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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이야기 속, 샌프란시스코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던 미국의 어느 도시가 아니다. 어쩌면 조금 더 미래를 배경으로 한 것일지도 모를 풍경들이 묘사된다. 학교 안에서 쓰이는 '무료 제공' 노트북인 '스쿨북'은 학생들이 입력하는 모든 단어를 식별한다. 검색창에 입력하는 모든 단어를 검열해서, 학생이 의심스러운 검색을 할 때마다 국가기관은 추적에 들어간다. 뿐만 아니다. 학교 복도와 길거리에는 수많은 CCTV가 있고, '걸음걸이 패턴'으로 사람을 판별하는 인식 장치가 달려 있다.

모든 것이 감시되고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 앞서 묘사한 상황은 소설 <리틀 브라더>의 배경 설정이다. 코리 닥터로우의 SF소설은 가상의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2008년에 떠올린 '가상의 감시 국가'

SF 소설 <리틀 브라더> 표지 사진.
 SF 소설 <리틀 브라더> 표지 사진.
ⓒ 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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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감시국가'라고 하면 누군가는 조지 오웰의 <1984>를 먼저 떠올릴 것 같다. <1984>가 1949년에 상상한 '미래의 감시국가'였다면 <리틀 브라더>는 2008년에 묘사한 '멀지 않은 미래'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테러로 인한 위협까지 21세기에 실존하는 소재가 본문에 등장한다. 그래서 2016년에 책을 접한 독자라면 더 친숙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주인공인 10대 고교생 '마커스 얄로우'는 '신발에 자갈을 넣는' 방식으로 '걸음 패턴 인식기'를 교란하고 친구들과 학교를 탈출한다. 하필이면 그 순간, 이미 많은 감시 체계가 존재하는 <리틀 브라더> 속 샌프란시스코에서 진짜 '테러' 사건이 발생한다. 이른바 '땡땡이'를 감행한 마커스 일행은 눈앞에서 폭탄이 폭발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당황한 마커스 일행. 평화롭던 하늘에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고, "대피소로 이동하라"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이때 도움을 청하러 길가로 간 마커스 일행이 목격한 것은 경찰이나 구급차가 아니라 군부대 차량이었다.

주인공과 일행의 머리에 순식간에 두건이 씌워지고, 손과 발을 결박당한 채로 어디론가 끌려간다. 무심코 학교에서 나왔다가 '있어야 할 장소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테러 용의자가 된 마커스와 친구들. 이들을 기다리는 것이 어딘지 모를 감금 시설과 고문이었다. 각 장에서 소설이 보여주는 상황은 <1984>만큼이나 묵직하고 소름 끼친다.

"삶의 귀퉁이에 있는 자기만의 공간, 자기 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는 공간이 사람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그건 옷을 벗거나 대변을 누는 것처럼 사소한 일이다. 모든 사람들은 가끔 벌거숭이가 된다. 모든 사람들이 변기 위에 쪼그려 앉아야 한다. 이건 부끄럽거나 비정상적이거나 별난 짓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똥덩어리를 배출할 때마다 뉴욕 타임스 스퀘어 한 가운데에 설치된 유리방에 들어가서 옷을 홀딱 벗어야 한다는 법령을 정하면 어떻게 될까?

(중략) 이건 부끄러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사생활에 대한 문제다. 사생활은 나에게 속한 나만의 삶이다. 놈들이 내게서 사생활을 조금씩 빼앗아가고 있다."(본문 82~83쪽 중에서)

공포가 바꿔놓은 사회의 모습

"저는 오히려 국토안보부 때문에 무섭습니다"
 "저는 오히려 국토안보부 때문에 무섭습니다"
ⓒ instructabl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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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브라더>는 '감시 사회'를 넘어서 공포가 바꿔놓은 사회의 모습까지 비춘다. 폭발 사건으로 다리가 무너지자 샌프란시스코 시민의 이성까지 무너져 내린다. 본문에서는 샌프란시스코를 국토안보부가 장악하고, 군부대가 거리를 돌아다니며, 광장에 시민이 모이는 즉시 '해산하라'고 명령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점차 테러가 주는 공포, 도를 넘은 공권력이 주는 위압에 굴복한다.

신용카드, 스마트폰, 교통카드 등 개인의 생활이 담긴 모든 도구에 식별장치가 부착된 상황. 모든 사람이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샀는지 등 모든 정보가 국토안보부의 손에 넘어간다. 국토안보부는 실시간으로 시민을 감시하고, 경찰은 길거리에서 수시로 검문을 실시한다.

