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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비금도는 '하얀섬'. 육지 사람들이 산등성에 다랭이논 만들 듯, 비금도 섬사람들은 갯벌에 소금밭을 일궜다. 봄에 비금도를 찾으면 소금밭에 '소금꽃' 피고 여름에 '소금열매' 영글어 하얀 섬이 된다. 겨울 비금도는 '초록섬'. 논밭마다 시금치 천지다. 11월 중순 접어들면 나뭇잎 엽록소는 명을 다하고 시금치 엽록소 농도는 짙어간다. 계절색이 뒤바뀐 섬, 비금도. 여름에 하얗고 겨울에 푸르다. 

비금도 겨울은 초록섬. 비금도 시금치, ‘섬초’ 때문이다. 섬초는 11월 중순부터 수확하여 거의 대부분 서울 가락시장으로 보낸다
▲ 비금도 시금치 밭 비금도 겨울은 초록섬. 비금도 시금치, ‘섬초’ 때문이다. 섬초는 11월 중순부터 수확하여 거의 대부분 서울 가락시장으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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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금도 여름은 하얀 섬. 비금도 소금밭 때문이다. 비금도는 국내 제일의 천일염생산지로 천일염은 시금치와 함께 비금도 효자 노릇한다
▲ 대동염전 정경 비금도 여름은 하얀 섬. 비금도 소금밭 때문이다. 비금도는 국내 제일의 천일염생산지로 천일염은 시금치와 함께 비금도 효자 노릇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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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금도(飛禽島)냐, 비금도(飛金島)냐

날아가는 새 모양 닮아 비금도(飛禽島)라 했다. 신안군 홈페이지에 비금도는 '5.16 쿠데타 직후에는 화폐개혁과 더불어 소금 값이 한 가마에 800원까지 뛰어 염전 인부들까지 돈지갑 실밥이 터질 정도였다'고 하였다. 이래서 비금도(飛禽島) 대신 돈이 날아다닌다는 비금도(飛金島)로 불렸다나.

'동네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돈지갑 실밥 터진다는 말은 처음 들어 봤다. 신안의 만재도, 일금도, 장병도, 태도와 여수의 소횡간도, 사도 그리고 거제의 이수도, 칠천도, 가조도, 통영의 연대도, 죽도 등 왕년에 '돈(깨나 벌었던) 섬'으로 불린 섬이 수두룩하지만 비금도 역시 염전 덕에 '왕년의 돈 섬 명단'에 한 줄 올라갔다.

국내 제일가는 비금도 천일염은 비금도 효자 노릇을 한다. 봄에 씨 뿌리듯 바닷물을 가둬 20일 꼬박 햇볕에 졸이고 바람에 말려 힘든 대파질 끝에 만들어진다. 소금밭 일은 맵고 짜다. 3월 28일 경에 첫 수확하고 오뉴월에 온 힘을 쏟다가 가을에 지쳐 마무리 하는 고된 일이다.

대동염전을 비롯하여, 영광염전, 비금도염전, 주원염전, 비금도중앙염전, 비금대동염전 등이 비금갯벌을 나눠 쓰고 있다. 이 가운데 대동염전은 1948년 450세대 섬사람들이 조합을 결성하여 만든 당시 최대 규모의 염전으로 현재 내촌마을 담과 함께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어있고 최근 국가중요어업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

가을걷이 끝내고도 섬사람들은 쉴 틈이 없다. 벼농사 끝내면 그 다음은 시금치 농사다. 이 섬 시금치는 '섬초'로 통한다. 섬사람 닮아 섬초인 게지. 강한 해풍에 숨죽이며 위로 클 생각도 클 수도 없다. 납작 엎드려 옆으로 퍼져 자라고 잘 시들지 않는다. 섬사람들은 바닷바람 맞으면 맛 좋아진다고 바람 막아줄 생각도 안 한다. 강하게 자란 자식이 효자 된다나. 

