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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2일) 아침 박 선생은 일찍 일어나서 물새를 보러가고 나는 늦잠을 잤다. 7시가 다 되어 일어나 세수를 한 다음, 아침을 준비했다. 아침이라고 해야 라면에 밥을 한 공기씩 말아, 김치와 함께 먹는 것이 전부였지만 꿀맛이었다.

내성천을 거닐면서 발견
▲ 깝작도요새 내성천을 거닐면서 발견
ⓒ 박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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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식으로 커피를 한 잔하고는 오전 8시 40분경에 무섬마을에서 출발하여 물길을 따라 4KM정도 아래에 있는 문수면 조제리까지 천천히 걸었다. 무섬마을 아래쪽에 별로 필요도 없어 보이는 순전히 관광객을 위한 외나무다리가 하나 더 만들어져서 있어 마음이 아팠다. 외부인의 방문이 늘어날지는 몰라도, 또 다른 자연 파괴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내성천
▲ 검은등할미새 내성천
ⓒ 박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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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박 선생과 나는 오후 5시까지 중간에 식사시간 30분을 제외하고는 계속 걸었으니 8시간 정도 쉬지 않고 나무그늘도 없는 모래사장과 물속을 걸은 것이다.

내성천
▲ 꼬마물떼새 내성천
ⓒ 박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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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까지 오는 긴 고무장화, 모자와 선글라스, 선크림까지 얼굴과 목, 손과 팔에 잔뜩 바르고 나갔다. 온도계가 한낮에는 25℃를 나타내고 있었지만, 체감 온도는 30℃는 넘을 것 같았다. 반팔과 긴팔을 번갈아 가면서 입고 벗고 하면서 다녔다.

내성천에서
▲ 김수종 내성천에서
ⓒ 박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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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KM의 거리를 물길을 걷는다고 하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 것이 아니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면 답은 간단하다. 박 선생은 카메라에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위성에서 보내는 신호를 수신해 사용자의 현재 위치를 계산하는 위성항법시스템)까지 장착하여 지난 사진을 확인해가면서 과거와 현재의 변화된 모습을 비교하는 사진을 찍고 있었다.

초록사진작가
▲ 박용훈 선생 초록사진작가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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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놀랍도록 변한 모래사장의 풍경과 내성천의 오늘을 비교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GPS를 사용해도 약간의 위치 차이와 특히 각도를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아서 포인트를 정하고도 3~4번씩 자리이동과 위치확인 및 각도를 조절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옛 사진과 현재의 모습의 비교
▲ 비교 사진 옛 사진과 현재의 모습의 비교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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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는 지루한 작업이었지만 예전 사진을 보면서 감사하게 따라 다녔다. 그리고 정말 많이 놀랐다. '내성천이 습지가 되고 산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눈물이 났다. "영주댐이 건설되면서 2012~13년 집중적으로 댐 상하부에서 골재채취를 했고, 내성천은 더 빨리 파괴되었다"고 한다.

정말 모래사장이 많이 줄었다
▲ 비교 사진 정말 모래사장이 많이 줄었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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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2011년 봄, 홍의락 국회의원, 환경연합 염형철 사무총장 등과 함께 봉화군 해저리에서 무섬마을까지 내성천을 따라 걸은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보니 나름 당시에는 모래강이 살아있었던 최후의 시기였다.

다슬기도 조금 있네
▲ 다슬기 다슬기도 조금 있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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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은 곳곳에서 악취도 나고, 모래사장은 여뀌와 버드나무가 자라고, 물고기와 물새도 많이 줄었다. 특히 조개류는 그 수가 더 많이 줄었다고 한다. 수달도, 먹황새도 줄었다. 모래유입이 줄어드니 생태계가 전반적으로 급속하게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버드나무까지
▲ 여뀌와 버드나무 이제는 버드나무까지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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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인지 박 선생은 "아무리 목이 말라도 냇물을 그냥 마시지는 마세요, 배탈이 나거나 두드러기가 나는 경우도 있어요"라고 했다. 중간에 목이 말랐던 나는 박 선생 몰래 냇물을 조금 마셔봤지만, 다행스럽게도 배탈은 나지 않았다.

역시 짐승들이 많은 듯
▲ 수달, 고라니, 황새 발자국 역시 짐승들이 많은 듯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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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길을 따라 걸으면서 박 선생에게 어린 시절 영주 시내를 관통하는 서천과 이곳 내성천에 수영하던 기억과 물고기를 잡던 이야기를 했다. 민물고기 이야기를 하다가 운 좋게 중지 정도 되는 크기의 모래무지를 한 마리 발견했다. 잡아서 사진을 찍고 놓아 주었다. 그리고 재첩과 다슬기도 조금 주웠다.

