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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1일, 대한민국은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했습니다. 하지만 절차의 엄격함과 난민들의 열악한 처우는 '아시아 최초'에 걸맞지 않은 모습입니다. <오마이뉴스>는 특히 공항에서 이뤄지는 절차에 주목했습니다. '첫 단추'가 제대로 꿰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편집자말]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렸다. 집이 사라졌다고 했다. 어머니, 아버지, 형과 누나가 사라졌다고 했다. 2014년 12월, '보코하람'이 나이지리아 보르도주에 위치한 그의 마을에 터뜨린 폭탄 때문이었다.

보코하람은 나이지리아의 이슬람 국가화를 꿈꾸는 무장세력이다.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2014년 한 해 동안 이들의 공격을 받고 사망한 민간인이 최소 3750명이라고 추정했다. 이 가운데 네 명은 기독교 신자인 B씨의 가족이다. B씨는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남은 것은 공포와 두려움뿐이었다.

어렵게 한국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 나이지리아를 떠나기로 결심한 그에게 아버지의 친구는 가짜 여권을 건네며 한국행을 권했다. B씨는 남아공을 거쳐 지난 2월 25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곧바로 난민 신청 의사를 밝혔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B씨에게 일단 송환대기실에서 지내라고 했다.

정식심사 받기도 전에 쫓겨나는 난민들

출국신고를 하기 위해 대기 중인 이주노동자들. 2013년 12월 자료 사진.
▲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 출국신고를 하기 위해 대기 중인 이주노동자들. 2013년 12월 자료 사진.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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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에서야 면접이 시작됐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은 B씨에게 언제, 어떻게, 왜 한국에 왔는지, 난민 자격을 신청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B씨는 보코하람에게 가족을 잃은 데다 이 단체가 계속 테러를 저지르고 있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털어놨다. 또 나이지리아의 모든 곳이 위험하고,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여서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도 했다.

"난민 신청이 거부됐습니다."

이틀 뒤, 가슴 졸이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B씨에게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 찾아와 말했다. 정확히는 '불회부' 결정이었다.

공항 등에서 난민 신청자가 나오면 법무부는 그를 정식심사에 붙일지를 정하기 위해 '회부심사'를 진행한다. 회부심사는 난민요건을 정하는 절차는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떨어지면 '끝'이다.

난민인권센터가 법무부에 정보공개청구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1~5월 인천공항과 김해·제주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한 사람은 모두 55명이다. 이 가운데 B씨를 포함한 34명은 정식으로 난민심사를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이의를 제기할 절차도 없었다.

회부심사는 내용면에서도 정식심사나 마찬가지다. 불회부 결정 당시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던 B씨는 행정소송 과정에서 법무부가 법원에 제출한 <난민인정신청심사회부결정서>를 확인했다. 여기에는 그가 난민이 아니라는 출입국관리사무소의 결론이 담겨 있었다.

"신청인은 보코하람의 테러 위협으로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주장하나, 이는 나이지리아 대다수의 국민들이 느끼는 위협일 뿐, 신청인이 직접적인 위협을 받은 적이 없다. 또 일어날지도 모르는 미래의 위협을 주장한 것에 불과하므로 난민법 2조에 따른 난민의 정의에 해당하는 기준을 충족한다고 볼 수 없고, 난민법 시행령 5조 7호 불회부 사유에 해당한다."

그런데 법원은 출입국관리사무소가 회부심사 때 난민 여부까지 판단하는 것에 이미 제동 걸었다. 지난해 수단 출신 양심적 병역거부자 C씨가 최초로 제기한 난민심사 불회부 취소소송에서 1심 재판부(인천지방법원 행정2부·재판장 임태혁 부장판사)는 "난민인정심사 불회부 결정은 형식적 사유에 의해서만 예외적으로 가능하고 실체적 사유로는 할 수 없다"며 C씨의 손을 들어줬다. 회부심사에서 난민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등법원 행정6부·재판장 윤성근 부장판사) 생각도 같았다. 재판부는 '신속한 절차 진행'이라는 회부심사의 목적을 볼 때, 난민신청자의 제도 남용이 명백히 드러날 때에만 불회부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또 "회부결정이 나도 원고는 '난민신청자' 지위를 부여받는 것에 불과하다"며 "조건부 입국허가는 국가의 안전 및 사회질서 유지라는 공익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판결은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상고 포기로 지난 2월 12일 확정됐다.

사실상 강제송환... 법과 다른 난민들의 현실

국내 거주 시리아 난민들이 지난 13일 서울 국가인권위 앞에서 시리아 난민에 도움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내 거주 시리아 난민들이 지난 13일 서울 국가인권위 앞에서 시리아 난민에 도움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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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인권센터 김연주 변호사는 "정식 난민심사 전에 송환대상을 정해버리는 회부심사는 국경에서 입국을 거부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강제송환금지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난민법 3조는 난민인정자와 인도적 체류자, 난민신청자 본인 의사와 달리 그들을 강제로 송환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과 현실은 다르다.

김 변호사는 회부심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절차 도입도 시급하다고 했다. 불회부 결정이 나오면 난민들은 한국을 떠나야 한다. 영문도 모른 채, 손 쓸 새도 없이. 유일한 방법은 소송이다. 하지만 이조차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4년 7월 1일 난민법이 시행된 이후 제기된 불회부결정 취소소송은 6건이 전부다. 난민인권센터 도움을 받아 법정싸움에 들어간 B씨는 운 좋은 여섯 명 중 하나다.

하지만 그 역시 바람 앞 등불신세다. B씨는 200일 넘게 공항에서, 삼시세끼를 거의 빵으로 때우며 버티고 있다. 10월 1일 1심 판결 선고를 앞두고 있지만, 승소든 패소든 확정이 날 때까지 B씨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기회의 땅'을 찾아왔지만 기회를 빼앗긴 그는 오늘도 갇혀 있다.

[관련 기사]
[공항에 갇힌 사람들①] 200일 넘게 빵만 먹는 '인천공항판 올드보이'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난민, #회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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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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