이 동네에서는 염전일도 농사라 부른다. 염전도 밭이라면 밭이라, 농사라 불러도 하나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보다 자식 키우는 것을 자식농사라 하니 벼든, 시금치든, 소금이든 모두 자식같이 생각하는 걸 게다. 그래서 잘 키운 시금치, 천일염이 효자 노릇하는 거겠지.

섬 할아버지, 할머니는 '관광전도사'

하트모양이라 하트해변이라 불린다. 마을사람들의 자랑거리다
▲ 하우넘해변 하트모양이라 하트해변이라 불린다. 마을사람들의 자랑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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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촌마을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내가 이 마을에 담 보러 왔다하니, 일장 연설하신다. 

"담은 되았고 마을 너머에 하누넘해변이 있는디, 그 놈 생김새가 젊은이들 좋아하는 하트 닮았어. 거그 가보았소? 저 건너 명사십리는 어떻고? 차도 막 댕기는 떡모래로 길이가 십리여, 그래서 명사십리제. 오늘 날씨가 이망께로 좋지 않은디, 날씨 좋을 때 저 짝, 선왕산에 오르면 장산도, 안좌도, 팔금도, 암태도, 자은도는 물론 멀리 흑산, 홍도까지 뵌당게. 꼭 담에 와서 보드라고."

손자같이 생각하는 이세돌기념관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흑산도는 엄청 먼 곳으로 알고 있는데 과연 흑산도, 홍도가 보일까, 의심도 해보았지만 할아버지 열성이 그렇게 믿게 했다. 

아침나절에 만난 이웃 할머니는 어제 비가 온 뒤라 땅이 질어서 밭매기 힘들다 하면서도 나를 보자마자 우리 시금치는 게르마늄 땅에서 난 거라 건강에 최고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쯤 되면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관광객 입맛에 맞는 비금도 관광안내자가 아닌가 싶다.

담이나 염전의 인문적 가치는 마을사람들 몸에 밴 삶 자체로 자랑스러워할 할 것도 새삼 강조하여 말할 바 없다는 심산, 애초 이 섬에 오는 사람들은 이런데 관심 없을 거라 생각한 게다. 할아버지 말마따나 날씨를 핑계대고 선왕산(仙旺山)은 포기하고 담구경이나 실컷 하기로 했다.

내월리 내촌(內村)마을 돌담

내촌마을 담은 돌담, 돌로만 쌓은 강담이다. 바람 많은 내촌, 바람도 흙을 물썽하게 여겼나 보다. 흙보다는 돌로 강담 쌓았다.
▲ 내촌마을 돌담 내촌마을 담은 돌담, 돌로만 쌓은 강담이다. 바람 많은 내촌, 바람도 흙을 물썽하게 여겼나 보다. 흙보다는 돌로 강담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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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촌마을은 이름처럼 안동네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다른 섬마을처럼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난을 피해 들어와 일군 마을로 선왕산 기슭, 깊숙이 안겨있는 안동네다. 안동네가 있으니 바깥동네가 없을 리 없다. 내촌마을 앞서는 동네가 바깥동네, 외촌이다. 이웃마을 월포와 내포를 합쳐 내월리라 한다. 내월리는 내촌과 월포에서 한자씩 따다 붙인 이름.

400여 년 전, 임진왜란 피해 들어온 사람들이 일군 마을이다. 집 사이사이 누비는 돌담 타고 이웃정이 이어진다
▲ 내촌마을 정경 400여 년 전, 임진왜란 피해 들어온 사람들이 일군 마을이다. 집 사이사이 누비는 돌담 타고 이웃정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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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 담은 돌로만 쌓은 강담이다. 뒷산은 그냥보아도 골산, 돌 많은 산이다. 마을이 생길 때부터 뒷산 돌을 지고, 이고 날라 쌓은 것이라 들었다. 도초도 못지않게 넓은 땅을 가진 비금도지만 흙돌담으로 쌓지 않았다.

