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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차승원이 등장하는 타이어 회사 광고

"타이어 교체를 맡긴다. 무상점검도 열 군데 받는다. 세심함에 감동한다."

차승원이 등장하는 어느 타이어 회사의 광고 문구가 단번에 내 귀를 붙잡았다. 듣는 순간 역시 한국이다 싶었다. 뭐 하나 맡기면 덤으로 무상점검도 해주고, 물건을 구입하면 서비스라고 뭘 더 끼워주기도 하고.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의 전통적인 정서를 대표하는 단어가 된 정(情). 그래서 외국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그 말. 산업화와 함께 어느덧 한국에서도 사라져 간다며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는 한국인의 아름다운 정서.

하지만 그놈의 정 때문에 누군가는 폐점시간에 맞춰 문을 닫으려 했다는 이유로 '이 집 장사하기 싫구나'라는 말을 손님에게 들어야 하고, 제시간에 퇴근하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추면 '회사 다니기 싫어?'라는 핀잔을 들어야 한다.

'그거 고치는 김에 이거 잠깐 봐주는 게 뭐 그리 어려워요'라는 말을 미처 억지라고 생각지 않게 되었고, '수리를 부탁한 지가 언젠데 아직 안 오냐'며 신경질 섞인 전화를 시간에 상관없이 하는 게 실례인지 모르게 되었다.

정해진 것만,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대로 하는 게 매정하게만 들리는 사회. 그렇다면 정말 정해지지 않은 것도, 정해진 시간 밖에서, 정해진 방식 이외의 방법으로 서비스받을 수 있다는 것은 늘 좋은 일일까?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무상점검은 곧 비용의 발생을 의미하며, 이러한 비용의 발생은 대체로 두 가지 방식으로 해결된다. 첫째, 무상점검비용을 은근슬쩍 비용에 포함함으로써. 둘째, 노동자에게 더 많은 노동을 강요함으로써. 그러나 가격 경쟁력이 매출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아무래도 두 번째 방법이 손쉽게 애용된다.

그러므로 타이어 교체를 맡기고 무상점검에 감동받으려고 하는 사회에서는, 결국 누군가의 희생이 강요될 수밖에 없고, 그 희생은 노동자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는 감동의 주인공이 나였을지라도, 다른 자리에서는 감동을 위한 희생양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러한 잔인한 뫼비우스의 띠는 결코 다수가 아닌, 희생양의 자리에 있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소수의 행복을 위해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타이어를 맡기고, 그저 타이어가 잘 교체되었다는 사실에만 감동해야 하는 사회에서는 이용자와 소비자가 조금 더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서로가 조금씩만 더 불편을 감수하면 누군가가 그 감동을 위해 목숨을 잃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

굳이 맑스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자본은 노동력을 통해 언제나 투자한 금액 이상의 가치를 얻어내려고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의 이러한 잉여가치 생산 공정에 우리가 '정'이란 이름표 달고 굳이 동참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드디어 징벌적 손해배상에 관한 법안들이 국회에 제출되었다고 한다.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반드시 통과되길 기대해 본다. 그뿐만 아니라 이 법이 노동자와 소비자의 어이없는 죽음에 사후처리를 위한 법으로서 역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비극을 미리 방지할 수 있는 법으로서 역할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비록 우리가 조금 더 불편해질 수는 있겠지만, 자본의 잉여가치 생산 공정에 대한 사회적인 보이콧도 병행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태그:#에어컨기사, #산재, #삼성, #정, #잉여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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