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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언론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때는 언제일까
② <조선>은 왜 '카이스트'보다 '장자연'에 집중했나

시민들의 상식과 다르지 않게 다수의 미디어학자들은 보수 성향 미디어는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해 '개인 탓'을 많이 하고, 진보 성향 미디어는 '사회 구조 탓'을 많이 하는 논조를 띠는 경향이 있다고 말해왔다. 또한 뉴스 수용자에게 <조선일보>는 보수, <한겨레>는 진보라는 공식은 상식으로 통해왔다. 그런데 언론의 정치성향이 뉴스 수용자의 생명을 가를 정도의 영향력을 갖는다는 사실을 알리는 연구 결과가 하나 나왔다.

지난 4월 한양대 김대욱 강사, 남서울대학교 최명일 교수 연구팀이 한국언론학회에 발표한 <의미망연결분석을 이용한 2005~2014년 자살보도 분석>은 정치성향에 따라 미디어는 자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며, 이에 따라 뉴스 수용자가 자살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앞선 글에서는 <조선일보>의 보도 경향을 소개했다.

<조선일보>는 자살을 다양한 계층에 만연한 사회적 문제로 접근하기보다 '장자연' '노 대통령' 유명인 개개인 문제로 돌리고, '아파트' '목 매' '투신' '동반' '기도' '시도' '한강' '선택' 등 구체적인 자살방법을 묘사하는 경향이 높았다. 또한 '자살'을 기사 제목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빈도도 높았다. 이러한 보도 행태는 한국기자협회 <자살보도 윤리강령> 혹은 <자살보도 권고기준>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

연구팀은 "미디어가 특정한 이슈를 어떻게 바라보고 보도하는지에 따라 이슈에 대한 수용자의 이해방식과 문제해결 방안이 달라진다"며 자살 문제를 개인이 아닌 사회경제적 차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초점은 여기서 갈린다.

한겨레는 조선일보와 달리 '개인'보다 '계층'에 주목했다

연구팀의 10년간 <한겨레>의 자살보도 핵심어 52개 출현 빈도 데이터를 바탕으로 워드클라우드 분석을 실시했음. 단, 연구팀이 직접 어휘별로 범주를 나누지는 않았으며 기자가 다른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참고해 나눴음을 밝혀둠.
 연구팀의 10년간 <한겨레>의 자살보도 핵심어 52개 출현 빈도 데이터를 바탕으로 워드클라우드 분석을 실시했음. 단, 연구팀이 직접 어휘별로 범주를 나누지는 않았으며 기자가 다른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참고해 나눴음을 밝혀둠.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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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10년 동안(2005~2014) 자살 관련 기사 제목의 핵심어를 추출해 출현 빈도를 분석했다. 추출은 <조선일보> 기사 1308건, <한겨레> 기사 1303건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제목은 기사의 대표성과 방향성을 드러내고, 수용자의 시선을 본문으로 유도하며, 포털이 메인에 올릴 기사를 선택할 때 중요한 참고가 된다. 위 자료는 <한겨레>측 핵심어들의 출현 빈도를 글자 크기로 나타내는 워드클라우드 기법으로 시각화한 결과다.

연구팀은 "각 핵심어들의 등장 빈도와 중심성 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조선일보>가 자살을 학교폭력, 장자연, 자살방법/행위 등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한다면, <한겨레>는 학교폭력, 여성, 노동자, 자살방법/행위 등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며 "<한겨레>는 <조선일보>보다 다양한 계층의 문제 또는 사회문제의 시각에 비중을 뒀다. 여성, 재소자, 군대, 학생, 교수, 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에서 발생하는 자살문제를 보도하면서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차원의 문제로 접근했다"고 평가했다.

물론 지적도 아끼지 않았다. 연구팀은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자살문제를 보도할 때 공통적으로 장자연, 카이스트 사건과 같은 유명인의 자살이나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 등과 같이 특정한 자살사건이나 이슈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공통적으로 구체적인 자살방법이나 장소 등과 관련한 내용도 많았다"고 지적했다.

결국 <한겨레>도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조사 대상은 <조선일보>와 <한겨레>에 그쳤지만 이 딜레마에서 자유로운 언론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자살' '시도' '기도' 등의 말을 쓰지 않고 개인 책임으로 돌리지도 않으면서 제한된 헤드라인 내에서 자살 관련 소식을 알리는 건 상당히 어렵다. 물론 불가능하진 않다. 노력하면 최소화는 가능하다. 연구팀의 전반적 진단과 별도로 연구팀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상세 분석을 해봤다.

구체적 자살 상황을 묘사하고 개인 차원(특히 유명인)으로 돌리는 어휘들을 '모방자살 유도어'로 분류해보면 <한겨레>는 <조선일보>보다 그 출현 빈도가 낮았다. 결과는 투신(44), 장자연(35), 분신(18), 충동(17), 기도(16), 시도(15), 노 대통령(12) 순 총 '157'이었다. 반면 <조선일보>는 장자연(51), 투신(49), 동반(21), 노 대통령(16), 기도(16), 시도(16), 목 매(10), 연예인(9), 아파트(9), 한강(9), 선택(9) 순 총 '218'이었다.