내촌마을 담은 모난 산돌로 건성건성 메쌓기 하였으나 담은 곱다
▲ 내촌마을 마을담 내촌마을 담은 모난 산돌로 건성건성 메쌓기 하였으나 담은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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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마늄 흙이라 흙 한 톨이라도 귀하게 여긴 것인가? 다른 이유는 없을까? 양(量)으로 따지면 내촌은 돌보다 바람이 많은 곳이다. 마을 뒤, 하누넘해변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을 막으려면 바람도 물썽하게 보는 흙보다 돌이 나았을 것.

바람이 얼마나 불어댔으면 마을 북쪽 하누넘 넘어가는 산등성이에도 담을 쌓았을까? 이 담을 마을사람들은 '내월우실'이라 부른다. 우실은 원래 울실로 마을 울타리라는 의미다. 마을로 들어오는 세찬 바람을 아쉬운 대로 먼저 막는 담이다. 마을로 들어오는 액을 막고 허한 곳을 보하는 역할도 한다. 나무 잘 자라는 육산(肉山)이었다면 나무를 심었겠지만 바람도 산도 나무를 허락하지 않아 돌로 우실을 만들었다.

선왕산 산등성에 쌓은 내월리 마을 울타리다. 바람 막고 풍수적으로 허한 곳을 보하기 위해 쌓았다
▲ 내월우실 선왕산 산등성에 쌓은 내월리 마을 울타리다. 바람 막고 풍수적으로 허한 곳을 보하기 위해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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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담은 호박돌, 주먹돌, 납작한 돌, 길쭉한 돌, 모난 돌, 둥근 돌 가리지 않고 산에서 난 산돌로 메쌓기 하였다. 살 발린 생선가시마냥 빗살무늬로 비껴쌓기도 하였지만 대부분 마을 안쪽 골목담은 돌끼리 서로서로 물리도록 건성건성 쌓았다. 그래도 담은 빈틈없이 곱다.

마을 골목을 들여다보았다. 뉘 집 마당 한구석, 붉게 녹슬어가는 철 화덕에서는 옅노랑 메주콩 삶은 냄새가 돌담 넘어 내 코에 닿았다. 메주콩 삶을 때면 온 집안에 메주콩 김이 서렸던 까만 옛일이 눈앞에 아른거려 살웃음 겨우 짓던 내 입가에 살며시 웃음살이 번졌다.

선왕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우실로 한번, 마을 밭담으로 또 한 번 막아 밭담 안은 봄바람 분다. 밭담 안 채소는 해풍 맞게 그냥 놔둔 시금치와는 대접이 다르다
▲ 내촌마을 밭담 선왕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우실로 한번, 마을 밭담으로 또 한 번 막아 밭담 안은 봄바람 분다. 밭담 안 채소는 해풍 맞게 그냥 놔둔 시금치와는 대접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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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라 가시오가피 열매가 돌담 밖으로 고개를 삐죽 내밀며 집주인 대신 ‘바람간’을 보고 있다
▲ 돌담과 가시오가피 진보라 가시오가피 열매가 돌담 밖으로 고개를 삐죽 내밀며 집주인 대신 ‘바람간’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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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 구경한 지 반나절 지났을까, 트럭 엔진소리와 함께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갈라진 소리가 났다. '콩 삽니다. 메주콩 삽니다. 녹두 삽니다.' 이 소리 듣고 찾아든 마을 할머니, 아주머니들은 겉옷 걸칠 새 없이 그냥 나왔는지 바람 잔 돌담 안에서 가볍게 옷깃 매만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검정콩은 안 산다는 구먼, 메주콩만 사간댜."

바람 자자든 돌담 안에서 마을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늘 하루 소소한 정이 돌담에 쌓인다
▲ 내촌마을 마을담 바람 자자든 돌담 안에서 마을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늘 하루 소소한 정이 돌담에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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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에, 마을담에 골목에 오늘 소소한 하루의 정이 쌓여가고 있었다. 이래서 내촌 돌담이 두텁게 보였구나. 얇은 시멘트 담으로 둘러싸인 '동물의 왕국'은 이 마을 돌담 저만치 있었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태그:#비금도, #내촌마을, #섬초, #천일염, #대동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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