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학식 몇 끼 더 먹었다고 당신보다 '난 사람'은 아니다. <치즈인더트랩> 중 한 장면.
 학식 몇 끼 더 먹었다고 당신보다 '난 사람'은 아니다. <치즈인더트랩> 중 한 장면.
ⓒ tvN

관련사진보기


대학교. 새학기다. 개강이다. 누군가는 졸업을 했고, 또 누군가는 신입생이 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또 나가는 동안 남아있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이제 막 대학교에 들어온 '새내기'들을 향한 권력과 권위의 주인이 된다. 이름하여, 선.배.님.

우습게도 그 조그만 공간에서조차 학번, 나이, 성적, 외모, 관계에 따라 우열이 정해지고, 권력관계가 만들어진다. 그 권력에 익숙해지면 소위 '꼰대'가 된다. 그 권력을 경계한다 해도 좀 괜찮은 꼰대가 될 뿐이다. 하지만 그 꼰대들 속에서도 반드시 피해야 할 꼰대들은 있으니.

이제 막 어딘가에 발을 디딘 초년생들을 위해 준비했다. 피해야 할 꼰대 선배님들. 그러나 이것이 꼭 대학교에서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넓고 꼰대는 많다. 대학교에서 꼰대였던 사람은 취직해봤자 취직한 꼰대가 될 뿐이다. 이들이 여러분의 선배가 될 수 있으니, 필히 주의할 것.

"말 편하게 해도 되지?"

"선배님, 말 불편하게 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후배는 없다. <무한도전> 중 한 장면.
 "선배님, 말 불편하게 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후배는 없다. <무한도전> 중 한 장면.
ⓒ MBC

관련사진보기


첫 술자리. 어색함과 긴장으로 굳은 어깨. 그리고 한 선배'님'이 다가와 말한다. "말 편하게 해도 되지?" 답.정.너. 당신이 대답하지 않아도 답은 정해져 있다. 누가 과연 말 편하게 해도 되냐는 물음에 "불편하게 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 관계에 있어 누가 존대를 하고, 누가 반말을 하느냐는 그 자체로 관계의 수직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선·후배가 과연 그렇고 그런 사이일까? 선배가 권위를 가지고 후배는 그 권위에 고개 숙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대학은 군대가 아니다. 개인과 개인이 독립된 인격체로서 만나는 수평적 공간. 생각해보라.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에게도 존대를 한다. 그런데 왜 계속 마주치고, 마주 봐야 할 이들은 그렇게 쉽게 대하는 걸까. 고작 학식 몇 끼 더 먹었다고 '편하게' 반말할 권리가 주어질 수는 없다. 만약 그 선배'님'이 불편하다면, 당신이 잘못된 게 아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건 이렇게 해야 돼"

친애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께서 이 말에 덧씌운 이미지 탓인지, 이 말을 그대로 사용하는 이는 거의 보지 못했다. 하지만 많은 선배'님'들이 단어만 바꿔서 저 얘기를 고대로 한다. 이렇게.

"그거 내가 해봤는데."
"그래도 우리는 너희보다 1년 먼저 들어왔으니까."

가장 혹하기도 쉬운 말들이다. 모든 게 낯설고 어려울 때, 그래도 '해봐서 아는' 선배님 말씀을 들으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이니까. 그러나 그 '해봐서 안다'는 선배님들이 도움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사회는 계속 변하고, 학교도 계속 변한다. 자신의 경험에 도취돼 있을 수록 "해봐서 안다."고 자부하기 쉽지만, 낡은 경험일 뿐이다. 앞서 말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예를 보라. 이들을 조심해야 할 이유가 명확해지지 않는가?

"분위기는 신입생이 맞춰야지"

"이 정도는 마셔야지!"라고요? <무한도전> 중 한 장면.
 "이 정도는 마셔야지!"라고요? <무한도전> 중 한 장면.
ⓒ MBC

관련사진보기


어딜 가든 만날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이다. 술을 권한다. 마신다. 술을 권한다. 마신다. 술을 권한다. 어쩔 수 없이 마신다. 술을 권한다. 어렵게 거절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말은, "분위기 깨지잖아. 이 정도는 마셔야지, 안 그래?"

그러나 신입생이, 그 사회에 막 발을 내디딘 이들이 술자리 분위기 내기용(用)으로 사용될 이유는 없다. 누구 하나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술잔을 강요당할 이유 역시 없고. 화기애애한 술자리의 분위기는 큰 목소리를 내는 그 선배가 오히려 깨고 있는 것이다.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마시고 싶지 않으면 마시지 않을 권리가 있다. 너무나 당연해서 여기에 '권리'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 자체가 우스울 정도다. 이런 반민주적인 선배, 있으면 다른 테이블로 옮겨 가자. 아님 강권의 대가로 그의 술잔에 토라도 잔뜩 해주든지.

"지연이는 혹시 남자친구 있어?"

직접거리는 꼰대는 꼭 있다. <치즈인더트랩> 중 한 장면.
 직접거리는 꼰대는 꼭 있다. <치즈인더트랩> 중 한 장면.
ⓒ tvN

관련사진보기


뒤풀이에서 인사 한 번 했을 뿐인데, 그때부터 자꾸 카톡을  보낸다. 페이스북에서는 댓글을 단다. 문자에, 전화도 서슴지 않는다. 거리를 두고 싶어 단답을 해도 연락을 멈추지 않는다. 내가 보낸 대답은 "네" "아니오"밖에 없는 것 같은데,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으실까.

앞의 예가 후배를 '술자리 구색용'으로 사용했다면, 이 사람은 오직 후배를 연애의 대상으로만 소비하고 있다. 그 사람이 당신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당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역시 치근덕대고 있지는 않은지부터 살펴볼 것.

이들이 당신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 또 배려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당신이 당신의 의사를 명백하게 드러낼 때, 알아서 멈출 터이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똑같은 반응이라면 그냥 대꾸를 멈추자. 그때는 그냥 피하는 게 답.

세상은 넓고 꼰대는 많다

꼰대는 이밖에도 너무 많지만 지면이 부족해 이만 줄인다. 아닌 게 아니라 진짜다. 타인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술게임이랍시며 러브샷이라고 성희롱을 강요하는, 학식 몇 끼짜리 권력과 권위를 내세우며 알량한 대접을 받기 원하는!

앞서 말했다시피, 이것이 비단 대학교란 공간 안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회 어디든 자기 후배 알기를 호구 알 듯 아는 선배님들이 널려 있다. 그리고 자신들은 이야기한다. "나 정도면 꼰대, 아니지?" 그렇기에 꼰대는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다.

이들이 독자적으로만 존재하리란 법은 없다. 서로 교집합을 이루기도 한다. 후배에게 술 먹이고, 말 놓고, 들이대면서, 정작 남의 이야기는 들을 생각도 않는 그런 선배님들. 이런 이들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그럴지 안 그럴지, 겪고 보니 좋은 사람일지, 당신이 어떻게 아느냐고?

그야 내가 당신보다 대학을 더 오래 다녔으니까! 내가 대학교 다녀봐서 아는데, 그런 사람은 무조건…, 어…? 그러고 보니 나도 꼰대네? 나도 피하세요, 여러분!


태그:#대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