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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산재 사랑채굴뚝 항아리를 연가(煙家)로 사용하고 있다. 앞에 아궁이를 달고 있다. 연도에 풀이 자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은 바깥아궁이로만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 김정봉
굴뚝은 독특한 우리 문화의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굴뚝은 오래된 마을의 가치와 문화,  집주인의 철학, 성품 그리고 그들 간의 상호 관계 속에 전화(轉化)되어 모양과 표정이 달라진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오래된 마을 옛집굴뚝을 찾아 모양과 표정에 함축되어 있는 철학과 이야기를 담아 연재하고자 한다. - 기자 말

4월 18일 오전 7시 반, 사도리 상사마을 버스정류장에는 네댓 명 학생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낯선 풍경이다. 시골에서 삽 들고 논꼬 보러가는 마을 할아버지라도 만나면 그나마 다행이라 여길 지경인데 책가방 들고 학교 가는 학생들을 만났으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이른 아침 밥불 연기를 볼까하고 갔지만 연기 대신 더 반가운 광경을 보게 된 것이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상사는 귀촌하는 사람이 많기로 소문난 마을이었다. 학생들과 함께 있던 마을아주머니는 더 이상 마을에 들어오고 싶어도 땅이 없다며 어깨에 힘주며 귀띔해 주었다. 학생들 얼굴에서, 끝이 살아있는 아주머니 말에서 상사마을 기운이 솔솔 풍겨 나왔다.

전남 구례 사도리 '상사 마을'
오산 사성암 정경 도선국사가 이인을 만났다하는 사성암 정경. 사도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도선과 사도리와 관련된 전설 같은 얘기가 믿을만하게 다가온다. ⓒ 김정봉
상사마을 정경 새로 지은 한옥들로 좀 산만해보이나 군데군데 남아있는 돌담이 옛마을 정취를 이어가고 있다. ⓒ 김정봉
상사마을은 마산면 사도리에 있다. 사도리 얘기는 오산(鰲山) 사성암(四聖庵)에서 시작된다. 도선국사(827~898)가 사성암에서 수행을 하던 중, 한 이인(異人)을 만났다. 그는 풍수지리에 대한 이치를 얘기하고 홀연히 사라지더니, 훗날 마을 앞 강변에 다시 나타나 모래로(沙) 산천을 그리고(圖) 다시 사라졌다 한다. 도선이 그 그림의 산천지세(山川地勢)를 보고 풍수의 원리를 깨달았다 하여 이 마을을 사도리라 하였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전한다. 

현재 사도리는 상사마을과 하사마을로 나뉘어 있다. 상사마을은 827년, 신라 흥덕왕 때 생겼다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827년은 도선국사가 탄생한 해(827년)에 맞춘 듯하다1524년에 해주오씨가 남원으로부터 입촌하여 터를 잡고, 그 후 1780년 무렵 순천에서 영천이씨가 살게 되면서 두 성씨의 집성촌이 되었다는 것이 남아 있는 기록이다. 

마을 어귀에 있는 쌍산재는 아껴두고 마을부터 돌았다. 마을은 똥매산 줄기 따라 부챗살모양으로 퍼졌고 그 살마다 집들이 달려있다. 행복마을 조성(2010년, 16세대한옥)으로 듬성듬성 들어선 한옥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여 산만하다. 옛마을 정취를 이어가는 돌담이 위안이라면 위안, 새 한옥굴뚝은 잔뜩 멋을 부렸고 옛 민가굴뚝은 풍정(風情)이 아련하다.
상사마을 민가굴뚝 마을에는 몇 개의 인상적인 굴뚝이 남아있다. 동강난 굴뚝은 파란지붕과 노란색 벽의 장식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 김정봉
상사마을 민가굴뚝 까맣게 그을려 놓은 흙벽의 자취를 더듬으며 메말라가고 있다. ⓒ 김정봉
회색 슬레이트집 굴뚝은 잔솔가지 타는 소리를 그리워하며 연노랑 집 검정 굴뚝은 생솔가지 푸른 연기를 못 잊어하는 듯 보였다. 모가지 동강난 굴뚝은 이제 할 일을 잃고 파란지붕, 노란 벽의 '노리개'로 전락하고 말았다. 뉘 집 굴뚝은 흙벽을 까맣게 그을려 놓은 자신의 마지막 행적을 더듬으며 말라가고 있었다. 

상사마을 300년 된 옛집, 쌍산재

메마르고 목말라하는 굴뚝을 보아선지 내 목이 다 말랐다. 천년고리 감로영천(千年古里 甘露靈泉'을 자랑하는 당몰샘에서 목축이며 찾아든 집은 쌍산재. 상사마을이 제일 자랑삼는 300년 된 옛집이다. 해주오씨 후손, 오경영씨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안채, 사랑채, 건너채 모두 지붕 낮은 집으로 소박하였다. 나중에 깨닫게 된 것이지만, 쌍산재 첫인상을 기억해 둬야 한다. 대숲 너머 별천지를 보고나면 소박한 첫인상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만다. 집주인의 안내에 따라 촉촉하고 어둑한 대숲 오르막에 올랐다.
쌍산재 정경 사랑채, 안채, 건너채 모두 지붕 낮은 집들이다. . ⓒ 김정봉
쌍산재 별채와 대숲 쌍산재는 크게 두 영역으로 나뉜다. 별채 아래의 살림영역과 쌍산재가 있는 학습영역. 쌍산재는 영역을 담으로 나누지 않고 문과 집채로 나누는 것이 특징이다. 대숲도 한 수단이 된다. ⓒ 김정봉
길은 좁다. 몸가짐을 바로 하라는 얘기다. 좁은 길 끝에 첫 문이 나온다. 가정문(嘉貞門)이다. 길과 문이 일직선상에 있지 않고 서로 어긋나 있다. 쌍산재(서당채)를 숨겨둔 것이다. 서당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여기 오는 내내 잡초를 뽑던 주인은 오자마자 마루부터 쓸기 시작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람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낮에 기왓장 속에 숨어 있다가 밤에 활동하는 집박쥐가 배설을 해 놓고 간다는 것이다.

