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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총성이 울린다. 고라니에 강력한 서치라이트를 비추면 꼼짝하지 못한다. 불빛을 보던 고라니는 총성과 함께 유명을 달리한다.

청둥오리 떼는 총성과 함께 혼비백산하여 야간비행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다른 총에 맞아 금강의 차가운 물로 한 마리가 떨어진다. 다음 날 아침 싸늘하게 식은 청둥오리를 발견한다. 엽총 탄피과 함께….

민간인의 총기 소지가 사실상 불법인 우리나라 강변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또한 기자가 지난 2일 공주시 금강변에서 마주한 일이다. 매년 3월 3일은 국제야생동식물 멸종위기종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이 지정한 '세계 야생동물의 날(world wildlife day)'이다. 야생동물의 날 전에도 이런 밀렵은 여전히 계속됐다.

사냥꾼은 미처 청둥오리 사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자리를 떠난 모양이었다. 탄피 수거는 언제나 이들에게는 필요 없는 일이다. 연달아 놓인 탄피 2개가 어떤 동물에게는 저승사자가 되었을 거란 생각에 마음이 먹먹하다. 이런 일들이 전국 각지에서 아직도 벌어지고 있다. 공주시는 지정된 수렵지가 아니기 때문에 총기 사용 자체가 불법인데도 말이다.

탄피와 죽은 오리, 여긴 수렵 지역도 아닌데

청둥오리가 죽어 있는 모습
▲ 총에 맞아 죽은 청둥오리 청둥오리가 죽어 있는 모습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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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에 따르면 국내에서 개인이 소지한 총기는 허가된 수만 2014년 기준 16만1519정이다. 지속적으로 총기 소지 수가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숫자이다. 총기 숫자가 많다 보니 가끔 끔찍한 사고 소식이 들려오기도 한다.

2015년 세종에서 총기 사고가 일어나면서 경찰청의 부실한 총기 관리가 지적되기도 했다. 총기의 운반이 너무 쉽다는 지적이었다. 총기 관리 미흡으로 인해 가끔 발생하는 인명사고는 반드시 없어져야 할 문제다.

도로 한복판에 탄피가 떨어져 있다.
▲ 사용된 탄피 도로 한복판에 탄피가 떨어져 있다.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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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불법 수렵행위 역시 근절되어야 할 대상이다.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제55조(수렵 제한) 의거하여 야간에는 수렵행위가 허가되지 않고, 지정된 수렵장에서만 가능하다. 수렵장은 지자체장들이 지정하여 고시하고 있다. 충남 지역에서 2015년 기준 수렵 허가 지역은 서천군이 유일하다.

청둥오리 사체를 만난 금강변은 수렵장으로 지정되지 않은 공주 지역이다. 총기 사용 자체가 불법인 지역에서 수렵이 일어난 셈이다. 특히 도로에서 100m 이내는 수렵장 허가 자체가 나지 않는다. 사람의 왕래로 인해 총기 사용이 위험하기 때문이다. 기자가 탄피를 발견한 곳은 도로 한복판이었다. 아마 당사자는 큰 거리낌 없이 청둥오리 등의 동물을 사냥하고 유유히 이곳을 떠났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수렵 행위 자체를 모두 나쁜 일로 평가하거나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수렵이 합법적이려면 적정한 장소와 시기를 토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수렵 행위가 허가된 수렵장의 경우도 문제는 있다. 지자체가 지정하게 되어 있는 수렵장은 토지 소유주 등 이해 관계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절차는 지역신문에 고시 하는 정도로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충남 내 수렵 허가 지역인 서천군 역시 이런 의견 수렴 절차는 신문에 공고를 내는 것이 전부였다. 서천군청 담당자는 "시민들에게 설명회 등을 진행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또한, 수렵장의 설치는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한 법령에 포함되어 있다. 이는 무분별한 수렵 행위를 제한하려는 조치이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보호보다는 '수렵행위를 통해 유해조수(해로운 동물)를 구제(몰아내서 없애버림)할 목적으로 지정한다'고 공지하고 있다. 때문에 법의 취지와는 다르게 일부 법적보호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을 수렵장으로 지정하는 경우도 있다.

