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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연극을 보러 극장엘 가던 길이었다. 도시철도에서 내려 극장으로 걸어가던 중이었는데, 길가에 경찰 기동대 버스가 늘어서 있었다. 어디서 시위를 하나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생탁·택시 고공농성 해결하라'는 현수막을 들고 이동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현수막 앞에서는 몇몇이 '삼보일배'를 하며 온몸으로 시위를 하고 있었다.

잠시 멈춰 서 그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고공농성은 서울이나 평택에서만 있는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생활하고 있는 부산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순간 아득했다. 세상의 부조리함에 저항하고 있는 그들이 대단했다. 나라면 부조리에 굴복하고 말았을 것이다. 침 한 번 퉤 뱉어버리곤 곧장 다른 일을 찾아 나섰을 테다.

시위 행렬이 지나가자 다시 극장으로 향했다. 극장에 도착하기까지 머리에 방금 장면이 맴돌았다. 거기에다 최근 읽었던 <나는 고발한다>는 책이 오버랩됐다. <나는 고발한다>는 니홀라스 할라스란 작가가 쓴 책으로 '드레퓌스 사건'을 다루고 있다. 드레퓌스 사건은 유대인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드레퓌스라는 한 개인을 국가가 매장하려고 했던 사건이다.

<나는 고발한다>가 다루고 있는 드레퓌스 사건은 앞서 언급한 '생탁·택시 고공농성'과는 내용도 다르고 사건의 규모 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하지만 노동자를 '호구'로 보는 것과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근거 없는 누명을 쓴 것은 모두 세상의 부조리함에 뿌리를 둔다. 그렇다면 드레퓌스 사건에서 지금의 부조리를 제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견뎌냄이 부조리를 부쉈다

<나는 고발한다>, 책표지
 <나는 고발한다>, 책표지
ⓒ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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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퓌스 사건은 일반적으로 '지식인의 위대한 양심이 한 개인을 구원했다'는 식으로 해석하곤 한다. 완전범죄로 끝날 것 같았던 드레퓌스 사건을 반전시킨 것이 바로 프랑스의 대문호 에밀 졸라가 쓴 한 편의 글이었기 때문이다.

드레퓌스가 반역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외딴 섬에 유배당한 지 3년 뒤인 1898년 1월 13일, 에밀 졸라는 <로로르(L'AURORE)>지에 '나는 고발한다!(J'accuse!)'라는 제목으로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을 실었다. 드레퓌스 사건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이 책에 붙은 '나는 고발한다'란 제목도 여기서 따온 것이다.

에밀 졸라의 이 위대한 결단은 전 세계의 옹호를 받았다. 나 역시 자신의 모든 명예를 내건 용기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모든 명예를 내걸고 뛰어든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위대함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드레퓌스 사건의 결말이 '정의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던 까닭은 에밀 졸라의 결단이 아니라 드레퓌스의 견딤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가 견디지 않았다면 사건은 흐지부지 무마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견디지 못하고 죄를 시인했다면 에밀 졸라의 할아버지가 온다 한 들 무슨 소용인가.

슬픔으로 나는 심신이 부서져 내립니다. 아무 죄도 없는데 이런 불운을 당하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내 힘과 용기가 나를 저버린다면…. (중략) 반역자라는 낙인이 찍힌다는 것 이것은 정말 참기 어려운 고통입니다.(121~122쪽)

9월 6일부터 밤이면 이중 버클이 채워졌다…. 족쇄가 채워지고 나면 나는 돌아다닐 수가 없다. 침대에서 돌아눕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그것은 참을 수 없는 고문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족쇄가 내 발목을 파고들었다.(131쪽)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충성을 바쳤던 국가에게 반역죄로 낙인찍힌다면 어떤 기분일까. 세상의 모든 비난이 자신에게 쏟아진다면 무슨 마음일까. 외딴 섬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감시당하는 삶은 어떨까. 이 모든 일이 나에게 벌어진다면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아연실색할 만한 상황이다.

드레퓌스는 죽어서도 이해하지 못할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견뎌냈다. 끝내 그는 무죄로 풀려났다. 풀려난 이후 행보도 대단하다. 그는 반역의 누명을 쓴 치욕과 평생을 들어도 모자랄 비난을 당하고서도 제1차 세계대전에 프랑스의 군인으로 참전한다. 그리고 프랑스 훈장 중 가장 명예로운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영광의 군단)'를 받는다. 그는 견뎌냈고 끝내 부조리를 부쉈다.

사필귀정이란 고사를 믿을밖에

연극을 관람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스마트폰으로 '생탁·택시 고공농성'을 찾아봤다. 올해 4월 16일부터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들이 외딴 섬에 유배된 드레퓌스 같다고 생각했다. 자본가는 돈 뒤에 숨어 그들의 심신이 무너져 내리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세상은 부조리하다. 인간은 끊임없이 부조리를 제거하려 투쟁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끝내 인간은 부조리를 말살하지 못했다. 부조리는 바퀴벌레 같아서 박멸하는 만큼 새로운 부조리를 만들어냈다. 예컨대 과거 노예제도를 없앴음에도 현재 버젓이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는 인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들은 자본가에게 있어 사실상 노예나 진배없다.

이 글을 적는 내내 씁쓸함과 부끄러움이 가시질 않는다. 내가 부조리를 처절하게 견디고 있는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고사를 믿어보자'는 말 외에는 없는 것 같아서다. <나는 고발한다>가 다루고 있는 드레퓌스 사건처럼 모든 일은 결국에 가서는 반드시 정리(正理)로 돌아갈 것이라 믿는다. 지금도 높은 곳에서 사투하고 있을 그들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덧붙이는 글 | <나는 고발한다>(니홀라스 할라스 씀/ 한길사/ 2015. 8/ 정가 17,000)

이 기사는 본 기자의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나는 고발한다 - 드레퓌스사건과 집단히스테리

니홀라스 할라스 지음, 황의방 옮김, 한길사(2015)


태그:#드레퓌스 사건, #에밀 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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