평범한 회사원, 학생들까지 평소 다니던 활동 반경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어디로 가는지, 목적이 무엇인지' 길거리에서 심문당한다. 반역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소설 속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잔뜩 움츠러든 모습으로 살아간다. 자칫 잘못하면 사소한 실수로도 '테러 용의자'로 지목받는 일이 쉽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주인공 마커스는 감옥에 끌려간 경험을 한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다. 특유의 해킹 실력과 지략으로 진실을 밝히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강압의 방식으로 굴러가는 사회, 폭력과 공포를 수단으로 유지되는 시스템이 정상이 아니라고 사람들을 향해 외친다.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저는 폭탄 테러를 당하고 싶지 않고 저희 도시가 폭파당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에 저 스스로도 그 질문을 여러 번 해봤습니다. 그래도 떠오르는 생각은 있습니다. 국토안보부가 하는 일이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라면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그들이 저질러온 온갖 헛짓거리로는 다리가 다시 폭파당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를 감시하고, 우리의 자유를 빼앗고,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서로에게 등을 돌리게 하고, 우리를 반역자라고 부르는 걸로 테러를 막을 수 있나요? 테러의 목적은 우리를 무서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오히려 국토안보부 때문에 무섭습니다."(본문 316쪽 중에서)

필리버스터가 남기고 간 것과 '테러방지법'

서기호 의원이 국회 필리버스터 도중 <리틀 브라더>를 소개하는 장면.
 서기호 의원이 국회 필리버스터 도중 <리틀 브라더>를 소개하는 장면.
ⓒ 국회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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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국내에 출간된 책을 올해 다시 소개하는 이유는, 지난 2월 26일 <리틀 브라더>가 국회 '필리버스터' 당시 거론됐기 때문이다. 화제가 된 국회 무제한 토론에서는 야당 의원들이 '국정원의 영장 없는 국민 감시가 가능해지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최근 몇 년 동안에도 국정원은 간첩 조작 사건, 대대적인 댓글 작성을 통한 '대선 개입' 의혹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소설은 픽션인 만큼 다소 과장된 면이 있지만, '테러방지법 독소조항'으로 거론된 부분에 관한 사람들의 우려는 본문 속 사회와 닮았다. 국가 안보를 위한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든 국민의 통신망을 감시하는 소설 속 상황. 이는 견제 장치가 미흡하고 규정이 모호한 '테러방지법'과 비교된다.

지난 2일 국회에서 여당 단독으로 표결된 '테러방지법'은 '국민 사생활·비밀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 17조, '통신의 비밀'을 보장한 헌법 18조를 침해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서기호 정의당 의원이 무제한 토론 당시 <리틀 브라더>를 단상에 들고 오른 이유도 이런 까닭으로 보인다. 결국 필리버스터가 남기고 간 것은 192시간 25분의 토론,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열망과 더불어 '감시 사회'에 대한 우려다.

소설 <리틀 브라더>를 쓴 캐나다 출신 작가 코리 닥터로우는 '괴짜'로 불린다. 4개의 대학을 다녔지만 한 군데도 졸업하지 않았고,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인터넷의 자유'를 위해 힘쓰는 시민단체 '전자 프런티어 재단(EFF)'에서 활동해왔기 때문이다. 또한 코리는 자유 저작권 운동가라서, 소설 <리틀 브라더>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se)'로 풀린 상태다. 비상업적 목적이라면 누구든 번역과 인용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출판물이라는 뜻이다.

그가 저작권을 자유롭게 풀어놓은 이유는 아마도 소설이 끝난 이후 '덧붙인 글'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본문에 나오는 다양한 보안 시스템 체계 설정에 도움을 줬다는 보안 전문가 '브루스 슈나이어'. 빅 브라더의 출현을 경고하는 책 <리틀 브라더>는 브루스의 의미심장한 말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한국에서 테러방지법이 통과된 오늘날, 어쩌면 이 말을 더 많은 사람이 생각해봐야 할 시기가 온 것은 아닐까.

"사생활과 보안을 맞바꿔치기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사생활과 맞바꾸면서도 실질적인 보안을 얻을 수 없다면 그거야말로 진짜 멍청한 짓이다."(본문 488쪽 중에서)

덧붙이는 글 | <리틀 브라더>(코리 닥터로우 씀/ 최세진 옮김/ 2015.10.20/ 아작/ 1만4800원)



리틀 브라더 (특별판)

코리 닥터로우 지음, 최세진 옮김, 아작(2015)


태그:#리틀브라더, #필리버스터, #경찰국가, #사찰, #테러방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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