'야생동물 피해를 구제하겠다'는 내용으로 수렵장 설치 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 서천군청 홈페이지 공지사항 '야생동물 피해를 구제하겠다'는 내용으로 수렵장 설치 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 서천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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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목적에 맞는 수렵장이 되기 위해서는 수렵 대상 동물 역시 유해조수로 한정해야 한다. 하지만 수렵 대상은 보통 환경부에서 지정한 수렵 동물이다. 서천군에 접수된 유해조수 현황을 보면, 접수된 종은 고라니·멧돼지·비둘기·까치·꿩 정도이다. 김 양식장에 피해를 입힌 오리는 '혹부리 오리'로 야생에 생존한 개체가 많지 않아 수렵 대상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종이다. 이렇게 수렵종과 유해조수의 차이가 있음에도 수렵장을 '유해조수 구제 차원'에서 운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멸종위기에 처하지 않아 수렵이 가능한 종으로 수렵동물을 지적하는 것과 유해조수 구제는 균형이 맞지 않는 선택이다. 지자체는 대부분 유해조수 구제를 위한 별도의 사업이나 팀들을 꾸려 운영하고 있다. 충남 서천시 수렵 담당자는 "역시 유해조수를 위한 별도의 제도를 마련하여 운영 중"이라고 답했다. 유해조수를 구제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찾는 것이 더욱 현명하다. 유해조수라는 용어도 수렵장 설치에 대한 반감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도 보인다.

수렵동물 : 16종[멧돼지, 고라니, 청설모, 수꿩, 멧비둘기, 참새, 까치, 어치, 까마귀류(까마귀, 갈까마귀, 떼까마귀), 오리류(쇠오리, 청둥오리, 홍머리오리, 고방오리, 흰빰검둥오리)]

세계야생동물의 날, 수렵 다시 생각해보자

수렵장 설치에 필요한 야생동물 밀도 조사를 진행하며, 많은 동식물이 서식하는 곳에 수렵허가를 내어주는 것이 관례이다. 이를 얼핏보면 많은 동물이 서식하니 일부가 없어져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동식물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환경이 좋다는 뜻이다. 동물들이 서식처로 사용하는 곳에 무분별한 수렵행위를 초래하는 형국이다.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수렵장 설치를 피하고 있지만, 보호 구역의 주변지역이 무방비 상태가 되어 버린다. 결국 동물의 좋은 서식처를 파괴하는 꼴이다.

지금도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수렵장을 운영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강원(강릉시, 삼척시) 충북(진천군, 괴산군, 음성군), 충남(서천군), 전북(진안군, 무주군, 장수군, 임실군, 순창군), 전남(보성군) 경북(안동시, 영주시, 문경시, 청송군, 예천군, 봉화군), 경남(산청군, 함양군, 거창군, 합천군)에서 현재 수렵장을 운영 중이다.

전국 총기 소지의 현황을 보면 가장 많은 곳이 서울·경기 지역이다. 하지만 이곳에 수렵장은 많지 않다. 서울·경기의 수렵 인구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는 셈이다. 수렵장을 조성하려면 서울·경기 인근에 하는 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경찰정에서 제공한 총기현황
▲ 2014년 7월 기준 우리나라 총기소지 현황 경찰정에서 제공한 총기현황
ⓒ 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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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렵 행위를 금지하지 않고 잘 관리하려면 실제 지자체가 전 지역을 대상으로 수렵장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의 수렵장을 양성화해야 한다. 실내낚시터처럼 특정구역을 설정하고 꿩과 고라니 등을 방생하여 생물의 서식을 확보하고 수렵이 가능하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 특정구역을 수렵장으로 지정하면 총기 운반 예방 조치도 가능하다. 이를 통해 총기 개인 소유에 대한 관리와 감독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수렵 자체를 금지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싶다. 하지만 수렵 문화를 가져왔던 과거의 역사라고 감안하여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총성이 울려 퍼질지도 모른다. 그 총성이 울리는 곳은 전국 어느 지역이든 될 수 있다. 지자체가 수렵장을 신청하면 어렵지 않게 허가되기 때문이다.

그 총성이 전국 산과 들이 아닌 수렵장으로 한정되기를 바란다. 세계야생동물의 날을 맞아 국민이 밀렵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볼 기회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태그:#수렵장, #야생동물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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