또한 <한겨레>는 자살을 다양한 계층 문제로 접근하는 '인물어'나 자살이 일어난 맥락이나 수사 과정 등을 고려하는 '정황어'의 빈도도 <조선일보>보다 높았다. <조선일보>보다 자살을 직접적, 자극적, 개인적 차원이 아닌 맥락적, 심층적, 사회적 차원으로 다루는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이와 반대로 <한겨레>는 <조선일보>보다 '가족주의 관련어'나 '예방상담 관련어'의 빈도는 확연히 낮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자살은 가족과 테라피를 넘어선 '사회적' 문제라는 인식

이동원 외 <제3의 자본>(2009). 한국 사회에 '신뢰'가 취약하다는 것은 좌우를 막론하고 공히 지적하는 사실이다.
 이동원 외 <제3의 자본>(2009). 한국 사회에 '신뢰'가 취약하다는 것은 좌우를 막론하고 공히 지적하는 사실이다.
ⓒ 삼성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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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자협회는 <자살보도 권고기준>에서 "자살로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를 함께 밝혀준다. (중략) 자살에 대한 편견과 정신적 충격으로 그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겪을 고통이 언급되어야 한다" "(중략) 치료 및 상담을 받고 자살위기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사례" 등의 기준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이 부분은 '가족주의 관련어'와 '예방상담 유도어'가 빈도가 더 높은 <조선일보>가 <한겨레>보다 괜찮게 보도한 걸까.

맥락을 고려하면 그렇다고 단정할 수 없다. 한국은 대표적인 '불신 사회'다. 이 점만큼은 진보와 보수 간 이견이 크게 없다. 일찍이 삼성경제연구소는 <제3의 자본>에서 한국이 일반적 신뢰는 취약하고 가족 신뢰만 강한 나라라는 통계를 공개했다. '낯선 사람'을 신뢰한다는 응답이 13.4%(OECD 평균 33.9%), '가족'을 신뢰한다는 응답이 99.3%(OECD 평균 86.9%)에 달했다(관련 기사: 그들을 세금 도둑으로 만드는 완벽한 방법).

다만 보수는 '신뢰'를 주로 조직을 단합시켜 노동 생산성을 뽑아내는 데 필요한 자본처럼 인식하고, 진보는 주로 사회적 모순을 해소하기 위한 연대를 이끄는 힘으로 인식하는 차이는 있다. 그러나 대중의 심리는 문화학자 엄기호의 <단속사회>에서의 진단에 더 가깝다. "권력을 쥔 자이건 그것에 대항하는 자이건 '권력'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은 다 도둑놈들(그놈이 그놈)이라는 경험적 지혜(정치불신/혐오)"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는 사회적 안전망을 개선해 더 나은 삶을 이룩할 수 있다는 기대도 붕괴한다. 관심사는 신변의 안전 수준으로 축소되고 현실에 순응한다. 경쟁이 치열하고 불투명한 미래로 인한 불안은 '사회적'으로 해소되기 보다 '친밀함'의 차원에서 위로받으려는 태도, 즉 가족주의가 부상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꿈은 늘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벌겠다는 '평범함'의 차원에 묶이게 된다(프랭크 푸레디 <공포정치> 참조).

따라서 진보의 입장에서는 불안의 진정한 원인인 사회경제적 원인들을 바꾸지 못하면 이러한 악순환은 계속되리라 여길 수 있다. 사회적 문제가 생길 때마다 '가족주의 관련어'로 도배하거나 이미 실패한 테라피(힐링) 담론으로 문제로 접근하는 것도 초점을 흐릴 위험이 있다고 여길 수 있다. 가족들의 입장을 공개한다고 그게 공론(公論)이라고 볼 수는 없기에 거리를 두고, 사회적 맥락 속에서 다양한 계층의 자살을 조명할 수 있다.

연구팀의 10년간 <한겨레>의 자살보도 동시단어분석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미망을 재구성했음. 단, 스프링 임베디드 알고리즘에 따라 유씨아이넷6으로 시각한 연구팀과 달리 기자는 상위 9개 동시단어분석 관계만 추려 하렐-코렌 멀티스케일 알고리즘에 따라 노드엑셀로 시각화했음.
 연구팀의 10년간 <한겨레>의 자살보도 동시단어분석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미망을 재구성했음. 단, 스프링 임베디드 알고리즘에 따라 유씨아이넷6으로 시각한 연구팀과 달리 기자는 상위 9개 동시단어분석 관계만 추려 하렐-코렌 멀티스케일 알고리즘에 따라 노드엑셀로 시각화했음.
ⓒ 하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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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자들이 실제로 이러한 의도에서 자살을 가족주의나 예방상담 차원보다는 다양한 계층과 사회적 맥락 차원에 다룬 건지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다. 다만 연구팀이 공개한 핵심어 간 동시출현 데이터를 활용해 의미망을 시각화해보면 전반적인 경향은 뚜렷하다.

<한겨레>는 '자살'을 '노동자' '여성' '재소자' '학생' 등 다양한 계층의 문제로 인식하고, '사회' '위험' '의혹' 등 맥락을 고려해왔다('투신' '충동' '시도' '기도' 등 구체적인 자살 상황도 자주 함께 언급하는 한계가 분명 있지만). 그럼 '학교-폭력'은 뭘까. 연구팀은 분석을 1시기(2005~2008), 2시기(2009~2011), 3시기(2012~2014)로 나눠서도 실시했는데, 3시기(2012~2014)에 대구에서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사건이 빈번했다고 한다.

연구팀은 "대구는 정치성향이 보수적 이미지라 상징성을 지닐 뿐만 아니라 최근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실업률이 증가하고 이혼율이 증가하는 등 사회경제적 지표가 부정적인 동시에 자살률이 증가하는 상황이었으므로 <한겨레>가 비중 있게 다루었을 것으로 추론한다. 반면 <조선일보>에서 대구의 자살 문제는 높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한겨레>는 이처럼 지난 10년간 '사회적 맥락'을 향한 꾸준한 관심을 보여왔다.


태그:#한겨레, #조선일보, #한국기자협회, #보도윤리, #의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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