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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정상회담이 열린 11월 2일, 청와대와 광화문 일대에서 항의행동이 이어졌다.
 한일정상회담이 열린 11월 2일, 청와대와 광화문 일대에서 항의행동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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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3년 6개월 만에 한일정상회담이 재개되었다. 과거사에 대한 사죄와 배상,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자위대의 한반도 재출병 가능성 등 양국 간 민감한 현안문제들이 산적한 가운데 진행됐지만 이번 회담은 명분도, 실익도 남기지 못한 채 끝났다. 오히려 아베 정부의 대외정책에 면죄부만 안겨준 굴욕회담이었다. 한일정상회담 이후 그 실체는 더욱 더 명료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일 양국은 "가능한 조기에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타결하기 위한 협의를 가속화하기로 합의"하였다. 위안부 피해자 문제 타결의 기본 방향은 내놓지도 못한 채, 협의를 '가속화'한다는 형식적인 합의만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는 이 합의가 마치 큰 진전이라도 되는 양 홍보하고 있지만, 정상회담 이후 그 굴욕적인 실체가 재차 드러나고 있다.

아베 총리는 귀국 직후 방송에서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못박았다. 이어 지난 2일에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입장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일본의 입장"이라고 발언하였다.

심지어 일본 측 언론보도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한일정상회담에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법적 책임과 관련하여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고 일축하였을 뿐 아니라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였다고 한다.

이 같은 일본의 입장은 정상회담 이전부터 예고되어 있었으나, 박근혜 정부는 한일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그동안 전제처럼 거론해 왔던 위안부 문제 해결의 실질적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는 말할 것도 없고 이후 일본 정부의 발언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실효적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침략 역사에 대한 사과를 거부한 채 한국 측의 반발을 적당히 무마하여 정상회담을 성공시킨 아베 정부의 들러리만 선 꼴이다.

자위대의 한반도 재출병 용인한 '굴욕회담'

한일정상회담이 열린 11월 2일, 청와대와 광화문 일대에서 항의행동이 이어졌다.
 한일정상회담이 열린 11월 2일, 청와대와 광화문 일대에서 항의행동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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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큰 문제는 이번 한일정상회담이 박근혜 정권이 이미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용인하고, 자위대의 해외 군사 활동과 한반도 재출병을 향한 법·제도가 완비되는 가운데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일본 아베 정부는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재무장에 박차를 가해왔다. 지난 2014년 7월에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방향으로 헌법해석을 변경하는 각의결정을 강행처리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선언하였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은 헌법 9조에 '교전권과 무력사용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한 후에 국제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인데, 헌법을 '해석변경'하는 꼼수를 동원하여 이 같은 무력사용 금지 조항을 완전히 백지화시킨 것이다.

2015년 들어서는 미국의 강력한 지원 아래 자위대의 전 세계적 군사 활동을 보장하도록 미·일방위협력지침을 개정했다. 이어 헌법학자들과 작가, 교수, 시민 등 국민 대다수가 강력하게 반대 입장을 밝히고 국회를 포위하는 저항이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다수당의 지위를 악용해 자위대의 해외 군사 활동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11개 안보법 제·개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군사력 증강과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우려뿐 아니라, 그 대상으로 한반도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다. 일본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나 연안에서의 연합 훈련 시 교전 상황 등을 예로 들어 전시·평시 모두 자위대의 한반도 출병을 가능토록 하고 있다.

또 미일방위협력지침이나 제·개정된 안보법을 통해 한국의 동의 없이도 한반도로 출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주권침탈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동맹국의 대북 '선제공격'시 함께 가담하는 것은 물론, 독자적인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 역시 공공연히 거론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동의 없이 북한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하였다. 한반도 시민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미일 주도하에 전쟁을 단행할 수 있다는 대단히 무도하고 패권적인 정책이 아닐 수 없다.

일본 아베정부의 평화헌법 무력화 및 집단적 자위권 행사 저지, 동북아 평화를 위한 각계 시국회의 모습. 각계 321명, 228개 단체가 참여한 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일본 아베정부의 평화헌법 무력화 및 집단적 자위권 행사 저지, 동북아 평화를 위한 각계 시국회의 모습. 각계 321명, 228개 단체가 참여한 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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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한반도의 주권과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으나, 박근혜 정권은 아무런 견제도, 거부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한일 군사협력을 확대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이미 지난해 12월, 일본에게 1급 군사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 한·미·일 군사정보공유약정을 밀실에서 처리한 데 이어, 안보법 제·개정으로 자위대의 한반도 재출병에 대한 제도적 완비를 마무리한 아베 총리를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한국땅으로 불러들여 단독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로써 한국은 일본 재무장 정책의 탄탄대로를 열어 주었다.

