 해야할거 아니냐.'

이제 대중매체에서도 사법부가 가진 한계를 인식하기에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상황까지 왔다. 최소한 사과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 그런데 너무 소극적인 것이 아닐까?
▲ 어셈블리의 한 장면 이제 대중매체에서도 사법부가 가진 한계를 인식하기에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상황까지 왔다. 최소한 사과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 그런데 너무 소극적인 것이 아닐까?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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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사실 사과만을 요구할 것은 아니다. 당연히 우리가 쟁취해야 할 권리이다. 먼지가 쌓인 헌법을 형식화된 헌법을 실제적인 권리로 바꾸는 것은 후세대의 몫이다. 국가에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할 채권자들이 제발 우리의 권리를 지켜주세요 읍소를 하다가 이제는 인간적으로 사과라도 해달라고 하는 형국까지 왔다. 세금도 내고, 국가에서 요구하는 의무사항을 충실히 지킨 국민들일수록 국가에 대한 미안함은 왜 그리 많은지?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면서도 미안해하고 읍소하고, 이제 사과라도 받았으면 한다.

하지만 지금의 헌법이 그냥 달성된 것이 아니다. 87년 뜨거웠던 여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속에, 피가 덕지 덕지 붙은 정말 빨간 책이다(예전에 실제 헌법재판소에서 나눠주는 헌법 소법전 기념품도 빨간 색이긴 했다. 법복도 빨간 색에 들어있으니, 법관들은 대체로 빨간색을 좋아하나보다. 물론 다른 이유때문이겠지만.) 저 한 조항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렸을까. 아니 인류 전체적으로 봤을때는 권리라는 말을 한 마디 하기 위해서 수십만명, 아니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의 희생이 담겨졌다. 그렇기에 화석화되버린 헌법을 다시 살리는 것은 오늘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공교롭게도 제헌절 전날인 어제 누구보다도 헌법의 실제적인 구현을 위해 애썼던 박래군씨가 '세월호 불법집회'를 이유로 구속되었다. 헌법 제21조에 "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라고 되어 있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은 이러하다. 감청이 일상화되고, 검열이 일상화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헌법 정신을 가장 열심히 구현하려 노력했던 분이 제헌절 전날 구속된 아이러니한 사건. 대한민국의 현 주소를 보여주고 있는게 아닐까.
▲ 박래군님과 민주주의 헌법 정신을 가장 열심히 구현하려 노력했던 분이 제헌절 전날 구속된 아이러니한 사건. 대한민국의 현 주소를 보여주고 있는게 아닐까.
ⓒ '그곳에 가고 싶다'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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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회 제헌절은 헌법을 연구하는 사람들, 헌법재판소에서 일하는 사람들만이 기릴 날이 아니다. 잊혀진 헌법의 조문, 헌법상에 엄연히 보장된 우리들의 권리를 다시금 되새기는 날이다. 작년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대학원에서 세미나 하면서 강경선 교수님이 하셨던 얘기를 다시 끄집어 내본다. 인류문화 유산으로서 헌법에 조그마한 가루라도 얹히지 못할망정, 어렵게 피를 흘리며 쟁취한 권리를 잊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에서다. 제헌절 오늘 하루라도 헌법의 문구를 차분히 읽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헌법은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어떤 나라도 헌법을 한 번에 만든 나라는 없었다. 헌법은 기본권 한 조문 생길 때마다 엄청난 사람들이 희생을 하면서 만들어진 전 세계 공동의 인권 목록이며 문화유산이다.

우리는 1948년에 이 문화유산을 일괄 수입하면서 헌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실제 우리나라에서 조문 하나씩이 체화되고 구현되는데는 몇 십년이 걸렸다. 어떤 조문은 이 사회에 체화되었고, 어떤 조문은 여전히 체화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헌법은 인류의 문화유산이기에 우리가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 오랜시간 시행착오를 통해서 검증된 내용들이다. 따라서 헌법에 규정된 것은 최대한 준수하고, 실현하는게 필요하다. 피해가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이러한 인류의 문화유산을 만드는 작업은 끝난게 아니라 계속 층을 쌓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 이 인류의 문화유산에 벽돌을 쌓아야 한다."


태그:#헌법, #박래군, #인류문화유산, #행복추구권, #제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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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및 사회적경제 연구자, 청소년 교육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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