따라 다니는 나는 조금 지루하고 덥고 힘들었다. 하지만 너무도 묵묵히 좌표를 찾고 사진을 찍으면서 다니는 박 선생의 모습에 감동하여 힘들어도 힘들다는 내색 없이 따라 다녔다.

작은 재첩이 조금 있다
▲ 재첩 작은 재첩이 조금 있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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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나는 그의 정성과 내성천에 대한 깊은 애정도 발견했다. "이제 거의 희망이 없어진 내성천에서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사진기록 작업을 끝낼 예정이다"고 했다. 이제는 파괴된 내성천의 주인인 영주출신으로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하긴 자신의 고향 마을까지 수몰지로 만든 현역 국회의원이나, 국가사업이라며 당연히 하자고 선동했던 전임 시장에 비하면, 가끔이라도 찾고 안타까워하는 내가 조금은 나을 수도 있다고 자족해 보기도 한다. 아무튼 안타깝고 부끄럽고 죄스럽다.

서울에서 산 떡으로 점심
▲ 떡 서울에서 산 떡으로 점심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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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시간 가깝게 물과 모래밭을 오가면 사진 작업을 하고는 잠시 쉬면서 서울에서 가져온 떡을 두 조각씩 나누어 물과 커피와 함께 점심을 했다. 이동식으로는 정말 떡이 최고다. "아직은 날이 서늘하지만, 한여름에는 막걸리 냄새가 나는 발효된 술떡 밖에는 먹을 것이 없다"고 했다. 술떡을 좋아하는 나는 영주에 유명한 기지떡(술떡)집이 여러 곳 있다고 소개를 했다.

박 선생은 "영주시는 문화유산인 부석사, 소수서원 같은 것을 관광자원으로 집중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영주에는 자연유산인 소백산과 내성천이 주는 혜택이 더 크다. 물론 가능성도 더 많은데, 이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는 무섬마을도 한옥보다는 모래사장이 더 중요하다. 특히 세계적인 모래하천인 내성천을 보호하는 일에 영주댐 철거는 필수적인 사항이다"라고 영주사람이 나를 꾸짖듯 말했다.

조금 그렇다
▲ 무섬마을 새로만든 외나무다리 조금 그렇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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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나도 많은 것을 배웠다. 물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왼편의 석탑천 유출구부터 4~5KM는 안동 땅이고, 오른편은 전부 영주 땅인데, 안동은 주로 바위와 자갈이 많고, 영주는 모래뿐이다. 안동에서 보면 산이 막혀있고, 영주는 바로 앞에 냇물이 펼쳐지는 모래사장이다. 가뭄도 막아주고, 농사에도 큰 보탬이 되고, 물고기도 많았던 내성천은 영주사람들에게는 보물이었다.

그런데 그 보물 망치는 일을 영주사람들이 주도했다. 특히 지역의 유력인사들이 앞장을 서서 댐건설을 주창했으니 정말 답답한 꼴이다. 모래강은 풀이 자라고 나무까지 자라는 습지가 되면 다시 원상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제라도 영주댐을 없애지 않으면 1조 원을 들어 지은 영주댐이 후일 10배~100배 이상의 피해로 돌아올지도 모른다.

온통 풀밭이다
▲ 여뀌 온통 풀밭이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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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답답한 마음을 안고 식사를 마치고는 다시 천천히 물길을 따라 두어 시간을 더 걸어 조제리에 도착하니 오후 5시다. 영주로 가는 시내버스는 7시에 온다고 하여, 바로 석탑교 다리를 건너 안동시 북후면 석탑리로 가서 안동시내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안동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중지만 하다
▲ 모래무지 중지만 하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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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영주와 예천을 흐르는 세계적인 모래강인 내성천, 그리고 그 중앙에 자리하여 모래의 이동을 막고 있는 완공직전의 영주댐. 반드시 후손들에게 소중하게 물려주어야 하는 고귀한 우리의 자연유산, 그리고 물길을 따라 느낄 수 있는 유교문화. 정말 생각이 많아졌고 마음 아팠고 공부할 것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낀 낙동강 상류의 내성천 답사였다.  


태그:#내성천, #무섬마을, #박용훈, #김수종, #여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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