더구나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황교안 국무총리는 '필요하다면 자위대의 한반도 출병을 허용하겠다'고 발언하는가 하면, 국방부는 한·일국방장관회담 관련 언론 브리핑에서 '자위대의 북한 진입 시 한국 동의 불필요' 취지로 발언한 나카타니 겐 방위상의 발언을 비공개하며 감싸주는 등 비굴한 태도로 자위대의 한반도 재출병을 묵인하고, 이에 협조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한미일 군사동맹, 그 암울한 미래

한일군사협정 폐기하라!
 한일군사협정 폐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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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재무장 정책과 한일 군사협력은 미국이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일환으로 그동안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것이다. 아시아 지역에서 동맹국의 역할 강화를 요구한 미국을 등에 업고 아베 정권은 군국주의 재무장 정책을 추진하였고, 미국은 주변국들의 반발을 정치적으로 무마하고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을 완성하는 입장에서 지속적으로 한국정부에 일본과의 군사협력을 압박해 왔다.

그동안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미국의 아태 패권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종하여 대중국 봉쇄망의 하나인 아시아 미사일 방어망(MD) 구축에 적극 협력한 것은 물론, 2012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추진하고 2014년에 한·미·일정보공유 약정 체결 등 한·일군사협력에 확대하는 데 힘을 기울여 왔다.

한·미·일, 특히 한·일 간 군사정보 공유는 삼국의 미사일 관련 군사자산들을 통합·운용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에, 미국은 저고도 요격용 한국형 미사일 방어망(KAMD)과 고고도 요격용 사드의 한반도 배치, 주일미군과 자위대의 해상요격용 이지스함 배치 등 아시아 미사일 방어망 구축 움직임과 궤를 같이하여 삼국, 특히 한·일간 군사정보 공유를 관철시켰다.

미국은 미사일 방어망 구축이 철저히 방어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47차 한미안보협의회에서 양국이 서명한 '동맹의 포괄적 미사일 대응작전개념 및 원칙(4D 작전개념)'의 이행지침은 '발사 징후'시의 선제공격을 공식화하고 있다.

선제공격을 염두에 둔 미사일 방어망 구축은 주변국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오고 군사적 갈등을 격화시킬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동맹국의 '선제공격'에 대한 협력도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미·일군사동맹, 한·일군사협력은 '선제공격'을 가능토록 하는 물적, 제도적 협력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며, 군사적 갈등의 뇌관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제 한·일 관계 개선의 마지막 상징이었던 정상회담까지 재개됨으로써 미국이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던 한·일군사협력, 한·미·일군사동맹의 완성의 걸림돌은 사실상 사라지게 되었다.

앞으로 대중, 대북 포위망 구축과 압박정책이 더욱 전면화 되며 여기에 한국정부가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은 분명하다. 한·미·일 군사동맹이 실질적인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북한과 중국을 겨냥해 군사력을 증강하고 압박정책을 전면화하면 할수록 최대 교역국이자 이웃나라인 중국과의 갈등이 격화되어 정치·군사·경제적 부담이 가중된다. 거기에 겨레의 최대 과제인 평화체제 구축과 통일이 지체되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것 역시 불을 보듯 뻔하다.

박근혜 정권은 지난해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을 시기를 못박지 않은 채 또다시 연기했다. 올해는 한·일군사협력의 미명 아래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재출병도 묵인하였다. 앞으로 미국과 일본이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는 한·일군사정보협정, 한·일군수지원협정이 체결된다면 한국은 미·일의 침략전쟁에 정보와 군수물자를 지원하게 되는 병참기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은 물론, 이를 빌미로 한 주권 침해를 저지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미일 패권세력에게 나라의 운명과 미래를 송두리째 던져놓은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비이성적인 굴욕외교, 미일 패권세력만을 위한 주권 포기 행태를 저지하지 않고서는 평화와 통일의 미래를 개척할 수 없다. 주권과 평화수호의 뜻을 가지고 있는 각계각층의 저항과 실천이 절실하다. 다가오는 14일 민중총궐기는 주권과 평화를 내던진 박근혜 정권을 심판하고 새로운 평화체제의 미래를 여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태그:#한일정상회담, #박근혜 , #아베, #한미일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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