쌍산재 서쪽으로 실 같은 길이 나있고 그 끝에 조그만 문이 하나 있다. 문 이름은 영벽문(映碧門). 짙푸른 벽색(碧色)을 비춘다는 뜻이다. 문밖은 저수지다. 과연 저수지는 물 안에 벽색을 담고 있었다. 이 집 당호나 문 이름은 대부분 선조들의 호를 따서 붙인 거라 했다. '영벽', 보나마나 멋을 아는 분일 게다. 

주인은 한여름 해 넘어갈 때가 가장 좋다고 하였다. 해가 가장 높게 뜨는 여름이 되어야 저수지에 노을이 비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저수지에는 세 가지 광경이 있다고 알려줬다. 눈으로 보는 광경이 하나요, 물속에 잠긴 광경이 두 번째, 또 하나는 마음으로 보는 광경이란다. 조용히 감상할 일이지 호들갑 부리지 말라는 주인의 말로 들렸다.   
쌍산재(서당채) 굴뚝 고개를 쭉 빼고 있는 타조 닮았다. 학동들이 게으름 피는지 감시하고 있는 겐가? ⓒ 김정봉
안채굴뚝 안채 뒤는 바로 언덕이다. 연도를 언덕까지 연장하고 굴뚝은 언덕위에 둬 멋을 냈다. ⓒ 김정봉
주인 뒤를 졸졸 따라가는 내내, 내 눈 하나는 굴뚝에 닿아있었고 한쪽 귀는 굴뚝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맨 위에서부터 경암당, 쌍산재, 바깥아궁이, 호서정, 별채, 안채, 사랑채, 건너채에 딸린 굴뚝은 모두 10여 개 정도 된다. 대부분 암키와와 황토로 쌓아 올린 뒤 항아리나 평평한 돌 혹은 암키와로 연가(煙家)를 만들었다. 굴뚝은 집채에 바짝 붙이지 않고 길게 연도를 내어 지붕처마에 닿지 않게 하였다.

쌍산재 굴뚝은 집을 꾸미는 하나의 장식물이다. 경암당 양쪽 굴뚝은 앞마당의 허전함을 달래준다. 마당을 엉뚱하게 석등이나 석탑으로 치장하였다면 얼마나 허무했을까. 서당채(쌍산재) 굴뚝은 학동들이 게으름 피우는지 감시하기라도 하는 양 고개를 삐죽 내밀고 있다. 안채굴뚝은 연도(煙道)를 언덕 위까지 연장하고 굴뚝은 언덕에 마련하여 멋을 냈다.

사랑채굴뚝은 항아리 연가(煙家)를 머리에 이고 있다. '독' 품은 굴뚝이다. 대숲 안에 있는 호서정(壺西亭) 굴뚝은 유난히 키가 크고 꼿꼿하다. 정자나 누각 굴뚝의 경우 처마 밑에나 툇마루 밑에 숨기거나 아주 작게 만드는 법인데 대숲이 굴뚝을 감추었다고 생각한 거다.
호서정 굴뚝 대숲에 싸여 있는 호서정은 굴뚝도 대나무 닮았나, 키가 크고 꼿꼿하다. 해주오씨 기개가 엿보인다. ⓒ 김정봉
바깥아궁이 굴뚝 오리모양 바깥아궁이 굴뚝이다. 살랑살랑 감자 굽는 내 날 것만 같은 굴뚝이다. ⓒ 김정봉
집주인과 마루에 앉아 굴뚝 얘기를 주고받았다. 운조루 굴뚝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오미마을 운조루처럼 여기에도 낮은 굴뚝이 있다며 별채 굴뚝을 보여주었다. 굴뚝은 토방기단에 숨어 관심 없이 보면 보이지 않는다. 내굴길(연도)이 바로 굴뚝이 된 형태로 부뚜막 없는 함실아궁이와 나란히 있다. 아궁이와 굴뚝이 거의 붙어 있는 별난 구조다. 

쌍산재 굴뚝 가운데 가장 마음이 가는 굴뚝은 바깥아궁이굴뚝이다. 쌍산재(서당채) 곁에 하나 있고 사랑채굴뚝에도 하나 딸려 있다. 한여름이나 집안 대소사에 이용하는데 난방이 아니라 조리를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바깥아궁이굴뚝를 볼 때마다 한여름 감자 삶아먹던 어릴 적 추억이 아른거린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내 나는 굴뚝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걸까? 윤동주 시인이 멀리서 나에게 알려왔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로군.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몽기몽기 웨인 연기 대낮에 솟나.
감자를 굽는 게지 총각애들이/ 깜박깜박 검은 눈이 모여 앉아서
입술에 꺼멓게 숯을 바르고/ 옛이야기 한 커리에 감자 하나씩.
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살랑살랑 솟아나네 감자 굽는 내.       
- 윤동주 <굴뚝>

쌍산재를 나오며 한여름 해질 무렵 쌍산재 바깥아궁이굴뚝에서 솔솔 솟아나는 감자 삶는 내 맡으면서 영벽문 밖 저수지에 비친 노을을 감상하는 '행복한 나'를 그려 보았다.  

덧붙이는 글 | 4월 17일부터 4월 19일까지 현장에 다녀와 쓴 글입니다

태그:#굴뚝, #상사마을, #쌍산재, #사도리, #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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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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